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문화 다양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생물문화는 생물 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을 유지하려는 각각의 노력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만든 말이다. 제주도는 생물문화 다양성의 아주 좋은 사례다. 유네스코가 인증한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 세계지질공원(2010)이자, 람사르 협약에 등재된 습지 네 곳이 있는 곳이다. 최근 제주도는 해녀를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중문화는 물론 생물학, 의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 자연과학과 사화과학계 모두 제주 해녀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해녀의 뛰어난 잠수 능력이다. 이들은 산소통 없이 20m까지 잠수할 수 있으며, 최대 2분까지 숨을 참을 수 있다. 세계기록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주목해야 할 능력이다. 특출난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집단의 기록이며, 이들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제는 거의 모든 해녀가 50세 이상이다.
그렇다면 왜 여자만 물질을 하는 걸까. 여자는 남자보다 체지방 비율이 높고, 오한에 대한 역치가 높다. 추위에 더 강하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좋아 물질에 유리하다는 이론도 있다.
[해녀는 산소통 없이 잠수해 바다 밑바닥에서 해산물을 채취한다.]
조용한 익사, 얕은 물 블랙아웃
수시로 잠수하는 일은 몸에 해를 끼친다. 해녀도 예외가 아니다. 만성적인 두통은 흔한 증상이라 해녀들은 잠수하기 전에 미리 약을 먹는다. 옛날에는 해안가를 따라 자라는 씀바귀가 두통에 효과가 있다 하여 약으로 썼다. 그러나 두통약은 항응고제로 혈액을 굳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면 혈관이 확장돼 뇌졸중이나 동맥류를 일으킬 수 있다. 해녀를 목숨을 잃기 쉬운 위험한 직업으로 만드는 가장 흔한 이유가 바로 이 증상이다.
잠수병 역시 흔하다. 앞서 언급한 두통뿐 아니라 소화불량, 관절통증, 이명(耳鳴) 등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 최근 제주도 지방정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고압산소치료센터를 마련해 해녀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순수한 산소를 들이마시게 해 질소를 배출하는 치료법이다. 그런데 고압산소실 치료도 잠수와 마찬가지로 압력의 변화를 일으킨다. 산소를 과도하게 흡수하면 오히려 산소 독성으로 중추 신경과 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편, 가장 흔하면서도 아직 이해가 부족한 증상이 ‘얕은 물 블랙아웃’이다. 얕은 곳까지만 잠수했는데도 의식을 잃는 증상이다. 깊은 곳까지 잠수했다가 나올 때 감압으로 인해 일어나는 증상과 다르다. 얕은 물 블랙아웃은 산소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뇌간의 기능이 잘못 작동해 일어난다. 저산소증으로 의식을 잃는 것이다.
학자들이 이 증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심호흡이다. 해녀들은 숨을 오래 참기 위해 잠수 전에 여러 차례 심호흡을 한다. 그런데 심호흡을 많이 하면 몸 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져 뇌가 산소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뇌가 적절한 시기에 신호를 보내지 못하면 산소가 필요하다고 느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 저산소증에 빠져 의식을 잃는다. 동료 해녀가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목숨을 잃어 흔히 ‘조용한 익사’라고 부른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근육 경련이나 체력 저하도 문제가 된다. 제주 해녀는 최근까지도 계절이나 바다 온도와 무관하게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잠수했다.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 잠수복을 도입한 게 1970년대다. 그런데 잠수복은 체온을 보호해주는 대신에 부력을 일으킨다. 해녀들은 물 속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납 허리띠를 차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만성적인 척추와 엉덩이 통증이 새로운 증상으로 나타났다.
잠수부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소 마취는 해녀 연구에서 잘 논의하지 않는 증상이다. 질소 마취는 압력이 높은 깊은 곳에 잠수할 때 질소가 농축된 공기 때문에 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인데, 해녀는 그다지 압력이 높지 않은 20m까지만 잠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소 마취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어서 해녀에게 의식 변화를 일으킨다. 주로 약한 도취감과 판단 능력 저하, 운동 능력 저하를 일으켜 평안한 느낌을 준다. 많은 해녀들은 이 증상을 ‘바다에 중독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질소 마취는 산소의 필요성이나 수면까지의 거리를 판단하는 능력을 떨어드릴 수 있어 위험하다.
