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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은 거대한 우주범선을 만들어 희망이 없는 지구를 탈출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 뫼비우스가 그린 우주범선 ‘파피용’의 모습.]

3온 국민이 즐겨 부르던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이다. 가사를 음미해보면 우주비행체의 비행 방법 중에 아마도 로켓 추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정적인 노래 가사에서 묻어나듯이 우주를 조용히(우주에는 소리의 진동을 전달할 매체가 없으므로) 항해하는 우주비행체가 마음속에 그려진다. 만일 이 비행체에 돛을 달면 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2006년 출간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은 희망이 사라진 지구에서 2광년이나 떨어진 미지의 행성에 인류의 씨앗을 옮기기 위해 꿈을 쫓는 선지자들이 거대한 우주범선 형태의 항성간 우주비행체를 제작하고 발사하는 얘기를 실감 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우주비행체에는 거대한 돛이 달려 있다. 이런 형태의 우주비행체를 ‘우주범선(solar sail)’이라고 부른다.

소설에 나오는 우주범선은 주거시설에 해당하는 부분이 반지름 500m에 길이가 32km에 달하는 길쭉한 원통형 모양이고, 추진력을 얻는 돛이 나비날개처럼(소설의 제목이 나비를 뜻하는 프랑스어 ‘파피용’인 이유다) 원통 양옆에 달려 있는데 넓이가 무려 100만km2에 이른다. 우리 동요에 나오는 쪽배 수준을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우주범선의 돛은 바람이 아니라 태양의 빛(복사압)을 우주선을 추진하는 데 쓰기 때문에 ‘태양돛’이라고 부른다. 소설 자체는 물리학적인 사실 관계를 휙휙 무시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은, 오히려 철학적 유머에 가까운 SF이지만 우주범선이라는 기본 소재만은 ‘공상’이 아니다.

일본, 이카로스 발사

지난 5월 21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발사한 로켓에는 최초로 우주범선 기술을 주 추진시스템으로 사용한 우주탐사선 이카로스(IKAROS)가 실렸다. 이카로스는 발사 6개월 뒤에 금성에 도달하고 3년 후엔 태양의 반대편을 탐사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이카로스에는 마름모꼴 형태의 태양돛이 달려 있는데, 대각선 길이가 약 20m인 반면 태양돛을 이루는 막의 두께는 불과 0.0075mm로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태양돛을 이용해 이카로스는 태양의 복사압을 주추진 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막 위에 덧붙여진 박막 필름 태양전지판을 주 전력 공급원으로 쓰고 역시 막에 내장돼 있는 LCD의 반사율을 조절해 탐사선의 자세를 조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카로스의 임무가 성공할 경우 50m 크기의 태양돛을 단 목성 탐사선 프로젝트가 2020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기도 없는 우주에서 태양돛을 펼친 우주비행체를 가속시키거나 감속시키는 원동력은 ‘태양돛’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태양인데, 태양으로부터는 두 가지의 힘의 원천이 나온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복사압과 태양풍이다.

복사압이란 빛 알갱이, 즉 광자가 물체에 부딪쳤을 때 물체가 받는 압력이다. 물론 우리 몸에도 매일 어마어마한 숫자의 광자가 부딪치지만 복사압을 ‘느낄’ 수는 없는데, 이는 공기의 압력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물체가 받는 압력은 입자의 운동량 변화에 비례한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하고 뒤에 실험적으로 증명된 광자의 운동량은 다음 식으로 표시한다.

p = E/c (p: 광자의 운동량, E: 광자의 에너지, c: 광자의 속도)

광자가 태양돛의 막에 도달해 흡수되거나 반사되면서 복사압이 발생된다. 우주범선이 태양에서 1천문단위(AU), 즉 지구와 태양의 평균거리만큼 떨어져 있을 때, 광자가 막에 흡수될 경우 1m2당 약 4.57×10-6N의 힘이 발생하고 광자가 반사됐을 때는 이보다 2배 더 큰 힘이 발생한다.

