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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주까지 차지하나 - 세계 3번째 무인우주선 도킹



중국의 우주개발 성장세가 놀랍다. 지난 11월 3일 새벽,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만이 성공했던 무인 우주선 도킹 실험에 성공했다. 이미 2003년, 역시 세계 세 번째로 자국 우주선으로 유인 우주비행을 한 데 이어 2008년 우주 유영까지 성공시킨 뒤였다. 중국은 내친 김에 우주정거장마저 자체 제작해 보유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주 개발 역사에서 세계 3번째라는 말은 남다르다. 러시아와 미국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나라는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의 발전세가 뚜렷하고, 중국의 부상은 그 중에서도 눈부시다. 무엇이 중국을 우주의 변방에서 최강국의 반열에 올렸을까. 최초의 위성부터 도킹까지, 중국 우주 개발 40년 역사를 숨은 공로자 ‘창정’ 발사체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자.

 



중국의 우주개발 성장세가 놀랍다. 지난 11월 3일 새벽,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만이 성공했던 무인 우주선 도킹 실험에 성공했다. 이미 2003년, 역시 세계 세 번째로 자국 우주선으로 유인 우주비행을 한 데 이어 2008년 우주 유영까지 성공시킨 뒤였다. 중국은 내친 김에 우주정거장마저 자체 제작해 보유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주 개발 역사에서 세계 3번째라는 말은 남다르다. 러시아와 미국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나라는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의 발전세가 뚜렷하고, 중국의 부상은 그 중에서도 눈부시다. 무엇이 중국을 우주의 변방에서 최강국의 반열에 올렸을까. 최초의 위성부터 도킹까지, 중국 우주 개발 40년 역사를 숨은 공로자 ‘창정’ 발사체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자.





30여 년 뒤, 중국은 새로운 장정을 시작했다. 우주 개발 분야에서였다. 이번에도 시작은 패퇴로 보였다. 과거 대국의 지위가 무색하게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에 크게 뒤쳐져 있었다. 1970년 4월에야 첫 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를 발사했다.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띄워 달에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알드린을 착륙시키고도(1969년) 1년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 게다가 둥팡훙은 지름 1m, 무게 173kg에 72면체 형태를 한 조악한 위성이었다. 별다른 기능도 없었다. 1초에 2번씩 자전하며 지구 상공을 길쭉한 타원형 궤도로 돌고, 하릴없이 통제국에 신호만 보내다 28일 뒤 수명을 마치고 우주의 미아가 됐다.

덩치만 크고 쓸모 없는 위성이었지만, 중국은 이 위성 덕분에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궤도에 올린 나라가 됐다.

 


중국의 제2 대장정, ‘창정(長征)’ 발사체 개발

중국의 두 번째 장정은 위성을 하늘로 데려간 발사체에서 조용히 시작됐다. ‘늦깎이 위성’ 둥팡훙에는 무시 못할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둥팡훙은 앞서 네 나라가 하늘에 쏜 첫 위성들보다 월등히 컸다. 가장 컸던 것이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1호(84kg)였는데, 둥팡훙의 무게는 두 배가 무거운 173kg이었다.

위성이 크면 그만큼 발사체도 크고 추진력도 강해야 한다. 스푸트니크 등 초기 위성들이 작았던 것은 실험용 위성으로서 통신 등 최소한의 기능만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기 발사체들이 지금처럼 무거운 위성을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크지 못했기 때문이다(32쪽 지도 참조).

둥팡훙의 무게는 기존 초기 발사체 대부분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유일하게 1957년 스푸트니크 1호를 올린 러시아의 발사체 ‘스푸트니크(위성과 이름이 같다)’만이 500kg의 운반 능력으로 가능했다.

위성 발사체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에서 발전했다. 스푸트니크 발사체는 옛 소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7을 개조해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제대로 된 ICBM이 없었다. 1965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2단 분리형 미사일 ‘둥펑 4호’가 있었지만, 사정거리가 5500km로 ICBM과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의 경계에 있었다. 중국 본토에서 인도네시아를 겨우 사정권에 둘 정도였다. 그나마 개발이 덜 끝나 실전배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중국은 둥펑 4호를 개발하며 동시에 그 변형인 위성 발사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만인 1970년 위성을 싣고 우주로 올랐다. 이것이 ‘창정(‘장정’의 중국어 발음) 1호’다. 스푸트니크를 제외한 다른 어떤 나라의 첫 발사체보다 운반능력이 컸고(300kg), 둥팡훙을 쏴 올리기에도 충분했다.

