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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한반도를 습격하다! 말벌



Q 1 어떤 종류가 있나

사람들이 흔히 말벌이라고 부르는 곤충은 분류학에서는 벌목(目)에서 말벌과(科)에 속하는 무리다. 벌목은 14만 4000여 종으로 이뤄져 있어 딱정벌레목(36만여 종), 파리목(15만 2000여 종), 나비목(15만 7000여 종)과 함께 곤충의 주요 4대 목이다. 꿀벌과 개미도 벌목에 속한다.

도시인들이야 말벌과 꿀벌을 간신히 구분하는 수준이겠지만 눈썰미가 좋았던 우리 조상들은 말벌과 곤충을 크기나 형태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불렀다. 말벌과 땅벌, 쌍살벌이다. 흥미롭게도 분류학에서도 이들은 각자 속명이 다르다. 최 박사는 “우리나라에는 말벌과 곤충이 5속 30종(3아종 포함)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며 “이 가운데 말벌속 10종, 땅벌류가 중땅벌속 3종 땅벌속 5종, 쌍살벌류가 뱀허물쌍살벌속 2종 쌍살벌속 10종”이라고 말했다.

말벌에서 ‘말’은 ‘크다’는 뜻의 접두사다. 즉 말벌은 큰 벌이라는 말이다. 말벌 가운데서도 가장 큰 종인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5cm에 이른다. 장수말벌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무는 힘도 세고 독침의 독도 강력하다. 꿀벌집을 초토화해 양봉농가를 울리는 녀석들도 대부분 장수말벌이다. 추석 때 벌초나 성묘를 하다가 벌에 쏘여 죽는 경우가 매년 몇 건씩 나오는데 역시 장수말벌이 주범이다. 이밖에 몸집이 약간 작은 꼬마장수말벌, 그리고 그냥 ‘말벌’이라고 부르는 종이 있다. 다들 조심해야 하는 녀석들이다. 다행히 이 녀석들은 주로 땅 속 빈 공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도심에 출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집 처마나 벽, 구조물 틈 같은 곳에 집을 짓는 털보말벌이 도심에서 주로 목격되는 말벌이다. 털보말벌은 등에 털이 많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

이런 재미있는 가사에 나오는 땡벌은 땅벌의 사투리다. 땅벌은 말 그대로 땅에 집을 짓는 종류인데 말벌에 비하면 덩치가 훨씬 작고 꿀벌 보다 약간 큰 정도다. 하지만 땅벌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잘못 집을 건드렸다 수백 마리한테 집단공격을 당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다행히 땅에 집을 짓다보니 도심 외곽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도심에 나타난 말벌 대다수는 쌍살벌이라고 부르는 종류다. 쌍살벌은 말벌이나 땅벌에 비해 체형이 날씬하고 크기는 꿀벌보다 조금 커 땅벌만하다. 쌍살벌은 자연상태에서 나뭇가지나 바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도심에서도 처마나 벽, 전봇대 등 다양한 장소에 집을 짓는다.

한편 벌집 모양을 보면 말벌집인지 쌍살벌집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말벌집은 애벌레가 들어가는 방이 여러 층에 걸쳐 놓여있고 이를 외피가 공처럼 싸고 있다. 반면 쌍살벌집은 방이 단층으로 붙어있고 외부에 노출돼 있다. 최박사는 “축구공보다 큰 말벌집도 있는데 이 안에는 벌이 수천 마리 들어있을 수 있다”며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 박사 같은 전문가도 말벌집 채집을 갈 때는 우주복처럼 온 몸을 덮는 특수복을 입고 작업한다.










Q2 말벌과 꿀벌, 공통점과 차이점은?

말벌과에 속하는 종은 모두 사회성 벌이다. 즉 꿀벌처럼 집을 짓고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수만 마리가 모여 산다. 꿀벌처럼 여왕벌, 일벌(생식력이 없는 암컷), 수벌로 이뤄져 있다. 일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를 먹이고 집을 지킨다. 최 박사는 “말벌은 벌집이 공격당했을 때 가장 흥분한다”며 “꿀벌처럼 초개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밀과 꽃가루를 먹고 모으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포식성이다. 나방과 나비의 애벌레를 비롯해 매미, 잠자리, 꿀벌 심지어 다른 종류의 말벌까지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그런데 말벌 성충은 자신이 잡은 먹이의 고깃덩어리를 자기가 먹지는 않는다. 대신 강한 턱으로 먹이를 짓이겨 동그란 고기 경단을 만들어 벌집 안에 있는 애벌레한테 먹인다. 정작 말벌 성체는 수액이나 과일즙, 화밀 같은 식물성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먹다버린 요거트 통이나 청량음료 캔 주변에 말벌이 모여드는 것도 과일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왁스 성분인 밀랍을 분비해 집을 짓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나무껍질 같은 목재성분을 갉아 침과 섞어 만든 재료로 집을 짓는다. 따라서 말벌집을 만지면 거친 종이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 도심 말벌은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같은 종이를 갉아 건축재료로 이용한다. 무리가 겨울을 나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가을이 깊어지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빈 집만 남는다. 그렇다면 말벌은 어떻게 생존을 이어갈까. 최 박사는 “애벌레 가운데 여왕벌로 태어난 개체와 수벌로 태어난 개체가 가을에 교미를 하고 이들 신참 여왕벌이 땅속이나 나무 틈에서 겨울을 난다”며 “이듬해 봄 여왕벌 홀로 작은 집을 짓고 알 몇 개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나온 일벌들이 힘을 합쳐 더 큰 집을 짓고 여왕벌은 집안에 들어앉아 본격적으로 알을 낳아 식구를 늘려나간다. 최 박사는 “봄에 말벌 수백 마리가 나타났다고 들어온 신고는 분봉을 하는 꿀벌무리를 착각한 것”이라며 “말벌무리는 6월 이후에나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Q3 말벌 독 얼마나 독한가

