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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생명체 곰삭이는 자연의 분해자: 버섯은 곰팡이 일종

동물과 식물의 이중성 갖춰

촉촉한 봄비가 대지를 적신 후 숲속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색을 발하며 땅에 피어난 커다란 버섯들이 눈에 들어온다. 만일 외딴 곳에서 혼자 갖가지 버섯에 둘러싸여 있다면, 마치 버섯이 요정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더욱이 독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버섯은 독특한 향미를 내는 고급 음식으로 사랑받는다.

그러나 버섯이 다름아닌 곰팡이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곰팡이라는 말은 아름답거나 신비로운 느낌과 너무 멀기 때문이다. 곰팡이를 먹다니?

일반적으로 곰팡이는 음식을 상하게 만들고, 지저분한 곳에 숨어 있으며, 때때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꺼림직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곰팡이는 음식을 감칠맛나게 하고 불치병을 낫게 하는 명약을 만들기도 한다.
 

곰팡이의 구조. 길다란 실모양의 균사가 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루에 1km의 균사를 만들어내는 종류도 있다.


박테리아·바이러스와 차이

곰팡이는 학술 용어로 균류(菌類) 또는 진균이라 부르며, 영어 명칭은 'fungus'(복수 fungi)다. 흔히 '균'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미생물을 떠올린다. 그런데 병원성 미생물에는 곰팡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배탈을 일으키는 대장균이나 폐렴을 유발하는 폐렴쌍구균은 곰팡이와는 다른 '박테리아'에 속한다. 감기나 에이즈를 일으키는 주범은 '바이러스'라고 불린다. 그래서 곰팡이와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통틀어 '병균'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이들은 엄연히 다르다. 생물은 크게 원핵생물과 진핵생물로 구분된다. 진핵이란 말은 진정한 핵, 즉 사람의 세포처럼 유전자가 핵막으로 둘러싸인 동그란 핵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원핵생물은 핵막이 없고 몇가지 소기관이 결여된 탓에 여러 모로 '자격미달'인 생물이다.

박테리아는 대표적인 원핵생물이다. 박테리아를 다른 말로 세균(細菌)이라 부르는데, 균(곰팡이)보다 훨씬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그림).

곰팡이는 어엿한 진핵생물이기 때문에 박테리아와는 '격'이 다르다. 분류학적으로 볼 때 동물이나 식물처럼 하나의 계(kingdom)를 구성함으로써 고등한 생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있다.

생긴 것도 특이하다. 곰팡이의 기본 구조는 길다란 실모양(균사)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대부분 이렇게 긴 형체를 갖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는 원핵생물도 진핵생물도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자(DNA나 RNA)와 단백질로만 이뤄진 이 단순한 병원체가 과연 생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 미생물학은 이 세가지 종류를 기준으로 진균학(mycology), 세균학(bacteriology), 그리고 바이러스학(virology)으로 세분된다.

그러나 곰팡이 연구가 시작되던 시절, 학자들은 곰팡이를 식물에 포함시켰다. 식물세포를 동물세포와 구분짓는 커다란 특징인 세포벽을 곰팡이가 가졌기 때문이다. 또 곰팡이는 식물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식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증거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우선 곰팡이는 엽록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먹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또 세포벽의 성분이 다르다. 식물의 세포벽은 셀룰로오스로 이뤄진다. 이에 비해 곰팡이 세포벽의 주성분은 키틴질이다. 키틴질은 곤충이나 갑각류와 같은 절지동물의 바깥 골격을 이루는 성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곰팡이의 유전자가 식물보다 동물과 더 비슷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곰팡이의 '동물성'은 단지 분류학자만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곰팡이를 퇴치하는 일에 도전해 온 약학자들은 곰팡이가 결코 녹록치 않은 상대임을 깨닫고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곰팡이가 사람의 세포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곰팡이를 없애는 성분은 주변의 사람 세포마저 같이 파괴하기 일쑤였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곰팡이만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결의 실마리는 곰팡이의 세포벽과 세포막에서 발견됐다. 우선 세포벽에서 키틴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단하면 세포벽은 파괴되기 마련이다. 사람에게는 그런 세포벽이 없기 때문에 해가 미칠리 없다. 또 곰팡이의 세포막에는 사람에게 없는 독특한 지질 성분(에르고스테롤)이 존재한다. 이 물질의 대사 과정을 방해하면 곰팡이는 생명을 잃는다.
곰팡이는 학술 용어로 균류(菌類) 또는 진균이라 부르며, 영어 명칭은 'fungus'(복수 fungi)다. 흔히 '균'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미생물을 떠올린다. 그런데 병원성 미생물에는 곰팡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배탈을 일으키는 대장균이나 폐렴을 유발하는 폐렴쌍구균은 곰팡이와는 다른 '박테리아'에 속한다. 감기나 에이즈를 일으키는 주범은 '바이러스'라고 불린다. 그래서 곰팡이와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통틀어 '병균'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이들은 엄연히 다르다. 생물은 크게 원핵생물과 진핵생물로 구분된다. 진핵이란 말은 진정한 핵, 즉 사람의 세포처럼 유전자가 핵막으로 둘러싸인 동그란 핵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원핵생물은 핵막이 없고 몇가지 소기관이 결여된 탓에 여러 모로 '자격미달'인 생물이다.