이 외에도 해녀가 마주하는 위험은 많다. 압력의 잦은 변화 때문에 피부나 신체 조직이 망가지는 현상이나 날카로운 돌이나 조개껍데기, 산호에 다치는 일, 독이 있는 바다 생물에게 쏘이는 사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도구가 해저에 끼어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사고 등이 항상 해녀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제주의료원에 있는 고압산소치료센터. 고압의 산소로 잠수병을 치료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해녀와 스쿠버다이버 등이 주로 이용한다.]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인들
여성학자들은 해녀를 ‘에코 페미니즘’의 사례로 인용한다. 몸과 마음이 강하고, 독립적이며, 실용적이고, 근면하고, 뚝심 있는 특징 때문이다. 해녀들도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독립성이 강한 일로 묘사한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자녀를 대학까지 보낼 수 있고, 언제든 돈을 벌어야 하면 바다에 뛰어들어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 힘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제주의 특징인 자급자족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해녀가 아닐까.
해녀의 전설 속에서 바다는 저승을 뜻한다. 해녀 속담 중에는 “저승 돈 벌어 와서 이승 자식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잡혀가자 지상에는 기근이 퍼진다. 이에 제우스가 개입해 페르세포네가 1년 중 3분의 2는 어머니 곁에서 보낼 수 있게 해 지상의 인간들이 농업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해녀들이 저승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이 체념을 뜻하지는 않는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지옥으로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바다를 육지에 있는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자궁과 같은 곳으로 여긴다.
잠수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정신은 자유롭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해녀들은 종종 잠수를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묘사한다. 오히려 육지로 돌아갈 때 진짜 집 같은 바다를 떠나 책임감으로 가득한, 땅에 묶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약간 체념을 느낀다. 잠수가 몸에는 해로워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 듯하다. 충만감, 동기, 자연, 동료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
라 해녀 공동체가 지닌 샤머니즘적인 믿음도 이런 고유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준다. 제주 해녀는 독립적인 성향과 함께 집단적인 성격도 띤다.
서로 도와가며 집단 경제를 영위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특징은 이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제주 해녀는 과거 조선 시대부터 제주의 주요한 경제 동력이었다. 조선 시대의 제주 남성이 국가에 과도한 세금을 내는 부담을 떠안자 잠수 활동의 주체는 해녀가 됐고, 따라서 본토의 여성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리더십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해녀가 공식적으로 촌장이나 관리, 경제 공동체의 수장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특히,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와 우도의 해녀들이 독립운동을 벌여 상당수가 투옥되기도 했다. 마을이나 가정 내부의 의사 결정에도 꾸준히 영향을 끼쳤다.
[잠수복을 도입하기 전 해녀들은 이렇다 할 장비 없이 짧은 옷가지만 걸친 채 잠수했다.]
제주 기원 신화의 상징
그럼에도 제주 해녀는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사회 계급에 속했다. 심지어는 제주도가 본토에 비해 만민평등사상이 더 널리 퍼져 사회 계급의 차이가 적은 상황에서도 그랬다.
해녀들은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고,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종사할 뿐이었다.
해녀가 관심과 찬사를 받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제주 해녀는 경이로운 존재다. 이들은 복잡하고 섬세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어촌계라고 하는 집단경제체제가 한 예다. 여기에 더해 기술과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와 동시에 이들을 묶어주는 애니미즘/샤머니즘적 전통 종교, 정치·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 제주 방언의 꾸준한 사용, 각종 신화와 전설은 해녀 문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거나 노인을 공양하는 일도 협력한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친인척 문화인 ‘궨당’도 해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 궨당은 혈연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친인척을 이르는 말인데, 전통적으로 제주에는 한 마을이 모두 가족과 친인척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각 해녀 공동체도 이처럼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맺어진 경우가 많다. 공동체에 들어가는 방법은 혈연이나 결혼밖에 없으며, 그 구성원만 그 경제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 바다에서 잠수하는 곳도 공동체별로 따로 정해진다.
