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는 새(삭금).’
밤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옛사람들이 운치 있게 표현한 말이다. 이런 기러기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쇠기러기가 찾아오는 철원이나 순천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서울에서 불과 반 시간만에 찾아갈 수 있는 한강하구가 큰기러기의 천국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두루미 도래지였다는 사실은 낯설기까지 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잊혀진 철새의 고장 김포의 한강하구를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찾았다. 송재진 ‘한강하구를 사랑하는 김포시민모임’ 집행위원장과,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 각각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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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쇠물닭인데…. 뭘 하는 거지?”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 차창 밖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실개천 위에서 몸 빛이 어둡고 이마판이 붉은 새 한마리가 물에 뜬 나뭇가지를 부리로 집어 세게 흔들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반대편 물가로 헤엄쳐갔다. 전혀 급하지 않은, 느긋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멈춘 우리 차의 엔진 소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집이라도 만드는 걸까요?”
“새끼 나온다!”
나뭇가지를 물고 가는 어미 반대편 물에 어미보다 작은 새들이 여럿 물 위 덤불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류 전문 생태사진가이기도 한 윤 이사장이 니코르 300mm 렌즈를 장착한 D800E 카메라를 가만히 들었다. 동행한 현진 사진작가도 캐논 200mm렌즈를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쇠물닭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천천히 나뭇가지를 날랐다. 자식을 위해 새 집을 짓는 중일까.
시간이 정지한 듯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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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감암포구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아래). 이중 철책선 너머로 습지가 발달해 있지만 이름도 없고 습지보호지역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건너편에 일산과 일산대교, 그리고 장항습지가 보인다. 위는 홍도평야의 쇠물닭.]
달 위를 나는 새, ‘삭금’을 만나다
10월 9일 오전 10시 40분,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홍도평야 입구에서였다. 논에 딸린 작은 퇴수로(논 물이 빠지는 개울)인 관정천에서 쇠물닭 가족은 집 공사로 바빴다. 쇠물닭은 뜸부기과의 여름철새로, 병아리처럼 아장아장 어미를 따르는 새끼와 이를 잘 돌보는 어미의 모습이 유명하다. 10월이면 슬슬 우리나라를 떠날 때인데, 새끼까지 같이 만났으니 어지간히 운이 좋았다.
“자, 이제 홍도평야 한가운데로 가보죠. 은근히 차를 몰아요. 더 빨리도 말고 은근히.”
차가 황금빛으로 물든 논 한가운데 둑길로 들어섰다. 시속 15km정도로 천천히 달렸다. 말을 마치고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았는데 순간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가 우리를 지켜보는 느낌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힘이 차창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
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소리였다. 야생의 소리. 수많은 야생의 개체가 한 데 모여 일제히 낮게 소리를 내지를 때 느껴지는 에너지였다.
“잠깐 멈춰 봐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가로세로 수십m 정도 되는 작은 논에 새까맣게 새가 앉아 있었다. 어림잡아 천 마리는 돼 보였다.
“큰기러기예요. 매년 9월 중순 김포를 찾는 가을의 전령이죠.”
윤 이사장과 현 작가가 촬영을 시작했다. 큰기러기들은 사람의 기척에 천천히 반응을 보였다. ‘꾸룩꾸룩’하는 소리가 들렸고, 고요함을 깨는 느리지만 우아한 움직임이 논 오른쪽 부분에서 시작됐다. 큰기러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꾸룩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고, 허공의 군무가 시작됐다. 마치 논 바닥이 그대로 뜯겨져 공중으로 날아가듯 박력 있었다.
큰기러기 무리는 서서히 북쪽으로 날아올랐다.
“한강하구 습지로 갈 거예요. 보통 아침에 논에 있다가 낮이 되면 서해나 한강 쪽 습지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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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에서는 겨울 철새 중 큰기러기가 우종이다. 가을이 되면 이곳 하구에서 가장 먼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다. 10월이 되면 두루미나 재두루미도 오지만 그 수가 적다. 큰기러기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며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비록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범주로는 “널리 퍼져 있고 개체수도 많아 걱정이 없다”는 뜻의 ‘관심대상(LC)’에 속하지만, 생물은 지역별 멸종도 위험하다.
“기러기는 멋있는 새예요. 이런 말이 있죠. ‘기러기는 더러운 땅에는 앉지 않는다.’ 또 ‘추금’ 이라고도 했어요. ‘가을 새’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흥미로운 별명은 따로 있었다.
