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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구아나, 새 신부를 유혹하다

진화의 섬, 갈라파고스



3만일 지구에 단 하나의 섬만 남겨야 한다면? 한국인이야 제주도가 첫손가락일 터이고(개인적으로는 홍도를 남기고 싶다) 신혼부부라면 낭만적인 몰디브나 보라카이를 떠올릴 것이다. 만일 과학자라면? 독자 여러분의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 섬, 갈라파고스가 아마도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것이다(2위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아닐까).

찰스 다윈이 1835년 비글호를 타고 방문해 진화론의 영감을 얻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갈라파고스 제도. ‘진화 실험실’로 불릴 만큼 독특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섬들. 지난 2월28일부터 3월 4일까지 6일동안 생물학자의 로망인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한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번 탐사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해양베스트체험단 ‘에코오션’과 함께 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이사벨라 섬의 틴토레라스 지역에서 만난 바다 이구아나. 바위 위에 올라가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짝을 기다리고 있다. 이구아나 수컷은 이처럼 바위 위에 최대한 높이 올라가 암컷을 유혹한다.]


[꿀을 먹으려고 선인장 꽃에 앉은 다윈 핀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14종의 핀치는 먹이와 지역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져 진화의 생생한 증거로 종종 교과서에 실린다.]

선인장 꽃에 앉은 다윈 핀치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많이 봤던 동물은 바다 이구아나였다. 공룡의 이름을 처음 지을 때 따다 붙였다고 하는 바로 그 이구아나다(공룡의 이름은 이구아노돈). 처음에는 부두 한켠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이구아나가 너무 신기해 보일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어디나 있는 통에 나중에는 마치 도심의 비둘기처럼 익숙해졌다.

바다 이구아나는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웬만큼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 않을 정도로 순박한 파충류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식물인 조류를 먹는다. 바다 이구아나의 앙숙은 군함조나 갈라파고스 매 등 새들이다. 이구아나는 짝짓기가 끝나면 모래사장에 알을 낳는데 새들이 머리 위를 돌며 호시탐탐 알을 노린다. 이자벨라섬의 틴토레라스라는 지역에서 새들이 이구아나의 알을 낚아채 공중에서 먹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섬에 들어온 뒤에는 함께 들어온 개들이 종종 이구아나를 사냥해 먹곤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갈라파고스를 상징하는 것은 자이언트 거북(giant tortoise)이지만 생물학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동물은 다윈 핀치다. 사는 곳과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달라진다고 해서 생물 교과서에 진화의 증거로 빠지지 않는 바로 그 새다. 참새만한 다윈 핀치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모두 14종이 산다. 사실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떠날 때까지도 핀치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여러 섬에서 나온 핀치의 표본들을 표시도 없이 뒤섞어놓았을 정도다. 핀치가 진화의 생생한 증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비글호 항해에서 돌아온 다음이었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 도착하고 그곳에 머문 6주 동안 불현듯 진화론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비글호 항해를 하기 전부터 다윈은 진화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생명과학부 교수는 ‘다윈지능’이라는 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오랜 시간에 걸친 치밀한 논리의
축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윈의 위대한 점은 갈라파고스를 포함해 5년에 걸친 비글호 항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끈질기게 질문했다는 점이다. 왜 섬에는 대형 포유동물이 적을까, 위도(환경)가 달라지면 왜 같은 종인 듯한 동물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화석에 나타나 있는 과거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과 닮은 현대의 동물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 갈라파고스는 최고의 장소였다. 3일 동안 머물렀던 산타크루즈라는 작은 섬에서는 남쪽과 북쪽에 있는 선인장의 키가 확연히 달랐다. 비가 적게 내리는 북쪽에서는 1~2m에 불과했지만 비가 많은 남쪽에서는 최대 12m에 달하기도 했다. 각 섬에 사는 거북은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가까운 제도 안에서도 확연히 달랐던 생물들은 다윈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다윈은 20년이 넘는 끈질긴 노력 끝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이라는 답을 찾아냈다.




해류 3종 세트가 갈라파고스를 낳았다

갈라파고스 주변 해역은 지구에서 가장 풍요로운 바다로 꼽힌다. 에코오션의 대장인 정대위 씨(상명대 그린생명과학과 석사과정)는 “갈라파고스는 스킨 스쿠버들에게 최고 인기 다이빙 포인트”라고 말했다. 기자는 아쉽게도 얕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스노쿨링에 그쳤지만 에코오션 대원들은 수십 미터 해저를 다이빙했다. 커다란 상어를 비롯해 수많은 열대어, 곰치, 바다거북 등 바다의 ‘핫스팟’이 무엇인지 갈라파고스는 확실히 보여줬다.

