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적국까지 실어 나르는 방법은 많다. 비행기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병사가 메고 걸어 들어가 스위치를 누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방어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장거리 탄도탄은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이 탄도탄을 요격하기 위해 수십년동안 미사일디펜스(MD) 연구를 했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전쟁이 벌어지면 중·장거리 탄도탄을 보유한 국가는 적국의 항구, 비행장, 군 지휘소, 미사일격납고 등의 주요시설을 일단 초토화시켜 놓을 수 있다. 만약 핵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변변한 전투 없이도 상대국의 존립을 흔들 수 있다. 탄도탄을 스텔스 전투기나 핵무기 등과 함께 전략 무기로 구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떨어지는 궤도가 중요하다
최근 북한은 ‘우주발사체’ 은하3호를 발사하는 실험을 했다가 실패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탄도탄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도대체 탄도탄과 우주발사체는 어떻게 다를까.
둘은 모두 고체나 액체 연료에 불을 붙여 발생하는 가스를 뒤쪽으로 내뿜으며, 그 반작용으로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로켓이다. 두 로켓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기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주밖까지 나갔던 탄도탄이 다시 내려와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려면 정밀로봇 수준의 제어기술이 추가로 있어야 한다. 우주발사체만 열심히 연구하던 과학자가 어느 날 “까짓 거, 만들면 만드는 거야”라면서 하루아침에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주발사체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목적이다. 당연히 ‘높이 올라가는 일’이 중요하다. 반대로 탄도탄은 일단 하늘로 올라간 뒤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하향궤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켓 과학자들은 탄도탄이 우주공간에서 연료를 다 쓰고, 관성으로 날기 시작하는 시점을 ‘연소 종료 위치’라고 부른다. 미사일 안에 들어있는 컴퓨터가 로켓의 궤도를 계산한 뒤, 목표지점까지 여러 개의 탄도를 설정한다. 이 중 로켓의 위치, 방향, 비행시간 등을 고려해 가장 알맞는 것을 고른다. 이어서 소형 추진장치 등을 이용해 로켓의 자세를 바꿔 준다.
여기까지만 하면 우주공간 높이까지 올라갔던 로켓은 중력에 따라 지상의 목표점을 향해 궤도를 그리며 떨어져 내릴 것이다. 만약 연료가 남아 있다면 연소를 중지시킨다. 2단이나 3단 로켓이 붙어 있다면 분리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했다고 해서 탄도탄이 항상 정확한 궤도를 유지하라는 법은 없다. 이 때문에 최신형 유도무기 개념을 받아들여 관성항법장치(INS)의 도움을 받는다. 초기위치에서 계산을 시작해 로켓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지 계속해서 계산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다. 재돌입 과정 후 컴퓨터는 이런 정보를 토대로 미사일에 붙은 방향날개를 이용해 궤도를 조금씩 수정해서 최종 목표점까지 날아가게 한다.
탄도탄 공학의 백미 ‘열 차단’
장거리 탄도탄이 우주발사체와 다른 특징이 또 있다. 민감한 폭약을 싣고 있는 탄두 부분이 지구로 재돌입할 때 손상을 입지 않도록 방열대책이 있다는 점이다.
발사된 탄도탄이 고도 150~200km에 도달하면 여기서부터는 공기밀도가 낮아 사실상 진공이다. 1단 로켓에서 분리된 탄두는 계속 올라가 1200~1400km 정도의 최고 고도에 도달한다. 탄두는 다시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을 재돌입이라고 부른다. 이때 공기입자와 부딪히며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수천~1만℃ 가까이 올라간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100kg이 넘는 강철 덩어리도 모두 녹아버린다.