 


창정 발사체의 다음 목표, 유인 우주 계획

첫 위성 발사 성공 이후, 창정은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가며 우주를 향한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발사체는 창정 시리즈의 ‘표준형’으로 통하는 2호다. 창정 2호는 유인우주비행과 우주정거장건설에 중요한 저궤도에 위성을 올리는 능력이 뛰어났다. 창정 3호와 4호도 모두 2단 로켓이던 2호에 액체 추진 로켓을 추가한, 사실상 2호의 개량형이다.

2호는 1호와 마찬가지로 장거리 미사일을 개량해 만들었다. 중국은 1호 발사가 성공한 1970년, 당시 개발 중이던 중국 최초의 ICBM 둥펑 5호를 우주 발사용으로 개량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4년만인 1974년, 처음 개발된 창정 2호A가 군사 첩보위성을 실은 채 첫 발사를 했지만 실패했고, 바로 이를 개량한 후속 모델 창정 2호C를 개발해 1975년 쏘아 올렸다. 발사는 성공이었고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34번의 크고 작은 위성 발사를 모두 성공시켰다. 2호C보다 추력을 높이고 운반능력을 늘린 창정 2호D 역시 1992년 첫 발사를 한 뒤 현재까지 14번의 발사를 모두 성공시키고 있다.

중국은 성공적인 창정 2호C와 D보다 운반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린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의 ‘소유스’처럼 하단에 4개의 중형 보조 부스터가 달린 창정 2호E를 개발했다. 2호E는 2~3t에 불과했던 운반능력의 한계를 거의 10t까지 늘렸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실시된 7번의 발사에서 2번을 실패하는 등 안정성이 문제가 돼 결국 중단하고, 대신 추력과 운반능력을 조금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운반능력 8.4t) 창정 2호F를 개발했다. 창정 2호F는 1999년 이후 지금까지 9번의 임무를 모두 성공리에 마쳤다. 바로 이 창정 2호F가 이번에 무인 우주 도킹을 한 우주실험선 ‘톈궁 1호’와 우주선 ‘선저우 8호’를 실어 올린 발사체다.

중국이 보조 부스터를 지닌 창정 2호E와 F를 개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은 이미 1986년 3월, 독자적으로 우주에 자국인 우주인이 탑승한 우주선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86년 3월 만들어서 ‘863계획’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계획을 바탕으로 1992년 1월 구체적인 유인 우주 탐사 계획을 결정했는데, 이것이 ‘921계획’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아니라 러시아 식의 캡슐형 우주선을 쓴다’, ‘단기간에 실현한다’ 등의 원칙이 포함됐다.




 

중국이 세운 이 원칙은 ‘러시아의 소유스 개발 방식을 따른다’는 뜻이었다. 당시(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세계에서 유인 우주선을 자국의 기술로 쏴 올릴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와 미국뿐이었다. 따라서 우주로 가는 ‘관문’은 두 나라의 상업용 발사체인 소유스와 우주왕복선이 양분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는 두 나라 말고도 많았지만, 모두 이 두 발사체 중 하나를 이용했다. 2009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이소연 박사 역시 소유스 발사체를 이용했다.

두 발사체는 각기 장단점이 있었다. 캡슐형인 소유스는 개발이 상대적으로 쉽고 빠른 대신 초창기 기술이라 더 발전할 여지가 없었다. 우주왕복선은 재사용이 가능하며 보다 발전된 기술이었지만 개발이 더뎠다. 중국이 921계획에서 밝힌 원칙은 결국 발전가능성보다는 빠른 시간에 두 나라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최우선시 한다는 뜻이었다(2011년 미국이 우주왕복선 운항을 중지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국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1999년 11월, 첫 번째 창정 2호F가 발사됐다. 여기에는 위성이 아닌, 이제껏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새로운 탑재체가 실렸다. ‘신의 배’라는 뜻의 ‘선저우(神舟) 1호’였다. 무게는 7.6t. 이전의 창정 2호C나 D로는 어림도 없는 초대형 탑재체였다. 이 탑재체의 목적은 사람을 싣는 것이었다. 즉, 선저우 호는 유인 비행을 위한 실험 캡슐이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창정 2호F와 선저우 시리즈는 중국의 첫 번째 유인 우주 비행을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했다. 2년 뒤인 2001년에는 동물을 실어 보냈고 드디어 2003년, 다섯 번째 우주선인 선저우 5호가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를 실은 채 창정 2호F에 실려 올라갔다. 선저우 5호와 우주인 양리웨이는 332~336km 상공에서 21시간을 머무른 뒤 무사히 귀환했다.




