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폭우가 쏟아지면 잎으로 우산을 만들고

동물들의 IQ 경쟁

그들의 지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훈련과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

1959년 12월 나는 미국의 마이애미에 있는 수족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돌고래가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여러가지 묘기를 부리는 것을 보았다. 참 영리한 동물이라고 감탄하면서 흥미롭게 구경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돌고래는 얼마나 지능이 발달해 있기에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훈련을 받았기에 전혀 실수하는 법이 없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돌고래가 한가지 묘기를 끝낸 다음에는 지휘자가 양동이에 담은 생선 두세마리를 손으로 꺼내어 돌고래에 주곤 했다. "아하! 행동에 대한 보수로 돌고래에 먹이를 주는구나. 훈련도 먹이(보수)를 미끼로 해서 시키겠지." 나는 이렇게 짐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79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때에도 나는 가까이에 있는 수족관을 방문, 돌고래와 물개의 묘기를 지켜 보았다. 20년전에 비해 돌고래 묘기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나는 "그동안 재주를 부리는 동물에 대한 행동학적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구나. 또 훈련방법도 많이 개발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도 돌고래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대공원 해양동물관에 가면, 태평양 돌고래가 25가지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세상 참 많이 발전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돌고래의 묘기틀 보면서

먼데 있는 돌고래가 아니더라도 지능이 상당한 동물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특히 가축중에는 지능이 꽤 높은 녀석들이 허다하다. 우리 속담에 '서당개 삼년에 풍월한다'는 말이 있다. 개도 지능이 있다고 여겼기에 그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 개는 가축 중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이다. 개는 품종에 따라, 훈련 정도에 따라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다. 예컨대 사냥도 하고, 양떼를 몰기도 하고, 장님을 인도하기도 하고, 특수물체를 탐지하기도 한다. 연전에 미국의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국무장관의 방문에 앞서 개를 앞세우고 폭발물 등을 점검하고 다녀 한국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개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동물학자들은 승마경기에 나온 말이나 밭갈이를 하는 소의 지능도 무척 발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도둑괭이의 지능도 알아주어야 한다.

사람은 언어로 의사를 소통하고 지능이 매우 높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자처한다. 분류학적으로는 사람도 포유동물 중의 영장류에 속한다. 영장류에는 사람 이외에 여러가지 원숭이들이 포함된다. 이것은 원숭이무리가 분류학적으로 또는 진화학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움을 뜻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원숭이류를 대상으로 삼아 언어와 관련된 지능문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돌고래가 너무 영리해서 그런지, 학자들 중에는 인간의 언어의 기원을 돌고래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영장류(사람 제외)의 지능 문제를 알아보자.

지능의 네 조건

지능을 말하기 앞서 영장류의 분류학적 위치와 그 구성원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 순서다. 영장류는 포유동물강(綱)의 한 목(目 )인데 학명으로는 프리메이츠(Primates)라고 표기한다. 그 어원은 라틴어의 프리무스(primus)로 '으뜸가는'이라는 뜻이다.

영장목의 동물들은 뇌의 대뇌반구가 고도로 발달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영장목은 원원아목(原猿亞目, 손과 발의 발가락 중 1~2개가 갈고리발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여우원숭이 안경원숭이가 여기 속한다)과 진원(眞猿)아목(손톱과 발톱이 모두 편평한 점이 특징)으로 나뉜다. 이 진원아목에는 신세계원숭이들(남아메리카산)과 구세계원숭이들 그리고 인류가 포함된다. 구세계원숭이 중에서 몸집이 큰 편에 속하는 성성이(오랑우탄) 흑성성이(침팬지) 고릴라가 분류학상 인류와 가장 가깝다.

지능의 개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지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올바르게 측정해야 하는가는 그동안 심한 논쟁거리였다. 원래 지능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 많이 연구됐다. 지능의 정도는 지능검사 결과, 즉 지능지수(IQ)로 나타낸다.

