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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8월 31일. 손에 들린 것은 망치와 정, 브러시. 풀 한 포기 찾기 쉽지 않은 황량한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주위에 인기척 하나 찾기 어려운 이 곳은 캐나다 알버타주 공룡주립공원(Dinosaur Provincial Park). 7500만 년 전 이 땅을 지배했던 이들이 발 밑으로 보인다. 수없이 드러나 있는 뼈 화석의 주인은 바로 센트로사우루스. 망치, 정, 브러시라는 다소 원시적(?)으로 보이는 도구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센트로사우루스는 왜 여기 이렇게 누워 있을까.


[캐나다 알버타 주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배드랜드. 두터운 퇴적암층에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침식되고 록키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에 풍화돼 만들어졌다. 자세한 생성원인은 111쪽 그림을 참조하자.]

세계 3대 공룡박물관인 로얄 티렐 박물관이 있는 캐나다 알버타주 드럼헬러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 달리면 공룡주립공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화석발굴지. 약 7500만 년 전의 지층을 보존하고 있다. 백악기 말 공룡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창문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이곳은 특히 35종에 달하는 공룡의 한 개체 뼈 전체가 완벽히 보존돼 있는 상태로 발견됐을 정도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화석들이 발견된다. 규모도 규모지만 질적으로도 우수한 화석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심지어 이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센트로사우루스 화석은 피부화석까지 포함하고 있다), 유명한 고생물학자들이 찾는 곳이다.



사투 끝에 7500만 년 전 뼈 화석을 부러뜨리다

주립공원 연구원을 따라 지프 차량으로 약 10여 분 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센트로사우루스 화석 발굴 현장. 함께 간 일행의 손엔 저마다 망치와 정, 브러시 등 발굴 도구가 쥐어졌다.

우리가 한 체험은 공룡 뼈 주위를 파는 단계다. 뼈 화석 주위의 모래와 자갈 등을 제거하고 화석 형태 그대로 지표면에 드러내는 일이다. 화석을 발굴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망치와 정을 사용한다. 동행한 데이비드 주립공원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정을 지층과 거의 수평으로 놓고 망치로 정의 뒷부분을 쳐 조금씩 지층을 없애나가야 합니다. 정과 지층이 이루는 각을 최소화하는 것이죠. 지층이 쌓일 때 지표면과 나란히 쌓이므로 그 속에 든 화석을 발굴할 때에 지층에 수직방향으로 힘을 가하면 화석을 발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화석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7500만 년 전에 살았던 공룡 화석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빛을 보게 한다는 흥분과 기대감은 사라졌고 손끝에는 긴장감이 실렸다.
20분 쯤 지났을까. 주위 지층에서 여러 개의 식물화석을 발견했다. 대부분 석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던 화석연료(석탄)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 잠시 후 정을 망치로 내리치는데, 어? 드러낸 퇴적층 속에서 뭔가 가느다랗고 매끈한 막대가 보였다. 7500만 년 만에 공룡 화석이 빛을 봤다.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브러시로 주위를 정리하고 다시 살펴보는데 흥분감이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뼈가 부러져 있었던 것. 엄청난 잘못을 한 것 같았는데 데이비드 연구원은 대수롭지 않게 접착제(정확히 ‘glue’라고 표현했다)를 뿌렸다. 접착제는 부스러지기 쉬운 화석의 경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큰 잘못을 한 줄 알았는데 정작 현지 연구원의 반응은 의외였다. 지천에 널린 게 화석이니 그럴 법도 했다. 발굴할 때 화석이 어디까지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발굴을 시작할 때에는 범위를 넓게 잡고, 주변부부터 조심스럽게 파들어 가야 한다. 1시간의 사투 끝에 마지막 작업까지 마쳤다. 끝내 모든 뼈 화석들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공룡 화석을 원형 그대로 발굴하기 위해 석고를 입힌 모습이다. 이를 재킷이라고 한다.]



[탐사원들은 발굴체험이 끝나고 주립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진 공룡 화석을 직접 찾아보는 트래킹을 2시간 가량 진행했다. 왼쪽부터 데이빗 연구원, 문경연, 이규현, 이원민 학생.]

센트로사우루스가 캐나다에 떼로 누워있는 까닭은

주립공원은 배드랜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배드랜드는 사전적으로 나쁜 땅이라는 의미다. 강수량이 적어 건조한 기후에, 뜨거운 햇살, 야생동물도 살지 않는 척박함 때문에 이곳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은 세계 최대 공룡발굴지다(우리나라에선 공룡 발자국 화석만 발견돼도 떠들썩한데 공룡 화석이 발에 채일 정도면 배드랜드라는 이름이 아이러니할 정도로 고생물학 입장에선 축복받은 땅이다). 공룡들의 천국이었던 이곳은 어떻게 건조한 불모의 땅으로 변했을까. 그리고 수많은 센트로사우루스가 이곳에 누워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부터 밝히자면 배드랜드가 생긴 원인도, 공룡 화석이 대규모로 발굴되는 원인도 공통적으로 물이다. 우선 공룡들이 파묻힌 원인에 접근해 보자. 브래드 터커 공룡주립공원 방문서비스팀장은 “중생대 백악기 말에 이곳은 큰 규모의 강이 흘렀던 것으로 추정
되며 무리를 이뤄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센트로사우루스가 강을 건너다가 수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7500만 년 전 이 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국지성 호우 등을 피해 강을 건너던 센트로사우루스 무리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화석은 당시 물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이원민 학생이 실수로 부러뜨린 센트로사우루스 뼈 화석(왼쪽). 화석화가 진행되는 동안 골밀도가 떨어져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접착제를 뿌려가며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오른쪽)]

