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녹조라떼'위기! 4대강이 원인일까

긴급진단 - 한반도 조류(藻類) 비상!

선명하고 진한 녹색.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지난 8월 9일 낮 12시 서울 시청역 근처 기자회견장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하루 또는 이틀 전 주요 강에서 직접 길어온 물을 투명한 병에 담아 내보였을 때였다. 다행히 대부분의 물병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녹조층과 물이 분리되며 원래의 뿌연 흰 빛을 되찾았다. 하지만 끝까지 1cm 속을 들여다보기 힘들 만큼 탁한 상태를 유지하는 물도 있었다. 놀랍게도 수도권 상수원에서 멀지 않은 북한강 두물머리 근처의 물이었다. 같은 시간, 서울특별시 상수도연구원에서는 팔당호와 한강취수장에서 채취한 물의 수질을 검사하고 있었다. 한 시간 뒤, 서울시는 팔당댐 하류 서울시 통과 한강구간에 조류 주의보를 발령했다.



전국의 물이 몸살이다. 한강은 북한강과 하류를 중심으로 녹색 빛을 띤 부유성 미생물이 번성하면서 강물이 녹색으로 변했다. 낙동강 역시 중상류까지 조류가 번졌다. 영산강과 금강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녹조현상’이라며 크게 떠들었다. 8월 중순 비가 많이 오면서 사태는 주춤해졌지만, 근본 원인을 밝히거나 없애지 않아 언제 다시 창궐할지 모른다.

바다에서는 적조가 기승이다. 미생물인 조류가 원인이라는 점 외에도 환경과 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은 똑같다.

 

[➊ 본포취수장 근처 녹조현상. 초록 물감을 탄 듯 선명한 녹색이다.]



[➋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채취해 8월 9일 공개한 강물. 맨 왼쪽이 북한강 두물머리에서 뜬 물로, 한 시간 내내 탁했다.]





[➌ ➍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인 마이크로 시스티스와 아나베나. 독성이 있다.]


[➎ 서울시 상수도연구원에서 조류를 검사 중인 장면.]
 
1 ‘녹조현상’ 혼란을 부르는 용어


이 연구원의 설명대로, 녹조현상의 원인은 녹조류가 아니라 남조류다. 이상하다고? 여기에는 용어에서 오는 혼동이 숨어 있다. 녹조(綠潮)현상은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적조(redtide)현상’에 비유해 만들어진 말로, ‘녹색 파도’라는 뜻이다. 국제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어서, 영어로는 ‘algal bloom’, ‘water bloom’이라고 부르고 ‘조류번무현상’, ‘물꽃현상’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녹조는 녹색을 띠는 조류를 의미하는 녹조(綠藻)라는 말과 발음이 똑같다. 그래서 녹조류가 피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언론에서도 종종 혼동해 쓴다.

꼭 녹조현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강에서는 여름철에 녹조(Green Algae)보다는 밝은 녹색을 띠는 남조류(Blue Green Algae)라는 미생물이 더 많이 번성하고 있다. 김좌관 부산카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강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녹조류와 남조류가 다 자라지만, 남조류가 우종(생태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계절에 따라 조류의 우종이 변화한다”며 “겨울에는 규조류(갈조류)가 주로 자란다”고 말했다.

색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남조류는 요즘 조류 취급을 하지 않는다.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라고 부르며 조류보다는 오히려 박테리아(세균)에 가깝다.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조류는 세포에 핵이 있는 진핵생물인 반면, 박테리아는 핵이 따로 없는 원핵생물이다. 참고로 사람은 진핵생물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남조류는 인체에 유해한 독성 물질을 만든다. 김 교수는 “생태계에서 우종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과정에서 상대 미생물을 죽이기 위한 독성물질을 내는데, 그게 인체에도 유독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시스티스 아이루기노사가 만드는 ‘마이크로시스틴’과 아나베나 속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드는 ‘아나톡신-a’ 등 수십 종이 있다. 이들은 인체에서 간질환을 일으키거나 신경 신호 전달을 방해한다. 강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런 독성 화학물질을 마시게 될까 가장 불안하다(이 문제는 뒤에 다룬다).

참고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적조’ 역시 과학적으로 혼란을 주는 용어다. 원인 미생물의 종류가 다를 뿐, 근본적으로 녹조현상과 원인과 현상이 비슷하다. 따라서 같은 조류번무현상의 일종으로 본다.