중국은 2005년과 2008년 각각 두 명, 세 명의 우주선을 태운 선저우 6호와 7호를 차례로 띄웠다. ‘머큐리 계획(1인)’에서 ‘제미니 계획(2인)’, ‘아폴로 계획(3인)’으로 이어지는 8년에 걸친 미국의 유인 우주 계획 역사를 압축해서 성공시킨 셈이다. 이어서 우주유영까지 성공해 미국과 러시아의 뒤를 바짝 쫓았다.





도킹 성공과 우주 정거장

선저우 시리즈의 8번째 우주선은 사람을 태우지 않은 상태로 지난 11월 1일 새벽 5시 58분(중국 시간) 발사됐다. 이 우주선은 약 10분만인 6시 8분 발사체 창정 2호F에서 분리돼 목표로 했던 200~329km 타원궤도에 들어섰고, 이후 지구를 28바퀴 공전하며 1달 전 미리 발사된 실험용 우주선 톈공 1호의 궤도(343km)에 진입했다. 같은 궤도에서 톈궁 1호와 결합(도킹)하기 위해서다.

궤도에 올랐을 때 두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117km였다. 이들이 1분에 약 468km를 이동하는 속도(초속 7.8km)로 궤도를 돌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차 하는 순간 충돌하거나 튕겨나갈 아찔한 상황이었다. 두 우주선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서서히 접근해 11월 2일 밤 11시, 52km 거리까지 거리를 좁혔다. 이후 선저우 8호는 톈공 1호와 전파를 통해 위치 정보를 주고 받으며 55분간 네 차례 궤도를 수정해 5km까지 다가갔다. 그 뒤 다시 85분 동안 3번에 걸쳐 궤도를 수정하며 400m, 140m, 30m까지 접근했다. 여기서부터 실제 도킹을 위해 뿔처럼 생긴 도킹 장비를 각각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8분 동안 천천히 거리를 좁힌 끝에 3일 새벽 1시 36분, 두 우주선은 완전히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에서 무인 우주선 도킹에 성공한 세 번째 나라가 탄생한 순간이다. 둘은 12일 동안 도킹한 상태로 궤도를 돈 뒤 분리됐다. 선저우 8호의 재진입 캡슐은 17일 지구에 돌아왔고 톈공은 내년까지 계속 궤도를 유지한다.

이번 도킹은 일종의 연습이다. 선저우 호의 진짜 임무는 사람을 태운 상태에서 이뤄질 도킹이다. 내년에 발사될 션저우 9호와 10호에 각각 3명의 우주인이 탑승해 톈공 1호와 도킹 실험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최종 목표는 아니다. 중국유인항공우주개발기구(CMSE)는 2020년을 목표로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아직 공식적으로 이 우주정거장의 모습이나 규모에 대해 밝히지 않았지만, BBC 등 외신들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러시아가 1986년부터 1998년까지 운영한 ‘미르’ 정거장(125t)의 절반에 해당하는 60t 정도 규모로 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정거장은 두 개의 실험 모듈 등 최소 5개의 우주선(모듈)이 도킹을 통해 결합된다. 현재 우주정거장은 미국, 유럽우주기구(ESA), 러시아, 일본, 캐나다가 공동으로 만든 국제우주정거장(ISS, 420t 규모)뿐이다. 과거에 운영 경험이 있는 나라도 미국과 러시아뿐이다. 완성된다면 중국은 역시 세 번째로 단독 우주정거장을 건설한 경험을 갖게 된다.







끝나지 않은 우주 개발 대장정

20세기 후반부터 일본,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까지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우주개발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 나라가 추구하는 노선은 모두 다르다. 일본은 하야부사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 위성과 H-II로 대표되는 발사체, 그리고 위성과 국제우주정거장까지 거의 전 분야 연구를 하고 있다. 인도는 2008년 한 개 발사체에 10개 위성을 동시에 싣고 궤도에 올린 기록이 있을 정도로 상업 위성 발사 기술이 뛰어나다. 최근에는 대형 발사체와 함께 탐사 위성 연구도 활발하다. 한국은 위성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최근에는 나로호 등 발사체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독 특이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과거 러시아과 미국이 밟아온 경로를 압축하며 독자적인 ‘유인’ 우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유인 우주 개발이 모든 나라가 독자적으로 해야 하는 임무는 아니다. 하지만 우주로 가는 ‘문’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미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크게 유리하다. 1970년, 조악한 ‘동쪽의 붉은 태양’ 위성과 구식 발사체 ‘창정’ 개발에서 시작된 중국의 우주 개발 대장정이 2011년 ‘신의 배’를 넘어 미래의 우주정거장 ‘하늘 궁전’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1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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