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선천적 돌연변이예요. 뇌의 전두엽 부분이 손상돼있죠.”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범죄행동분석팀의 강은경 경위는 사이코패스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강 경위는 프로파일러다. 프로파일러는 용의자와 심층면담을 통해 범행 동기를 알아내고, 심리분석이나 통계를 이용해 고전적인 수사로 찾지 못한 다른 단서를 얻는다. 범죄 현장만 보고도 용의자의 심리나 패턴을 정확하게 추측하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의 과장이다.
사이코패스가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전두엽은 인간의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부위다. 사이코패스 경향이 높은 성격은 반사회적 행동, 습관적인 거짓말을 비롯해 감정적인 공감능력이 결여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전두엽에 이상이 있어 이런 심리적 문제가 나타난다면, 전두엽 손상이 신체의 다른 곳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을까. 리처드 스티븐스 맥쿼리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전두엽의 ‘안와 전두 피질(OFC)’이란 부분에 주목했다. 이 부위는 후각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와 냄새를 맡는 능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냄새 구분 못하는 사이코패스
스티븐스 교수팀은 사이코패스 경향과 후각 능력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범죄 경력이 없는 일반인 남녀 79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참가자들의 사이코패스 경향 정도를 분석하기 위해 SRP-IV 평가를 실시했다. SRP-IV는 로버트 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사이코패스 경향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PCL-R 테스트를 자가진단이 가능하도록 변형한 것이다. 이 외에도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결함인 공감능력을 측정했다.
후각 능력에 대한 평가는 3가지였다. 후각 능력이 민감한 정도, 무슨 냄새인지 맞히는 능력, 그리고 같은 향의 샘플중 냄새가 다른 하나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사이코패스 경향이 높게 평가된 사람일수록 무슨 냄새인지 알아맞히는 능력과 냄새가 다른 하나를 구분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인 냉혹함(공감능력부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참가자일수록 냄새를 알아맞히는 능력이 떨어졌다. 후각 능력이 민감한 정도는 연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전두엽 이상이 사이코패스 성향과 관계가 있다는 전제를 뒷받침”하며, “후각 능력 검사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9월 18일 학술지 ‘화학적감각 지각’에 실렸다.
당신 옆의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2005년 조사결과 미국 교도소 수감자 중 20.5%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일반인 사이에서 사이코패스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09년 발표한 연구결과에서 로버트 헤어 교수팀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을 때 보통 사람 중 0.6%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험 대상은 16세~74세의 평범한 영국인 638명이었다. 최근에는 사이코패스의 빈도를 이보다 높은 100명 중 1명 꼴로 본다. 오늘 당신이 만나거나 무심코 지나친 사람들 중 사이코패스가 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만난 사람 중 누가 사이코패스일까. 후각 능력 외 사이코패스를 구분할 수 있는 특성은 없을까.
강은경 경위는 “사이코패스는 피상적 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피상적 매력이란 허풍이나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타인이 처음 봤을 때 쉽게 호감을 느끼는 매력을 뜻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주변 인물들에게 사이코패스 살인자에 대해 물었을 때 흔히 “그런 사람일 줄 몰랐다”고 대답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강 경위는 “같이 얘기해보면 화가 날 만큼 입심이 좋고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기 자신을 영웅시하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다.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공격성이 더해지면 강력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고 강 경위는 강조했다.
절묘한 연기와 거짓말이 가미된 나르시시즘은 사이코패스에게 피상적 매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신을 미화해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이코패스는 보통 지적으로 영리하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능력이 결여됐음에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연기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강 경위는 “심지어 가족들을 속이고 조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이코패스 여성의 범행 대상은 바로 가족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비슷한 특성 때문에 사이코패스와 자 주혼동돼 쓰이는 개념이 있다. 바로 ‘소시오패스(공식적인 정신병리학적 진단명은 아니다)’다. 소시오패스가 보이는 행동이나 심리적 특성은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다.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전두엽 기능 문제라는 선천적인 이유로 탄생하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으로 반사회적인 기질을 습득한 사람들이다. 강 경위는 “두 케이스 모두 확실한 심리치료방법은 없지만 후천적으로 발생한 소시오패스가 상대적으로 치료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2010년 과학동아 ‘내 옆에 있는 두 얼굴의 소시오패스’ 기사 참조).
사이코패스가 성공하는 사회
그러나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소시오패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조용히 살아가고 어떤 경우는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왜 누구는 범죄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구는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 강 경위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만 3세 이하시절의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가 바로 사람의 표정을 보며 감정에 대해 교감하는 법을 익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강 경위는 “이후 유치원, 학교에서도 감정 교감을 배울 기회가 있지만 이런 시도가 계속해서 좌절되면 ‘최악’의 경우로 치닫는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점은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악명 높은 국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출생연도가 1969~1970년 사이에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강 경위는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인격 형성에 중요한 유아기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사이코패스가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사이코패스도 있다. 2010년 헤어 교수는 기업 고위임원 중 4%가 높은 사이코패스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의 비율은 보통 사람의 비율인 1%에 비해 4배나 높다.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자주 옮긴다는, 흔히 알려진 사이코패스의 특성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연구결과다. 그렇다면 이 4%의 사람들은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올바른 정서가 자리 잡은 ‘착한 사이코패스’일까.
결론은 ‘예’일 수도, ‘아니오’일 수도 있다. 클리브 바디 영국 미들섹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가 꼭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극단적인 범죄로만 즐거움을 얻으리란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내 고위 간부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부하 직원들을 마음대로 해고하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등의 불법적인 일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고위 간부는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이코패스들에게 매력적인 지위다. 바디 교수는 금융 기업 내 사이코패스 결정권자들 때문에 2007~2008년 세계 경제 위기가 온 것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2011년 발표하기도 했다.
2011년 아드리안 레인 미국 펜실배니아대 범죄학과 교수팀은 사이코패스를 진화심리학적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사이코패스가 장기적인 인간관계, 정서적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대신 현대 사회에 요긴한 피상적인 매력, 남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닌지에 대한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레인 교수는 비록 관계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그의 연구는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졌다. 어쩌면 현대사회가 사이코패스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