해녀는 어부와 함께 초기 문명의 사냥꾼과 채집자를 나타낸다. 이들이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는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은 사냥/채집과 농업의 결합 모습을 보여 주는 제주 신화와 일치한다. 제주 신화에 따르면 삼성혈에서 탐라 왕국의 세 시조, 고 씨, 부 씨, 양 씨가 나왔다. 이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다가 씨앗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온 세 공주와 결혼한다. 신화에 반영된 해녀 문화다.
해녀들이 쓰는 제주 사투리는 언어인류학에서 관심이 많다. 이 언어는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고대 한국어는 물론 동남아시아나 태평양 섬 지역 언어의 특징까지 갖고 있다. 2010년 12월 유네스코는 본토에 알려지지 않은 어휘와 음성, 형태를 담은 이 사투리를 사멸 위기의 언어로 지정해 다방면에서 보존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해녀의 활동은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해녀는 생태적으로 건전하게 활동했다. 해산물을 채취하는 시간을 제한하고, 다 자란 생물만 채취한다. 호흡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잠수 시간을 줄여 수확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해녀는 오로지 스스로 다시 수가 늘어날 수 있는 생물만, 개인적인 용도나 적당한 선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정도만 채집한다. 그리고 한 해녀 공동체가 속한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작업한다. 이처럼 해녀의 활동은 지속가능하다.
[제주 해녀박물관에 가면 과거 해녀가 이용하던 옷과 장비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비롯해 해녀와 제주의 역사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해녀 보존 노력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해녀축제. 제주민요를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 ‘숨비소리’ 공연을 벌이고 있다.]
현대에 어울리는 해녀는 무엇일까
필자는 현재 제주도에 살면서 해녀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해녀와 함께 의식에도 참여하고, 해녀 보존 운동도 펼친다. 올해 여름에는 한스풀에 있는 해녀학교에서 4개월짜리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해녀의 곁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물질을 배운 것은 연구 과정에서 최고의 경험이었다. 또한, 제주도 올레길 411km를 전부 걸으며 바닷가의 마을과 해녀 공동체를 탐방했다. 내가 해녀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말하자, 그들은 쉽게 자기들 안으로 나를 받아줬다. 잠수하기 아주 좋았던 어느 날, 우도를 한 바퀴 걸으며 열댓 군데에서 잠수하는 해녀의 모습을 본 경험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거의 2000년을 이어 온 해녀 공동체는 사라져가고 있다. 현대화와 관광 중심으로 재편된 경제, 여성 교육의 향상, 경제적인 풍요, 기후 변화에 따른 해산물 감소,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대규모 어업 증가 등이 원인이다. 오늘날 등록된 해녀의 수는 5000명 이하이며, 생계를 위해 정기적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는 2500~3500명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수가 적어진 만큼, 해녀는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는 ‘바다의 할머니’, ‘제주의 어머니’와 같은 문구가 새롭게 해녀를 장식한다. 생태문화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문화를 보존하는 게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란 인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녀는 제주가 잃어버린 전통과 문화의 상징이다.
오늘날 해녀박물관, 해녀학교, 체험관광프로그램과 같은 해녀 문화 보존 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제주도 지방정부도 조만한 해녀문화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 9월 세계자연보존총회에서는 ‘독특한 해양 생태 지킴이 제주 해녀의 지속가능성’이란 발의안을 가결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책이나 영화, 예술 작품이 해녀에 갖는 관심은 해녀의 독특함을 기억하고 임박한 소멸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해녀를 과거 방식 그대로 보존할 수는 없다. 보존과 동시에 형태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특정한 요소만이라도 보존하려는 노력이나 현대 사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녀를 재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