“‘삭금’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놓여 달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게 ‘삭’이다. 그러니까 삭금은 ‘달을 가리는 새’라는 뜻이다. 가을 밤하늘, 환한 달을 배경으로 목이 긴 기러기가 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새 한 마리도 정취 있게 묘사한 옛사람의 감각이 새삼스럽다.
김포 한강하구는 이런 큰기러기가 매년 9월 중순, 가을의 시작과 함께 ‘달을 가리러’ 조용히 날아오는 곳이다. 한반도를 찾는 약 10만 마리의 큰기러기 중 상당수가 이곳에 펼쳐진 넓은 김포평야와 한강하구 습지에서 먹이를 먹고 한숨 돌린 뒤 천수만 등 전국 각지의 논과 습지로 향한다. 일부는 그대로 남아 겨울을 난다. 또다른 철새 도래지인 철원이나 천수만은 30만 마리씩 찾아오는 또다른 겨울 철새 쇠기러기의 천국이다. 하지만 한강하구는 아니다. 쇠기러기보다 큰기러기가 더 자주 보이고, 더 일찍, 더 많이 찾아온다.
감암포구에서 하구습지를 다시 생각하다
홍도평야를 벗어나 강 하류로 이동했다. 곶처럼 불쑥 북쪽으로 솟아오른 감암리였다. 감암은 ‘감바위’라는 뜻이다. 실제로 큰 바위가 있어 그리로 돛단배가 드나들던 ‘감암포구’가 있었다고 윤 이사장이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강둑에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해서 지금은 포구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철새? 철새는 끝났어.”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지역 주민 심명수 씨는 새를 찍으러 왔다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심 씨는 강의 변화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여기 고니, 백로 등 별 새가 다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큰 건 다 없어졌어. ‘땡깡오리’만 남았지.”
윤 이사장이 ‘땡깡오리’는 쇠오리를 뜻하는 이 지역 말이라고 알려줬다. 김포 토박이인 심 씨와 윤 이사장은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심 씨의 막내 아들은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감암포구 매립지 한 귀퉁이에 카페를 열었다.
“도시가 개발되며 여기저기 물가에 계속 모래를 팠어. 흙탕물이 내려오니 새들이 먹을 게 없어졌지. 예전엔 조개가 많아서 그걸 먹었는 데, 공사 먼지로 더께가 내려앉아 습지 구멍이 막혀 다 죽었어. 새들도 다 떠났어.”
감암포구에서는 북쪽으로 일산 시가지와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동쪽으로 일산대교가 보이고 그 뒤 일산 쪽으로 유명한 장항습지가 보였다. 버드나무 군락이 멀리서도 또렷이 보였다(154쪽 사진). 장항습지는 2006년 4월부터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에 지정됐다. 기수역(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수역) 상류에서는 유일하다.
이 말은 우리가 있던 맞은편 김포 구간의 습지는 습지보호지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포 구간의 보호지역은 훨씬 하류인 전류리부터 시작된다. 나머지 지역이 습지보호지역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윤 이사장은 “주민 반대가 심해서”라고 살짝 귀띔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등 제약이 많아 보호지역 지정을 꺼린다는 말이다.
장항습지는 지금은 한강유역환경청이 출입 허가를 내 주고 있다. 하루 두 번, 총 인원 40명까지만 출입 보름 전까지 허가를 받은 뒤 들
어갈 수 있다. 이곳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촬영을 하려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재 기간에는 마침 전국적인 군사 훈련 중이
라 출입할 수가 없었다. 이 지역 담당 부대(9사단)의 정훈공보 장교는 전화 통화에서 “협조하고 싶지만 훈련 중이라 동행할 인원이 없어 어
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 동행 없이는 출입조차 할 수 없다니, 하구 습지는 가깝고도 멀었다.
