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하늘과 만나는 지혜의 경계면 지붕

판테온 반구형 돔에 장치된 눈속임수

무너져내리지 않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덮어주는 지붕. 어떻게 발전돼 왔을까. 지붕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숨은 지혜를 발견해보자.

건축 기술이 발전해온 역사는 지붕 덮는 기술의 역사라 해도 크게 과장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건물은 바로 지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만들어온 몇가지 집을 생각한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에스키모의 이글루는 얼음 덩어리로 된 지붕이 곧 벽이 돼 북극의 찬바람으로부터 거주 인들을 보호한다. 몽고인들의 빠오 역시 마찬가지다. 염소나 양의 털로 짠 텐트 천은 지붕인 동시에 벽이 돼 사막의 혹독한 날씨로부터 지켜준다. 신기한 사실은 상식과는 달리 검정색인 이 텐트가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한낮에는 바깥보다 무려 30℃나 낮은 실내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땅을 판 후 지붕만 덮은 움집은 말할 것도 없고 한옥의 누대도 지붕만으로 된 건축이다.

구조적으로 가장 난해한 건물 요소

말하자면 보통 건물을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로 여겨지는 지붕, 벽, 바닥 중 참으로 건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붕이라는 뜻이다. 벽은 당초 지붕의 연장이었을 터이고 벽이 독립된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은 건축의 긴 역사가 한참이나 흐른 다음이다. 바닥 역시 대부분의 경우 땅바닥을 그대로 건물의 바닥으로 썼을 것이며 지금처럼 위층의 바닥이 아래층의 지붕이 된 것 역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붕은 이처럼 건물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구조적으로도 가장 해결하기 힘든 요소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바로 지붕 밑에 빈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예를 하나 들자. 벽돌을 바닥에 그냥 뉘어 놓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바닥’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곧추 세워 놓으면 ‘벽’이 된다. 그 다음 두개의 벽돌을 세운 후 위에 한장의 벽돌을 걸쳐놓으면 이것이 바로 ‘지붕’이 되고 비로소 지붕 밑에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로 놓여진 벽돌(바닥), 세워진 벽돌(벽), 그리고 공중에 걸쳐진 벽돌(지붕)을 각각 파괴한다고 치자.

어떤 것에 가장 많은 힘이 필요할까. 바닥에 잘 밀착된 벽돌을 부수기 위해서는 큰 해머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세워진 벽은 이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망치 정도는 있어야 된다. 그러나 걸쳐진 벽돌은 태권도 유단자를 만난다면 그의 손에 의해서도 두 조각으로 동강나고 만다. 이 얘기는 같은 크기, 같은 재료일지라도 놓여진 방식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힘이 다르다는 뜻이며 바닥보다는 벽이, 또 벽보다는 지붕이 취약하다는 말이다.

지붕이 구조적으로 더욱 고약한 점은 지붕에 가해지는 힘이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경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둥 사이가 넓은, 즉 큰 공간을 만들수록 지붕이 감당해야 할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건축에서 원하는 것은 지붕 밑의 공간이다. 그것도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럴수록 지붕에게는 치명적이 된다. 인류의 건축 기술 발전의 핵심은 바로 안전한 지붕과 넓은 실내공간 사이의 갈등을 메꿔 나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평지붕 등장한 까닭

인류가 지붕 덮는 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철이 건축재료로 본격적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약 2백년 전부터라고 보면 맞다. 그 이전에는 지붕을 덮는 기술이 건축기술의 전부였다 해도 과장이 아니며 아무리 애써도 기둥 없는 공간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그리스 신전의 평면도를 보면, 마치 여름철 수영장이 물 반, 사람 반이듯이 기둥 반, 공간 반이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기둥을 촘촘히 박지 않고는 지붕을 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소 거칠지만, 지붕의 형태에 따라 인류 건축의 역사를 둘로 나눈다면 경사지붕의 시대와 평지붕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경사지붕은 가운데가 높은 박공형 지붕이든 중앙이 불룩한 돔형 지붕이든 어쨌건 하늘과 맞닿은 면이 수평이 아닌 지붕을 뜻한다.