더구나 최신형 탄도탄은 탄두 부분을 뾰족하게 만드는 추세다. 뾰족한 모양의 탄두를 ‘패스트포인트’라고 하는데, 기상조건의 영향을 적게 받아 정밀도가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져 요격미사일 등에 격추당할 확률도 줄어든다. 문제는 뭉툭한 탄두보다는 열에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탄도탄은 이런 열을 막기 위해 다양한 외벽을 설계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열을 잘 흡수하는 물질로 탄두 부분을 감싸는 것이다. 베릴륨-구리 합금, 또는 구리-스테인리스스틸 같은 금속이 많이 사용됐다. 이런 방식을 ‘히트싱크’라고 한다. 탄두 무게가 무거워져 넣을 수 있는 폭탄의 양이 줄기 때문에 최근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로켓을 식혀주는 ‘냉각’ 방식도 있다. 로켓의 재돌입 궤도를 절묘하게 조절하면 가열된 공기가 로켓 탄두를 녹여버리기 전에 주변 공간으로 열을 배출한다. 탄두의 껍질을 열용량이 적은(쉽게 식는) 금속으로 얇게 만들고,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탄도’궤도보다는 옆으로 약간 비껴 들어가는 ‘활공’궤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은 민간 우주로켓을 귀환시킬 때도 쓴다.
‘녹아내리기’ 방식도 있다. 재료로는 보통 실리카 피놀릭이란 물질이나 탄소-탄소 복합체 등을 많이 쓴다. 녹는점이 각각 2700℃, 3700℃다. 물을 아무리 끓여도 온도가 100℃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이 물질로 로켓 표면을 감싸면 아무리 많은 열을 받아도 온도가 그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대신 감싼 물질이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데, 짧은 시간 동안 탄두를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뾰족한 패스트포인트 방식에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마찰열을 극대화시켜 오히려 무기로 이용하려는 연구도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핵무기를 전혀 싣지 않고도 그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기법을 ‘운동에너지탄두’라고 부른다. 최근 ‘ICBM, 그리고 한반도’를 펴낸 정규수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은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고성능 탄도탄을 개발하고, 탄두 부분에 폭약이 아니라 열에 강한 텅스텐 종류의 합금덩어리 하나만 넣어도 굉장한 무기가 된다”며 “운석이 지구 표면에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위력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탄이 발사되고 있다. 잠수함탄도탄은 ICBM(대륙간탄도탄)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지만 바다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어 타격이 불가능하다. 본국 군사력이 전멸했다 해도 보복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갖고 있다.]
괴물 ICBM, 정말로 요격 불가능할까
우주발사체에는 없고, 탄도탄에만 있는 기술로 손에 꼽을 수 있는 게 다탄두 기법이다. 전통의 강호인 미국이나 러시아가 탄도탄 숫자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중국에 비해 월등히 앞선 분야가 바로 이것이다. 다탄두미사일(MIRV)은 한 발만 발사해 여러 곳의 도시를 따로 타격할 수 있다. 다탄두미사일은 우주공간에서 초기위치에 도달한 뒤 탄도비행에 돌입하기 직전에 3~10개의 미사일로 분리돼 목표 위치로 제각각 날아간다. 가뜩이나 복잡한 탄도 제어를 복수로 해야 하므로 개발하기가 어려워 오직 미국과 러시아만 갖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개발해 배치한 최신형 ICBM 토폴-M은 미사일 기술의 극치로 불린다. 탄도미사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타원형의 탄도궤도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어서 유도미사일이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 신형 미사일은 ‘괴물 ICBM’ 이란 칭호까지 얻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점이 괴물일까. 일반적인 ICBM은 약 1200km 고도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최대 고도가 500km에 불과하다. 고도가 매우 낮아 적의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는다. 일단 최고점(초기위치)에 도달하면 기존 탄도탄과 달리 타원형 궤도를 그리지 않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지그재그로 날아든다.
러시아 군 당국은 2004년 2월 18일 토폴-M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는데 푸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와 “요격은 불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미래형 차세대 항공 엔진인 스크램제트가 쓰였다는 등의 낭설까지 있었다.
