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사는 생물 중 달팽이 만큼 느린 놈도 드물다. 가장 빠르다는 정원달팽이의 시속이 0.0503km 정도이고 다른 달팽이들은 시속 0.0005km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작작한 보폭을 더 늦추게 하는 인자가 최근 발견돼 동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장이었다. 다시 말해 주변에 자기장이 형성돼 있으면 달팽이의 평균속도가 더 떨어졌다. 흔히 고압의 전송선이나 가전용품 주변에도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같은 사실은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의 마틴 캐발리어스와 클라우스피터 오센콥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은 한 종품의 달팽이(Cepaea nemoralis)들을 뜨거운 장소에 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펐다.
온도가 40℃로 맞춰진 곳에 올라간 달팽이는 잠시 후 그들의 앞발을 들어서 '너무 뜨겁다'는 반응을 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연구진은 시간별로 반응속도를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어둠이 깔리면서부터 반응속도가 빨라지기 시작, 한밤중에는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물론 그 후에는 점차 속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1가우스(Gauss)의 자기장이 형성된 곳에서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달팽이는 반응속도의 증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밤이 돼도 무덤덤하게 평상시의 반응속도를 기록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모르핀 또는 베타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달팽이의 반응속도를 떨어뜨렸다고 간주한다.
사실 이보다 앞서서 수행된 실험에서도 자기장과 모르핀이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제기됐다. 자기장이 형성된 곳에서는 생쥐와 달팽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투여한 모르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또 연구자들은 자기장에 노출되지 않은 달팽이가 노출된 달팽이보다 더 장수함을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 자기장이 왜 이같은 영향을 미치는가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