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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실험이 쉬울 리 없다. 상상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한 조건에서만 가능한 실험이 있다. 때때로 이들은 죽음처럼 고요하고, 죽음보다 차갑다. 우주 탄생만큼 뜨겁기도 하다. 상상의 끝을 시험하는 궁극의 과학 실험실 베스트 5를 꼽아봤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온도를 기록한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의 엑스선 발생장치 ‘제트머신(Z machine)’.]



죽음처럼 고요한 ‘콰이어트 룸’


“죽음은…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독일의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표현한 죽음은 침묵이다. 특별히 모차르트를 거론한 것은 그가 모차르트 전문가였기 때문일 뿐이다. 어떤 음악이든 전혀 들리지 않는 곳은 죽음처럼 황량하다. 음악만이 아니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은 화학물질 오염으로 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봄을 ‘침묵의 봄’이라 묘사했다.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봄이다.

다행히(?) 지구상에는 그렇게 조용한 곳을 찾기 힘들다. 우리의 일상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단 한 곳, 소리를 모두 흡수하는 특수한 실험실 ‘무향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어폴리스에 위치한 음향연구소인 ‘오필드연구소’의 무향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죽음에 가까운’ 곳이다. 두께 30cm짜리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이중 벽으로 고립시킨 방을 만들고, 내부를 유리섬유로 만든 길이 1m의 쐐기 모양 흡음재로 둘러쌌다. 바닥에도 빼곡히 흡음재를 설치했기 때문에 공중에 설치한 그물 같은 구조물을 밟고 들어가야 한다. 두툼한 철문을 넘어 들어가면 대화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운 침묵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측정한 공식적인 소음 측정치는 -9.4dB(데시벨. 음의 압력이나 에너지 출력, 또는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우리 귀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최저 한계(최소가청 음압레벨)인 0dB보다도 낮다. 아무리 조용한 사무실이나 침실도 공조기 때문에 30~40dB은 쉽게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침묵이다. 자동차 소음을 시험하는 서울대 차세대자동차연구센터의 실차 반무향실(위 사진)도 18dB 수준이다. 오필드연구소의 기록은 2004년 1월, 세계의 진귀한 기록을 수집하는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올랐다.

무향실이 죽음처럼 고요한 것은, 이곳이 진짜 ‘소리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흡음재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소음을 빨아들여 제거해 버린다. 흡음재는 표면이 작은 방과 같은 구조로 덮여 있어 일단 음파가 안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부에 갇힌다. 음파는 소리 에너지를 지니는데, 흡음재 내부에 갇힌 채 반사를 거듭하면 에너지를 빼앗긴다(열 등 다른 에너지로 바뀐다). 소리 에너지가 나오지 않으므로 방은 침묵에 휩싸인다. 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반향이 없기 때문에 보통 환경보다 훨씬 작게 들린다. 오필드 연구소는 이런 조건을 최적화해 가장 고요한 침묵을 만들어냈다. 연구소 창설자인 스티븐 오필드 대표는 e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요양원과 노인 주거지를 위한 음향, 채광, 온도 표준을 정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 무향실험실
소속 오필드연구소
특징 가청한계 이하(-9.4dB)의 ‘침묵’ 세계 기록.
날짜 2004년 1월 24일



가장 ‘예민한’ 실험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한 실험실도 있다. 우주의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중력파검출기다. 그 대표주자인 미국의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LIGO, 라이고)’는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실험실로 이뤄져 있다. 워싱턴 주 핸포드에 하나가, 3000km 떨어진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톤에 다른 하나가 있다. 각각의 실험실은 독자적으로 운영되는데, 사양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게 까다롭다.

먼저 지구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초진공으로 운영하고 있다. 약 8500m3의 공간이 진공인데, 지하철 차량 32개를 이어 붙인 것과 같은 부피다. 이 안을 1조 분의 1기압으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표면에 비해 공기가 1조 분의 1 수준으로 적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실험실 구조물에서 기체 분자가 튀어나올까 봐 철 안의 수소 함유량을 줄이는 기술까지 도입했을 정도다.

이렇게 거대한 시설을 극단적인 진공 상태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측정 대상이 지구에서 가장 예민한 물리량이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이 충돌하거나 중성자별이 붕괴하는 등 천체가 중력 변화를 일으키면 시공간에 요동이 생겨 파장으로 전달된다. 이것이 중력파다.