한편 태양풍은 주로 태양의 상부 대기층에서 방출된 플라즈마(전하 입자 구름)의 흐름을 일컫는다. 즉 태양의 중력을 탈출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에너지를 갖는, 즉 100eV(전자볼트)의 고에너지 전자와 1keV를 갖는 양성자가 태양을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바로 태양풍이다. 태양풍의 속도는 편차가 심한데, 지구 근처에서 초속 200~900km이고 평균초속 450km 정도다. 지구 근처에서의 태양풍에 의한 압력, 즉 태양풍압은 3.4×10-9N/m2으로 복사압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약하다.

태양풍이나 태양 복사에 의한 힘 모두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우주범선이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예들 들어 넓이가 200m2인 이카로스의 태양돛이 받는 힘은 0.0002N에 불과하다. 따라서 태양돛은 면적이 상당히 넓더라도 작은 힘밖에 낼 수 없지만, 이 힘들이 태양돛에 수직 방향으로 작용해 오랜 시간 축적되면 상당한 속도를 얻을 수 있다. 우주는 진공상태이므로 속도를 늦추는 마찰력이 없기 때문이다.
 

 

 
[➊ 1974년 미국항공우주국 (NASA)이 수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한 마리너 10호는 우주범선은 아니지만 태양 복사압을 이용해 탐사선의 자세를 제어했다.
➋ 2005년 6월 21일 미국 행성협회는 우주범선 코스모스 1호를 실은 로켓을 발사했으나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 코스모스 1호는 태양돛이 8조각으로 나눠져 따로 움직일 수 있다.
➌ 미국 행성협회가 NASA와 공동으로 개발한 소형 우주범선 나노세일D. 태양돛의 면적이 9.3m2에 불과하다. 2008년 8월 발사됐으나 궤도진입에 실패했다.
➍ 6월 17일 7년 만에 지구로 귀환해 화제가 된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카와’에 접근할 때 태양 복사압을 이용해 위치를 제어했다. 2005년 9월 중순경 하야부사가 이토카와에 착륙한 상황을 그린 상상도.
➎ 5월 21일 로켓에 실려 발사된 우주범선 이카로스가 태양돛을 활짝 펴고 우주공간을 이동하는 상상도. 성공적으로 돛을 펼칠 경우 연말쯤 금성에 도달할 예정이다.]

케플러가 처음 아이디어 내

우주비행이나 우주탐사에 대한 모든 이론이나 가설이 그러하듯이 우주범선에 대한 초기의 아이디어는 그때까지 알려진 지식을 그대로 미지의 영역인 우주로 투사한 것에 불과했다. 400여 년 전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의 정밀한 행성 운동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행성의 타원 운동을 발견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혜성 꼬리의 운동을 관측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지상의 바람과 같은 흐름이 우주에는 태양으로부터 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에 범선을 띄울 수만 있다면 우주를 미끄러져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은 1873년에 광자가 반사막 표면에 부딪히면서 압력을 발생시키는 현상을 시연했다. 1924년 러시아 우주과학의 선구자였던 콘스탄틴 치올코브스키와 엔지니어였던 프리드리크 챤더는 얇은 막으로 된 거대한 거울로 우주에서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196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위성 에코 1호(Echo 1)는 얇은 막으로 이뤄진 커다란 풍선 형태라서 복사압의 효과를 분명히 보여줬다.

1974년 NASA가 수성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한 마리너 10호(Mariner 10)는 태양 복사압을 이용해 탐사선의 자세를 제어했다. 태양에 대한 태양전지판의 각도를 조정함으로써 탐사선에 미치는 광자압의 세기를 조절했다. 마리너 10호 자체는 우주범선으로 설계되지 않았지만, 장차 우주범선에 이용될 기술을 시연한 셈이다.

사실 1970년대 NASA의 과학자들은 1986년에 다가올 핼리혜성을 탐사하는 우주비행체를 우주범선 형태로 만들 계획을 추진했으나 최종 단계에서 신기술에 대한 보수적인 고위층의 의견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1993년에 러시아가 만든 지름 20m의 태양반사거울인 즈나미야(Znamya)를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태양돛을 단 우주비행체가 발사돼 운용됐지만 이카로스 이전에는 주 추진시스템으로 우주범선을 이용하는 성공적인 임무는 없었다.

