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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바’와 ‘키키’는 어떻게 생겼을까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



‘부바’와 ‘키키’라는 물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생긴 것은 모른다. 각각 어떤 모양일지 자유롭게 상상해 보자. 잘 떠오르지 않을테니 객관식으로 문제를 바꿔보겠다. 펜으로 원을 그리되 아메바처럼 흐물흐물한 모양이 되게 하나를 그렸다. 다른 하나는 깨진 유리처럼 삐쭉삐쭉한 모양이다. 어느 쪽이 부바고 어느 쪽이 키키일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의 저자 라마찬드란 UC 샌디에이고 뇌인지연구소장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을 때, 놀랍게도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98%의 학생들이 “부바는 아메바 모양, 키키는 깨진 유리처럼 삐쭉삐쭉한 모양”이라고 답했다. 지금 이 글을 읽던 독자들도 아마 대부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기자는 대학 때 틈틈이 문과대학에서 문학전공 과목을 수강했는데, 유럽현대문학(독일소설) 강의를 들을 때 강사가 했던 ‘스쳐가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카프카(19세기 말~20세기 초 독일 근대소설가. 19세기 말 유럽 사회의 관료주의와 폐쇄성을 기괴한 내용의 소설에 담았다. 중편소설 ‘변신’과 장편 ‘심판’, ‘성’이 유명하다)는 소설도 강렬하지만, ‘카프카’라는 이름도 날카롭고 강해요.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요제프 카(K의 독일식 발음)’도 그렇죠.”

당시 이 말을 들으며 날카롭고 강한 무언가를 떠올렸다. 굳이 비유하자면 칼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다면 위에 소개한 ‘키키 같은’ 형태와 비슷하다.

이유는 바로 발음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메바 같은 그림은 “부드러운 곡선과 등고선 같은 기복을 흉내 낸다.” ‘부바’라는 음을 낼 때 부드럽게 말리거나 풀리는 혀와 비슷하다. 반대로 키키는 “음의 날카로운 파형 모양을 떠오르게 한다.”

저자는 이것을 소리와 형태를 연관지어 파악하는 공감각의 예로 봤다. 또 구체적인 감각을 넘어 추상적인 개념을 포함하는 공감각이 있으며 이런 ‘고차원 공감각’이 인간의 고차원적인 사고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숫자도 공감각과 연관이 된다는 식이다.

이 책은 이런 공감각 연구 결과를 포함해 자폐증, 언어, 미학, 통증 등에 관한 뇌과학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특히 신경증과 관련한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한쪽 팔을 잃었는데도 그 팔에서 감각을 느끼는 의사수족증 환자는 거울을 이용해 성한 팔을 반대 팔에 비춰 보여주면 증세가 낫는다. 저자는 이것이 성한 팔의 감각과 운동능력이 그렇지 못한 팔의 가짜 감각과 서로 충돌하면서 뇌가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뇌가 가상의 팔이 있다는 자각을 포기해 버렸다.

인지과학과 심리학 연구 결과는 언제나 흥미를 끄는 대상이지만, 구체적인 연구 사례가 없으면 가설이나 추정이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막연한 설명으로 가득한 책도 대중과학서의 이름으로 많이 출간됐다. 물론 이 책에도 가설과 추측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에, 독자는 적어도 올바르게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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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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