다만 바다에서 일어나고, 붉은 빛(노란색부터 와인색, 갈색, 심지어 녹색 등 색이 다양해 붉다고 말하기도 어렵다)을 띄는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해롭기 때문에 최근에는 적조 대신 ‘유해조류번무현상(Harmful algal bloom)’으로 부르기도 한다.

2 이미 겨울부터 심상치 않았다



녹조현상은 이례적인 고온 현상과 가뭄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석연찮은 점이 많다. 더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속속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녹조현상이 이미 지난 겨울부터 빈번했다는 환경 및 수질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다.

조 주무관에 따르면, 정수를 하기 전 원수의 맛 냄새 물질 중 남조류가 만드는 ‘지오스민’의 수질 기준은 20ng/L(욕조 77만 개의 물(10억L)에 냄새 물질 20g이 섞인 정도)다. 하지만 8ng/L만 들어 있어도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서울시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정해 8ng/L 수준을 목표로 처리하고 있다. 한강취수원에서는 겨울철에 보통 2~3ng/L 수준이 검출돼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200ng/L 수준으로 높아졌다. 올해는 1000ng/L까지 검출됐다. 8월 14일은 녹조현상이 정점에 이르다 큰 비가 여러 차례 내린 뒤였다. 강물이 크게 불어 녹조현상도 많이 씻겨간 상태였다. 하지만 조 주무관은 “아직도 북한강을 중심으로 평소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 수질 역시 클로로필-a 수치가 비슷한 시기에 급속도로 높아졌다. 클로로필-a 수치는 광합성을 하는 특성을 지닌 조류(와 시아노박테리아)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다. 대략 조류 전체 질량의 10분의 1에 비례한다. 특이한 것은 이 수치가 크게 치솟은 구미보, 강정보, 달성보 구간은 기존에는 녹조현상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교수가 공개한 2011년 12월과 2010년 12월 자료를 보면, 하류로 갈수록 수치가 올라가는 양상은 동일하지만 2011년 수치가 월등히 높다. 김 교수는 “이 지역은 총인농도(유기, 무기인 농도를 종합한 수질 지표. 적조현상과 마찬가지로 녹조현상도 인성분이 많아지면 원인 미생물이 크게 번성한다)가 원래 높은 지역” 이라며 “이곳은 4대강 보 공사 구역으로, 공사와 함께 인처리시설을 설치해 인 농도를 낮췄는데도 녹조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두 조사 결과는 두 가지의 의문점을 낳는다. 먼저 정부 주장대로 이번 여름 반복된 가뭄과 폭염이 녹조현상의 진짜 원인이 아닐 수 있다. 김 교수는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7월 상순에서 중순까지 강수량은 평년 대비 138% 증가해 하천 유량이 오히려 늘었다”며 “가뭄은 원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폭염은 가능성이 있다. 김 교수는 “7월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1℃ 높았는데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특히 7월 21일부터 8월 7일까지는 평년보다 2.4℃ 높아 녹조현상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이번 녹조현상이 4대강 공사 때문에 강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져서 생겼다고 본다. 따라서 보의 수문을 열고 물을 소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는 한강에 조류주의보가 발령된 다음날인 8월 10일 결국 남한강 보의 수문을 열었다. 녹조는 겨울에도 생긴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월 아라뱃길(경인운하)에 생긴 녹조. 당시에도 유속이 느려져서 녹조가 생겼다고 보도됐다.]



녹조류와 남조류 모두 광합성을 통해 영양을 얻는다. 따라서 햇빛이 강하면 그만큼 급속도로 번식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폭염 탓으로 돌리기엔 석연찮다. 녹조는 추운 가을이나 겨울에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온도와 햇빛 외에도 다른 조건이 맞으면 번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생물이 번식하는 데에는 햇빛 외에 앞서 말한 인 성분의 농도, 그리고 물이 얼마나 느리게 흐르는지(체류시간)도 중요하다. 이 중 체류시간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한강을 보자. 한강은 팔당 두물머리에서 만나기 전까지 두 갈래길을 이룬다. 북한 땅에서 시작해 춘천을 거쳐 내려오는 북한강과 태백산에서 시작해 영월과 여주를 거쳐 오는 남한강이다.