지능검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데이비드 웩슬러(David Wechsler)는 지능을 "한 개체를 둘러 싼 주위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것들의 도전에 대처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영장류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각종 데이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알다시피 지능의 구성요소는 무척 다양하다. 대체로 지능시스템은 다음 네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지와 그 원인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둘째 뭔가 뜻을 담고 있어야 한다(지능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동은 반드시 목적지향적이지 결코 임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셋째 합리성(지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은 모순이 없고 논리적이다)과 넷째 유용성(지능적 행동은 남들에 의해 훌륭하다고 판단된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튼 지능은 오직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측정되고 추리될 수 있다. 따라서 가치판단 능력의 평가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웩슬러의 지능개념을 사람 이외의 다른 종(種)에 적용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동물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그것을 하는 이유를 깨닫고 있는지 어떤지를 우리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 시스템으로 동물들의 행동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결정할 수 있는가.

예컨대 개미나 벌이 가까이에 있는 재료를 활용, 집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 행동을 지능적이라고 자신있게 결론지을 수 있을까.
동물학자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려고 할 때, 사람의 지능개념을 동물에 쉽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장류의 지능을 연구하는 여러가지 접근방법이 제기돼 왔다.

야외연구를 통해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야외연구다. 이 야외연구 중 한가지가 생태학적 접근이다. 이 방법을 즐겨 쓰는 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자연환경에서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지능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행동의 창조적 적응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동물이 그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이상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반응하는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능력은 동물의 지능을 추리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일부 동물들이 보여주는 융통성이 있는 행동은 분명 학습된 것이다. 학습되지 않고 환경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전적으로 얻어진 행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흰개미를 잡아 먹는 침팬지^집 안에 있던 흰개미는 날벼락을 맞고, 침팬지는 흰개미를 맛있게 「얌얌 」한다
 
과일의 껍질 속에서 알맹이를 꺼내는데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순전히 이빨을 사용해 껍데기를 깨는 (배우지 않는 기술) 동물이 있는가 하면 도구, 즉 막대기나 돌멩이를 써서 그 충격으로 껍데기를 깨는(이것은 분명 학습된 기술인데, 그 기술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지기도 한다 ) '똑똑한' 동물도 있다.

이처럼 학습된 행동, 즉 획득된 행동은 과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매우 다양하게 한다. 또한 기능도 효과적이다. 따라서 학습된 행동을 하느냐 여부는 여러가지 영장류의 지능을 추리하는 데 기준이 된다. 예컨대 대상물을 조작하는 능력의 수준, 방식, 효용 등은 지능의 훌륭한 지표(指標)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실제로 관찰된 유력한 증거가 많다. 예를 들어 몸집이 큰 원숭이(성성이 흑성성이 고릴라)는 대상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 긴팔원숭이나 보통 원숭이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고 재주가 많다. 덩치가 큰 원숭이는 매일 저녁 교목이나 관목의 가지를 이용해 집을 짓는다. 특히 성성이는 폭우가 쏟아지면 큰 잎이 있는 가지들을 끊어 우산처럼 사용한다.

반면 보통 원숭이가 편히 잠자기 위해 또는 자기 처소를 옮기기 위해 집을 짓거나 그들의 환경을 바꾸는 광경이 관찰된 적은 없다.

영리하기로 소문난 흑성성이는 잔 가지의 껍질을 베끼고 핥은 다음 흰거미와 개미의 흙무덤 집에 이 가지를 집어 넣어서 그 곤충들을 잡는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baboon)는 흑성성이와 같은 지역에서 살고 흰개미를 잡아 먹지만 먹이를 잡기 위해 잔가지나 그밖의 대상물을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흑성성이는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 동물을 향해 막대기나 돌멩이를 던진다. 반면 보통 원숭이가 대상물을 집어서 던지는 광경이 목격된 일은 없다. 하지만 긴꼬리원숭이가 밑에 있는 침입자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퇴치하는 모습은 가끔 관찰되고 있다.

(그림 1)은 뇌발달 정도의 지표가 되는 두개용량을 비교한 것이다.

영장류의 뇌의 진화는 여러가지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뇌의 절대적 크기다. 두개용량(단위 ㎠)은 사람 약 1천4백, 고릴라 4백80, 성성이 3백75, 흑성성이 3백65, 긴팔원숭이 1백이다.
 