박테리아는 대표적인 원핵생물이다. 박테리아를 다른 말로 세균(細菌)이라 부르는데, 균(곰팡이)보다 훨씬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그림).

곰팡이는 어엿한 진핵생물이기 때문에 박테리아와는 '격'이 다르다. 분류학적으로 볼 때 동물이나 식물처럼 하나의 계(kingdom)를 구성함으로써 고등한 생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있다.

생긴 것도 특이하다. 곰팡이의 기본 구조는 길다란 실모양(균사)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대부분 이렇게 긴 형체를 갖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는 원핵생물도 진핵생물도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자(DNA나 RNA)와 단백질로만 이뤄진 이 단순한 병원체가 과연 생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 미생물학은 이 세가지 종류를 기준으로 진균학(mycology), 세균학(bacteriology), 그리고 바이러스학(virology)으로 세분된다.

그러나 곰팡이 연구가 시작되던 시절, 학자들은 곰팡이를 식물에 포함시켰다. 식물세포를 동물세포와 구분짓는 커다란 특징인 세포벽을 곰팡이가 가졌기 때문이다. 또 곰팡이는 식물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식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증거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우선 곰팡이는 엽록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먹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또 세포벽의 성분이 다르다. 식물의 세포벽은 셀룰로오스로 이뤄진다. 이에 비해 곰팡이 세포벽의 주성분은 키틴질이다. 키틴질은 곤충이나 갑각류와 같은 절지동물의 바깥 골격을 이루는 성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곰팡이의 유전자가 식물보다 동물과 더 비슷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곰팡이의 '동물성'은 단지 분류학자만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곰팡이를 퇴치하는 일에 도전해 온 약학자들은 곰팡이가 결코 녹록치 않은 상대임을 깨닫고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곰팡이가 사람의 세포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곰팡이를 없애는 성분은 주변의 사람 세포마저 같이 파괴하기 일쑤였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곰팡이만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결의 실마리는 곰팡이의 세포벽과 세포막에서 발견됐다. 우선 세포벽에서 키틴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단하면 세포벽은 파괴되기 마련이다. 사람에게는 그런 세포벽이 없기 때문에 해가 미칠리 없다. 또 곰팡이의 세포막에는 사람에게 없는 독특한 지질 성분(에르고스테롤)이 존재한다. 이 물질의 대사 과정을 방해하면 곰팡이는 생명을 잃는다.
 

바이러스 일종. 유전자와 단백질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생명체인지 아닌지 아직도 논란중이다.


10만여 가계로 이뤄져

곰팡이의 족보는 무척 복잡하다. 학자에 따라 곰팡이의 종류를 다르게 추정하는데, 10만여종으로 분류한 학자도 있다. 하지만 먹이의 특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곰팡이를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윤권상 교수(강원대 생명과학부 교수·한국미생물학회 회장)는 "곰팡이는 죽은 생물에서 영양분을 얻는 종류(부생성)와 살아있는 생물을 먹이로 삼는 종류(기생성)가 있다"고 말한다.

곰팡이의 거의 대부분은 부생성이다. 적당한 습기가 유지된다면 낙엽이나 떨어진 나뭇가지는 물론이고 동물의 시체나 분비물처럼 생명력을 잃은 유기물질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곰팡이가 자란다.