그래도 이런 보호 정책 덕분인지 관리는 잘 이뤄지고 있다. 장항습지는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관리하고 있다. 주로 한두 시간 동안 습지를 돌며 강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를 치운다. 김대환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실무관은 “지난 여름에는 태풍으로 쓰레기가 유독 많이 밀려와 9월 21일 150명 정도의 공무원이 들어가 정화 작업을 했다“며 “이런 활동을 반기에 1번정도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근심거리는 번식력이 강한 외래종의 무차별적인 공격이다. 김 실무관은 “돼지풀과 가시박 같은 외래 식물이 많이 들어와 이들을 없애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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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평리평야에서 만난 백로(맨 왼쪽). 가운데와 오른쪽은 송재진 위원장이 찍은 전호습지의 말똥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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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암포구에서 본 동남쪽 일산대교 방향의 김포 한강변. 철책선 안쪽에 모래톱과 함께 염생식물이 보인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강물안으로 섞여드는 ‘기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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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안에 자리잡은 군 경계 초소. 현재는 군인 외에는 습지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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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정중동, ‘참’을 아십니까
한강하구가 독특한 기수역의 생태계와 지형을 지닌 것은 4대강 가운데 하구 둑이 없는 유일한 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이 자유롭게 들고 난다. 이런 특징은 다른 4대강 하구와 달리 한강하구에 대단히 역동적인 물 흐름을 갖게 했다. 이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조금 더 하류로 이동했다.
“여기는 ‘전류리’예요. ‘돌 전’ 자에 흐를 ‘류’를 쓰죠. 물살이 돈다는 뜻이에요. 바다에서 밀려 강 쪽으로 올라가는 바닷물과 상류에서 밀려내려오는 민물이 만나 서로 부딪혀 도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늘 그런 건 아니에요. 두 물살의 세력이 백중세면 바다가 아주 고요합니다. 김포에서는 그 상태를 ‘참’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갑자기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에요. 그러면 물이 겉잡을 수 없이 거세게 밀려들며 큰 소용돌이를 그립니다. 그때는 물살에서 도망칠 수가 없어요. 배도 꼼짝 못해요. 사고도 많이 났지요.”
고요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중동’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신비로운 설명이었다. 지도를 보니 전류리는 북서쪽으로 흐르던 한강이 갑자기 북쪽으로 기역(ㄱ) 자 모양으로 꺾이는 지점이다. 상류로는 도도한 한강 물줄기가 이어지고 하류로는 서해와 임진강, 강화도가 삼거리처럼 만난다. 바닷물과 강물의 상호작용이 대단히 복잡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해병대가 한창 훈련을 하고 있었다. 보트를 타고 상륙을 시도하는 가상 적에 맞서 공포탄 포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매캐한 화약 냄
새가 났다. 바다는 아직 물살이 세 보이지 않았지만, 보트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해병대의 모습 때문인지 꽤나 사나워 보였다. 전류리는 한강 하구에 남은 마지막 포구가 있다. 차로 5분 거리인 전류리 포구를 갔다. 군부대 초소와 횟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기묘했다. 철책선을 통해 한강을 찍으려 하자 초병이 제지했다. 바깥에 바닥이 사각형으로 된 배가 네 척 보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떠 있었는데, 윤 이사장은 그물을 치고 고기를 낚는 중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고기잡이배 ‘성춘 호’를 몰고 포구에서 횟감도 파는 어민 서승석 씨는 낚싯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예전에 한강에 저런 사각 배가 무척 많았는데 지금은 5척밖에 안 남았어요. 참게고 뭐고 저걸로 다 잡았는데…. 다만 그땐 배가 2.3t 규모로 작았는데, 요즘은 8t으로 커졌다는 게 달라졌네요.”
전류리 포구에서는 숭어와 참게, 웅어, 새우, 황복, 장어가 잘 잡힌다. 숭어는 사시사철 다 잡히고 황복과 웅어는 초여름에, 참게와 새우는 가을에서 겨울에 잡힌다. 서 씨의 가게에도 여름 어종인 숭어와 장어, 황복과 함께 참게가 있었다. 윤 이사장은 “참게는 조금 더 지나야 살이 단단해진다”며 “게장을 담그면 이듬해 봄까지 다리 하나가 안 떨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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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올 재두루미를 위하여
전류리 포구에서 조금 더 북서쪽으로 들어가니 넓고 아늑한 평야가 나왔다. 석탄리와 후평리평야였다. 김포평야의 일부로 고급 쌀 ‘통진미’로 유명하다. 제방 바깥은 내륙에 있는 한강하구 습지 중 가장 하류에 위치한 시암리 습지다. 이 지역부터는 군사적인 이유로 촬영이나 접근이 더욱 힘들다.
