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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죽음은 어디까지 왔을까

악마의 확률 마이크로몰트



자, 내기를 한 번 해볼까. 스무 개의 동전을 던져서 단 한 개라도 앞면이 나온다면 당신이 승리다. 단, 스무 개 중 모두 뒷면이 나온다면 당신은 패배하고 그 대가는 바로 당신의 목숨이다. 스무 개의 동전을 던져 모두 뒷면이 나올 확률은 약 100만 분의 1. 꽤 낮은 확률이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꺼림칙함 때문에 당신은 내기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일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당신은 매일 이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위험과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1마이크로몰트(μmt).

이것은 한국에 살고 있는 당신이 바로 ‘오늘’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을 수 있는 확률이다. 마이크로몰트란 100만 분의 1로 죽을 확률을 나타내는 단위다. ‘100만 분의 1’을 나타내는 ‘마이크로(micro)’와 ‘죽음’을 뜻하는 ‘모탈리티(mortality)’의 합성어다. 로널드 하워드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과학공학과 교수는 1970년대 대중이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을 쉽게 인지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이 단위를 고안했다. 마이크로몰트를 사용하면 매우 낮은 확률도 세 자리 이하의 숫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분수나 긴 소수로 나타낼 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전신마취의 사망 확률은 10만 분의 1(영국 왕립 마취학 학회, 2009)이고, 제왕절개 수술 중 산모가 사망할 확률은 100만 분의 139(영국 국가 환자 안전 기구, 2009)다. 서로 한눈에 견주기 힘든 두 확률을 각각 10마이크로몰트, 139마이크로몰트로 간단히 나타낼 수 있어 비교가 쉽다. 친숙한 로또 1등의 당첨 확률 814만 4505분의 1은 약 0.12 마이크로몰트로 표현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숫자가 클수록 더 잘 일어난다.

하루에 49명이 죽음의 복권을 뽑는다

우연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확률 값은 1마이크로몰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제외하고 사고(외부요인)로 죽은 사람의 수는 1만 7081명이다. 이 숫자를 2010년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 수로 나누면 한 해 동안 사고로 목숨을 잃는 확률을 구할 수 있다. 이 값을 365일로 다시 나누면 하루 동안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률이 약 100만 분의 1, 즉 1마이크로몰트라는 값이 나온다. 이 확률은 동전 스무 개를 던져서 모두가 뒷면이 나올 확률과 거의 같다. 우리나라에서 불행히도 하루 평균 이 ‘죽음의 복권’을 뽑는 사람의 수는 약 49명이다.

죽음의 확률은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웃나라 일본은 1.8마이크로몰트, 미국은 2.5마이크로몰트다. 세계 사망률 20위의 에스토니아는 우리나라의 다섯 배인 5마이크로몰트가 넘는다. 단, 이 수치는 질병 감염 등의 사망 요인을 배제한, 급작스런 사고로 인한 사망 확률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얼마나 위험한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얼마나 더 위험할까. 영국 교통부가 2010년 발표한 자료를 통해 추산해보면 오토바이를 타고 약 100km를 주행할 때 감수해야 하는 죽음의 위험은 10.5마이크로몰트다. 100km는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다. 이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하면 위험은 0.3마이크로몰트까지 줄어든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다 목숨을 잃을 확률이 자동차를 이용할 때보다 30배 이상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일상 속 모든 위험을 마이크로몰트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순간에 목숨을 빼앗는 게 아니라 서서히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위험요소 때문이다. 흡연이나 알코올 섭취, 비만이 대표적인 예다. 마이크로몰트로 이런 잠재적인 위험요소들을 표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마이크로몰트로 표현한 위험의 가능성들은 모두 독립적이어서 아무 일 없이 종료되는 순간 사고 가능성이 0으로 초기화 되기 때문이다.
 





2011년 데이비드 스피글할터 영국 케임브리지대 통계학과 교수는 단숨에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지만 건강에 잠재적으로 위협이 되는 요소들의 위험성을 수치화하기 위해 ‘마이크로라이프’라는 새로운 단위를 제안했다.

마이크로라이프는 내가 언제 죽는지 알고 있다

담배 2개비.
500cc의 독한 맥주 두 잔.
적정체중보다 5kg를 초과한 채로 보내는 하루.
남자로 보내는 7시간.

위 사항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남은 수명에서 30분을 줄이는 요인들이다. 스피글할터 교수는 만성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의 위험 정도를 정량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마이크로라이프(μlife)’다. 1마이크로라이프는 남은 수명에서 30분을 줄이는 위험요소를 의미한다.

앞의 예 중 절반의 독자들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남자로 보내는 7시간’이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기대수명이 짧은 원인이 ‘남자’라는 것으로 가정하고 ‘남자로 사는 것이 기대수명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마이크로라이프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만 20세 남녀의 평균수명의 차이는 약 6년, 즉 10만 5120마이크로라이프다. 이를 남자의 평균기대수명인 2만 8470일로 나누면 남자이기 때문에 하루에 잃는 수명이 3.7마이크로라이프라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남자가 1마이크로라이프(30분)를 잃는 데 걸리는 시간은 7시간이다.

담배와 알코올이 얼마나 기대수명을 단축시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스피글할터 교수는 45세에서 79세 사이 영국 남녀 2만 244명의 건강관련 습관과 수명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 자료를 참고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평균 수명이 6.5년 정도 더 짧았다. 스피글할터 교수는 흡연자들이 만 17세 이후로 평균 흡연량인 일일 16개비를 매일 피워왔다고 가정했다. 이를 통해 30세 남성이 피는 담배 2개비가 1마이크로라이프에 해당하는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통계 결과를 얻었다. 흡연
자가 도중에 흡연을 중지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함께 고려했다.

알코올은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기 때문에 스피글할터 교수는 가정에 좀 더 많은 제한을 뒀다. 20세 남성이 일주일마다 280mL의 알코올을 평생 동안 섭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독한 맥주 500cc 2잔 당 1마이크로라이프의 기대수명이 통계적으로 줄어들었다. 일주일 동안 섭취하는 알코올 280mL는 공식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양이다.

과체중이 얼마나 나쁜지는 성인 90만 명의 체질량지수(BMI)와 사망률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결과를 이용해 추측했다. 35세 남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체중이 정상체중보다 5kg씩 더 나갈 경우, 그 상태로 하루를 보낼 때마다 기대수명은 1마이크로라이프씩 감소한다.
 
[‘쇠고기 섭취가 조기 사망확률을 18~20% 증가시킨다’ 보다는 ‘85g의 쇠고기가 30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표현이 대중들에게 더 쉽게 다가간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모습을 드러내다

85g의 쇠고기 = 1마이크로라이프
스피글할터 교수는 마이크로라이프를 이용해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의 최신 연구결과를 이같이 간단하게 표현했다. 마이크로라이프의 개념을 알고 있는 대중이라면 ‘쇠고기 섭취가 조기 사망확률을 18~20% 증가시킨다’는 표현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위험을 인식할 수 있다. 스피글할터교수는 마이크로라이프가 최근 정립된 개념인 만큼 “충실한 후속연구가 뒷받침된다면 대중들에게 위험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몰트와 마이크로라이프는 서로 다른 성격의 위험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위험이 생기고, 위험을 다루기 위한 판단과 결정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위험을 다루는 결정 과정 속에서 대중들은 종종 소외됐다. 위험에 대해 이해하려면 상당한 과학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도량하는 단위, 마이크로몰트와 마이크로라이프가 대중들이 오늘날의 위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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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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