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야기 하는 Y학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꿈이 무엇이냐는 상담 선생님의 물음에 ‘의사’라고 말한 후였다.
“아버지가 의사여서 하고 싶기도 하고, 슈바이처처럼 봉사도 하고 싶어요.”
“의사는 직업이지. 직업을 먼저 선택하고 거기에 네 꿈을 끼워 맞추려니 지금처럼 얼굴 빨개지는 상황이 생기는 거란다.”
늘 아버지가 의사로서 일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그 직업이 멋있어 보이고 하고 싶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다른 세상이나 직업군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다. 자신이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좀 더 넓은 시각과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스로 고민을 한 뒤에 꿈을 찾고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동기부여가 쉽다. 상담 선생님은 관심이 가는 분야나, 막연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분야와 관련된 책을 읽는 방법을 권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면 의사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렴. 지금 공부해서 20~30년 후에 네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봐. 앞으로 의학기술도 발달하고 의료 환경도 많이 바뀔 거야.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돼. 지금은 청소년이니까 네가 어른이 된 후에 의료 환경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생각하고 인류의 건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는 거야.”
의학은 학문의 특성상 올바른 인성이 매우 중요하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각별한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단지 성적이 좋아서나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선택한다면 의사가 된 뒤에 후회할 수도 있다.
Y학생은 친구들의 아픔이나 고민에 공감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일단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요건은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처럼 마음이 따뜻한 아이는 의사를 해도 괜찮을 거야. 아픈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의학을 공부해서 새로운 수술법이나 약을 개발할 수도 있단다. 생명공학을 연구할 수도 있고 말이야. 넓게 생각해보렴.”
그런데 문제는 성적이다. Y학생은 요즘 들쭉날쭉한 성적 때문에 고민이다. 성적이 높게 나올 때는 영재학교도 꿈꿨는데 금세 다음 시험에서는 성적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평소 성적이 좋아서 수상을 기대하고 참가했던 수학경시대회에서도 점수가 낮았다.
“영재학교 가고 싶은데, 성적이 문제에요.”
“영재학교에 왜 가고 싶니? 스펙이 좋아 보여서? 의대를 생각한다면 굳이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갈 필요는 없단다. 과학영재를 키우는 곳이야. 과학자를 꿈꾸지도 않는데 자신을 속이면서 꼭 갈 필요는 없단다. 그보다는 내신 성적을 관리하는 전략이 필요해. 인성을 중요하게 보는 의대에서 가장 요구하는 것은 성실성이야. 그런 것은 내신관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본단다. 그러니 네가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의대에 가는 것이 맞는 전략이야. 내신 성적은 잘 나오니?”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Y학생은 그저 웃음만 지어보였다.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Y학생은 영재학교 준비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영재학교를 고집하기보다 우선 내신 성적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신 성적은 전략을 어떻게 세우냐가 중요하다.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의도인지 생각하는 것처럼, 수업도 그렇게 들어보렴.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뭔지, 그렇다면 시험에 무엇을 낼지를 파악하면서 듣는 거야.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전략이 아니야. 올바른 전략에 성실함이 더해지면 된단다.”
1년 정도 준비하고 참가했던 수학경시대회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도 충격이었다. 평소에 공부할 때 문제를 풀면 점수가 잘 나올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었다. 이론이 탄탄하지 않은 경우에 이렇게 성적이 들쑥날쑥하기 쉽다.
“이론보다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했니?”
“네.”
많은 학생들이 저학년 때 상을 받기 위해 쫓기듯이 공부를 한다. 학원가에서도 이런 불안감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시간을 두고 이론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보다 당장 문제를 많이 푸는 준비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로또 복권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상담 선생님은 이야기 했다.
“자, 지금은 일단 내신 성적을 잘 받아야해. 의대를 생각하고 있으니 생물경시대회 준비를 시작해봐. 고등학교에 가서 상을 받을 수 있게 이론부터 차근차근 해보는 거야.”
최근 입시 전반에 인성을 보려고 하는 움직임이 많다. 예체능 소양도 중요한 참고자료로 쓰인다.
“피아노 연습도 꾸준히 하렴. 음대 가라는 뜻이 아니야. 스트레스 받을 때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잖니. 공부도 공부지만 네 감성, 취미를 잃지 않아야해. 나중에 노인요양원에 봉사하러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피아노 연주하면서 노래 불러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그렇게 활용할 수도 있어.”
“꿈이 뭐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의사를 하고 싶기도 해요. 화학도 좋아해서 공학자도 하고 싶고요.”
H학생은 아직 꿈을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의사가 아니면 공학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책은 많이 읽고 있어?”
“별로 많이 읽지는 못해요. 소설책 읽어요.”
“문제집만 보는 것 말고 과학과 관련된 책도 읽어봐. 문제집만 보고 익힌 것은 죽어있는 지식이야. 이미 있는 지식을 그저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발전된 지식에 도달하고 싶어져야해. 실제 세상에서 이런 지식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지. 초등학교 때는 어려워서 잘 읽히지 않던 과학동아도 지식이 쌓이고 나니 지금은 읽히잖니. 누가 잘 외웠냐만 갖고 평가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어.”