“여기가 김포 최북단이에요. 예전엔 갯벌이었는데 70년대에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해서 농지로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야트막한 산 밑으로 재두루미가 매년 2000마리쯤 날아왔어요. 하지만 농지로 바뀌자 찾아오지 않게 됐어요.”
재두루미는 80년대 초반까지도 많이 찾아와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점차 줄어 지금은 북상 중에 잠시 들르는 정도가 됐다. 흔히 철새는 예민하다고 말한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윤 이사장은, 새가 예민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잘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새는 귀소본능이 강해서 찾아오는 장소를 쉬이 바꾸지 않아요.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자리를 찾아오죠. 그러다 도저히 못 오는 환경이 되면 그제서야 떠나요. 그러니까 새가 안 찾아온다는 건, 그 지역 생태계가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재두루미의 대명사는 철원이 됐다. 다시 김포에 재두루미가 찾아오게 할 수 없을까.
“새들은 습성상 뭔가를 파헤치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무논을 조성하고 수확한 뒤 볏짚을 잘게 썰어 논에 그대로 둬 두루미가 좋아하는 곳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지요. 김포시가 3년째 추진하고 있고 저도 참여하고 있어요. 감암포구 남쪽으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에코시 티’가 있어요. 한 기업이 김포시에 내놓은(기부체납) 63만m2의 땅에 천변저류지와 배후습지를 갖춘 야생조류공원을 만들고 있죠. 새가 날아오는 각도를 고려하자는 제 주장을 받아들여 도로는 반지하로 만들고 사선으로 덮개를 씌웠습니다. 아파트도 일부러 낮게 지었고, 나중에 전봇대도 뽑을 계획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배후습지인 논의 소중함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명한 몇몇 강변 습지만 보전한다고 다가 아니에요.”
화려한 점조명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지만, 마치 새 살이 돋듯 조금씩 조금씩 습지와 배후 논이 자라고 있는 김포 한강하구. 이곳에 재두루미가 다시 찾을 날이 올까. 노랗게 익은 논을 차창 왼쪽으로 보며 길을 되돌아왔다. 한낮의 햇빛에 달이 숨어서인지, ‘달을 가리는 새’ 기러기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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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옛사람들이 운치 있게 표현한 말이다. 이런 기러기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쇠기러기가 찾아오는 철원이나 순천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서울에서 불과 반 시간만에 찾아갈 수 있는 한강하구가 큰기러기의 천국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두루미 도래지였다는 사실은 낯설기까지 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잊혀진 철새의 고장 김포의 한강하구를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찾았다. 송재진 ‘한강하구를 사랑하는 김포시민모임’ 집행위원장과,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 각각 함께 했다.
“쟤는 쇠물닭인데…. 뭘 하는 거지?”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 차창 밖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실개천 위에서 몸 빛이 어둡고 이마판이 붉은 새 한마리가 물에 뜬 나뭇가지를 부리로 집어 세게 흔들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반대편 물가로 헤엄쳐갔다. 전혀 급하지 않은, 느긋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멈춘 우리 차의 엔진 소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집이라도 만드는 걸까요?”
“새끼 나온다!”
나뭇가지를 물고 가는 어미 반대편 물에 어미보다 작은 새들이 여럿 물 위 덤불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류 전문 생태사진가이기도 한 윤 이사장이 니코르 300mm 렌즈를 장착한 D800E 카메라를 가만히 들었다. 동행한 현진 사진작가도 캐논 200mm렌즈를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쇠물닭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천천히 나뭇가지를 날랐다. 자식을 위해 새 집을 짓는 중일까.
시간이 정지한 듯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김포 감암포구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아래). 이중 철책선 너머로 습지가 발달해 있지만 이름도 없고 습지보호지역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건너편에 일산과 일산대교, 그리고 장항습지가 보인다. 위는 홍도평야의 쇠물닭.]
달 위를 나는 새, ‘삭금’을 만나다
10월 9일 오전 10시 40분,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홍도평야 입구에서였다. 논에 딸린 작은 퇴수로(논 물이 빠지는 개울)인 관정천에서 쇠물닭 가족은 집 공사로 바빴다. 쇠물닭은 뜸부기과의 여름철새로, 병아리처럼 아장아장 어미를 따르는 새끼와 이를 잘 돌보는 어미의 모습이 유명하다. 10월이면 슬슬 우리나라를 떠날 때인데, 새끼까지 같이 만났으니 어지간히 운이 좋았다.
