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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공과대 학장 박성재
 

부산의 매립역사는 1백여년에 이른다. 현재의 부산시청 자리는 1902년 용미산이란 암초주위를 매립한 곳이다. 또 부산역이나 세관 등 부산의 시가지 60% 이상이 매립지역이다. 나는 지난 65년 항만청 자료실 창고를 뒤져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부산항 매립계획 설계도를 찾아내 부산시의 매립경계, 매립심도, 매립된 토사와 당시의 지반조건(토질) 등을 밝힌 바 있다. 또 이를 토대로 1970년도까지 조사된 지반조사 성과를 정리해 '부산은 매립지여서 지하철이 불가능하다'는 세론을 뒤엎고 지하철 건설이 가능하도록 했다.

부산의 지형은 산지가 많고 급경사인 데다 강우가 많은 지역이어서 산에는 산사태, 매립지는 기초공사의 어려움, 낙동강 하구지역은 국내에서 가장 넓고 규모가 큰 연약지반이어서 지반에 대한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연유로 언덕이 무너진다, 집을 짓고 나니 집과 땅이 내려앉는다, 터널이 함몰한다 하여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보니 내 차림새는 항상 작업복에다 신발은 온통 진흙투성이어서 예의 단정한 교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70-80년대에 '낙동강 하구지역 2천만평 매립계획안'을 제안했다. 이 결과 오늘날 이 지역의 온갖 발전계획이 수립됐으며 나는 비행장 도로 공단매립 등 어려운 건설계획에 많은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또 고층 아파트단지의 지반이 붕괴돼 수개동의 아파트가 붕괴될 뻔한 사고를 예방한 일 등이 있는데,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90년대에는 기초가 부실한 아파트를 철거시켜야 했다. 또 구포 철도함몰 사고 때는 이를 철저히 조사 분석해 건설인의 새로운 각오와 사명감을 인식시키는 등 정력을 다 쏟았지만 이는 매우 씁쓸하고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는다, 앞으로는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연약지반을 튼튼하게, 또 지하에 터널은 물론 지하운동장과 지하저장소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각종 구조물을 건설할 수 있는 연구에 몰두하고자 한다.


지난 80년 국내 최초로 말뚝 재하(載荷) 실험을 하던 모습. 앞에 앉아 있는 네 사람 가운데 오른쪽부터 첫번째 사람은 이한주씨(한국도로공사 경북지사장), 두번째 등을 보인 사람이 필자, 맞은편 흰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은 조현영교수(부산대 토목공학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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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성재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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