경사지붕과 평지붕 시대를 구분하는 기점은 19세기. 물론 그 이전에도 평지붕 건물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경사지붕이 보이지만 본질적 차이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평지붕 건축은 기후 여건이 허락될 경우 그것도 주택같이 소형 건물에서나 보이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중해 연안의 주택들에서 평지붕이 많이 보이는 것은 연중 강우량이 많지 않아서 취해졌던 것이고 눈이나 비가 많이 오는 지방일수록 지붕의 물매(경사)는 급하게 지어진다. 또한 19세기 이후에 보이는 경사지붕은 구조적으로 절실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 즉 빗물 구배(경사)나 장식적 목적 때문에 취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사지붕에 비해 평지붕은 여러모로 장점을 가진다. 우선 같은 바닥 면적이라면 평지붕의 내부 부피는 경사지붕의 그것보다 적게 된다. 이것은 음향 처리에도 좋고 냉난방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또한 평지붕의 공간은 수직으로 쌓으면 고층화할 수가 있어 같은 크기의 땅에 더 많은 바닥 면적을 얻을 수 있다. 재료 역시 경사지붕보다는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평지붕은 최근에야 보편화된 것일까. 이는 19세기 이후에야 건축재료로 등장한 철의 구조적 성질과 관련이 있다. 물론 철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이용했다. 무기나 일상도구의 재료로서 철의 역사는 철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적어도 19세기 이전까지 철은 건축재료로서는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보의 압축력과 인장력^(두번째 그림)돌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보. 기둥 사이 가 넓어질수록 중력에 의해 보는 아래 로 휘려고 한다. 이때 윗부분에는 압축 력, 아래부분에는 늘어나려는 힘인 인장 력이 생긴다. (세번째 그림) 돌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보는 압축력에 는 강하지만 인장력에 약해 결국 부러 지고 만다. (네번째 그림) 철근을 콘크리트 보 아래쪽에 묻어서 일 체화시키는 기술이 발명됨에 따라 평지 붕의 시대는 만개하게 된다.


보통 선철 또는 무쇠로 표현되는 19세기 이전의 철은 돌과 재료적 특성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돌이나 벽돌은 바닥이나 벽, 기둥이 받는 누르는 힘(압축력)에는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그림 1). 그러나 걸쳐진 상태에서 받는 부러뜨리는 힘(휨력)에는 맥을 못춘다. 왜냐하면 부러뜨리는 힘은 벽돌 아래 면에 늘어나려는 힘(인장력)을 발생시키는데, 돌은 재료의 특성상 인장력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아래쪽이 터져 결국 부러지고 만다. 선철 또한 돌처럼 인장력에는 매우 취약했으니 비싸기만 한 철이 건축재료가 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인장력에 강한 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석탄의 공헌이다. 석탄으로 고열처리를 함으로써 비로소 철은 인장 강도를 갖게 된다. 인장력에 강한 철을 보(기둥과 기둥 사이에 걸쳐져서 지붕이 올라탈 수 있게 만드는 부재를 표현하는 용어로 인방이라고도 한다)로 쓸 수 있게 됨에 따라 드디어 평지붕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후 19세기 말 철근을 콘크리트 보 아래쪽에 묻어서 일체화시키는 기술(철근 콘크리트 공법)까지 발명됨에 따라 평지붕의 시대는 만개하게 된다.

그리스 건축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

인장력에 견딜 수 있는 재료가 없었던 시절,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을 덮는 지붕을 만들기 위해서 쓰여진 방책은 그야말로 인류의 모든 지혜가 총동원되는 것이었다. 이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었는데, 돌보다도 다소 인장 강도를 갖으면서도 가벼운 목재를 이용하거나, 돌 또는 벽돌을 사용하되 인장력이 최대한 생기지 않도록 지붕 형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자의 방법을 그리스 건축이나 동양 건축에서, 그리고 후자의 방법을 로마 건축이나 고딕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의 지붕은 목재로 만들어졌다. 석재 기둥 위에 들보를 걸고 그 위에 경사지붕을 얹었는데 그 기울기는 예컨대 파르테논 신전 전면 상부에 보이는 삼각형(페디먼트) 경사면의 기울기로 보면 된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 간격은 한결 같이 5-6m 사이이다. 이것은 돌로 보를 만들었을 때의 최대 경간이다.

