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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지금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수치도 위험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잠시 쉬시는 것이 어떨까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 비서가 나에게 휴식을 제안한다.
“그럴까? 그럼 휴식 모드 시작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에서 흥겨운 최신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1. 언제부터?
이것은 SF영화에 등장하는 설정이 아니다. 2012년 미국 MIT의 솔로베이 교수팀은 이마에 부착하는 근적외선분광 센서로 사용자의 정신적 업무량을 측정하고 휴식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대 바미디스 교수팀은 뇌파 센서를 이마에 부착해 유쾌한 감정과 불쾌한 감정을 80% 이상의 정확도로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뇌공학이 발전하면서 기계가 사람의 감정을 읽고 반응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기계나 컴퓨터와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인 인터페이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키보드가 유일한 입력수단이었던 초기 개인용 컴퓨터에 마우스가 보급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인터페이스 분야의 새 화두는 ‘감정’이다. 2012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 개발 총책임자인 앤드류 블레이크 박사는 “다음 세대의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뇌를 이용하는 방식이 될 것”이며, “2013년 새로 출시할 ‘뉴 엑스박스’ 게임기에 이 기능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010년형 키넥트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인식했다.
우리 몸은 감정에 따라 미세하게 변한다. 흥분을 하거나 긴장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손발에 땀이 나고, 몸과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린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뇌가 반응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뇌의 신경신호에서도 미세한 감정 변화를 찾아낼 수 있다. 2008년 호주의 이모티브사는 뇌파를 이용해서 사용자의 흥분, 지루함, 당혹감과 같은 감정 상태를 읽어내 게임 속 캐릭터의 표정이나 행동을 바꿔 주는 새로운 게임 인터페이스 장치를 개발했다. ‘에폭(EPOC)’이란 이 기계는 이미 전 세계에 수만 대가 보급됐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와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앱으로 개발되고 있다.
2. 어디까지 왔나?
감정을 읽기 위해 선이 주렁주렁 달린 모자를 쓰거나 큰 기계에 들어가야 한다면 누구도 이런 기계를 쓰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자공학과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새끼손톱보다 작은 칩 하나로 감정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작은 칩 하나에 생체 신호의 증폭부터 디지털 변환, 잡음 제거 등 여러 기능을 넣을 수 있는 ‘시스템 온 칩’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마에 붙이는 작은 스티커나 가벼운 헤드셋만으로 뇌의 신호를 읽어 무선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전송할 수 있다. 뇌 신호를 전송 받은 스마트폰 비서는 주인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에 맞게 기분전환용 음악을 들려주고, 길거리의 전자식 광고판에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되는 최신 영화 정보를 띄울 수도 있다. 10년 뒤에는 멋있게 생긴 헤드셋을 머리에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 뉴로포커스사는 자체 개발한 휴대용 뇌 신호 측정 장치로 고객의 잠재의식과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읽어 마케팅과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설문 조사는 조사 대상의 경험, 이해관계, 편견 등이 반영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뇌는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이미 감성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를 읽어내면 더욱 객관적인 선호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잠재의식과 감정을 읽어서 마케팅에 활용하는 ‘뉴로마케팅’이다. 유명 의류브랜드 ‘갭(Gap)’이 수십 년간 사용해 온 로고를 바꾸려다가 뉴로마케팅 조사를 통해 현재 로고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일화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모티브사의 ‘에폭’. 사용자의 뇌파를 읽어 게임 속 캐릭터의 표정이나 행동을 바꿔준다.]
3. 미래는?
2012년 오늘날 감성 인터페이스 기술은 단순한 기쁨, 역겨움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의 긍정, 부정 감정도 알아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기술이 더욱 보편화된다면 자폐증 아동이나 커뮤니케이션 불안증 환자들이 가정에서 기계와 감정을 교류하며 치료를 받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또 노인 환자들의 정신적 부담감을 측정해서 자동으로 난이도나 콘텐츠를 바꿔주는 ‘스마트’한 인지재활 장치도 개발할 수 있다. 이미 일본 등의 기술 선진국에서는 사용자의 마음을 반영하는 가전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뇌공학자들에게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인간은 표정이나 목소리를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고 나의 감정을 표현한다. 언젠가 인간의 감정을 가진 기계가 개발된다면 기계가 우리의 뇌로부터 감정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