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역사와 일상을 통해 자명하다. 특히 과학이 잘 정립되지 않았던 과거엔 더욱 그랬다. 인류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 현상이 나타나면 하늘이 우리에게 노했다고 생각했고, 큰 유성이 떨어지면 위대한 인물이 세상을 떴다고 해석했다. 자신의 나라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은 어떤 사람들은 나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오늘날도 번번히 세계 무대에서 1등을 놓치는 미국의 프로야구는 최종 결승전을 월드시리즈라고 부른다.
지구에 갇혀있는 우리의 우주론
고대 과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하늘의 별들은 ‘천구’라는 하늘면에 붙어있는 천체라고 믿었고, 태양과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믿었다. 이 견해를 천동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5세기 오늘날의 폴란드 땅에 태어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이 견해를 뒤집었다. 행성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한 그는 행성들이 지구가 아닌 태양을 돌고, 지구 또한 그렇다는 것을 발견했다. 죽기 직전인 1543년에 발간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은 지동설과 현대과학의 시초다. 인간의 속성을 따라 관찰자인 나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없다는 그의 견해를 오늘날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 부른다.
지동설은 그 후 100여 년에 걸쳐 독일의 케플러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종교지도자들과 대중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633년에 로마교황청은 갈릴레오에게 더 이상 지동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강요했는데,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고 몰래 말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지구가 아닌 태양이 모든 행성 운동의 중심이라고 알게된 인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 동안의 아집을 반성하며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자연을 바라보았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일단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인정한 인류는 이제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고, 이런 생각이 다시 200여 년을 지배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주의 중심에 있는 태양을 돈다고 믿어야 안심이 되었나보다. 한 술 더 떠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가 우주 그 자체라고 믿었다. 즉 우리은하는 광활한 우주 그 자체이며, 태양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1920년대에 들어와 이러한 믿음이 무너졌다. 먼저 미국의 천문학자 섀플리는 태양이 우리은하 중심에서 수만 광년 떨어진 변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곧 20세기의 위대한 관측천문학자 허블은 우리은하 밖에 수많은 다른 은하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와 다른 일곱 행성의 호위를 받는 우리동네 ‘짱’인 태양은 우리은하 지도의 끝자락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별이다. 태양을 비롯해 1000억 개의 별과 그보다 훨씬 많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우리은하는 ‘보이는 우주’ 안에 있는 수 천억 개의 은하 중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은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보이는 우주’는 실제 우주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작다는 것이 현대우주론이다.
전체 우주에서 지구는 어디에 있을까
우주의 중심에 관한 한 인류는 여러 차례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경험 혹은 범했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를 놓음으로써 한 번, 태양을 놓음으로써 한 번, 우리은하를 놓음으로써 또 한 번. 물론 누군가 나타나 “그래 그것 봐라. 지구가 태양계와 우리은하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수천 억 개의 은하를 품는 광활한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하면 또 다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게 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이런 ‘재밌는’ 견해를 다시 듣게 되면 지난 500년 동안의 과학적 진보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이 느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새로운 종류의, 그러나 매우 강력한 반증이 발견되었다.
빅뱅우주론에 의하면 우주 나이가 태어난 지 38만년, 젊고 작은 초기우주가 빛을 우주에 발산했다. 이 빛이 현재 온 우주에 가득차 있는데 워낙 낮은 온도의 빛이라 눈으로는 감지되지 않고 오로지 전파영역에서만 관측이 된다.
1940년대에 이론적으로 예측된 이 빛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관측되어 1978년과 2006년 두 번에 걸쳐 노벨물리학상의 대상이 되었다. ‘우주배경복사’라고 불리는 이 빛은 오늘날 지구의 위치에서 관측하면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나 거의 비슷하게 관측된다.
그런데 하늘을 둘로 나누면, 우주배경복사가 한 쪽 방향에서 미세하게 (0.1% 정도) 더 뜨겁게 나타난다. 이는 지구가 이쪽 방향으로 치우쳐 초속 약 627km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태양계 내에서 지구의 위치, 우리은하 내에서 태양의 위치, 주변우주에서 우리은하의 위치를 알아낸 것도 신기한 일인데, 우린 이제 반지름 400억 광년 크기의 ‘보이는 우주’ 내에서 지구가 어떤 방향으로 치우쳐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런 일이 가능하다.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원리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한다. 내가 보는 우주가 혹시 위치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며 북반구에서도 남반구에서도 가까운 우주와 먼 우주를 관측하고 또 관측한다. 지금까지 관측된 결과에 의하면 우리은하나 태양이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코페르니쿠스 원리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남아있는 질문은 “Are we alone?” (우주에 지성체는 우리뿐인가)일 것이다. 이 얘길 하자면 몇 시간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