이 이치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보를 부러뜨리는 힘은 경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기둥 사이가 두배가 되면 그 힘은 4배가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의 춤, 즉 높이를 4배로 키워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춤을 늘리면 동시에 자기 무게도 4배로 늘어나서 다시 부러뜨리는 힘도 4배로 늘어난다.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보이는 엄정한 비례는 이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최대 경간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구조적 비례인 것이다.

기둥 끝 부분의 오더 역시 장식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장치다. 기둥 끝자락을 넓혀줌으로써 가능한 한 보의 경간을 줄이려고 했다. 이같은 기둥 끝처리 기법은 동양 목조 건축의 공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은 당초 목조였기 때문에 재료만 화재에 견디는 돌로 바뀌었을 뿐 그 방법은 목조의 그것 그대로다. 그러나 지붕만큼은 무거운 돌로 바꿀 수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지붕 없는 뼈대만 보는 이유다.

아치 구조로 넓은 공간 얻은 로마 건축

한편 그리스 사람들에게 넓은 실내공간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상업이나 집회 등 그들의 모든 행위는 옥외, 아고라(광장)와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뤄졌으며 신전은 소수의 성직자들이나 출입하는 신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인들에게는 기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넓은 실내공간이 필수였다. 대목욕탕, 공회당, 신전, 경기장 등이 필요했다. 이 대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둥을 촘촘히 박는 그리스 건축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로마인은 아치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킨다.


(그림 2)아치구조의 측벽^아치구조는 수직으로 내리는 힘을 아치구조를 따라 땅으로 흘려보낸다. 때문에 옆으로 벌어지려는 추력이 생겨난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아치구 조 옆에 측벽이 설치돼야 한다. 아치구조만 존재하면, 아치는 추력선과 아치가 만나는 점을 기준으로 네 동강이 나고 만다.


아치란 개구부나 지붕을 둥글게 해 돌의 취약점인 인장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그림 2). 보에서 생기는 부러뜨리는 힘은 서로 꽉 물린 돌 사이에서 압축력으로 바뀌어 땅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아치 형태만 만들어 놓았다고 다 안정적인 구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치는 위에서 내려오는 힘을 사선 방향으로 바꾸기 때문에 옆으로 미는 힘(추력)이 생긴다. 때문에 아치만 만들어놓으면 아치 구조의 하단부에서 벌어지려고 하는 추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이 힘을 막아주기 위해 아치 옆쪽으로 측벽이 설치돼야 한다. 남대문의 경우 양쪽으로 두툼한 사다리꼴의 측벽이 바로 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추력은 아치구조의 인장력인 셈이다.


(그림 3) 콜로세움의 추력상쇄법^콜로세움은 아치구조를 타원구조에 가둬둠으로써 추력을 상쇄시켰다.


로마 아치 기술의 하이라이트는 콜로세움과 판테온에서 발견할 수 있다. 콜로세움(그림 3)은 위에서 보았을 때 타원형이다.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는 각 문의 아치구조는 콜로세움의 타원형의 닫힌 구조로 인해 추력이 아치의 서로에게 전달된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힘이 갇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중세 때 기독교도들이 성당을 짓는다고 바깥쪽 켜를 뜯어내는 바람에 지금은 그 끝단에 미는 힘에 저항하는 측벽이 설치돼 있다.


(그림 4) 판테온의 구조^내부는 완전한 반구형을 이루지만 겉모습은 그렇지 않다. 반구의 아랫부 분에 생기는 인장력을 없애기 위해 측벽이 설치돼야 하기 때문이다.


판테온(그림 4)은 내부에서 위를 쳐다보면 완전한 반구형의 돔이다. 지름과 높이가 43.6m나 되는 이 엄청난 공간은 1천3백년 후 피렌체 성당의 돔이 완성되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실내공간이었다. 돌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건물 역시 인장력을 없애기 위해 눈물어린 노력이 엿보인다.
 

