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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가을 한국천문학회는 특별했다. 전날 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는데, 대상이 천문학 최대 관심 대상인 ‘암흑에너지 발견’이었던 것이다. 수상자는 호주국립대의 브라이언 슈미트,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의 사울 펄머터와 존스홉킨스대의 아담 리스였다. 학회가 열리는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암흑에너지에 관해서였다. 사실 나는 암흑에너지에 관해 이와 같은 설레는 경험을 벌써 15년 전에 했다.

그 때가 1997년 겨울이었나 보다. 나는 당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미국천문학회를 두어 주 앞두고 NASA 구석구석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가속팽창우주’ 어쩌구 하면서 사람들이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다. 가만 들어보니, 슈미트-리스 그룹과 펄머터 그룹이 각각 한 연구에서 암흑에너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암흑에너지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서는 시간을 100년 전으로 돌려 20세기 최고의 석학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연구실로 돌아가야 한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법칙 발견 이후 가장 위대한 물리이론을 세웠다. 이른바 일반상대론. 얼핏 보면 일반상대론은 뉴턴의 중력법칙과 거의 같아 중력법칙의 수정 보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뉴턴의 중력법칙을 포함한 이전의 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 개념으로 다뤘다. 그러나 일반상대론은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에 따라 달리 규정되고, 시간은 공간과 뗄 수 없는 개념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가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선 시간이 더디 흐르고 공간은 늘어난다.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일반상대론은 이미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이후 여생을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썼다. 시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은 시공간 자체인 우주도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우주의 한계가 있다면, 일반상대론 중력법칙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는 중력중심을 향해 수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언젠가 한 점으로 수렴해 붕괴할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이런 불안정한 우주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우주는 아름답고 영원불멸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는 임의로 일반상대론 장방정식에 중력에 반하는 에너지 항을 하나 넣고 우주상수라고 불렀다. 그가 설정한 우주상수는 에너지의 역할을 하지만 음의 압력을 가지고 있고 중력에 반하는 효과를 가진다. 정말 이런 에너지가 있을까 모두 의심하였으나, 아인슈타인의 카리스마에 눌려 잠잠히 지냈다. 이 때가 대략 1910년대 말이다.

허블은 우주팽창을 훔쳤을까

하지만 1920년대 중반 벨기에의 카톨릭 신부이자 물리학자·천문학자였던 조르주 르매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에 수축하는 해 말고도 팽창하는 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우주는 팽창한다는 것이다. 몇 년 후, 미국의 에드윈 허블도 같은 결과를 발표했는데, 허블은 르매트르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학술논문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역사를 바로잡자는 의미에서 최근 나를 비롯한 많은 천문학자들이 ‘허블의 우주팽창 법칙’이라는 말을 ‘르매트르의 우주팽창 법칙’ 혹은 ‘르매트르-허블의 우주팽창 법칙’이라고 고쳐 부른다.

르매트르와 허블이 우주팽창을 관측을 통해 밝힌 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우주상수 개념이 필요없어진 것을 깨닫고 곧 폐기하게 된다. 그 때가 1929년이다. 그런데, 68년이 지난 1997년에 이 우주상수가 임혜경부활하게 된다. 슈미트-리스 그룹과 펄머터 그룹은 동시에 우주 멀리에 있는 초신성들을 조사하였다. 그런데, 먼 거리에 있는 초신성들의 밝기가 예측보다 조금씩 어두운 것이다. 이는 우주의 팽창속도가 지난 50억~60억 년 동안, 일반상대론의 예측보다 빠르게 팽창해 왔다는 것을 얘기한다.

처음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연구자들도 알지 못했다. 관측자료를 잘못 분석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분석하기를 몇 번,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특히 두 그룹의 결과를 비교해보니 서로 놀랄 만큼 일치했다. 그런데 이런 ‘우주의 가속팽창’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폐기했던 우주상수가 존재하는 우주가 바로 그렇다.

우주상수는 그 정체를 아직 모른다는 의미에서 ‘암흑에너지’라고 불린다. 우주 전체 에너지의 70% 정도가 암흑에너지다. 이 말이 맞다면, 우주의 시공을 결정하고 시작과 끝, 즉 운명을 결정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로서 이런 상황이 상당히 불편하다. 우주는 분명히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현상이 극도로 복잡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명쾌한 물리법칙을 따라 진행되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암흑에너지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우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 덮어 놓고 지나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아직 나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암흑에너지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천문학 최대의 이슈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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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상연 | 글 이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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