갈라파고스의 바다에 왜 이런 축복이 펼쳐졌을까. 세 개의 해류 덕분이다. 적도 부근에서 뜨겁게 달궈진 파나마 난류와 남쪽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이 풍부한 훔볼트 한류 등 세 해류가 섬 주위를 감싸기 때문에 한류와 난류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풍부하다(115쪽 참조).

대표적으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와 망치상어를 들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갈라파고스 상어는 먹을 게 많기 때문에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물지 않는다”고 농담한다. 고래도 많이 산다. 고래 전문가인 칼 화이트헤드 박사는 갈라파고스 제도 주변에 사는 향유고래를 연구한 결과 “향유고래는 다문화 사회에서 살며, 특히 암컷은 인간처럼 동료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문화적인 동물”이라고 ‘거인을 바라보다’라는 책에서 주장했다.

또 유명한 것이 갈라파고스 펭귄이다. 지구에 사는 17종의 펭귄 중 적도 부근에서 사는 유일한 펭귄이다. 기자는 이자벨라 섬에서 배를 타고 가다 펭귄 대여섯 마리가 해안 바위에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남극의 황제펭귄처럼 크고 웅장한 모습은 아니지만 키 50cm의 작은 갈라파고스 펭귄은 귀여운 몸짓을 한창 뽐내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에 펭귄이 살 수 있는 이유도 해류 덕분이다. 페루에 살던 훔볼트펭귄이 훔볼트 한류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지구에 사는 펭귄을 모두 만났다면 다윈 핀치 대신에 펭귄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바위 틈에 들어가 먹이감을 찾고 있는 곰치. 이곳에는 특히 해삼이 많이 잡혀 우리가 먹는 해삼 중에도 갈라파고스산이 있을지 모른다.]


[에코오션 단원들이 갈라파고스 바다밑에서 다이빙을 하며 해저 생물을 관찰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거북아, 잘 지내렴

갈라파고스를 상징하는 것은 역시 자이언트 거북이다. 200년까지 산다고 알려진 이 거북은 한때 섬마다 100여마리로 줄었을 정도로 멸종 위기에 몰렸다. 암울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것이 ‘외로운 조지’다. 외로운 조지는 1971년 겨울 작은 핀타섬에서 발견된 마지막 육지 거북이었다. 같은 섬에서 암컷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결국 다른 섬에 살던 두 마리의 암컷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각각 1958년과 1959년 설립된 갈라파고스 국립공원과 찰스 다윈 재단은 오랫동안 자이언트 거북의 새끼를 길러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지금은 수천 마리로 거북이가 늘어났다. 산타크루즈섬의 거북이 센터에서는 알을 인공부화시키는 장치부터 단계별로 키우는 장소를 볼 수 있었다. 약 5년 동안 길러 25cm로 자라면 적응 과정을 거쳐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재미있게도 갈라파고스 거북은 알이 어떤 온도에서 자라냐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 인공부화 장치에서 28℃로 유지한 알은 수컷이 되고 29.5℃로 유지한 알은 암컷이 된다. 앤젤이라는 이름의 공원 가이드는 “암컷의 수를 늘려 자이언트 거북이 더 빨리 늘어날 수 있게 온도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또 거북의 터전을 빼앗고 있는 염소는 총으로 쏴 죽인다. 염소는 인간이 데려온 침입종이기 때문이다.

섬에 들어갔을 때 국립공원 직원들은 “갈라파고스의 동식물을 자연 상태로 지켜달라”고 수시로 강조했다. 위협하는 것은 물론 절대로 만져서도 안되고 2m 안쪽으로 접근해도 안됐다. 카메라 플래시도 터뜨릴 수 없었고 먹이를 줘서도 안됐다. 동물이 다가오면 오히려 인간이 피해야 했다. 주변 여건상 2m 규칙 등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섬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꽤 충실하게 규칙을 따랐다. 지구에서 가장 독특하고 소중한 생태계를 지키며 영원히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동안 보호센터에서만 자이언트 거북을 봤더니 야생의 거북이 보고 싶었다. 차로 한시간을 달려 차또라는 고원지대로 갔다. 밀림 속에서 한 시간 동안 10여 마리의 거북을 만났다. 2m까지 기자가 접근해도 거북이는 머리를 계속 내밀고 풀을 뜯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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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도움 = 2012여수세계박람회,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찰스 다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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