큰 강이 흘렀던 흔적은 퇴적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두터운 사암층과 산화철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강에 유입된 퇴적물에 의해 생성된 수천만 년 동안 생성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장된 공룡 화석이 지표면에 대량으로 드러난 이유는 뭘까. 약 2만 년 전, 이 곳은 빙하로 덮여있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빙하가 녹은 물은 곳곳에서 넘치고 흐르며 침식이 일어났다. 배드랜드를 둘러보면 물에 의해 침식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v자 형태의 협곡이 곳곳에 보인다. 이 침식 덕분에 지층 속에 묻혀 있던 화석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게 터커 팀장의 설명이다.
 

또한 바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배드랜드 서쪽에서 생성된 로키산맥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막고 건조한 바람을 동쪽으로 내보내면서 배드랜드로 직접 불었다. 바람은 배드랜드를 건조한 기후로 만들었고 지층을 깎아 ‘후두스’라는 기괴한 암석을 완성했다. 후두스는 버섯 모양의 바위로, 밑부분의 사암은 풍화에 상대적으로 약해 잘 깎인 반면에, 윗부분에 위치한 산화철은 풍화에 강해 침식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버섯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들 사암층과 산화철 층은 물론 백악기 때 생성된 층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화성의 경관을 방불케 하는 배드랜드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공룡 화석과 전시 기술의 하모니 ‘로얄티렐박물관’

세계 3대 공룡박물관 중 한 곳인 로얄티렐박물관. 알버타주 캘거리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 있는 드럼헬러에 자리잡고 있다. 로얄티렐박물관의 기원은 소녀의 호기심이었다. 1987년 화석에 흥미가 있었던 소녀 웬디 슬로보다가 드럼헬러에서 공룡알 화석을 찾아내 캘거리대 렌힐스 박사에게 보여준 것이 박물관이 생겨난 시초다. 박물관의 이름인 티렐(조세프 버 티렐)은 지질학자로 고생물학자들과 함께 알베르토사우루스를 발견하는 업적을 남기며 박물관의 이름이 됐다.

화석 발굴 탐사에 나서기 전에 방문한 박물관은 규모도 규모지만 다양한 공룡들의 실제 화석과 근육을 붙여 복원한 폴리우레탄 질감이 매우 사실적이라는 데서 더욱 놀라게 된다. 특히 공룡 화석을 복원하는 현장을 유리창 너머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은 화석보존처리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커다란 암석 덩어리 속에 있는 작지만 중요한 화석을 발견함은 물론 화석 조각들의 위치와 형태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방문 당시 한 연구원이 앞에서 설명한 화석 주위의 석고(재킷)를 절단하고 화석 주변에 잔재하는 크고 작은 암석들을 에어펌프, 드릴, 칫솔 등의 도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떼고 있었다.

잠깐 발걸음을 옮겼을까. 눈에 바로 들어오는 전시물은 진화가 만들어낸 ‘미술 작품’이었다. ‘블랙뷰티’라는 학계에서도 유명한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다. 화석이 될 때 원자번호 25번인 망가니즈(망간)에 영향을 받으면서 온몸의 뼈가 윤기 나는 검은색으로 치환됐다. 황금빛 액자에 담긴 블랙뷰티를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들여다보는 느낌은 마치 내가 중생대에 가있는 듯 했다.

지질학적으로 뚜렷한 특징이 있는 나라의 박물관들은 대개 그 특징을 활용한다. 로얄티렐박물관은 로키산맥 왑타산과 필드산을 연결하는 이른바 화석능선에서 발견된 ‘버제스 셰일’이 눈에 띄었다. 이와 함께 고생대 캄브리아기 동물군과 캘거리 지역에서 발견되는 중생대 백악
기 지층에서의 수많은 공룡화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버제스 셰일 화석은 부드러운 연질부로만 이뤄져 화석으로 남기 어려운 캄브리아기 생명체들이 아주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캄브리아기 생명체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목이 길고 백악기에 번성한 공룡인 용각류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용각류에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카마라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등이다. 유명 애니메이션 둘리가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모태로 만들어졌다. 이곳에 전시된 용각류는 카마라사우루스 1~2마리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공룡주립공원에서 화석 발굴 체험을 하기 전에 만난 터커 팀장은 이 지역에 부족한 용각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용각류는 캐나다보다는 미국 쪽에서 훨씬 많이 발견됩니다. 솔직히 우리도 공룡 등 고생물학을 연구하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들의 해묵은 수수께끼를 좀 풀어주세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생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숙제 하나를 떠안았다. 공룡이 살아 있는 캐나다가 안겨 준 선물이었다.


[공룡주립공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후두스’다. 낙타 모양처럼 생겨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➊ 로얄티렐박물관에서는 연구원들이 직접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장면을 유리창 너머에서 살펴볼 수 있다. ➋ 로얄티렐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201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민수 | 글 캘거리(캐나다)=이규현, 이원민 도움 주한 캐나다관광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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