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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도 사회적 거리두기 한다? 슬기로운 벌집 생활

가을맞이 꿀벌의 집짓기

복슬복슬한 털, 토실토실한 몸통을 한 꿀벌은 꽃 위에서 춤을 추며 동료들에게 위치를 알리는 똑똑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말벌과 달리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공격하지 않을 만큼 온순하다. 그냥 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살 궁리를 하는 생명체인 셈이다. 가을이 되면 꿀벌은 벌집 가득 꿀을 저장하며 바쁘게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벌집은 꿀을 가장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3차원 구조다. 최근 벌집 구조에 대한 비밀이 한 꺼풀 더 벗겨졌다.

 

분비물과 자연의 힘으로 탄생한 벌집 

 

 

전 세계 꿀벌의 종류는 수만 종에 이른다. 저마다 모양과 크기, 색깔과 무늬가 다르지만, 대개 몸에 잔털이 많이 나 있다. 이는 꽃가루를 잘 들러붙게 한다. 꿀벌은 몸에 붙은 꽃가루를 모아 삼킨 뒤 제3의 기관인 밀위(꿀주머니)에 보관해 두고 벌집으로 돌아와 내뱉는다. 


이때 꽃가루에 포함돼 있던 당분이 꿀벌의 효소와 만나 밀랍을 생성한다. 점성이 있는 고분자 탄화수소 중합체인 밀랍은 양초의 원료, 절연제 등에 쓰인다. 꿀벌에게는 밀랍이 벌집 건축의 핵심 재료다. 


꿀벌은 일반적으로 바위나 나무 틈새에 밀랍 재질의 집을 짓는다. 말벌류가 진흙이나 여러 번 씹어 연하게 만든 나무껍질로 집을 만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만약 벌집을 먹는다면, 말벌의 집이 종이나 흙을 씹는 식감이라면, 꿀벌의 집은 말캉한 껌을 씹는 것과 같을 것이다(벌집을 건드리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므로 직접 먹어보는 것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 


꿀벌의 집은 구조도 독특하다. 꿀벌의 집은 역학적으로 안정적이고, 공간 효율도 높은 육각형 셀을 빈틈없이 붙여놓은 구조다. 엄밀히 말하면 이 셀은 육각기둥 형태인데, 육각기둥이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어 저장한 꿀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 


꿀벌이 어떻게 이런 효율적인 집을 지을 수 있었는지 밝혀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과학자들은 꿀벌이 그저 똑똑해서 육각형 셀로 벌집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3년 이를 뒤집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꿀벌이 처음에는 원통형의 셀을 만드는데, 꿀벌의 체온에 의해 밀랍이 녹고 표면장력에 의해 자연스레 빈틈을 채워 지금과 같은 육각기둥 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doi:10.1038/nature.2013.13398


당시 이 비밀을 밝힌 부샨 카리할루 영국 카디프대 교수팀은 인접한 비눗방울들이 육각형 모양을 만들며 붙는 현상에 이를 비유했다. 효율적인 육각구조 건축법은 꿀벌이 처음부터 설계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현상, 즉 자연의 법칙이었던 셈이다. 

 

 

결정처럼 자라는 나선형 벌집


오랫동안 육각형 셀에만 주목했던 과학자들은 이후 벌집의 전체 구조에도 눈을 돌렸다. 특히 호주에 서식하는 침이 없는 꿀벌인 테트라고뉼라 카르노나리아(Tetragonula carnonaria)의 벌집 구조는 3차원으로 쌓아 올린 나선형 계단식 모양으로, 이렇게 벌집을 위로 쌓아 올려 만드는 꿀벌은 이 종이 유일하다. 


미스터리에 쌓여 있던 독특한 벌집 건축방식의 비밀은 올해 7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페인 고등과학연구원(CSIC)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수학 모델링을 이용해 찾아냈다. 연구팀은 꿀벌이 다층 구조로 집을 짓는 방식이 결정이 성장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doi: 10.1098/rsif.2020.0187


연구팀은 테트라고뉼라 속 꿀벌들이 종에 따라 나선형, 이중 나선형, 과녁형 등 다양한 형태로 벌집을 짓는다는 점에 착안해 이 같은 구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수학적 알고리즘이 필요한지 계산했다. 

 


연구에 참여한 훌리안 카트라이트 CSIC 연구원은 “모든 꿀벌은 기본적으로 (벌집을 만들 때) 알고리즘을 따른다”며 “각 꿀벌이 동일한 규칙대로 집을 지을 때 전체 패턴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육각형 셀 1개를 두고 꿀벌이 다음 2가지 규칙대로 움직이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첫째, 셀을 추가할 때는 가장자리에 있는 셀과 이웃하게 만드는데, 이때 약간 위로 배치한다. 둘째, 새로 만들려는 셀이 이미 벌집에 있는 다른 셀들과 높이가 같다면, 위로 새로운 셀을 쌓는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 두 규칙대로 지으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반경이 좁아지는, 기울기가 동일한 나선형 계단 모양 벌집이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무작위성 등의 변수(α)를 추가해 나선형 외에 다른 패턴의 벌집도 형성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 카트라이트 연구원은 “꿀벌에게는 이런 수학적 규칙이 유전적으로 입력돼 있어 종마다 살기 적합한 구조의 벌집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꿀벌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한다?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은 집안에서 굉장히 밀집된 생활을 한다. 심지어 밀랍이 녹을 정도로 온도도 높다. 세균, 바이러스 등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웬만한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꿀벌에게 있다. 바로 프로폴리스다. 꿀벌은 나무의 싹이나 수액과 같은 식물로부터 프로폴리스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것을 벌집의 작은 틈을 메우는 데 사용한다. 프로폴리스는 항균, 항바이러스 기능이 있어 유해한 미생물로부터 벌집을 사수해 낸다. 


또 꿀벌은 벌집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직접 몸을 써 환기를 시킨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2019년 유럽 ​​꿀벌(Apis mellifera)이 벌집 온도가 임계점을 넘기면 벌집 입구에서 날개로 부채질을 해 바람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고 차가운 공기를 유입시켜 벌집 전체에 환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doi: 10.1098/rsif.2018.0561  


전염병이 옮지 않도록 ‘사회적 거리두기’도 실천한다. 5월 미국 일리노이대, 독일 라이프치히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들이 스스로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정상 꿀벌과 거리를 두는 행동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doi: 10.1073/pnas.2002268117


연구팀은 일부 꿀벌에게 이스라엘급성마비바이러스(IAPV)를 감염시킨 뒤 벌집으로 되돌려 보내 그들의 행동을 추적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은 다른 꿀벌과 접촉하는 빈도가 정상 꿀벌보다 훨씬 적었다. 다른 꿀벌과 접촉해 영양을 교환하는 행동은 바이러스 감염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연구팀이 꿀벌의 면역체계를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키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 즉, 꿀벌의 이런 행동은 일종의 사회적 면역방어 반응이라는 뜻이다. 벌은 본능적으로 슬기로운 벌집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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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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