H학생은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기대주로 손꼽히던 H학생이었다. 그런데 1차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로 말이다. 충격이었다.
사실, 평소에는 명석한 두뇌로 문제를 잘 풀지만 점수가 잘 나올 때도 있고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계산 실수도 많이 한다.
“수학, 과학 말고 다른 과목의 성적은 어때?”
“…….”
H학생은 과목 편식이 심하다. 좋아하는 과목에서는 전교 1% 안에 들지만 암기 과목 같이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30등 밖이었다.
H학생의 부모는 학생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과가 잘 나오는 편이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서 기대가 크다. 그런데 성적은 항상 일정하게 잘 나오지 않아서 정말 머리가 좋은 것은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딱히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과는 좋게 나왔구나. 암기는 별로 안 좋아하지? 경쟁이 치열한 것도 좋아하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사회에서 살면서 경쟁을 피하기는 어려워.
그리고 의대를 가려면 일반고를 가는 것이 좋고 공대를 가려면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가는 것도 좋은데, 의대나 영재학교 모두 내신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해. 일반고에 가도 1등급 받기 쉽지 않아. 그러면 좌절하게 되지. 내신 성적은 성실한 아이들이 잘 받는단다. 학교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을 완벽하게 공부해야해. 1등급을 목표로 공부해보렴. 그리고 일부 과목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 과목 성적을 어느 정도 고르게 만들어 두는 것도 중요해. 자, 네가 평가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라면 수학, 과학만 잘하고 다른 과목은 못하는 학생과 다 같이 잘하는 학생 중 누구를 뽑고 싶겠니?”
“고르게 잘하는 학생이요.”
“그래.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해. 그리고 문제는 머리는 좋은데 문제만 푸니까 성적이 들쑥날쑥 하는 거야. 집에서 복습해?”
“아뇨.”
“남들이 못 푸는 데 나는 풀 수 있으면 재밌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힘들어.”
“문제를 풀 때 아이디어는 막 떠올라요. 그런데 막상 문제를 풀면 틀려요.”
“아이디어는 좋지만 풀면 틀리는 것은 네가 반복을 통해서 그 부분을 확실한 ‘네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야. 귀찮아서 생략하고 지나쳤던 계산이나 복습 때문에 어려운 문제는 맞는데 정작 쉬운 문제는 틀리는 거야. 실수로 한 두 개씩은 꼬박꼬박 틀리고 말이야.”
문제 풀이를 할 때 계산은 생략하고 넘어가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계산을 꼼꼼히 해보는 습관을 길러야 실전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실수가 계속되면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의 실수나 실패는 배움의 과정이다.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그런 기회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실수를 줄이는 연습을 열심히 해서 진로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
“너 자신은 알고 있지? 안다고 생각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면 네가 불안해. 남들이 네 실수를 알아채지 못하면 끝인 걸까? 네가 알고 있잖아.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점점 더 불안해져. ‘이러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데’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머리가 좋아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어. 지금까지는 버텼지만, 앞으로는 성실하게 공부해야해.”
눈이나 머리로 풀던 것도 반드시 써서 끝까지 풀어야 한다. 그래야 실수도 줄일 수 있고 머리로만 생각할 때 놓친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한번 본 것은 다시 보지 않는 H학생에게는 복습노트를 만들기를 권한다. 수업 시간에 듣고 공부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쓰면서 복습하는 노트다. 여기에 스스로 궁금한 것을 더 찾아서 첨가한다면 자신만의 교재로도 만들 수 있다.
“자. 공학자, 의사 넌 다 가능해. 그런데 지금은 이를 악물고 오기를 가져야해.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그러지 않으면 네가 너를 망치는 격이 되는 거야. 이대로 가면 고입 때 슬퍼져, 대학갈 때는 더 슬퍼질 수 있어. 제대로 공부해.
수업 듣기 전에는 반드시 예습을 해.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단다. 미리 읽어 오고 문제 풀이만 복습하는 거야.”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기본 원리부터, 문제를 끝까지 푸는 습관부터 지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H학생은 어릴 적에 3달 정도 해외에서 영어연수를 받은 적도 있고 꾸준히 공부한 덕분에 영어 실력은 좋은 편이었다. 쉴 때는 인기 드라마를 보거나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챙겨본다.
“테드(TED)에 대해서 알고 있니?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야. 테드 웹사이트에는 짧은 지식강연이 분야별로 올라가 있단다. 네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듣고 음성파일을 다운 받아서 들으면서 듣고 말하는 연습도 할 수 있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거란다.”
TED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으로 정기적으로 기술, 오락, 디자인에 관한 강연회를 개최한다. 강연자는 각 분야의 저명인사나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꿈은 너무 하고 싶어서 가슴이 뛰어야 이뤄지는 거야. 그냥 ‘한번 해볼까’정도로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아. 그리고 꿈을 정할 때 누가 돈을 많이 벌더라 하는 건 의미 없단다. 그보다 너무 하고 싶고, 설렘이 느껴져야 해. 네 꿈을 사랑하렴. 사랑해야 이뤄진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