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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유전자 때문이야!

겨울철 잠꾸러기의 항변



지난 2003년,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기자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일찍 불을 끄고 누워도 보고, 안간힘을 써가며 새벽에 일어나기도 해 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피곤뿐이었다. 이유는 유전자에 있었다. 기자의 생체시계 유전자는 애초부터 ‘저녁형’ 인간으로 설계돼 있었던 것이다.



언제 잠들고 깰지는 생체 시계 유전자가 결정한다

우리 몸에는 시계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들은  잠이 들고 깨는 시기, 필요한 수면의 양 등을 결정한다. 초파리에서는 per, tim, clock, cyc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한다. per는 시기를 뜻하는 period, tim은 영원하다는 뜻의 timeless, cyc는 주기를 나타내는 cycle의 줄임말이다. 이름에서부터 생체 시계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쥐 같은 포유류에서는 tim 유전자 대신 cry 유전자가, cyc 유전자 대신 Bmal1 유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 유전자들은 어떻게 우리 몸에게 시간을 알려줄까. 유전자 per, tim, clock, cyc는 각각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네 가지 단백질들이 많아졌다 적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우리 몸에 시간을 알려준다. PER와 TIM 단백질이 많아지면 각성효과가 생기면서 잠에서 깬다. 줄어들면 잠이 온다. 보통 오전 6시부터 단백질 수치가 점점 높아졌다가 정오부터 낮아져 오후 3시에 가장 적다. 낮잠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그러다 조금씩 높아져 저녁 9시에 최고점을 찍고 다시 양이 줄어든다.

밤이 깊어질수록 양이 줄어들면서 우리 몸에게 잠들 시간을 알려주는 셈이다. 여기서 CYC와 CLOCK 단백질이 유전자 per와 tim의 전사를 촉진하고 단백질 PER와 TIM 단백질이 유전자 per와 tim의 전사를 억제하면서 PER와 TIM의 양을 조절한다.

생체 시계 유전자들의 조절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24시간 주기의 생체곡선을 갖는다. 대개 아침형은 늦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PER와 TIM 단백질의수치가 올라가면서 주의력이 높다. 반면 저녁 6시가 넘어가면 단백질 수치가 떨어지면서 주의력도 급격히 떨어진다. 저녁형은 그 반대다.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져 오후 6시 이후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따라서 이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에 따라 생체곡선이 아침형과 저녁형, 그 중간형으로 나뉜다. 아침형은 초저녁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난다. 이 유형은 per2 유전자가 결정한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수면과 기상 주기가 보통사람들보다 3~4시간 앞당겨진다. 저녁 7시 30분쯤 잠들어 새벽 3시 30분에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부터 깨서 일한다며 잘난척하는 CEO는 사실 ‘돌연변이’였던 것이다. per2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세린 아미노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글리신 아미노산이 있다. 이 때문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만든 PER2 단백질은 세포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 일주기 리듬이 당겨지는 것이다. 이런 아침형 주기를 ‘전진성수면위상 증후군’이라고 하며 유전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er3 유전자는 늦잠에 관여한다. 영국 서레이대 사이먼 아처 교수는 수백 명을 대상으로 잠자는 습관을 조사해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나눈 뒤 뺨에서 세포를 얻어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늦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이 아침형에 비해 per3 유전자가 짧았다. 연구팀은 ‘수면지연 증후군’ 환자들의 혈액 샘플도 분석했다. 이 환자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침이 되면 곯아 떨어져 오후에나 정신을 차린다. 조사 결과 75%의 수면지연 증후군 환자 역시 짧은 per3 유전자 쌍을 갖고 있었다. per3 유전자가 짧은 사람은 늦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다.

faxl3도 늦잠꾸러기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인체는 하루를 길게 인식한다. 실험 결과, 정상 쥐는 하루를 23.6시간으로 인식하는 데 비해 돌연변이 쥐는 27시간을 하루로 인식했다. 하루가 길어지면 생체 시계가 느려진다. 사람과 비교하면 밤 12시를 오후 9시쯤으로 인식하고 오전 7시는 새벽 4시쯤으로 느낀다. 따라서 일찍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아침이면 일어나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생체 시계 유전자가 변하면 이렇게 수면 주기 뿐 아니라 필요한 수면 시간 자체가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쥐를 대상으로 bmal1 유전자와 cry1,2 유전자를 없앴더니 쥐의 잠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반면 clock 유전자와 dec2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2시간 정도 수면 시간이 줄어들었다. 두 유전자가 변이가 생기면 일반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지만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쥐 실험에서도 dec2 유전자 변형쥐가 정상쥐보다 1시간 적게 잠을 잤고 초파리 실험에서도 2시간 적게 자는 것이 발견됐다.



얼마나 잘지는 수면 유전자에 달렸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4시간 일하고 15분씩 자는 방법으로 하루에 여섯 번 잠을 잤다. 하루 90분의 짧은 수면시간에도 그는 결코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수상 처칠도 같은 방법으로 하루 4시간 이하를, 나폴레옹과 발명왕 에디슨도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매일 11시간씩 잤던 늦잠꾸러기로 유명하다. 짧게 자고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을 자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생체 시계 유전자가 수면 주기에 영향을 준다면 잠 유전자는 수면 시간을 결정한다.

