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人形) 하면 인간의 형상을 본따 만든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이 떠오른다. 그런데 다큰 어른인 과학자도 인형을 갖고 논다. 한명도 아닌 수십명 과학자들의 보살핌을 받는 그 인형은 가격만도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인형의 이름은 더미(dummy)다. 여기서 더미는 ‘말 못하는’이란 뜻을 지닌 영어(dumb)에서 유래했는데, 말이 없는 사람이나 인형을 가리키는데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시체까지 동원해 제작
과학자들이 애지중지하는 더미의 첫인상은 사실 호감을 갖기 어렵다. 얼굴은 눈·코·입 형상만 겨우 있는데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듯한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몸전체는 마치 끈으로 조정하는 인형 마리오네트처럼 부위별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더미의 관절을 움직이는 일이 특별히 재밌을 것 같지는 않다.
바비인형이나 패션매장의 마네킹처럼 예쁜 모습도 아니고, 밀랍인형처럼 살아있는 인간과 구분 못할 만큼 생동감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로봇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별다른 매력이 없는 더미를 과학자들은 왜 아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더미가 하는 일을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된다. 생명이 없는 인형 더미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일에 사용된다. 바로 자동차의 충돌시험이다.
인간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인 자동차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이지만, 잘못되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로 돌변한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사고는 사망 원인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최선의 방법은 안전운전을 통해 자동차 사고를 줄이는 일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자동차는 설계할 때부터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더미는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인간 대신 자동차에 탑승하는 일을 맡고 있다. TV를 통해 자동차의 충돌시험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미를 태운 자동차가 충돌하는 순간은 슬로비디오로 몇번을 봐도 아찔하다. 그러나 더미만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간이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실험모형인 셈이다.
더미를 통한 충돌시험 결과는 좀더 안전한 자동차를 제작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이미 완성된 신차의 경우에는 얼마나 안전한지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나라들은 더미를 이용한 충돌시험 결과를 공개하는 신차안전도평가제도(NCAP, New Car Assessment Program)를 시행하고 있다. 충돌시험에서 더미의 상해치를 기준으로 신차의 안전성을 별점으로 점수를 매겨 공개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별 5개는 상해 가능성이 10% 미만일 경우이고, 4개는 20%, 3개 35%, 2개 45% 이하며, 1개는 45%를 초과하는 자동차다. 일반적으로 소형차의 경우는 3개, 중형차의 경우는 4개 이상이면 안전한 자동차에 속한다. 충돌시험은 소비자에게 자동차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알려 양질의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 제도 때문에 제작사는 더욱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 사고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더미는 최대한 인간과 닮아야 할 것을 요구받는다. 충돌시험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더미는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더미 대부분을 생산하는 미국의 퍼스트테크놀로지 세이프티시스템사(FTSS)는 이를 위해 따로 시체 연구소를 갖추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기증받은 시체를 해부하고, 각 부위에 대한 충돌시험까지 실시해 인체의 모든 부위에 대해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한다.
더미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리, 목, 가슴, 팔, 다리 등 개별 부품이 만들어진다. 각각의 부품은 크기, 무게에서 구조와 강도까지 실제와 똑같다. 인체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뼈의 경우 실제와 같은 탄성력을 갖고 있는 금속재료를 이용한다. 각각의 부품을 결합할 때도 인간이 관절을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 사용된다. 인간의 살집에 해당하는 부분은 특수하게 제작된 비닐과 우레탄, 스펀지 등으로 만들어진다.
어린이에서 임산부까지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남녀노소 다양하다. 불행히도 사고가 난 경우 이들이 처하는 위험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성인 남성이 가슴을 부딪칠 부분에, 여성이나 어린이는 머리를 부딪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더미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성인 더미의 경우에는 크기에 따라 95% 더미, 50% 더미, 5% 더미로 나뉜다. 5%는 작은 덩치의 사람, 50%는 평균적인 사람, 95%는 큰 사람을 대표한다(미국 기준). 예를 들어 50% 남성 더미는 키 1백74cm, 몸무게 75kg으로 평균적인 덩치의 남성을 대표한다. 5% 여성 더미는 키 1백50cm, 몸무게 47kg 밖에 안되는데 이 더미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여성은 5% 정도란 의미다. 95% 남성 더미는 키 1백90cm, 몸무게 95kg나 되는데 마찬가지로 이 더미보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5% 밖에 안된다.
