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 창밖으로 청명한 하늘이 보이는 날이면 선생님의 눈빛을 먼저 읽은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사인 필자에게 천체사진 찍기는 학생들에게 보여 줄 생생한 학습 자료를 직접 만드는 업무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특별한 취미다.
달력에서 작은 글씨로 쓰인 음력에 눈길이 먼저 가고(달이 밝으면 다른 천체를 관측하기 어렵다), 기상청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예보를 확인하는 일은 20년 가까이 별을 따라다니며 생긴 훈장 같은 버릇이다.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엔 밤하늘을 호령하는 거대한 오리온자리의 등장이 반갑다. 특히 사냥꾼 오리온이 허리춤에 찬 칼 가운데 있는 불새 모양의 오리온대성운은 벌써부터 겨울을 재촉하며 특유의 붉은빛으로 별지기들을 유혹한다.
밤하늘 내비게이션 ‘자동도입’ 기능
늦가을 밤 자정이 가까워 오면 동쪽 하늘에서 오리온자리가 떠오른다. 오리온자리 가운데 밝기 2등급 별 3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이 별들 아래쪽 별 3개가 수직으로 또 늘어서 있다. 이 별무리 중앙에 뿌연 구름 조각처럼 보이는 천체가 오리온대성운이다.
밝기가 4등급인 오리온대성운은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보면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관찰하면 사진처럼 붉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눈은 성운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을 감지할 만큼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운의 색을 보기 위해서는 성운에서 나온 빛을 카메라 필름이나 CCD에 오랜 시간 담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천체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 한 바퀴 밤하늘을 돌기 때문에, 카메라가 이 움직임을 추적하지 않으면 별상이 점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의 자전축을 중심으로 도는 밤하늘의 일주속도와 방향에 맞춰 천체를 추적하는 장비에 망원경이나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장비가 바로 적도의식 가대다.
적도의식 가대를 설치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구의 자전축에 가이드 장비의 회전축을 맞추는 일이다. 보통 밤하늘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북극성은 천구의 북극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실제 천구의 북극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극축을 맞출까.
가대의 적경축 안에는 가대의 회전축을 천구의 북극에 맞출 수 있는 극축망원경이 내장돼 있다. 또 시간에 따라 변하는 북극성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식(극망스케일)이 있다. 극축망원경을 들여다보고 북극성을 표식에 맞춘 뒤 가대의 방위각과 고도를 수정하면 극축 설정이 끝난다.
적도의식 가대 위에 망원경이나 카메라를 올려놓고 천체를 찾은 뒤, 가대에 전원을 넣으면 천체의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 가대가 천천히 움직인다.
최근에는 천체의 적경과 적위 값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천체를 찾아주는 ‘자동도입’ 기능이 추가된 적도의식 가대가 인기다. 별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나 눈으로는 찾기 어려운 천체를 촬영하려는 전문가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자동도입 기능은 별들로 가득 찬 ‘망망대해’ 밤하늘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인 셈이다.