(그림1)뇌의 크기비교

양자택일을 하게 함으로써

영장류의 지능을 평가하기 위한 두번째 접근은 실험실에서의 연구다. 여기서는 알고자 하는 여러가지 영장류의 능력이 주의 깊게 조절된 조건하에서 평가된다. 다시 말해 고도의 효율성을 가지고 정량적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연구자들은 유인원을 보통 원숭이와 사뭇 다르게 취급했다. 이를테면 유인원에게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반면 보통 원숭이는 특정 자극에 대한 특정 반응의 연합을 통해서만 재주를 익히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양자택일식 식별문제를 눈으로 보고 풀게하는 지능측정법도 소개돼 있다. 이 방식은 1949년 할로우(Harlow)라는 학자가 처음 도입쳤는데 지금도 영장류의 지능을 파악하는 고전적 측정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눈으로 보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동물은 먼저 두가지 대상물(자극)을 받게 된다. 제시된 자극들은 여러 면(색 상태 생김새 크기 등)에서 다르거나, 단 한가지 면에서 다르다. 이런 대상물들 중의 하나를 임의로 '바르다' 지정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바르지 않다'고 한다.

이때 바른 대상물의 밑에는 먹이가 숨겨져 있다. 반면 바르지 않은 대상물의 밑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실험에 참여한 영장류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느 대상물이 바른가를 결정하는 일 뿐이다. (그림 2)는 이 고전적 양자택일식 식별훈련의 한 예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2)야자택일식 식별훈련으로 영장류의 지능을 높인다.
 
할로우는 동물들이 과제를 반복하면 할수록 훈련장치를 다루는 솜씨가 향상됨을 알아냈다. 아울러 훈련장치는 보다 더 동물의 지능측정에 알맞은 학습자료가 되었다. 그는 이 훈련장치를 '학습세트'라고 불렀다. 이 학습세트로 '수업'을 받은 동물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주어졌을 때 선택의 정확성이 더 나아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학습세트를 쓰는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영장류는 뇌가 더 진화되면 될수록 학습세트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보다 나은 실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한 그 개체발생적 발달정도와 학습세트를 숙달하는 능력 사이에(한 종 안에서) 그럴듯한 순차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러 영장류에 대한 학습세트 연구를 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전이지표(轉移指標, transfer index)라는 것이 있다. 실제로 동물의 지능수준을 측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여러 동물종의 성취수준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객관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전이지표는 '전가의 보도'가 돼 준다. 전이지표란 조사대상동물의 성취도를 측정하기에 앞서 그 동물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양자택일식 식별문제를 숙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실험동물들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학습된 뒤에야 실험에 제공되는 것이다.

이 수준은 '불변'의 표준으로 미리 선정돼야 한다. 표준치는 정답도수에 대한 시행도수의 백분율(예컨대 67% 또는 84%)로 표시된다. 이렇게 미리 학습된 동물들을 대상으로 역방검사(逆方檢査, reversal test)를 실시, 이들의 지능을 비교한다.

역방검사는 본질적으로 훈련전이실험이다. 만약 어떤 동물이 이미 익힌 학습세트(예를 들면 '묘한 모양의 녹색 물체'를 선택하고 '두툼하고 둥그스름한 적색 물체'는 선택하지 않는다.)를 새로운 환경에서 재현할 수 있다면 '지식을 전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로 새로운 환경에서는 같은 동물에게 같은 문제를 제시하고 반대반응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뇌가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그 영장류는 지식을 옮기는 능력(이것은 지능의 기본적 척도)에 있어서 보다 더 기민한 것이 사실이다.

(그림 3)은 몇가지 영장류의 전이지표 자료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3)역방검사 정답 백분율(2회 실시 결과)

피아제 (Piaget)라는 저명한 심리학자는 지능을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옛 행위의 응용이라고 보았다. 이 개념은 원래 사람의 지능발달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종들의 지능발달 지표로도 널리 이용된다. 그가 어린이의 지능발달을 명백히 구분짓기 위해 세운 개념이 동물의 지능을 가름하는데도 실제로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 원숭이 유인원의 지적 능력은 여러 모로 다르다. 생후 18개월된 사람의 아기와 4년생 유인원 새끼 그리고 태어난지 6개월이 지난 짧은 꼬리원숭이의 새끼를 비교해 보자. 이들은 지능의 차이를 현저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유인원이나 짧은 꼬리원숭이의 새끼는 이때까지 주목할만한 지능발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사람의 아기는 그동안 획득한 상당한 인지능력을 계속 보유한다.