“자, 이제 홍도평야 한가운데로 가보죠. 은근히 차를 몰아요. 더 빨리도 말고 은근히.”
차가 황금빛으로 물든 논 한가운데 둑길로 들어섰다. 시속 15km정도로 천천히 달렸다. 말을 마치고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았는데 순간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가 우리를 지켜보는 느낌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힘이 차창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
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소리였다. 야생의 소리. 수많은 야생의 개체가 한 데 모여 일제히 낮게 소리를 내지를 때 느껴지는 에너지였다.
“잠깐 멈춰 봐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가로세로 수십m 정도 되는 작은 논에 새까맣게 새가 앉아 있었다. 어림잡아 천 마리는 돼 보였다.
“큰기러기예요. 매년 9월 중순 김포를 찾는 가을의 전령이죠.”
윤 이사장과 현 작가가 촬영을 시작했다. 큰기러기들은 사람의 기척에 천천히 반응을 보였다. ‘꾸룩꾸룩’하는 소리가 들렸고, 고요함을 깨는 느리지만 우아한 움직임이 논 오른쪽 부분에서 시작됐다. 큰기러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꾸룩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고, 허공의 군무가 시작됐다. 마치 논 바닥이 그대로 뜯겨져 공중으로 날아가듯 박력 있었다.
큰기러기 무리는 서서히 북쪽으로 날아올랐다.
“한강하구 습지로 갈 거예요. 보통 아침에 논에 있다가 낮이 되면 서해나 한강 쪽 습지로 가죠.”
한강하구에서는 겨울 철새 중 큰기러기가 우종이다. 가을이 되면 이곳 하구에서 가장 먼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다. 10월이 되면 두루미나 재두루미도 오지만 그 수가 적다. 큰기러기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며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비록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범주로는 “널리 퍼져 있고 개체수도 많아 걱정이 없다”는 뜻의 ‘관심대상(LC)’에 속하지만, 생물은 지역별 멸종도 위험하다.
“기러기는 멋있는 새예요. 이런 말이 있죠. ‘기러기는 더러운 땅에는 앉지 않는다.’ 또 ‘추금’ 이라고도 했어요. ‘가을 새’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흥미로운 별명은 따로 있었다.
“‘삭금’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놓여 달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게 ‘삭’이다. 그러니까 삭금은 ‘달을 가리는 새’라는 뜻이다. 가을 밤하늘, 환한 달을 배경으로 목이 긴 기러기가 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새 한 마리도 정취 있게 묘사한 옛사람의 감각이 새삼스럽다.
김포 한강하구는 이런 큰기러기가 매년 9월 중순, 가을의 시작과 함께 ‘달을 가리러’ 조용히 날아오는 곳이다. 한반도를 찾는 약 10만 마리의 큰기러기 중 상당수가 이곳에 펼쳐진 넓은 김포평야와 한강하구 습지에서 먹이를 먹고 한숨 돌린 뒤 천수만 등 전국 각지의 논과 습지로 향한다. 일부는 그대로 남아 겨울을 난다. 또다른 철새 도래지인 철원이나 천수만은 30만 마리씩 찾아오는 또다른 겨울 철새 쇠기러기의 천국이다. 하지만 한강하구는 아니다. 쇠기러기보다 큰기러기가 더 자주 보이고, 더 일찍, 더 많이 찾아온다.
감암포구에서 하구습지를 다시 생각하다
홍도평야를 벗어나 강 하류로 이동했다. 곶처럼 불쑥 북쪽으로 솟아오른 감암리였다. 감암은 ‘감바위’라는 뜻이다. 실제로 큰 바위가 있어 그리로 돛단배가 드나들던 ‘감암포구’가 있었다고 윤 이사장이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강둑에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해서 지금은 포구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철새? 철새는 끝났어.”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지역 주민 심명수 씨는 새를 찍으러 왔다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심 씨는 강의 변화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여기 고니, 백로 등 별 새가 다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큰 건 다 없어졌어. ‘땡깡오리’만 남았지.”
윤 이사장이 ‘땡깡오리’는 쇠오리를 뜻하는 이 지역 말이라고 알려줬다. 김포 토박이인 심 씨와 윤 이사장은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심 씨의 막내 아들은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감암포구 매립지 한 귀퉁이에 카페를 열었다.