정규수 박사는 “로켓에 꼬리날개 등을 추가로 설치해 정밀하게 제어만 해도 같은 성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토폴-M 제작기술을 이용해 잠수함에서 즉시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으로 개발했다. ‘불라바’라는 이름의 이 탄도탄 역시 현존하는 가장 진보된 탄도탄 중 하나다.
미국의 실력도 이에 못지않다. 미국은 현재 주력탄도탄인 ‘미니트맨-Ⅲ’을 당분간 활용할 계획이지만 앞으로는 음속의 20배가 넘는 속도로 적의 주요시설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초정밀, 극초음속 탄도탄을 개발할 계획이다. 많은 폭약을 실어나르는 대량살상 무기보다는 정밀 공격 무기를 개발해 전투력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숨은 실력자, 북한과 일본
탄도탄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슬프게도 한반도 주변에 많다. 특히 북한은 탄도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1980년대 중반 남한의 대부분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화성 5호’를 개발했다. 이후 1993년 5월 사거리 1000km에 이르는 ‘노동’ 미사일을 개발했고 1998년 8월 ‘대포동 1호’를 공개했다.
이 밖에 구소련의 잠수함 발사용 탄도탄을 구입해 개조한 사정거리 3500km 수준의 ‘무수단’ 로켓도 배치를 마쳤다. 이 미사일을 이용해 미국의 전진기지인 괌을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넣기 위해 ICBM 개발에 착수했다.
1998년 ‘광명성 1호’ 인공위성 발사를 이유로 대포동 1호 발사 시험을 강행했으며 2006년 7월에는 대포동 2호 발사 시험을 진행했다. 2009년 4월에는 ‘은하 2호’, 올 4월에는 은하 3호를 발사했다. 이들은 당장은 우주발사체로 보이지만 맘만 먹는다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바뀔 수 있다. 정규수 박사는 “북한이 장거리 탄도탄 개발을 지속할수록 한반도를 겨냥하는 탄도탄의 숫자도 증가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탄도탄 개발을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중장거리탄도탄부터 ICBM에 이르는 모든 탄도탄을 몇 년 사이에 수백 기 이상 제작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판단은 일본의 우주개발역사를 통해 내릴 수 있다. 일본이 개발한 우주발사체 ‘M-V’로켓은 발사추진력이나 비행성능으로 미뤄 볼 때 미국의 ICBM인 ‘피스키퍼(LGM-118A)’에 버금간다. 더구나 일본은 최근 M-V보다는 추진력이 떨어지지만 대량생산에 적합한 ‘엡실론’ 이란 이름의 차세대 고체로켓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가장 중요한 재돌입기술 역시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일본은 오렉스란 이름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주공간으로 일단 로켓을 내보낸 뒤 로켓 상단부에 실려 있던 캡슐이 대기권을 뚫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 일본은 재돌입 캡슐의 열차폐막 온도측정, 압력측정, 공기마찰로 인한 감속도 정밀 측정 등 언제든지 ICBM 제작에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은 1995년에도 다시 한 번 재돌입 시험을 거쳤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2010년 소행성 이토카와에서 샘플을 채취한 하야부사 탐사선의 무사귀환까지 이끌어 냈다. 초정밀 유도기술과 탄도 재돌입 기술을 확보한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있는 중국도 21세기 들어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자금줄이 트이면서 군비 확장에도 열심이다. 5대 핵 강국(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중 유일하게 중국만이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고 있다.
한반도 하늘 지키는 현무 시리즈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근 한국군은 근거리 탄도탄 ‘현무’를 비롯해 신형 탄도탄 ‘현무2(최대사거리 300km)’와 사정거리 1500km 수준의 순항미사일 ‘현무3’를 실전에 배치했다. 군은 휴전선 인근에 현무2를 배치하면 북한 지역 대부분을 조준할 수 있는데다 현무3를 함께 동원하면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현무2는 공중에서 분리돼 30개의 자탄으로 흩어져 인근지역을 초토화시킨다.
세계적으로 긴장과 대결이 완화되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 주변에서는 중국, 일본, 북한 등 각국의 영토분쟁도 잦다. 강대국들의 탄도탄 확보를 위한 노력도 커지는 분위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을 통한 확실한 대비가 아닐까.