보통 사람의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이다. 하지만 잠 유전자 중 한 가지라도 이상이 생기면 수면 시간이 평균 8시간보다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늦잠 유전자로는 ABCC9이 대표적이다. 유럽에서 7개국 425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ABCC9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필요한 수면량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최소 8시간 반에서 9시간은 자야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하다고 느낀다. 매일 11시간 잠을 잤다던 아이슈타인이 가지고 있을 법한 유전자다. 초파리를 이용한 추가 연구에서도

ABCC9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가 평균 3시간 정도 더 잤다. 이유는 칼륨 이온 통로에 있다. 신경세포는 이 통로를 통해 신경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그런데 ABCC9 유전자가 이 통로를 망가뜨려 신경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수면의 양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초파리의 잠 유전자를 연구하는 최준호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칼륨 이온 통로가 수면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이가 일어난 셰이커 유전자도 칼륨 이온 통로를 망가뜨린다. 하지만 ABCC9 유전자와는 반대로 수면 시간을 줄인다. 미국 위스콘신대 키아라 치렐리 박사는 초파리 9000마리의 평균 수면시간을 조사했다. 그 중 평균수면시간인 800분의 3분의 1만 자고도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초파리들을 발견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하루에 3~4시간만 자고도 멀쩡한 것이다. 이 초파리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셰이커 유전자의 아미노산 하나가 달랐다.



잠을 적게 자고도 멀쩡하니 과연 좋을까. 이들의 수명은 보통 초파리에 비해 짧았다. 인간에게도 셰이커와 같은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있다. 최 교수는 “잠은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평균 수면시간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며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항상성이 충족되지 못하면 반대급부로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평생 4시간의 수면시간을 고집했다는 나폴레옹도 유전자에 이상이 있지 않는 한 낮잠을 통해 평균 수면을 채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개 노인들은 잠이 없다고 한다. 잠드는 시간은 다른 연령대와 비슷해도 매일 새벽 5~6시면 깨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나이가 들면서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걸까. 나이가 들면서 수면 패턴이 변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수면 패턴은 넓은 U자형이다. 조금씩 자주 잠을 자서 평균 수면시간을 채운다. 반면 아이들은 좁은 U자형 패턴을 가진다. 평균 수면시간을 밤에 몰아서 푹 자는 것이다.





늦잠은 수면빚을 갚으라는 우리 몸의 독촉

지속적으로 잠을 못잔 것도 늦잠의 이유가 된다. 못잔 잠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8시간을 평균 수면시간으로 본다. 전날 5시간을 잤다면 그 다음날은 빚진 3시간을 합해 11시간을 자야 다음날 피곤함 없이 정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8시간씩 꼬박꼬박 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면빚은 계속해서 쌓이고 우리 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더욱 몸무림친다. 그 몸부림이 늦잠이다. 아침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 몸을 늦게 일어나게 해서 수면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말에 늦게까지 잠을 자서 일주일동안 빚진 수면을 모두 갚아버리면 되지 않을까. 기자를 예로 들어 수면빚을 계산해 보자. 기자는 하루 평균 6시간을 잔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일주일에 10시간의 수면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평균 수면시간인 8시간과 수면빚 10시간을 합쳐 토요일 밤엔 18시간을 자야한다. 밤 12시 쯤 잠을 자기 시작한다면 다음날 저녁 6시에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오래 잘 수도 없고 몸안에 있는 생체시계의 각성효과로 자고 싶어도 그렇게 자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늦잠과의 싸움은 필연적이다.

수면빚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중수면잠복기 검사다. 수면잠복기는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서 편안하게 있을 때 얼마나 빨리 잠드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최적의 상태라면 검사할 때 15~20분 정도 깨어 있는데 수면빚이 심각하면 5분 내에 잠든다. 이 시간이 짧을수록 수면빚이 많다는 뜻이 된다. 다중수면 잠복기 검사에서는 뇌파를 통해 수면의 시작시점을 파악한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파가 1단계 수면(얕은잠)으로 전환되는 시점을 확인한다.





숟가락으로 수면빚을 재보자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숟가락을 이용하는 것이다. 편안한 옷을 입고 평소 잘 때처럼 긴 소파나 침대에 눈을 감고 눕는다. 조명을 낮추고 커튼을 친다. 그리고 누운 상태에서 숟가락을 가볍게 잡고 침대나 소파의 가장자리 밖으로 손목을 걸친다. 바닥에는 숟가락을 떨어뜨리면 닿을 위치에 접시를 둔다. 시간을 확인한 뒤 긴장을 풀고 잠이 들도록 한다. 그러다 숟가락과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 깨어나 시간을 확인한다. 잠이 들면 근육이 이완돼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만약 숟가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잠이 들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상당한 수면빚을 안고 있다.

늦잠을 자는 이유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습관 중 하나를 꼽자면 커피나 차를 마시는 시간대다. 커피 한 잔에는 약 100mg의 카페인이 들어있다. 카페인의 반감기는 약 5시간이다. 따라서 저녁 6시에 차나 커피를 마셨다면 밤 11시에도 50mg의 카페인은 피 속에 떠다니면서 수면을 방해한다. 하지만 밤 늦게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잘 자는 사람이 있다. 이미 몸이 커피에 익숙해져 카페인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겨울에는 늦잠을 잘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겨울은 밤이 길기 때문이다.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밤이 길어질수록 분비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겨울에는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이 아침 늦게까지 남아있어 늦잠을 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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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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