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에 맞서는 거야(Defying Gravity)!”
눈부신 섬광과 함께 녹색 마녀가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 마녀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친구 글린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누구나 하늘을 날 자격이 있어!”
뮤지컬 ‘위키드’의 주인공 녹색 마녀가 거스른 것은 그를 끌어내리는 중력뿐이 아니었다. 남들과 다른 ‘녹색 피부’가 가져다준 깊은 편견. 그녀는 중력 그리고 편견과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을까.
3뮤지컬 ‘위키드’의 원작은 미국 소설가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1995년에 쓴 동명 소설이다. 100년이 지난 고전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기 전, 오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전작)인 위키드는 바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키드의 주인공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쓰러트린 서쪽의 사악한 녹색 마녀 엘파바다. 하지만 위키드의 엘파바는 원작과는 반대로 정의롭고 착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엘파바가 ‘사악한 녹색 마녀’로 알려진 까닭은 억울한 누명을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즈의 시민들이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라는 헛소문을 믿은 까닭은 엘파바의 녹색 피부색이 팔 할이었다. 녹색 피부색 때문에 날 때부터 가족은 물론 어디서든 놀림거리가 돼야만 했던 엘파바. 엘파바처럼 녹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 과학적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녹색으로 대표되는 에메랄드 시티의 모습. 가운데 두 팔을 들고 있는 인물이 엘파바의 친구 글린다.]
엘파바의 녹색 피부
엘파바의 피부는 왜 하필 녹색일까. 뮤지컬은 그녀의 엄마가 불륜남이 건넨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를 마신 까닭에 엘파바가 녹색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아이를 갖기 전에 마신 녹색 액체가 뱃속아이를 녹색으로 만든다는 설정은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금동호 고려대 의대 교수는 “산모가 녹색 물을 마셨다고 해서 녹색 아이가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신 금 교수는 “최근 눈부시게 발달한 생명공학 기술로는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녹색 인간을 만들수 있을까.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으로 녹색 빛깔을 낼
것인가’다. 우선 인간이 가진 색소 중에는 녹색을 낼 수 있는 것이 없다. 피부와 머리카락 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가 낼 수 있는 색깔은 황색에서 갈색, 검정색 정도가 전부. 녹색을 내려면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혹시 녹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의 ‘엽록체’를 사람에게 이식할 순 없을까. 가능하다면 음식을 먹지 않고도 광합성만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금 교수는 “엽록체DNA를 인간세포의 핵에 넣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DNA가 제대로 작동해 엽록체를 만들고, 과연 이 엽록체가 광합성까지 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유전자 발현에는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금 교수는 “외부에서 유입된 DNA는 곧장 쓰레기 취급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인간의 DNA 중 절반은 바이러스가 집어넣은 외부 DNA이고 이들은 ‘쓰레기 DNA’로 분류돼 실제로 발현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엽록체를 배제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녹색형광단백질(GFP)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금 교수는 말했다. 오늘날 실험실에서는 몸에서 녹색형광을 내는 실험용 쥐를 쉽게 볼 수 있다. 원하는 유전자가 다른 세포에 잘 이식됐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표지’로 녹색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많이 쓰고 있다.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한 공로로 일본의 시모무라 오사무, 미국의 로저 첸과 마틴 챌피는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금 교수는 “배아가 발생하는 도중 어느 단계에서 어느 곳의 세포에 녹색 유전자를 이식하느냐에 따라 전신 혹은 신체 중 일부만 녹색으로 빛나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 엘파바처럼 항상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녹색형광단백질은 자외선을 받을 때만 빛을 내기 때문이다.
[엘파바는 녹색 피부 때문에 가족과 주변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만 했다. 남자 주인공 피에로(왼쪽)와 엘파바의 모습.]
[체내 녹색형광단백질 때문에 실험용 쥐의 피부와 눈이 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중력을 거슬러
뮤지컬 1막의 마지막 순간 엘파바는 고대 마법서의 힘으로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다. 마법대신 과학의 힘으로 중력을 거슬러 떠오를 순 없을까.
자기장의 힘만으로 실험용 쥐를 공중부양 시키는 실험이 2009년 9월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성공했다. 유안밍 리우 연구팀은 17테슬라(T)의 자기장을 이용해 생후 3주 된 무게 10g 실험용 쥐를 공중에 떠오르게 했다. 17테슬라는 지구 자기장의 약 30만 배에 이르는 강력한 자기장이다. 연구팀은 이토록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솔레노이드(코일) 형태의 초전도자석을 이용했다.
그런데 강력한 자기장이 생겼다고 해서 금속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생쥐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쥐의 몸속에 있는 물이다. 물 분자에 강력한 자기장을 주면 자기장과 반대 방향으로 자성이 생긴다. 그 결과 N극과 N극을 마주했을 때 서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쥐의 몸이 떠오른다. 이렇게 떠오른 쥐는 공중에 뜬 채로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며 3시간을 버텼다고 한다. 사람도 자기장의 힘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리우 박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대체 사람을 띄우려면 얼마나 강한 자기장이 필요하기에 그럴까. 김기훈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쥐와 사람의 체내 물 비율이 같다고 가정하면 쥐보다 체중이 5000배 무거운 50kg의 사람을 띄우기 위해서는 17테슬라의 5000배인 8만 5000테슬라의 자기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구 자기장보다 약 17억 배나 더 센 자기장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은 지구에 아직 없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 유지할 수 있는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의 자기장 세기는 약 100테슬라(과학동아 2012년 6월호 ‘지옥보다 독한 극한 실험실5’ 기사 참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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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1막의 마지막 순간, 엘파바가 고대 마법서의 힘으로 공중에 떠오른다.
➋ 실험용 쥐가 자기장의 힘으로 떠오른 모습(오른쪽). 실험용 쥐는 공중에 뜬 상태로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며 3시간을 보냈다.]
네사로즈 일어나다
고대의 마법서로 강력한 마법의 힘을 얻은 엘파바. 그러자 동생 네라로즈는 언니가 마법의 힘을 얻고도 자신의 장애를 고쳐주지 않는 것을 원망한다. 네사로즈는 다리가 꼬인 채로 태어나 평생 동안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엘파바는 마법의 힘으로 네사로즈의 구두에 마법을 걸어 동생이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 네사로즈가 만약 오즈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에 살고 있다면 마법 대신 과학의 힘으로 걸을 수 있을까.
현대과학이 제안하는 것은 보행보조 로봇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한 보행보조로봇 ‘로빈’을 보자.
로빈의 현재 목표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뇌졸중환자를 돕는 것이다. 로빈은 정상 다리의 움직임을 모방해 제대로 쓸 수 없는 다리도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로빈를 개발하고 있는 박현섭 박사는 “착용자가 직접 다리를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에 정말로 자신이 다시 걷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빈은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상용화될 예정이다.
저명한 SF 작가 아서 C.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녹색 마녀 엘파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온다면 우리의 과학기술을 마법처럼 느끼진 않을까. 반대로 어쩌면 오즈가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곳이라 우리 눈에 마법과 환상의 나라로 비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 중인 ‘로빈’. 2~3분 만에 쉽게 착용하고 벗을 수 있는 것 역시 로빈의 장점이다.]
[하체에 기형을 안고 태어나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던 네사로즈. 엘파바는 네사로즈의 구두에 마법을 걸어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