전쟁이 벌어지면 중·장거리 탄도탄을 보유한 국가는 적국의 항구, 비행장, 군 지휘소, 미사일격납고 등의 주요시설을 일단 초토화시켜 놓을 수 있다. 만약 핵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변변한 전투 없이도 상대국의 존립을 흔들 수 있다. 탄도탄을 스텔스 전투기나 핵무기 등과 함께 전략 무기로 구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떨어지는 궤도가 중요하다
최근 북한은 ‘우주발사체’ 은하3호를 발사하는 실험을 했다가 실패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가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탄도탄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도대체 탄도탄과 우주발사체는 어떻게 다를까.
둘은 모두 고체나 액체 연료에 불을 붙여 발생하는 가스를 뒤쪽으로 내뿜으며, 그 반작용으로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로켓이다. 두 로켓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기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주밖까지 나갔던 탄도탄이 다시 내려와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려면 정밀로봇 수준의 제어기술이 추가로 있어야 한다. 우주발사체만 열심히 연구하던 과학자가 어느 날 “까짓 거, 만들면 만드는 거야”라면서 하루아침에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주발사체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목적이다. 당연히 ‘높이 올라가는 일’이 중요하다. 반대로 탄도탄은 일단 하늘로 올라간 뒤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하향궤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켓 과학자들은 탄도탄이 우주공간에서 연료를 다 쓰고, 관성으로 날기 시작하는 시점을 ‘연소 종료 위치’라고 부른다. 미사일 안에 들어있는 컴퓨터가 로켓의 궤도를 계산한 뒤, 목표지점까지 여러 개의 탄도를 설정한다. 이 중 로켓의 위치, 방향, 비행시간 등을 고려해 가장 알맞는 것을 고른다. 이어서 소형 추진장치 등을 이용해 로켓의 자세를 바꿔 준다.
여기까지만 하면 우주공간 높이까지 올라갔던 로켓은 중력에 따라 지상의 목표점을 향해 궤도를 그리며 떨어져 내릴 것이다. 만약 연료가 남아 있다면 연소를 중지시킨다. 2단이나 3단 로켓이 붙어 있다면 분리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했다고 해서 탄도탄이 항상 정확한 궤도를 유지하라는 법은 없다. 이 때문에 최신형 유도무기 개념을 받아들여 관성항법장치(INS)의 도움을 받는다. 초기위치에서 계산을 시작해 로켓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지 계속해서 계산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다. 재돌입 과정 후 컴퓨터는 이런 정보를 토대로 미사일에 붙은 방향날개를 이용해 궤도를 조금씩 수정해서 최종 목표점까지 날아가게 한다.
탄도탄 공학의 백미 ‘열 차단’
장거리 탄도탄이 우주발사체와 다른 특징이 또 있다. 민감한 폭약을 싣고 있는 탄두 부분이 지구로 재돌입할 때 손상을 입지 않도록 방열대책이 있다는 점이다.
발사된 탄도탄이 고도 150~200km에 도달하면 여기서부터는 공기밀도가 낮아 사실상 진공이다. 1단 로켓에서 분리된 탄두는 계속 올라가 1200~1400km 정도의 최고 고도에 도달한다. 탄두는 다시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을 재돌입이라고 부른다. 이때 공기입자와 부딪히며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수천~1만℃ 가까이 올라간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100kg이 넘는 강철 덩어리도 모두 녹아버린다.
더구나 최신형 탄도탄은 탄두 부분을 뾰족하게 만드는 추세다. 뾰족한 모양의 탄두를 ‘패스트포인트’라고 하는데, 기상조건의 영향을 적게 받아 정밀도가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져 요격미사일 등에 격추당할 확률도 줄어든다. 문제는 뭉툭한 탄두보다는 열에 훨씬 취약하다는 점이다.