라이고는 진공 튜브 안에 두 개의 거울을 4km 떨어진 채 마주보게 세워 둔 실험실이다. 이런 진공튜브가 2개씩 직각으로 만나게 돼 있는데, 이 사이에 각각 레이저를 쏴 왕복시킨 뒤 양쪽의 오차를 잰다. 만약 중력파가 지나갔다면 두 개의 진공튜브 사이의 거울 거리가 미세하게(원자핵 지름의 1000분의 1) 변화한다. 이 변화를 측정해 분석하면 중력파 여부를 알 수 있다.

기체에만 예민한 것이 아니다. 라이고는 땅의 흔들림에도 민감하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연구책임자)는 “지구의 밀도 등의 특성때문에 지상에서는 1초에 1번 또는 그 이하로 땅이 진동하는 특성이 있다”며 “라이고는 자동차의 현가장치(충격 흡수장치)처럼 스프링을 설치해 진동수를 더 낮게 바꿔서 이 문제를 피해가지만, 더 낮은 주파수의 진동은 이 방법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주 탄생과 관련한 중력파가 바로 이런 낮은 주파수대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미국은 검출기를 아예 우주로 보내거나, 거울 대신 자유낙하하는 원자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현재 라이고는 운영을 중단한 채 민감도를 10배 높이는 업그레이드 작업이 진행 중이다. 3차원 공간이기 때문에 실제 검출률은 1000배 높아질 예정이다.


이름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LIGO)
소속 MIT, 칼텍 등 공동연구
특징 지구에서 가장 ‘예민한’ 실험실.
날짜 2002년 8월 23일(건설일. 성능은 계속 개선됨)



죽음보다 차가운 방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어디일까. 극지역을 제외하고는 북위 63°에 위치한 구소련의 시베리아 오이미야콘 마을이 1933년 기록한 영하 68℃가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서상에 등록된 기록일뿐, 비공식적으로는 이보다 낮은 온도를 기록한 지역이 많다. 극지방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구소련의 보스토크역이 1983년 영하 89.2℃를 기록했다.

대기권까지 확장해 보자. 지상 50~80km 위인 중간권에서 기온은 영하 100℃까지 떨어진다. 우주로 넓혀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낮은 온도는 지구에서 1500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머랭 성운(위 사진)에서 관측됐다. 영하 272℃로, 모든 원자 움직임이 정지하는 절대온도보다 1℃ 높다. 유럽에서는 독일항공우주센터(DLR) 등이 보다 낮은 온도를 측정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실험실은 자연이나 우주의 극한 환경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차가운 온도만은 실험실의 인공 환경이 우주 기록보다 뛰어나다. 지금까지 인공적으로 만든 가장 낮은 온도는 수십억 분의 1K(켈빈. 1K=영하 273.15℃) 수준인 450pK(피코켈빈. 10-12K)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볼프강 케테를레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팀이 2003년 달성한 온도로, 극저온 환경에서 물질이 보이는 독특한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실험하는 과정에서 기록했다.

연구팀은 부분적으로 ‘응축(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 일어난 소듐(나트륨) 원자 기체에서 압력을 낮추고 원자를 제거해 1cm3 공간에 포함된 원자의 수를 500억 개로 줄였다. 일종의 묽은 양자 기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증발냉각과 단열팽창이 일어나 온도가 낮아져 거의 절대온도에 가까운 온도를 얻을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묽고 극저온 상태인 기체가 원자광학과 도량형, 분광학 등에 중요하게 이용될 거라고 설명했다. 당시 MIT 대학원생으로 실험에 참여해 ‘사이언스’ 논문을 공동 집필했던 신용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2009년 한국에 돌아 온 이후에도 극저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신교수는 “2010년 6월 국내 최초로 소듐(나트륨) 원자에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며(국내 최초로 극저온 양자기체를 만들었다는 뜻), “이를 이용한 다양한 양자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 극저온원자센터(CUA)
소속 MIT, 하버드대 공동 운영
특징 절대영도에 도전하는 ‘차가운’ 실험실.
날짜 2003년 9월 12일(사이언스 논문 게재일)


지구 자기장의 200만 배

초등학생 시절 한쪽 끝이 빨갛고 파란 작은 막대 자석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철가루를 뿌려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확인할 때의 신비로움이 기억난다. 나침반을 보면서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자석의 ‘힘’이 사실은 실험실 속 인공 자기장보다 턱없이 작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또다른 놀라움과 함께 실망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지난 3월 22일(미국 시간),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 펄스장실험동은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커다란 공장이나 발전소의 터빈처럼 보이는 칙칙한 회색 사진이었다.(오른쪽 아래 사진) 사진 설명에는 실제로 발전기라는 말이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발전기가 아니다. 자기장의 세기에서 최고 기록을 달성하게 한 실험 장비의 동력원이다.