냉각 CCD로 잡티를 제거하라
천체사진가들은 오리온대성운 같은 어두운 천체를 촬영하기 위해 여름에는 모기와, 겨울에는 추위와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진짜 악당은 따로 있다. 바로 사진에 나타나는 노이즈다. 노이즈는 사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색의 작은 반점을 뜻한다. 노출 시간이 짧거나 감도가 낮을 경우 잘 나타나지 않지만 어두운 성운을 찍기 위해 노출 시간을 길게 하면 별빛 사이에 숨은 ‘잡초’ 처럼 나타나 사진 질감을 떨어뜨린다.
노이즈는 DSLR(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의 CCD(고체촬상소자) 온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컴퓨터 CPU나 반도체칩이 온도가 올라가면 오류가 생기는 것처럼,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CCD도 오랜 시간 전류가 흐르면 뜨거워지면서 잡음이 생긴다.
노이즈를 막으려면 CCD를 차갑게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컴퓨터 CPU나 반도체 칩에 냉각팬을 다는 것처럼 DSLR에도 냉각팬을 달면 노이즈를 많이 줄일 수 있다. 보통 DSLR을 천체사진용으로 개조한 ‘냉각DSLR’을 시중에서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각DSLR은 본체가 무거운 단점이 있다. 그래서 천체사진을 찍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볍고 색감이 풍부한 천체사진용 ‘냉각CCD’를 사용한다. 냉각CCD는 CCD에 냉각장치를 붙인 게 전부인 장치로, 망원경 접안부에 연결해 사진을 촬영한다. 냉각CCD는 보통 카메라처럼 큰 몸체나 셔터도 없고, 뷰파인더나 LCD창으로 천체나 사진을 확인할 수도 없다. 대신 사진 촬영에 대한 모든 설정을 컴퓨터로 한다.
냉각CCD는 흑백과 컬러 두 종류가 있다. 흑백 냉각CCD는 모든 픽셀이 빛에 반응해 감도가 높고 상이 선명한 장점이 있지만 컬러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CCD 앞면에 RGB(빨강, 녹색, 파랑)필터를 장착하고 채널별로 각각 촬영을 한 뒤, 이를 합성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 컬러 냉각CCD는 각 픽셀마다 RGB 색을 만드는 필터가 들어있어 따로 RGB필터를 부착할 필요 없이 컬러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흑백 냉각CCD보다 감도나 색감은 다소 떨어진다.
냉각CCD를 컴퓨터에 연결한 뒤 초점, 노출시간, 촬영 매수, 필터 작동, 냉각온도 같은 설정치를 ‘maxim DL’ 같은 천체사진 촬영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촬영을 한다. 적도의식 가대와 연동도 가능해 시작버튼 ‘클릭’ 한번으로 촬영을 마치는 ‘오토가이드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
오리온대성운은 워낙 밝고 큰 천체라 몇 초만 노출을 줘도 성운의 붉은 기운을 확인할 수 있다. 오리온대성운 중심에 있는 아주 밝은 별(트라페지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출시간을 30초 이내로 짧게 한다. 오리온대성운 위쪽에 마치 사람이 열심히 달려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 ‘러닝맨’이라 불리는 푸른색 성운까지 담아내려면 노출시간을 1~5분 정도로 길게 하면 된다.
이미지 촬영과 전송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되고 설렌다. 아름다운 구도와 정확한 초점, 그리고 적도의의 가이드까지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면, 불새가 힘차게 날개를 뻗는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끝으로 ‘디카로 떠나는 밤하늘 여행’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달의 천문현상

12월 1일 오후 6시 서쪽 하늘에 목성과 금성, 초승달이 나란히 늘어선다.(사진설명)
12월 1일 금성 목성 초승달의 조우
지난 2월 한자리에 모였던 밤하늘 밝기 넘버 ‘원 투 쓰리’ 초승달, 금성, 목성이 10개월 만에 다시 뭉친다. 지난번이 새벽 ‘조찬모임’이었다면 이번엔 근사한 ‘디너쇼’다. 12월 1일 오후 6시 쯤 해가 진 뒤 서쪽 하늘 낮게 세 천체가 삼각형을 이루며 나란히 늘어선다. 금성과 목성 사이의 겉보기 거리는 약 2°로 보름달 크기의 4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2월 29일 금성 대신 수성이
12월 29일에는 금성 대신 수성이 목성, 달과 한자리에 모인다. 세 천체는 해가 진 뒤 지평선 가장 위로부터 목성, 초승달, 수성 순서로 각각 1.5° 간격을 두고 늘어선다. 수성의 고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세 천체를 모두 보려면 남서쪽 시야가 탁 트인 곳이 좋다.
전영준 >
고려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수원영신여고에서 지구과학 교사로 재직 중이다. 대학시절 아마추어 천문회 활동을 시작으로 천체관측분야 과학영재학교와 교사연수 강사로 활동했고, 현재 ‘Nada’ ‘별하늘지기’ ‘별아름’ 같은 아마추어천문 동호회 정회원이다.
독자사진

지난달 수상작 박혜영 씨의 ‘대마젤란과 소마젤란’. 호주 서부 사막에서 대마젤란은하(가운데 구름 같이 뿌연 부분)와 소마젤란은하(오른쪽 위 모서리)를 찍었다. 보면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는 노인성(왼쪽 아래 밝은 별)도 함께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