(그림 5) 반구형과 아치 구조^반구형구조는 아치구조를 1백80。회전시킨 것과 같다. 때문에 아치구조에서 생기는 추력이


판테온의 지붕에서 보이는 돔 구조는 아치를 1백80。 회전시켜 만든 것으로 보면 된다(그림 5). 그렇다면 아치의 연장선상인 반구형의 돔은 구조적으로 안정할까.
돔도 아치와 마찬가지로 하단부에 인장력이 발생한다. 판테온의 돔을 지구 북반구라고 비유한다면 대략적으로 북위 40。 이하 적도까지의 부분에서는 위도 방향으로 인장력이 생긴다. 사발을 뒤집어놓고 밟으면 아가리 부분이 찢어지는 이치다.

현대 같으면 강한 철재로 밑둥, 즉 적도 부분을 두르면 되겠지만(실내체육관 같은 곳에 쓰는 이것을 링빔(ring beam)이라 한다) 인장력에 견딜 수 있는 재료가 없는 로마인은 기발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즉 드럼 구조로 북위 40。 지점까지 쌓아올린 후 그 이상만 돔을 둔 것이다. 대신 실내는 적도선까지 격자 천장을 만들어 반구형 돔인 것처럼 꾸몄다. 판테온의 돔이 외부에서 윗부분만 보이는 이유다.

북극 부분은 구멍을 냈는데 이 역시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이기도 하거니와 환기 및 채광용이다. 비를 걱정할지도 모르겠지만 건물 안에서 구멍을 통해 나오는 상승 기류는 로마에서 뿌리는 비 정도를 옆으로 비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높고 밝은 첨두 아치의 고딕 대성당

돌로 만들 수 있는 극한 기술을 구현한 건축은 12세기 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고딕 대성당이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공인 계급은 자신들의 거점인 도시에 거대하고 넓으며 밝은 성당을 짓기를 원했다. 고딕 성당은 이들의 실용적 정신과 기술의 소산인 것이다. 고딕시대의 장인들은 로마시대의 아치 기술을 고도로 세련되게 해 공간감과 빛으로 충만한 교회당을 건설했다(그림 6).


(그림 6) 고딕성당의 아치 구조


이들의 놀라운 발명은 대략 세가지이다.
그 첫번째는 첨두 아치다. 위가 둥근 일반 아치와 달리 이슬람 혈통의 끝이 뾰족한 첨두 아치는 옆으로 미는 추력을 최소화시킬 수 있어 벽을 가늘고 높은 기둥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한다.
두번째는 추력에 저항하는 측벽인 버트레스에 활꼴 모양의 구멍을 내 무게도 줄이고 그 밑의 공간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장치다. 밑에서 볼 때 하늘을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붙여졌다.

이 플라잉 버트레스 위에는 피너클이라는 이름의 소첨탑이 올려지는데, 이 또한 장식적 의미도 있지만 구조적으로도 필수적인 장치다. 진창에 빠진 차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잔뜩 올라타 마찰력을 키워야 하듯이 플라잉 버트레스가 추력에 의해 지면에서 미끄러지는 일을 막기 위해 추가적인 무게를 가하는 것이 이 소첨탑인 것이다.

세번째 놀라운 고안은 리브 보울트라는 구조 시스템. 고딕 이전의 교회들은 보울트를 십자형으로 교차시킨 크로스 보울트를 주로 채택했다(그림 7). 그러나 이것은 벽이 곧 지붕으로 연장되는 아치의 일종이기 때문에 엄청난 무게를 요했고 결국 무게 때문에 공간 크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7) 크로스 보울트^벽이 곧 지붕으로 연장되는 아치의 일종이 기 때문에 엄청난 무게를 요했고 결국 무 게 때문에 공간 크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림 8) 리브 보울트^힘이 흘러가는 선을 따라서만 돌로 리브 를 만들고 그 사이는 얇은 석판을 채우든 지 벽의 경우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우 는 방식이다.


고딕의 기술자들은 이 벽을 기둥으로 바꿨다. 즉 힘이 흘러가는 선을 따라서만 돌로 리브를 만들고 그 사이는 얇은 석판을 채우든지 벽의 경우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 높고 넓고 밝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그림 8).