우주항해를 할 때 속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카로스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내에서 행성간 우주탐사를 하려면 태양의 중력과 탐사선에 대한 태양의 상대적 방향,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행성에 가까이 접근하면 행성의 중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탐사선이 진행 방향을 변경하려면 태양에 대한 태양돛의 상대적인 각을 변경해주거나 중력 슬링샷(gravitational slingshot)을 이용하면 된다. 중력 슬링샷은 탐사선이 주변의 행성 같은 중력원을 이용해 속력을 배가시키는 방법으로 마치 새총(slingshot)이 작동하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NASA가 계획하고 있는 초대형 우주범선이 실현되려면 돛 하중률 (단위 면적당 돛의 질량)이 매우 작은 소재가 있어야 한다. NASA의 연구원이 개발 중인 탄소소재를 들고 있다. 뒤에 태양돛의 대각선 길이가 500m에 이르는 초대형 범선의 상상도가 보인다.]

미래에는 파피용의 탐험 실현될 수도

‘파피용’에서 우주범선은 속도가 시속 250만km에 이르러 지구에서 2광년 떨어진 미지의 행성에 1200여 년 만에 도달한다. 과연 이 정도의 속도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 태양계를 중심으로 실제 태양돛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속도를 알아보자. 현재 태양돛을 이용한 새로운 우주탐사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우주범선의 돛 하중률(sail loading)과 조사율 벡터(lightness vector)다. 돛 하중률은 단위 면적당 돛의 질량으로 이 값이 작을수록 가속도가 커진다. 힘이 일정할 때 가속도와 질량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돛 하중률이 2g/m2 이하일 때 태양계를 벗어나는 여행이 가능한 빠른 속도가 보장된다.

조사율 벡터는 우주범선이 진행하는 방향과 태양이나 항성에서 우주범선으로 도달하는 빛의 방향의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한 값이다. 우주범선이 목적지까지 최적의 궤도를 따라 이동하려면 각 지점에서의 조사율 벡터를 고려해 태양돛의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사실 우주에서 속도는 매우 상대적이다. 우주에서 어느 곳을 중심으로 속도를 측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다. 우리가 태양계 내에서 행성간 우주탐사만 고려한다면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좌표계를 설정해 이를 기준으로 속도를 나타내거나 계산할 수 있다.

만일 ‘파피용’에서처럼 항성간 우주 탐사가 가능해지고 그에 걸맞은 속도를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속도나 방향의 중심과 좌표는 매우 상대적이어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 은하의 한 나선팔에서 다른 나선팔로, 그리고 +z 방향에서 -z방향으로 여행을 한다면, 우주비행체는 은하중심좌표계(이 경우 태양도 이동하는 천체이다)로 속도 변환과 궤도 변환을 해서 항해를 할 것이다.

현재의 계산으로는 가장 최적화된 일반적인 궤도에서 약 70km/s(또는 14.75AU/년)의 속도를 얻을 수 있다. 태양의 중력을 이용한 중력 슬링샷 궤도에서는 30AU/년, 즉 빛의 속도의 2000분의 1 정도의 속도를 얻을 수 있다. ‘파피용’의 속도(시속 250만km로 약 146AU/년에 해당)에 비하면 조금 느린 속도다. 한편 레이저나 원자력을 이용해 강력한 복사압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검토되고 있는데, 이 경우처럼 인위적으로 태양돛을 밀어내는 기술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3만km/s 정도의 속도를 얻을 수 있다.

베르베르가 ‘파피용’에서 묘사했듯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온전히 그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지구의 자원이 너무 고갈됐고 환경이 돌이킬 수 없게 파괴됐을지도 모른다. 과학의 진보 속도를 보건데 현재의 사회체제로는 인류가 온전히 이 문명을 유지한 채 다음 새 천 년을 맞이하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러나 인류의 현재 과학지식으로는 ‘파피용’에서와 같은 항성간 우주탐사는 너무도 먼 훗날의 얘기다.

그럼에도 인류가 꿈을 꾸는 한 미래의 희망은 있을 것이며, 태양돛을 이용한 낭만적인 우주탐사도 언젠가는 실현될지도 모른다. 닫혀 있는 지구에서 열린 우주로의 꿈은 인류가 아마도 문명의 끝까지 가져가야 할 태생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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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조중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연구본부 선임연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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