꿀벌처럼 말벌 역시 몸통 끝에 있는 독침이 무기다. 원래는 알을 낳는 산란관이었으나 독침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암컷만이 독침이 있는데 어차피 일벌은 암컷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한편 침을 쏠 때 내장이 함께 빠져나가 죽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주사바늘처럼 찔렀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다. 또 덩치가 클수록 더 독이 많다. 장수말벌은 한두 마리에만 쏘여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벌 독은 얼마나 독할까. 최 박사는 “독에 대한 반응성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서 “채집을 하다보면 가끔 벌에 쏘이는데 쌍살벌에 쏘였을 때는 15분 정도 지나면 통증이 가라앉지만 땅벌에 쏘이면 하루 종일 아프고, 말벌에 쏘이면 보통 2~3일은 퉁퉁 붓고 꽤 아프다”고 본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말벌 독은 히스타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포스포리파아제, 히알루노니다아제 같은 효소로 이뤄져 있다. 물린 부위가 붓고 가렵고 아픈 건 히스타민, 세로토닌 같은 물질 때문이다. 포스포리파아제는 세포막을 허물고 히알루노니다아제는 탄수화물을 분해시킨다. 벌 독이 무서운 건 그 자체의 독성보다는 일부 사람들이 독성분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과민충격’이라고 부르는데 심할 경우 온 몸이 퉁퉁 부어 기도가 막혀 질식해 죽기도 한다. 따라서 벌에 쏘였을 때 온 몸이 가렵거나 호흡이 가빠오면 즉시 병원으로 옮겨 에피네프린 같은 알레르기 억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벌 독 자체의 독성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말벌도 있다. 바로 장수말벌이다. 영문명 ‘Asia giant hornet’에서 짐작하듯 장수말벌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대와 특히 일본에 많이 산다. 장수말벌을 비롯한 말벌 독에는 땅벌이나 쌍살벌의 독에는 없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많이 들어있어 더 고통스럽다. 한편 일본 연구진은 지난 1982년 장수말벌 독에서 사람 잡는 성분이 ‘만다라톡신’이라는 신경독임을 밝혀냈다. 바다가재에 독을 주입한 결과 만다라톡신은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신경계의 작용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Q4 말벌과 공존할 수 있을까

도심에 말벌이 출몰하는 건 그만큼 도심 환경이 말벌이 살만큼 좋아졌다는 증거다. 포식성 곤충은 먹이가 되는 곤충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는 일단 엎어놓고 보자는 식으로 도심개발을 하다 보니 녹지도 없고 하천도 복개했지만 1990년대 들어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면서 공원이 늘어나고 하천도 복원되고 있다. 그 결과 도심 곤충이 급증했다. 반면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산과 들은 줄어들었다. 결국 자연숲이 줄어들자 벌들이 인공숲(도심 녹지)으로 눈길을 돌렸고 그 결과 출현이 잦아졌다는 말이다.

최 박사는 “벌은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말벌은 쌍살벌에 비해 공격성이 크고 벌침 독성도 더 강하기 때문에 벌집을 없애는 게 불가피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직접 벌집을 없애다가는 큰 일이 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119에 연락해 전문가가 없애게 해야 한다.

등산이나 추석 벌초나 성묘 중에, 또는 밤이나 도토리를 줍다가 벌에 쏘이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말벌이나 땅벌집은 덤불 속이나 땅 속에 있기 때문에 눈에 안 띄어 실수로 건드리거나 가까이에서 지나갈 때 진동이 전달될 경우 흥분한 벌들이 나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벌집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이상 초기에는 정찰벌 몇 마리가 다가와 위협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벌이 보이면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벌을 때려잡겠다고 덤벼들거나 겁을 먹고 팔을 마구 휘젖다가는 자칫 벌이 공격페로몬을 내뿜어 벌집 안의 벌들이 나오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최 박사는 “장수말벌은 땅 구덩이에 집을 짓기 때문에 무덤 주변에 많다”며 “해마다 추석 때 되면 벌초나 성묘를 하다가 벌에 쏘여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본의 아니게 벌집을 건드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말벌은 사람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데 이에 대해 일본 곤충학자인 마사토 오노 교수는 1997년 펴낸 책 ‘말벌의 과학’에서 진화론으로 설명했다. 즉 벌집을 공격할 만한 동물은 곰 같은 대형 포유류밖에 없었을 것이고 말벌이 강력한 독침을 갖게 진화한 것도 이런 공격에서 집을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것. 그런데 곰은 검은 털로 뒤덮혀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와 비슷한 사람 머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최 박사는 “말벌은 때로 사람이나 꿀벌을 공격하기 때문에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상위 포식자인 말벌 덕분에 곤충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며 “한 번말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벌이 공포심에서 무조건 없애야할 대상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는 “최근 수년 사이 도심 말벌 수가 어느 정도 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신고건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폭발적인 건 아니다”라며 “그만큼 사람들이 민감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를 따라가 보면 주먹보다 작은 말벌집인 경우가 많다고. 예전 같으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말벌에 대한 경각심이 워낙 높아지다 보니 눈에 띄면 신고부터 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집이 있지만 예전 시골에는 처마 밑에 말벌집이 서너 개씩 있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들 별일 없이 함께 살았죠.”






 

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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