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입시를 목표로 공부하지 마세요

연세대 수시 창의인재 트랙 합격생 인터뷰





노하영 군은 18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단 30명만 뽑는 창의인재 전형에 합격했다. 그것도 30명 중 4명만 통과한 우선선발로 말이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수험생을 자녀로 둔 이웃부터 학교 후배들까지 모두들 어떻게 했냐고 비법을 물어본다고 한다.

“저는 사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글도 다 모르고 들어갔어요. 영어도 학교에서 배운 것만 했죠. 학교보다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이 더 익숙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생물을 좋아하게 됐죠. 좋아하는 생물을 연구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에요. 입시가 목표였던 적은 없어요.”

아등바등 입시에만 매달려도 실패하는 이가 수두룩한데 입시는 그저 과정일 뿐이라는 하영 군. ‘그래도 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린이날 선물은 일반생물학 책이 딱!

받고 싶은 어린이날 선물이 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당시 14살이었던 하영 군은 “일반 생물학 책 사 주세요”라고 했다. 이 때 선물 받은 책이 대부분 대학에서 일반 생물학 강의 교재로 쓰는 ‘생명 생물의 과학(윌리엄 펄브스, 교보문고)’이었다. 여느 학생들처럼 특목고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냐고 묻자 하영 군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입시에는 크게 관심 없었어요. 그저 생물학이 좋았죠. 집 근처에 생태 숲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정말 숲처럼 우거져요. 학교 마치고 공원에서 생물 관찰하고 노는 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좋아하다 보니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고 연구하게 됐다. 자꾸 공부하니 실력이 쌓였고 결국 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생물 Ⅰ, Ⅱ과정을 공부하고 일반 생물학책을 읽었다. 입시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특목고는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서 한 것이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일일이 사전이나 인터넷을 찾았다. 잘못 번역된 단어를 찾아내는 일도 재미가 쏠쏠했다.

“신기한 게 있으면 막 들떠서 부모님께 ‘이거 신기하지 않아? 이런 게 있는데…’하고 앞에서 강의를 했죠. 부모님은 제가 생물에 너무 빠져 있어서 몸이 상할까봐 걱정하셨어요. 그래도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해주셨죠.”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이 하영 군의 창의력 창고인 듯 했다. 창의력이 있고 없음을 말할 때, 어떤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나 전혀 다른 개념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주로 본다. 이런 능력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평소에 다양한 경험을 해 시야를 넓히고 당연해 보이는 것도 뒤집어 보는 연습을 하자.

생물 좋아 생물연구, 생물학 논문 보며 영어공부

고등학교에 와서는 미생물학, 유전학, 발생학 등 전공책을 사서 봤다.

“전공책을 읽다보면 하고 싶은 연구가 막 떠올라요. 그걸 일단 적어두죠. 그런데 할 수가 없어요. 학교시설로 할 수 없는 연구도 있고, 특목고가 아니라서 과제연구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으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하기 힘들다’에서 멈출 하영 군이 아니었다. 무작정 대학 교수에게 e메일을 보냈다. 1/4정도만이 답을 했다. 그마저도 직접 연구를 봐줄 수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하영 군의 꿈을 지지하고 힘을 주는 교수들의 e메일에 힘이 났다. 탐구를 지원하는 대회와 강연,
세미나를 찾아 다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연구비 100만원을 지원해 주는 청소년과학탐구반(YSC)연구과제에 지원했다. 연구주제는 ‘생물정보학과 분자결합모델 및 사회제도학적 측면에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탐구’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써서 인플루엔자의 진화적 기원을 탐구하고 전파를 막을 수 있는 리간드(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물질)의 조건을 찾았다. 영어로 된 연구논문을 찾아서 읽다 보니 영어 실력도 좋아졌다. 한 달 반 만에 텝스(TEPS) 성적이 500점대에서 800점대로 뛰었다. 이 연구로 하영 군의 팀은 서울에서 금상을 받고 전국대회에서는 특별상을 받았다. 생물Ⅱ도 하지 않은 친구들을 이끌어 함께 연구해서 얻은 결과다.