탄도탄은 이런 열을 막기 위해 다양한 외벽을 설계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열을 잘 흡수하는 물질로 탄두 부분을 감싸는 것이다. 베릴륨-구리 합금, 또는 구리-스테인리스스틸 같은 금속이 많이 사용됐다. 이런 방식을 ‘히트싱크’라고 한다. 탄두 무게가 무거워져 넣을 수 있는 폭탄의 양이 줄기 때문에 최근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로켓을 식혀주는 ‘냉각’ 방식도 있다. 로켓의 재돌입 궤도를 절묘하게 조절하면 가열된 공기가 로켓 탄두를 녹여버리기 전에 주변 공간으로 열을 배출한다. 탄두의 껍질을 열용량이 적은(쉽게 식는) 금속으로 얇게 만들고,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탄도’궤도보다는 옆으로 약간 비껴 들어가는 ‘활공’궤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은 민간 우주로켓을 귀환시킬 때도 쓴다.
‘녹아내리기’ 방식도 있다. 재료로는 보통 실리카 피놀릭이란 물질이나 탄소-탄소 복합체 등을 많이 쓴다. 녹는점이 각각 2700℃, 3700℃다. 물을 아무리 끓여도 온도가 100℃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이 물질로 로켓 표면을 감싸면 아무리 많은 열을 받아도 온도가 그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대신 감싼 물질이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데, 짧은 시간 동안 탄두를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뾰족한 패스트포인트 방식에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마찰열을 극대화시켜 오히려 무기로 이용하려는 연구도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핵무기를 전혀 싣지 않고도 그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기법을 ‘운동에너지탄두’라고 부른다. 최근 ‘ICBM, 그리고 한반도’를 펴낸 정규수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은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고성능 탄도탄을 개발하고, 탄두 부분에 폭약이 아니라 열에 강한 텅스텐 종류의 합금덩어리 하나만 넣어도 굉장한 무기가 된다”며 “운석이 지구 표면에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위력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탄이 발사되고 있다. 잠수함탄도탄은 ICBM(대륙간탄도탄)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지만 바다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어 타격이 불가능하다. 본국 군사력이 전멸했다 해도 보복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갖고 있다.]
괴물 ICBM, 정말로 요격 불가능할까
우주발사체에는 없고, 탄도탄에만 있는 기술로 손에 꼽을 수 있는 게 다탄두 기법이다. 전통의 강호인 미국이나 러시아가 탄도탄 숫자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중국에 비해 월등히 앞선 분야가 바로 이것이다. 다탄두미사일(MIRV)은 한 발만 발사해 여러 곳의 도시를 따로 타격할 수 있다. 다탄두미사일은 우주공간에서 초기위치에 도달한 뒤 탄도비행에 돌입하기 직전에 3~10개의 미사일로 분리돼 목표 위치로 제각각 날아간다. 가뜩이나 복잡한 탄도 제어를 복수로 해야 하므로 개발하기가 어려워 오직 미국과 러시아만 갖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개발해 배치한 최신형 ICBM 토폴-M은 미사일 기술의 극치로 불린다. 탄도미사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타원형의 탄도궤도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어서 유도미사일이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 신형 미사일은 ‘괴물 ICBM’ 이란 칭호까지 얻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점이 괴물일까. 일반적인 ICBM은 약 1200km 고도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최대 고도가 500km에 불과하다. 고도가 매우 낮아 적의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는다. 일단 최고점(초기위치)에 도달하면 기존 탄도탄과 달리 타원형 궤도를 그리지 않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지그재그로 날아든다.
러시아 군 당국은 2004년 2월 18일 토폴-M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는데 푸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와 “요격은 불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미래형 차세대 항공 엔진인 스크램제트가 쓰였다는 등의 낭설까지 있었다.
정규수 박사는 “로켓에 꼬리날개 등을 추가로 설치해 정밀하게 제어만 해도 같은 성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토폴-M 제작기술을 이용해 잠수함에서 즉시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으로 개발했다. ‘불라바’라는 이름의 이 탄도탄 역시 현존하는 가장 진보된 탄도탄 중 하나다.