곰팡이는 생물체를 단순한 화학물질로 분해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식물은 이 영양분을 흡수해 자라나고 동물은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생태계는 유지된다. 이처럼 생명체를 '곰삭이는' 특성 때문에 곰팡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곰팡이는 박테리아와 함께 생태계를 무리없이 순환시키는 훌륭한 자연의 분해자다.

기생성 곰팡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무좀을 비롯한 각종 피부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가 여기에 속한다. 기생성 곰팡이는 대부분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이를 퇴치할 수 있는 약제가 거의 개발돼 있다.

보다 무서운 것은 부생성 곰팡이가 어느 순간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입안에 상주하면서 음식찌꺼기를 먹고 사는 캔디다균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지만, 몸이 아파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어느새 조직을 파괴하는 병균으로 변모한다.
이런 면에서 신영오 교수(강원대 의대·병원성미생물학)는 "사람의 적은 기생성 곰팡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곰팡이 전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몸을 호시탐탐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사람이 대책 없이 노출된 셈이다.

곰팡이는 어떻게 자손을 퍼뜨려 나갈까. 곰팡이는 혼자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기도 하고(무성생식), 다른 곰팡이와 만나 자식을 생산하기도 한다(유성생식). 일반적으로 무성생식은 씨(포자)를 만들어 물이나 바람을 이용해 멀리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무성생식은 단기간에 수많은 자손 낳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각 곰팡이는 생식기관에서 수백만개의 포자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성생식만 반복하다 보면 자식의 유전자는 어머니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만일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 생존이 어려워진다면 곰팡이 가족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자식들 중 유전자 구조가 다르면 환경이 변해도 '억척스럽게' 살아남는 개체가 있다.

하지만 대대손손 똑같은 유전자가 전해질 뿐이라면 상황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유전자를 보다 다양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개체와 접합하는 유성생식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유성생식으로 번식하는 개체를 무성생식의 경우에 비해 '고등'하다고 쳐준다.

곰팡이는 종류에 따라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번갈아 하거나,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빵과 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효모는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방식(출아)으로 무성생식을 하다가, 적당한 조건이 갖춰지면 다른 효모의 포자와 융합한다.

이에 비해 버섯은 유성생식을 통해서만 번식하는 종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버섯의 외형은 균사가 아니라 곰팡이가 유성생식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실체(fruit body)다. 식물에 비유하자면 자실체는 꽃에 해당되고, 뿌리와 줄기, 잎은 균사에 비유된다.

버섯은 생활의 대부분을 균사 형태로 지내며, 극히 짧은 기간에만 갓 모양의 버섯으로 등장한다. 갓 안쪽 주름 부위에서 포자를 만들어 날려보내면, 다른 포자와 만나 합쳐져 새로운 개체로 성장한다.
 

박테리아가 분열하는 모습. 핵막을 비롯한 몇가지 소기관이 결여된 원핵생물이다. 곰팡이보다 작아 세균이라고 불린다.


때로는 천사 때로는 악마

곰팡이는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숨을 들이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온갖 종류의 곰팡이가 몸에 들락거린다. 그렇다면 내 몸 안에는 곰팡이가 얼마나 상주하고 있을까.

박테리아의 경우 몸 곳곳에 수많은 종류가 기거하고 있다. 하지만 곰팡이는 다르다. 윤권상 교수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경우 입안을 제외하곤 곰팡이가 거의 살지 못한다. 즉 대부분의 곰팡이는 몸에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우선 피부는 건조한 탓에 곰팡이가 살기에 적당치 않다. 어쩌다 음식과 함께 몸에 들어와도 위에서 위산에 녹아버린다. 공기가 거의 없는 장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박테리아와 달리 대부분의 곰팡이는 공기가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장에 남아있다 해도 워낙 길이가 길기 때문에 대변과 함께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에 비해 입안은 비교적 좋은 조건이다. 항상 습도가 유지되고 공기가 존재한다. 만일 세포 하나로 구성된 작은 곰팡이라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입에서 상주하는 일부 곰팡이(캔디다, 뉴모시스티스 등)가 그런 종류다.

곰팡이는 천사와 악마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주식인 감자를 오염시켜 1백만명을 굶어죽게 만들고, 이제는 에이즈환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자원 부족이나 불치병처럼 인류가 풀어야 할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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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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