“사실 예산 0원으로 쓴 논문이에요. 강연을 찾아 다녔어요. 모든 강연에서 무엇이든 하나씩 도움을 받았죠. 한번은 이화여대 약대 교수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신약 개발법’ 강연에 갔어요. 그런데 화면 아래에 조그맣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이름이 쓰여 있는 거예요. 바로 메모해서 그 길로 인터넷을 미친 듯이 뒤졌죠. 결국 무료 프로그램을 찾아냈습니다.”

받은 연구비로는 사고 싶었던 미생물학 책을 샀다. 한번은 관심 있던 주제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생인 척 가서 듣다가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자네는 어디서 왔나?”는 교수의 질문에 그만 당황했지만, 이렇게 찾아다닌 강연에서 얻은 최신 과학 동향은 연구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스펙보다 중요한 것

이런 노력 덕에 흔히 말하는 ‘스펙’이라고 할 만한 것도 쌓였다. 하영 군의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각종대회 수상경력부터 강연, 과학캠프 참여까지 가짓수가 60을 넘는다. 하지만 그는 “이걸 스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상보다 대학교 3학년 과정까지 혼자 공부했다는 게 훨씬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저 하고 싶은 연구를 한 흔적일 뿐이다.

하영 군은 국제생물올림피아드 한국대표 선발에 도전했다. 2년 연속으로 국가대표 후보로 선발돼 국가대표 후보가 받는 겨울학교 교육도 받았다. 여러 교수의 이론 강의를 들으며 심화 이론을 배웠고 다양한 실험도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원에서 일반 생물학 책만 외우는 경우가 많다. ‘모 교수가 무슨 책에서 문제를 낸다더라’하는 소문이 돌면 다른 책은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치 도박처럼 성공과 실패를 운에만 맡겨야 하는 함정에 빠진다. 그렇지만 하영 군은 올림피아드를 위한 공부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함정에 빠질 염려가 없었다.

“만일 상을 받아 의대를 가려고 했다면, 제가 3학년 때 서울시 수학·과학 경시대회에 나간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어요. 거의 과학고 2학년이 보는 시험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그냥 좋아서 공부했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니 시험도 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하영 군에게 수능과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연세대 창의인재 트랙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이 외에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암바이오유스캠프’, ‘토요과학강연회’ 등도 찾아다녔다. 올림피아드 겨울캠프에서는 여러 가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하영 군은 도대체 이런 행사정보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혹시 혼자만 알고 있는 정보창구가 있나 해서 물었더니 없단다. 김빠지는 대답이다.


“관심과 열정이 있으면 다 찾게 돼요. 저는 주로 구글에서 많이 검색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여름방학에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면 검색창에 ‘썸머 인턴십 프로그램’이라고 써서 검색해요. 그럼 각종 프로그램과 필요한 자격 등이 나오죠. 그렇게 찾았어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다.



텔로미어와 인공세포 연구를 꿈꾸다

이제 대학에 와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영 군은 즐거워했다. 그가 최종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것은 ‘인공세포’다. 단순히 DNA나 리보솜 같은 세포 소기관 몇 개만 합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 소기관 전체를 합성하고 조절하는 것이 꿈이다. 이렇게 하면 원하는 항체를 완벽하게 생산하고 조절하는 인공생물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포 내부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것과 세포 외부, 그러니까 세포, 조직, 생태계 전체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시스템 생물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일단 학부에서는 관심을 넓게 가지고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체계와 다양한 종류의 텔로미어를 연구는 게 하영 군의 목표다.

“연구실 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선배들을 보면 저는 오히려 부러워요. 연구실에서 사는 게 꿈이에요. 국력을 키우려면 기초과학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물 하면 한국이 생각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뭔가 비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의 답은 그의 눈빛에 있었다. 꿈을 말할 때,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이 바로 답이었다.

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훈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