“도시가 개발되며 여기저기 물가에 계속 모래를 팠어. 흙탕물이 내려오니 새들이 먹을 게 없어졌지. 예전엔 조개가 많아서 그걸 먹었는 데, 공사 먼지로 더께가 내려앉아 습지 구멍이 막혀 다 죽었어. 새들도 다 떠났어.”
감암포구에서는 북쪽으로 일산 시가지와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동쪽으로 일산대교가 보이고 그 뒤 일산 쪽으로 유명한 장항습지가 보였다. 버드나무 군락이 멀리서도 또렷이 보였다(154쪽 사진). 장항습지는 2006년 4월부터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에 지정됐다. 기수역(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수역) 상류에서는 유일하다.
이 말은 우리가 있던 맞은편 김포 구간의 습지는 습지보호지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포 구간의 보호지역은 훨씬 하류인 전류리부터 시작된다. 나머지 지역이 습지보호지역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윤 이사장은 “주민 반대가 심해서”라고 살짝 귀띔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등 제약이 많아 보호지역 지정을 꺼린다는 말이다.
장항습지는 지금은 한강유역환경청이 출입 허가를 내 주고 있다. 하루 두 번, 총 인원 40명까지만 출입 보름 전까지 허가를 받은 뒤 들
어갈 수 있다. 이곳도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촬영을 하려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재 기간에는 마침 전국적인 군사 훈련 중이
라 출입할 수가 없었다. 이 지역 담당 부대(9사단)의 정훈공보 장교는 전화 통화에서 “협조하고 싶지만 훈련 중이라 동행할 인원이 없어 어
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 동행 없이는 출입조차 할 수 없다니, 하구 습지는 가깝고도 멀었다.
그래도 이런 보호 정책 덕분인지 관리는 잘 이뤄지고 있다. 장항습지는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관리하고 있다. 주로 한두 시간 동안 습지를 돌며 강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를 치운다. 김대환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실무관은 “지난 여름에는 태풍으로 쓰레기가 유독 많이 밀려와 9월 21일 150명 정도의 공무원이 들어가 정화 작업을 했다“며 “이런 활동을 반기에 1번정도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근심거리는 번식력이 강한 외래종의 무차별적인 공격이다. 김 실무관은 “돼지풀과 가시박 같은 외래 식물이 많이 들어와 이들을 없애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후평리평야에서 만난 백로(맨 왼쪽). 가운데와 오른쪽은 송재진 위원장이 찍은 전호습지의 말똥게.]
[감암포구에서 본 동남쪽 일산대교 방향의 김포 한강변. 철책선 안쪽에 모래톱과 함께 염생식물이 보인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강물안으로 섞여드는 ‘기수역’이다.]
[습지 안에 자리잡은 군 경계 초소. 현재는 군인 외에는 습지에 들어갈 수 없다.]
무서운 정중동, ‘참’을 아십니까
한강하구가 독특한 기수역의 생태계와 지형을 지닌 것은 4대강 가운데 하구 둑이 없는 유일한 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이 자유롭게 들고 난다. 이런 특징은 다른 4대강 하구와 달리 한강하구에 대단히 역동적인 물 흐름을 갖게 했다. 이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조금 더 하류로 이동했다.
“여기는 ‘전류리’예요. ‘돌 전’ 자에 흐를 ‘류’를 쓰죠. 물살이 돈다는 뜻이에요. 바다에서 밀려 강 쪽으로 올라가는 바닷물과 상류에서 밀려내려오는 민물이 만나 서로 부딪혀 도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늘 그런 건 아니에요. 두 물살의 세력이 백중세면 바다가 아주 고요합니다. 김포에서는 그 상태를 ‘참’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갑자기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에요. 그러면 물이 겉잡을 수 없이 거세게 밀려들며 큰 소용돌이를 그립니다. 그때는 물살에서 도망칠 수가 없어요. 배도 꼼짝 못해요. 사고도 많이 났지요.”