아기의 이런 특출한 능력은 그들의 언어습득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사람의 아기와 유인원의 새끼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언어능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사람의 경우 매우 일찍 나타나지만 유인원에게는 완전히 결여돼 있다.

기호를 배운 뒤에는…

영장류의 지능측정을 위한 제4의 접근은 최근에야 시도됐다. 이 접근법은 현재 동물 지능의 전체 현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재미있고 생산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이것은 언어와 비슷한 기호를 사용, 영장류에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 유인원에게 기호를 가르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인지발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는 '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유인원에게 임의의 기호체계를 실제로 지도해 줌으로써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이 이 기호체계를 습득하게 되면 인간의 언어 사용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실제로 이런 임의의 기호체계를 전수받은 유인원은 그 종에서 전에 발견된 적이 없었던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기호체계로 '무장된' 유인원이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인간의 아이들이 4~5세까지 성취한 정도의 인지발달에는 이르지 못했다.

유인원의 지적 능력은 광범위한 훈련을 통해 확실히 증진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사실은 사람의 지능발달에 있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호체계를 교육받은 흑성성이가 이룩한 지능발달은 그 의미가 무척 크다. 인지와 언어가 발달하면서 우리의 조상이 경험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발전단계들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놓고 볼 때 기호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는 무척 흥미롭다. 또한 많은 부산물을 가져다 줄 게 분명하다.

두 마리의 '똑똑한' 흑성성이, 즉 '셰르만'과 '오스틴'을 활용한 최근의 실험결과는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먹이가 숨겨진 곳을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다른 놈에게 필요한 도구를 요구하는 기호들을 완전히 익혀 놓은 상태다. 여기서 도구는 먹이가 숨겨져 있는 곳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이다.

셰르만과 오스틴은 한 장소에 수용되었다. 이들의 양식이 되어줄 먹이도 한 곳에 숨겨져 있었으며 도구도 하나 뿐이었다. 결국 이 조건은 두 녀석이 도구를 나누어 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셰르만과 오스틴이 나타낸 능력들, 즉 기호사용·협동·도구사용기술 등은 여느 유인원에게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먹이가 숨겨진 곳에서 먹이를 끄집어내려면 서로 협동해야 할 뿐더러 반드시 도구를 사용해야 하도록 실험실 환경을 꾸몄기 때문에 발휘된 것이다. 이것은 두 녀석이 서로 협조하도록 유도하고 의사를 교환하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성취되었다.

컴퓨터 단말장치를 조작하기도

그동안 동물의 지능을 파악하기 위해 시도된 수많은 접근방법이 실패로 끝났다. 그러다가 숨겨진 먹이를 끄집어 내는데 도구를 사용하게 하는 방법이 소개되면서 이 분야의 연구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 방법은 동물을 지적 세계로 유도하는 최초의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대상물에 대한 공동행동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초기의 언어를 유발했다고 생각된다. 놀랍게도 셰르만과 오스틴은 먹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기호를 사용했다. 또 그들은 차례를 정하고 대상물을 바꿀 때에도 기호를 교환했다. 오래지 않아 이런 행동들은 특별한 환경조성이나 훈련 없이도 나타났다. 동시에 몸짓, 즉 행동의 레퍼터리도 점점 더 정교해졌다. 사실 기호와 몸짓, 이 두가지 모두 동물의 지적 발달의 지표가 된다.

또 '코코'라는 고릴라는 '귀머거리들이 의사를 전달하는 손짓' 중 3백75가지를 배웠다. 이 영리한 고릴라는 컴퓨터 단말장치를 조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라나'라는 흑성성이는 유인원 중 가장 머리가 뛰어난 동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무척 길고 문법적으로도 상당히 복잡한 기호를 완전히 소화해내고 있다. 그 총명한 흑성성이는 여러가지 영어단어를 나타내는 기하학적 그림을 새긴 키를 누름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어떤 영장류가 특정 대상물을 기호로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을 일단 익히게 되면 그 동물은 다른 행동에서도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 기호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 영장류는 인간의 영역으로 거의 뛰어들어 온 셈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것은 경험의 효력에 관한 강한 의문이다. 만약 어떤 유인원의 지능이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확실히 높아지고 있다면, 그의 뇌는 고도로 융통성이 있는 기관임에 틀림 없다. 요컨대 어느 종에 있어서나 지능은 고정된 양(量)이 아니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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