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득하게 아찔한 폭포 아래로 익룡 몇 마리가 떨어지듯이 날아간다. 백악기의 거칠고 풍요로운 계곡이다. 익룡이 호숫가에서 물을 먹고 있는 거대한 목긴공룡들 사이로 지나가자, 두껍고 우둘투둘한 목 긴 공룡의 피부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익룡의 날갯짓 아래로 숨겨진 비경이 펼쳐진다. 원시의 숲과 호수에는 백악기 후반 한반도에 살았던 수많은 공룡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생생한 3D입체로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지는 이 놀라운 풍경에 감탄하는 관객들의 함성이 영화의 음향과 뒤섞인다. 이윽고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 가족의 사냥 모습이 등장한다. 멋진 사냥모습에 압도된 관객들은 숨죽이며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08년 방송돼 공룡 바람을 몰고 왔던 ‘한반도의 공룡’이 4년 만에 ‘점박이:한반도의 공룡 3D’로 다시 찾아 왔다. 전편이 픽션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다면 이번에 영화로 개봉하는 후속작은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주인공 점박이의 극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픽션이다. 그러나 등장하는 공룡의 모습과 생태는 과학적 고증을 받아 더욱 더 생생하고 현실감 있다. 우리는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의 허민 교수팀과 함께 공룡에 대한 최신연구에 기반을 두고 8000만 년 전 백악기 말 한반도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갔을 공룡들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했다.
과연 한반도에는 그처럼 많은 공룡들이 살고 있었을까?
어떤 과학적 전제로 한반도의 공룡이 탄생할 수있었을까?
8000만 년 전 한반도는 공룡들의 낙원이었다
1982년 경남 고성군의 한 바닷가. 학생들과 함께 지질조사를 하던 양승영 경북대 교수는 신기한 발견을 한다. 파도가 물러난 단단하고 평평한 바위 위로 작은 웅덩이가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다. 이 우연한 만남이 한국의 공룡 연구사를 바꿔 놓았다. 양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이 웅덩이가 공룡 발자국이라는 걸 밝혔다. 현재 이곳에서 발견된 발자국 수만 3000개 정도.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고성부터 보성, 여수를 거쳐 해남까지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약 7000여 개에 이른다. 이 많은 발자국은 이 땅에서 다양한 공룡들이 살고 죽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어떻게 이처럼 많은 공룡이 한반도에 살 수 있었을까?
지질 조사 결과 백악기 후반 한반도 남부는 경상도만 한 거대한 호수와 함께 크고 작은 호수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우리는 이런 연구결과에 기반해 아름다운 호수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채로운 한반도 공룡의 삶을 그려볼 수 있었다. 8000만 년 전 공룡의 낙원이었던 한반도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주인공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의 탄생 배경
영화는 공룡 타르보사우루스 가족의 공동 사냥장면으로 시작한다. 막내인 점박이는 아직 가족사냥에 끼지 못한다. 점박이는 형과 누나들 그리고 어미가 함께 사냥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부러워할 뿐이다. 발 빠른 형이 초식공룡을 무리에서 떼어내 몰아가면 길목의 누나들이 함께 가세한다. 쫓기던 초식공룡은 미리 약속한 매복 장소에 숨어있던 어미의 마지막 공격에 숨통을 끊기고 만다.
육식공룡이 이렇게 집단사냥을 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주인공 점박이는 백악기 말 아시아에 살았던 대형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다. 타르보사우루스는 북미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와 매우 가까운 친척이다. 타르보사우루스가 한반도에 살았다는 증거인 뼈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시 한반도는 중국, 일본과 육지로 이어져 있어 공룡들이 자유롭게 이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대형 육식공룡의 발자국은 한반도에도 타르보사우루스가 살았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아시아 공룡인 타르보사우루스를 우리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런데 과연 거대한 육식공룡이 가족을 이루고 공동사냥을 했을까? 사실 타르보사우루스 같은 대형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냥을 했는지, 아니면 그냥 시체 청소부에 불과했는지는 아직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문제다. 한편에는 커다란 덩치에 시속 20km 정도로 느린 대형 육식공룡이 적극적인 사냥을 하기는 무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류들이 시체청소부로 살아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캐나다의 앨버타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1910년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바넘 브라운은 레드 디어 리버에서 알베르토사우루스(8m 정도에 달하는 대형 육식공룡) 화석 9개를 발굴한다. 이후 이 지역을 다시 조사한 캐나다 로열 티렐 박물관의 필립 커리 박사팀은 이 화석을 남긴 무리가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했고, 단독생활이 아니라 집단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무리 중에는 거대한 알베르토사우루스에서부터 크기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알베르토사우루스까지 다양했다. 커리 박사는 이 무리를 한 가족이라고 보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집단 사냥을 했다고 추정했다.