고요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중동’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신비로운 설명이었다. 지도를 보니 전류리는 북서쪽으로 흐르던 한강이 갑자기 북쪽으로 기역(ㄱ) 자 모양으로 꺾이는 지점이다. 상류로는 도도한 한강 물줄기가 이어지고 하류로는 서해와 임진강, 강화도가 삼거리처럼 만난다. 바닷물과 강물의 상호작용이 대단히 복잡하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해병대가 한창 훈련을 하고 있었다. 보트를 타고 상륙을 시도하는 가상 적에 맞서 공포탄 포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매캐한 화약 냄
새가 났다. 바다는 아직 물살이 세 보이지 않았지만, 보트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해병대의 모습 때문인지 꽤나 사나워 보였다. 전류리는 한강 하구에 남은 마지막 포구가 있다. 차로 5분 거리인 전류리 포구를 갔다. 군부대 초소와 횟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기묘했다. 철책선을 통해 한강을 찍으려 하자 초병이 제지했다. 바깥에 바닥이 사각형으로 된 배가 네 척 보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떠 있었는데, 윤 이사장은 그물을 치고 고기를 낚는 중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고기잡이배 ‘성춘 호’를 몰고 포구에서 횟감도 파는 어민 서승석 씨는 낚싯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예전에 한강에 저런 사각 배가 무척 많았는데 지금은 5척밖에 안 남았어요. 참게고 뭐고 저걸로 다 잡았는데…. 다만 그땐 배가 2.3t 규모로 작았는데, 요즘은 8t으로 커졌다는 게 달라졌네요.”
전류리 포구에서는 숭어와 참게, 웅어, 새우, 황복, 장어가 잘 잡힌다. 숭어는 사시사철 다 잡히고 황복과 웅어는 초여름에, 참게와 새우는 가을에서 겨울에 잡힌다. 서 씨의 가게에도 여름 어종인 숭어와 장어, 황복과 함께 참게가 있었다. 윤 이사장은 “참게는 조금 더 지나야 살이 단단해진다”며 “게장을 담그면 이듬해 봄까지 다리 하나가 안 떨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다시 찾아올 재두루미를 위하여
전류리 포구에서 조금 더 북서쪽으로 들어가니 넓고 아늑한 평야가 나왔다. 석탄리와 후평리평야였다. 김포평야의 일부로 고급 쌀 ‘통진미’로 유명하다. 제방 바깥은 내륙에 있는 한강하구 습지 중 가장 하류에 위치한 시암리 습지다. 이 지역부터는 군사적인 이유로 촬영이나 접근이 더욱 힘들다.
“여기가 김포 최북단이에요. 예전엔 갯벌이었는데 70년대에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해서 농지로 만들었어요. 그 전에는 야트막한 산 밑으로 재두루미가 매년 2000마리쯤 날아왔어요. 하지만 농지로 바뀌자 찾아오지 않게 됐어요.”
재두루미는 80년대 초반까지도 많이 찾아와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점차 줄어 지금은 북상 중에 잠시 들르는 정도가 됐다. 흔히 철새는 예민하다고 말한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윤 이사장은, 새가 예민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잘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새는 귀소본능이 강해서 찾아오는 장소를 쉬이 바꾸지 않아요.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자리를 찾아오죠. 그러다 도저히 못 오는 환경이 되면 그제서야 떠나요. 그러니까 새가 안 찾아온다는 건, 그 지역 생태계가 마지막에 이르렀다는 뜻이에요.”
오늘날 재두루미의 대명사는 철원이 됐다. 다시 김포에 재두루미가 찾아오게 할 수 없을까.
“새들은 습성상 뭔가를 파헤치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무논을 조성하고 수확한 뒤 볏짚을 잘게 썰어 논에 그대로 둬 두루미가 좋아하는 곳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지요. 김포시가 3년째 추진하고 있고 저도 참여하고 있어요. 감암포구 남쪽으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에코시 티’가 있어요. 한 기업이 김포시에 내놓은(기부체납) 63만m2의 땅에 천변저류지와 배후습지를 갖춘 야생조류공원을 만들고 있죠. 새가 날아오는 각도를 고려하자는 제 주장을 받아들여 도로는 반지하로 만들고 사선으로 덮개를 씌웠습니다. 아파트도 일부러 낮게 지었고, 나중에 전봇대도 뽑을 계획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배후습지인 논의 소중함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명한 몇몇 강변 습지만 보전한다고 다가 아니에요.”
화려한 점조명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지만, 마치 새 살이 돋듯 조금씩 조금씩 습지와 배후 논이 자라고 있는 김포 한강하구. 이곳에 재두루미가 다시 찾을 날이 올까. 노랗게 익은 논을 차창 왼쪽으로 보며 길을 되돌아왔다. 한낮의 햇빛에 달이 숨어서인지, ‘달을 가리는 새’ 기러기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