약한 재료를 가지고 구조를 만들고자 할 때에는 그 재료가 명령하는 대로 형태를 갖추는 도리밖에는 없다. 다시 말해 돌, 콘크리트, 벽돌 등 인장력에 약한 재료는 그들이 싫어하는 인장력이 발생하지 않게 하면서, 오직 압축력만 흐르도록 힘의 길을 열어 놓아야 하며 이 힘이 흐르고자 하는 길이 바로 구축물의 형태가 됐던 것이다.

고딕건축은 이 원리의 하이라이트다. 돌로 할 수 있는 기술의 극한, 그리고 그렇게 해 연출되는 수직적 공간의 앙천감, 빛의 잔치에 의해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붕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진 현대 건축

그러나 인장력에도 잘 견디는 철의 등장으로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이제는 더이상 힘에 끌려 다니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원하는 형태 안에 가두어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인장력이 무서워 아치를 틀 필요가 없다. 수평으로 된 보나 슬라브 아래쪽에 철근을 심어놓으면 인장력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평지붕과 이를 쌓아올린 고층건물은 철의 자식이다. 평지붕뿐 아니라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온갖 형태의 구축물들이 가능해졌다. 압축력이 흐르는 곳은 콘크리트로, 인장력이 다니는 길은 철로 보강(reinforcement)해주면 거뜬히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사지붕이 꼭 필요한 건축물이 있다. 굉장히 넓은 실내공간이 필요한 체육관, 전시장, 공항, 역사 같은 곳이다. 힘은 본질적으로 직각 보행을 싫어한다. 부드럽게 자신의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고픈 것이 자연의 섭리고 그렇기에 자연의 만물이 직선과 직각을 갖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평지붕을 가진 건물은 힘을 직각 보행시킨다. 보에 의해 수평으로 이동시킨 후 기둥을 통해 수직으로 힘을 땅으로 보내는 것이다.

기둥 간격을 촘촘히 할 수 있는 공간, 예컨대 주택이나 사무실 등에서는 철에 의해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지만 기둥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대공간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법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즉 유연한 곡선으로 지붕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개 껍질이나 달걀이 둥근 표면을 갖는 이유는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강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형태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지붕의 무게가 치명적인 대공간에서는 조개 껍질을 닮은 쉘 구조가 즐겨 채택된다. 지붕의 두께가 얇아질수록 무게가 줄고 그럴수록 같은 재료로 더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건축물을 만드는데 구조문제가 더이상 골칫거리가 아니게 된 이 현대에 오히려 현대 건축가는 더 고민에 빠져 있다. 도대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약한 재료로 건물을 지어야 했던 시절에는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이 형태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 그 당시에는 옳지 않은 건축은 무너지게 돼 있었다. 건축가들의 선택의 폭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이것이 인류 건축 역사가 그토록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양식은 몇가지로 압축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현대 건축가들의 선택 폭은 가공스러울 만큼 크고도 넓다. 어떤 형태이든지 철이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광장 공포증과도 같은 이 무한자유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두가지이겠다.

하나는 아예 그 공포를 즐기는 것이다. 온갖가지의 형태 유희를 통해 강한 구조가 제공하는 잉여를 마음껏 누려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마치 고딕의 장인들이 돌을 가지고 그러했듯이 이 시대의 재료인 철이 극한적 성능을 발휘하도록 형태를 갖추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후자의 태도가 바람직한 것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형태는 재료보다 싸다’(Shape is cheaper than Mate rial)는 진리를 인정한다면 단지 인간들, 특히 이 시대의 인간들만 쓸 것이 아닌 지구의 자원을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딕성당이 박스형 상가 안에 들어있는 교회보다, 그리고 한옥의 지붕선이 집 장사가지은 평 슬라브 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것은 비록 약한 재료로 지은 것일망정 자신의 몸무게를 줄여 생존하려는 절실함이 그 형태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박현정
  • 함임선 대표

🎓️ 진로 추천

  • 건축학·건축공학
  • 토목공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