연구소는 이 날 “100.75T(테슬라, 자기장의 세기 단위)를 처음으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1T는 1만 가우스(Gauss, 자기장의 세기 단위)에 해당하는 자기장이다. 지구 자기장의 크기가 0.5가우스다. 100T는 지구 자기장의 200만 배에 해당한다. 병원에서 쓰는 MRI(자기공명영상장치)가 보통 1.5~3T 수준이고 최신 MRI도 7T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과학동아 4월호 ‘7T MRI로 더 선명하게, 더 깊게 본다!’ 참조) 100T의 자기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실험은 쉽지 않았다. 약 8100kg에 달하는 코일 7개에 앞서 소개한 대형 발전기를 달았다. 그 뒤 모두 여섯 번의 독립된 자기장 발생 실험을 했다. 척 미엘케 펄스장실험동 소장은 “15년에 걸친 집중적인 작업 끝에 거둔 성공”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험에서 만든 자기장이 인류가 경험한 가장 강한 자기장은 아니다. 이미 1998년, 러시아연방핵센터(VNIEF)가 이번 실험의 28배인 2800T의 자기장을 인공적으로 만든 바 있다. 하지만 폭발을 일으켜 만든 자기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구에 이용할 수 없었다. 로스알라모스연구소는 “부서지지 않게 설계한 장비로는 최고 기록”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우주에서 가장 강한 자기장은 중성자별의 일종인 ‘마그네타’라는 별에서 나온다. 무려 10GT(기가테슬라, 1GT=109T)로, 연구소가 만든 자기장보다 1억 배 강하다.


이름 펄스장실험동
소속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
특징 지구 자기장보다 200만 배 강한 자기장
날짜 2012년 3월 22일



우주 탄생의 뜨거움

2010년 2월, 미국 에너지국 산하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는 중이온가속기 ‘릭(RHIC)’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뜨거운 온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RHIC은 금 원자핵 두 개를 총 둘레 길이가 3.8km인 고리 모양의 가속기에 넣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돌렸다. 마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처럼, 두 개의 금 이온은 서로 안쪽과 바깥을 번갈아 돌았다. 그리고 서로 안팎으로 위치가 바뀌는 6개 지점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이런 충돌이 순식간에 10만 번 넘게 되풀이되며 가속기 안에는 부분적으로 온도가 4조℃(정확히는 절대온도 K 단위지만, 이 정도 고온에서는 비슷하다)를 넘는 곳이 생겨났다.

4조℃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밝힌 태양의 중심부 온도(1571만℃)보다 25만 배 높고 초신성의 중심부 온도보다도 약40배 높다. 어지간한 우주 속 극한 공간보다 훨씬 높은 온도를 인류가 직접 만든 셈이다.

하지만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는 이 사실을 공표하며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기록이 곧 깨질 거라는 예언이었다. 그 해 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본격적으로 중이온(납 이온)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고수는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알아보는 법. 이미 인류 역사상 최고온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고수 RHIC은 한 체급 높은 LHC가 자신을 능가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10년 11월, LHC는 처음으로 납 이온을 서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며 정말로 10조℃가 넘는 온도를 기록했다. 인류가 만든 최고 기록으로 물질의 쿼크와, 쿼크를 결합시키는 글루온 입자 사이의 결합이 느슨해져 거의 점성이 없는 묽은 수프나 기체처럼 변하게 하는 온도다. 이는 천문학자들이 대폭발(빅뱅) 시기와 같다고 보는 상태다. 이 실험을 ‘미니빅뱅’이라 부르는 이유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기네스 기록도 우주 최고의 온도로 빅뱅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137억 년 전의 사건이 공식 기록에 올라 있는 셈이다.


이름 릭(RHIC)
소속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
특징 ‘기록 상’ 가장 뜨거운(4조℃) 실험실. CERN의 LHC에게 1위 자리 내줘 현재는 2위.
날짜 2010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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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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