미국의 실력도 이에 못지않다. 미국은 현재 주력탄도탄인 ‘미니트맨-Ⅲ’을 당분간 활용할 계획이지만 앞으로는 음속의 20배가 넘는 속도로 적의 주요시설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초정밀, 극초음속 탄도탄을 개발할 계획이다. 많은 폭약을 실어나르는 대량살상 무기보다는 정밀 공격 무기를 개발해 전투력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숨은 실력자, 북한과 일본
탄도탄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슬프게도 한반도 주변에 많다. 특히 북한은 탄도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1980년대 중반 남한의 대부분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화성 5호’를 개발했다. 이후 1993년 5월 사거리 1000km에 이르는 ‘노동’ 미사일을 개발했고 1998년 8월 ‘대포동 1호’를 공개했다.
이 밖에 구소련의 잠수함 발사용 탄도탄을 구입해 개조한 사정거리 3500km 수준의 ‘무수단’ 로켓도 배치를 마쳤다. 이 미사일을 이용해 미국의 전진기지인 괌을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넣기 위해 ICBM 개발에 착수했다.
1998년 ‘광명성 1호’ 인공위성 발사를 이유로 대포동 1호 발사 시험을 강행했으며 2006년 7월에는 대포동 2호 발사 시험을 진행했다. 2009년 4월에는 ‘은하 2호’, 올 4월에는 은하 3호를 발사했다. 이들은 당장은 우주발사체로 보이지만 맘만 먹는다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바뀔 수 있다. 정규수 박사는 “북한이 장거리 탄도탄 개발을 지속할수록 한반도를 겨냥하는 탄도탄의 숫자도 증가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탄도탄 개발을 꺼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중장거리탄도탄부터 ICBM에 이르는 모든 탄도탄을 몇 년 사이에 수백 기 이상 제작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판단은 일본의 우주개발역사를 통해 내릴 수 있다. 일본이 개발한 우주발사체 ‘M-V’로켓은 발사추진력이나 비행성능으로 미뤄 볼 때 미국의 ICBM인 ‘피스키퍼(LGM-118A)’에 버금간다. 더구나 일본은 최근 M-V보다는 추진력이 떨어지지만 대량생산에 적합한 ‘엡실론’ 이란 이름의 차세대 고체로켓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가장 중요한 재돌입기술 역시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일본은 오렉스란 이름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주공간으로 일단 로켓을 내보낸 뒤 로켓 상단부에 실려 있던 캡슐이 대기권을 뚫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 일본은 재돌입 캡슐의 열차폐막 온도측정, 압력측정, 공기마찰로 인한 감속도 정밀 측정 등 언제든지 ICBM 제작에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은 1995년에도 다시 한 번 재돌입 시험을 거쳤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2010년 소행성 이토카와에서 샘플을 채취한 하야부사 탐사선의 무사귀환까지 이끌어 냈다. 초정밀 유도기술과 탄도 재돌입 기술을 확보한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있는 중국도 21세기 들어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자금줄이 트이면서 군비 확장에도 열심이다. 5대 핵 강국(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중 유일하게 중국만이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고 있다.
한반도 하늘 지키는 현무 시리즈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근 한국군은 근거리 탄도탄 ‘현무’를 비롯해 신형 탄도탄 ‘현무2(최대사거리 300km)’와 사정거리 1500km 수준의 순항미사일 ‘현무3’를 실전에 배치했다. 군은 휴전선 인근에 현무2를 배치하면 북한 지역 대부분을 조준할 수 있는데다 현무3를 함께 동원하면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현무2는 공중에서 분리돼 30개의 자탄으로 흩어져 인근지역을 초토화시킨다.
세계적으로 긴장과 대결이 완화되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 주변에서는 중국, 일본, 북한 등 각국의 영토분쟁도 잦다. 강대국들의 탄도탄 확보를 위한 노력도 커지는 분위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을 통한 확실한 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