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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감정을 느낀다

그린캠프. 그곳은 소녀들의 가슴에 숲에 대한 사랑이 잉태되는 곳이다

 

그린 캠프의 모습


"자! 보세요. 바늘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죠? 바로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먹고 산소를 내뿜어 인간이 숨쉴 수 있는 맑은 공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죠?” 강의를 맡은 성주한박사(임업연구원)는 눈망울을 초롱거리는 학생들에게 나무의 호흡소리가 들리는 계기판을 더 기울여 보여준다.

이번 강의는 ‘나무의 신비’에 관해서다. 이미 어제는 숲이 얼마나 많은 물을 저장했다가 계곡으로 흘려보내는지, 키 큰 나무와 키작은 나무가 어떻게 한데 어울려 숲을 이루고 사는지, 땔감으로, 먹거리로, 집의 기둥으로 숲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그 분야 박사님들의 강의를 들었다. “활엽수의 잎사귀를 하나씩 따다가 앞뒷면을 문질러 보세요.” 역시 달랐다. 왜 다를까? 잎사귀 앞면에는 광합성을 위한 엽록체가 모여있고, 뒷면에는 숲쉬기 위한 기공이 있어서 앞뒷면이 다른 것이다. 그래 학교에서 숨구멍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잎사귀를 직접 만져본 적이 있었던가.

한국식 체험학습 유엔에서도 참관

체험학습. 매년 유한킴벌리(주)에서 마련한 그린캠프가 여학생들 사이에서 해가 갈수록 비밀스레 인기를 더해가고, 신청서를 남보다 먼저 접수하기 위해 새벽잠 설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올해도 설악산 장수대 숲속학교에서 지난 7월27일부터 8월3일까지 열린 ‘98 그린 캠프’에는 전국의 여고생 1백82명이 참가했다. 91명씩 3박4일의 일정으로 12, 13기의 숲속학교가 연속으로 열렸다. 그린캠프의 교장선생님이기도 한 유한킴벌리(주) 이은욱본부장(PR 및 커뮤니케이션본부)은 지방에서 밤차를 타고 올라와서도 접수가 늦어 참가하지 못한 학생이 상당히 많았다며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그린캠프의 프로그램은 유럽과 미국의 자연학습 프로그램을 수차례 견학하고 이들의 장점을 취해, 우리식의 체험프로그램으로 지난 1988년에 시작됐다. 유엔 환경상인 글로벌 500상 수상자들을 포함, 국내 최고의 강사진을 초빙해 우리의 숲과 나무를 체험하는 우리식의 환경교육을 실천하고 있어 작년에는 유엔 참관단이 다녀갈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참가자들은 낯모르는 새 친구를 사귀며 함께 사는 세상을 배우고 환경파수꾼으로 변모해간다. “여러분! 숲길을 거닐 때 왜 기분이 상쾌할까요?” 숲과 대기에 대해 강의하던 전의찬 교수(동신대 환경공학과)는 너무나 당연해서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벌써 이틀을 지낸 학생들 사이에서 제법 아는 소리가 나온다. “공기가 맑으니까요.” 정확히는 오존효과와 피톤치드 때문이다. 나무들이 내품는 산소는 피부에 닿으면서 오존으로 변해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오존효과라고 한다. 또하나 숲 속의 나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향성 물질을 방출하는데, 이것이 피톤치드다. 숲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이것인데, 이는 머리를 맑게하고, 살균성도 있어서 건강에 좋은 효과를 낸다. 환자에게 산림욕을 권하고 요양소를 숲속에 세우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런 신기한 한 게 숲속에 있었다니!

숲의 생태와 식생 시간에는 숲 속의 생물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살아가는지를 배운다. 숲에는 나무와 풀과 꽃들은 물론이고 곰팡이, 열매나 풀잎을 먹는 곤충들, 곤충을 먹고 사는 새와 다른 야생동물 등 다양한 생물들이 그물처럼 얽혀 살아간다. 그래서 숲이 병들어 사라지면 그곳에 사는 생물들도 터전을 잃고 죽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죽는데 사람인들 온전할까. 숲은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한 몸인 것이다.

추억 새기는 미래의 어머니들

숲 가꾸기 시간에는 저마다 톱과 낫을 들고 잔가지를 쳐주면서 간벌과 가지치기의 중요성을 체득한다. 똑같이 25년을 자란 두 나무 중에서 간벌을 해주고 가꿔준 나무는 아름드리가 돼 있는데, 보살펴 주지 않은 나무는 두께가 겨우 한뼘 정도다. 그리고 똑같은 화분에 똑같은 영양분을 먹고 자랐어도, 주인이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것과 미움과 무관심으로 키운 것은 잎사귀의 색깔부터가 달랐다. 교수님이 가져 오신 화분 두 개가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인간과 마음이 통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하루쯤 놀다오는 피서지로만 생각했던 숲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며 우리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러나 공부만 하면 지겹다. 한낮의 더위에 졸음이 올 때면 다음 시간은 고맙게도 ‘계곡에서 물장구치기’다. 왁자하게 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설악산에서 발원한 소녀들의 꿈이 계곡물을 따라 먼먼 바다에 다가간다. 밤에는 모닥불 주위에서 손을 마주잡고 서로가 느낀 것을 토로하고, 저마다의 장기를 숨김없이 뽐내다보면 빛나는 추억들이 별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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