수질이 좋은 쪽은 북한강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남한강 하류는 북한강 하류에 비해 화학적산소요구량(COD), 클로로필-a, 총인농도가 1.2~2배씩 높다(모두 높을수록 수질이 나쁘다). 하지만 녹조현상은 북한강에서 더 잘 일어난다. 가장 큰 원인은 체류시간 차이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한강은 평화의 댐, 화천댐, 춘천댐, 소양댐, 의암댐, 청평댐 등 6개의 댐이 건설돼 있어 전체 강 길이의 약 80%가 사실상 호수”라며 “사실상 흐름이 정지돼 있다”고 말했다.

시기도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4대강 공사 완료 시점(작년 10월 말)직후다. 보 역시 댐과 마찬가지로 물을 가두는 시설로 체류시간을 늘린다. 여러 연구자들이 4대강 보가 이번 녹조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와 측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현정 연구원은 “전국의 수질 측정을 자주 다니는데 6월에야 보의 문을 닫은 것을 봤다”며 “수질 문제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4대강의 수질은 보 건설 직후, 수문을 닫은 이후 이렇게 두 번 수질 악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평년, 작년 보 건설 뒤, 수문 폐쇄 뒤의 수질 측정 자료가 필요하다. 김 교수도 “현재 체류시간 등 구체적인 측정 자료가 없어 확답은 힘들다”며 “민관 공동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안전, 고도정수처리가 답?

녹조현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원인 미생물이 아니다. 미생물이 내는 독소와 맛, 냄새 물질 등 화학물질이 더 크다. 녹조현상의 원인인 부유성 미생물은 가만 놓아두면 맑은 물과 녹색 남조류 뭉치로 선명히 나뉜다. 이 말은 분리하기 쉽다는 뜻이다. 물 위에 뜬 물질을 거르는 차단막으로도 상당수를 제거할 수 있고, 나머지도 기존 정수처리로도 충분히 없앨 수 있다. 권지향 건국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미생물은 입자상 물질(알갱이 형태를 띤 물질)이기 때문에 정수처리 공정 안에 포함된 흡착물로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물 위에 뜨기때문에 이들을 침전시켜 제거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화학물질은 조금 다르다. 정수처리를 통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거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남조류가 내뿜는 독소가 한강 물을 정수한 수돗물에서 검출된 적은 없지만, 맛 냄새 물질은 이미 지난 겨울부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맛 냄새 물질은 실제로 문제가 되고 있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역겨운 냄새가 나 수돗물의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도정수처리를 이용하면 이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기존 공정에 활성탄만 추가해도 효과가 크다. 모든 정수처리장은 예전부터 가는 가루 형태의 분말활성탄을 비축하고 있다 이번 녹조현상 등 돌발 사태 때 사용한다. 독성은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정수처리공정을 무조건 불신할 필요는 없다. 독성 위험은 정수처리장의 능력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남조류 창궐 현상이 광범위하게 오래 일어나야만 닥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철저히 분석하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과학적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독성과 관련해 자주 이야기 되는 고도정수처리 공정은 기본적으로 활성탄 공정이다. 하지만 분말활성탄이 아니라 입자가 조금 더 굵은 입상활성탄을 쓰고(표면적이 늘어 흡착 효율이 높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오존 처리 공정(유기오염물의 결합 상태를 깬다)을 추가해 상시로 운영한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건설 중이거나 건설된 고도처리시설은 대부분 이 방식이다. 조 주무관은 “(한강 수질을 대상으로) 검증이 잘 이뤄져 있고, 효과도 가장 강력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자외선을 투과시키거나 정수기처럼 막으로 거르는 방식이 있다. 막 방식은 복통을 일으키는 크립토스 포리디움 등 병원성 미생물을 거르는 데 효율적이지만 국내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는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기존 정수처리를 거친 수돗물이라면 먹는 물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일각에서는 고도정수처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사태 정도로는 굳이 고도정수처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려를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정수처리는 역사가 오래됐고, 기술도 잘 검증돼 있어 이 정도 오염에도 대처할 수 있다. 더구나 서울과 낙동강 등의 정수장 일부는 이미 고도정수처리 시설을 갖춰서 이중의 안전성을 확보했다. 안심해도 좋다. 다만 남조류의 독성은 처음 맞는 사태니 지금부터라도 조사와 연구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원수인 강물의 오염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식수와 상관없이 강물은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 보 때문이라면 수문을 열어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