어린 공룡은 상대적으로 몸통이 훨씬 가늘고 비율상 뒷다리가 성체보다 훨씬 길었다. 따라서 어린 공룡은 상당히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먹잇감을 끝까지 쫓아가면서 사냥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어른이 되면 두개골과 몸통이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힘은 매우 강해지지만 빠르게 움직이기는 어려운 체형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만약 여러 연령대가 섞인 가족 단위의 무리를 이뤘다면 공동 사냥을 하며 살기에 적합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사냥감을 정하고 어른 공룡들은 매복한다. 움직임이 빠른 어린 공룡들은 어른이 매복해 있는 장소로 사냥감을 몰고 먹잇감이 어른공룡 가까이 다가왔을 때 어른공룡은 강한 턱 힘으로 먹잇감을 물어 죽인다.
이와 같은 커리 박사의 과학적 가설이 주인공 공룡 가족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실제 타르보사우루스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된 몽골의 네멕트(Nemegt) 지역은 크고 작은 강들이 많아 다양한 동식물이 살기에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이런 곳을 무대로 타르보사우루스 무리가 집단 사냥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깃털달린 공룡의 출현?
화산과 지진으로 숲과 둥지를 잃고 또 다른 낙원을 찾아 이동하는 공룡 무리들. 무리에서 뒤쳐진 점박이 가족의 앞을 사납고 앙칼진 벨로시랩터 무리가 가로막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벨로시랩터의 머리에는 갈기 같은 털이 나 있다. 심지어 앞발에는 새의 날개에 붙어 있을 법한 깃털이 달려 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왔던, 뱀 같은 비늘 피부가 번들거리던 벨로시랩터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타조나 닭 같은 조류에 더 어울릴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최신 연구로 밝혀진 벨로시랩터의 본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도 공룡의 피부는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발견된 에드몬토사우루스(오리주둥이 공룡)의 화석에서 보듯 파충류의 비늘과 같은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 중국의 랴오닝 성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화석은 공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깃털 달린 공룡의 화석, 충격이었다. 이로써 공룡이 새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공룡이 온혈동물이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그 이후로 깃털 공룡의 화석이 많이 발견됐다. 마침내 2007년에는 깃털의 흔적이 있는 벨로시랩터의 화석이 발견됐다. 그래서 육식공룡 또한 깃털이 달렸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해 벨로시랩터의 모습을 깃털 공룡으로 바꿔 놓았다.

우리 학명을 가진 공룡들
전편 ‘한반도의 공룡’을 통해 우리나라의 토종공룡인 부경고사우루스와 해남이크누스가 소개되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지명을 딴 최초의 공룡이다. 하지만 아직 발자국 화석과 뼈 몇 조각으로만 그 이름이 붙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제대로 된 골격 화석이 발견되기를 많은 학자들이 바라고 있다.
그러던 차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한참 영화를 만들고 있던 2010년 11월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소장 허민)는 백악기 후기 한반도에
살았던 토종 공룡을 7년간의 발굴과 연구, 복원작업 끝에 공개했다. 조각류 공룡인 힙실로포돈류의 일종으로 보이는 작은 초식공룡으로 허민 교수팀은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라는 학명으로 국제 고생물학회에 보고했다. 국내 공룡 연구에 신기원이 된 중요한 쾌거였다.
아쉽게도 코리아노사우루스는 영화가 제작되는 도중에 발표돼 이번 영화에는 그 이름이 실리지 못했지만, 다음 ‘한반도의 공룡’ 시리즈
에 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위에 소개한 내용들 외에도 ‘한반도의 공룡 점박이’는 많은 과학적 연구와 가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런 과학적 사실을 알고 보면 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