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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유해 화학물질 “직접 먹고 몸에 발랐어요”


‘일요일 오후, 참치 샌드위치를 두 조각 먹는다. 다음 날 점심, 참치샌드위치를 또 먹는다. 3시, 참치 샌드위치를 먹는다. 5시 45분, 참치 회와 초밥을 한 가득 먹는다. 7시, 참치 회와 초밥, 롤을 먹는다. 다음 날 점심과 저녁, 연달아 다시 참치 샌드위치를 먹는다.’

이렇게 만 48시간 동안 참치만 7끼 먹은 남자가 있다. 옆에서는 또다른 남자가 달달한 향기가 나는 항균 비누와 로션,방향제로 하루 종일 온몸에 ‘떡칠을’ 한다. 둘은 작정한 듯 몸에 나쁜 것을 듬뿍 섭취한다.

황당하다. 웃기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과 불편함이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하게 느껴진다. 걱정도 든다. “괜찮을까?” 물론 괜찮지 않다. 참치를 포식한 남자는 혈액 검사를 한 결과 치명적인 혈중 수은 농도가 먹기 전의 3배로 치솟았다. 미국 환경청(EPA)이 ‘안전하다’라고 말한 한계마저 넘었다. 향기 물질을 덕지덕지 바른 남자는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 수치가 그래프의 천장을 뚫을 정도로(22배) 높아졌다.

최근 번역 출간된 ‘슬로우 데스’라는 책의 내용이다. 캐나다의 환경운동가이자 과학자인 브루스 루리에 캐나다 아이비재단 회장과 동료 생물학자 릭 스미스가 자신들이 직접 실험 대상이 돼, 우리의 일상이 화학물질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힌 책이다. 소개한 수은과 프탈레이트 외에도 소파나 옷을 불에 안 타게 하는 방염제, 프라이팬에 달걀이 달라붙지 않게 하는 테플론, 농약 성분인 DDT 등 모두 7가지 화학 물질을 실험했다.

제주도 세계자연보전총회 참석 차 방한한 루리에 회장을 만났다. 캐나다 환경운동의 ‘대부’이자 과학(지질학과 환경과학)을 전공한 과학자인 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적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 책엔 복잡한 과학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화학물질과 환경 이야기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보통 사람들이 과학자가 되지 않고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걸 ‘번역’했습니다.”

실험은 이런 ‘번역’을 위해 루리에 회장이 택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화학물질에 노출하는 실험이라니, 위험하거나 두렵지는 않았을까.

“두렵지는 않았어요. 실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위험한 상황을 실험한 게 아니거든요(실험 전 전문가에게 문의해 아주 위험한 물질은 제외했다). 오히려 약간 웃기게 썼어요.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이해하도록요. 한국어판은 안 웃긴가요?”(웃음)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일상 속 화학물질의 공격’이다. 양은 적지만 꾸준히 노출되고 있는 이런 화학물질이 더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모두가 일상에서 매일 어떻게 사는지 보여줬을 뿐이에요. 산업화된 나라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죠. 단지 이틀 동안 집중해서 체험했다는 것만 달라요. 화학물질이 가득 든 치약으로 이를 닦고, 플라스틱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서요.”

그는 이 기회에 오염 문제를 다루는 관점을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환경과 자연을 오염시키는 양이 많고 독성이 강한 ‘오염물질’에만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요. 이제 화학물질은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소파, 카펫, 벽채 등 어디에나요. 생활과 함께 하기때문에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지요. 여기에 주목해야 해요.”

유해 화학물질 분야의 발달 과정을 생각해 봐도 공감이 간다. 이 분야의 책은 족보가 있다. 1960년대에 살충제의 위험성을 알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1세대라면, 1996년 테오 콜본 등이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알린 ‘도둑 맞은 미래’가 2세대다. 그 후 16년. 이전보다 더 가까운 곳까지 침투해 교묘하게 우리의 일상을 공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루리에 회장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의 폐해를 알리는 일에 약 20년을 투자했어요. 하지만 정부나 화학회사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죠. 변화가 너무 느렸어요.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일상 속에 숨은 환경문제를 알고, 그게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면 해요. 변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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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제주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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