아이 더미의 경우에는 6개월, 12개월, 18개월인 어린 아이와, 3살, 6살, 10살된 어린이가 선보였다. 물론 겉모양만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골격과 구성성분이 나이에 따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도 태아를 갖고 있는 임신부 더미가 있다. 자동차 충돌시 산모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내기 위해서다.
자동차의 충돌시험은 단지 어디를 부딪치는지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부위에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지는지, 그리고 이 충격으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확한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더미는 첨단 센서로 무장하고 있다. 더미 하나당 보통 80개 정도의 센서를 갖고 있는데, 로드셀, 가속도계, 변위계 등의 센서가 사용된다.
자동차가 충돌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충돌할 때 가해지는 엄청난 힘은 탑승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이처럼 특정 부위에 가해지는 힘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센서가 로드셀(load cell)로 더미가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센서다. 충돌할 때는 또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튕겨지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위험은 물체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센서인 가속도계(accelerometer)를 통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몸은 충돌할 때 구부러지고, 움츠러들거나 늘어나는 목과 척추를 갖고 있다. 특히 목과 척추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변위계라는 센서를 사용해 압축되거나 휘는 정도를 측정한다. 센서들은 머리에서, 목, 가슴, 등뼈, 팔꿈치, 복부, 골반, 대퇴부, 정강이, 발 등 온몸 구석구석에 두루 설치된다.
더미를 활용하는 충돌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정면충돌시험은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 가능한 안전장비를 모두 갖춘 더미를 시속 56km 정도로 벽에 충돌시키는 시험이다. 고정된 벽이기 때문에 충격은 차에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전문가들은 시속 56km로 달리는 차량까리 정면 충돌하거나 시속 1백km 정도로 달리다가 일어나는 사고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측면충돌시험은 시속 62km 정도로 차량 옆면에 장애물을 충돌시키는 실험이다. 차가 옆에서 들이받는 사고는 실제 많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운전자의 안전성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운전석 부분만 장애물을 충돌시키는 오프셋(offset) 충돌시험도 있다.
더미는 충돌시험에 앞서 일일이 건강검진을 받는다. 부품을 모두 분해해 일일이 정상적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센서 역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이 이뤄진다. 잘못된 부품은 곧바로 새 부품으로 교체한다. 충돌시험에는 고가인 자동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꼼꼼히 준비하는 것이다.
모든 사항이 준비되면 더미가 자동차에 앉혀진다. 진공처럼 숨막히는 공간에서 충돌은 이뤄진다. 모든 충돌 상황은 컴퓨터로 제어되는데, 적막을 깨는 충돌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컴퓨터는 화면 가득 수많은 정보들을 토해낸다. 각각의 센서들은 충돌 순간 힘의 크기에서, 가속도와 충격흡수, 관통력을 측정한 수치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1천분의 1초 간격으로 충돌시 어떤 일들이 이뤄졌는지 세밀하게 분석된다.
더미는 충돌시험에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차는 완전히 부서져 다시 사용할 수 없지만 차 속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더미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는다. 더미의 가격은 어린아이라고 해도 수천만원이고, 어른은 보통 1억원이 되기 때문에 멀쩡한 새 차를 고철로 만들어야 하는 자동차 제조회사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더미는 끔찍한 시험을 통해 자동차가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한 구조로 설계되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또 안전벨트의 유용성을 알려주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현재에는 에어백의 적절한 위치, 팽창속도, 부피 등 효율적인 에어백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우주개발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더미가 활약하는 곳이 자동차 안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분석하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것이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더미다. 이 더미는 프레드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는데, 우주에서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프레드는 팔다리가 없는 토르소 조각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인공 피부 밑은 진짜 뼈로 만들어져 있다. 우주비행사는 뼈가 급격히 노화하는데 바로 노화와 방사선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다. 더욱이 프레드는 인간의 조직과 거의 똑같은 특수 플라스틱으로 된 뇌, 심장, 갑상선, 결장과 같은 장기까지 갖고 있다.
프레드는 2001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의 임무는 우주인이 받는 방사선의 양을 측정하는 일이었다. 우주에는 우주인을 위협하는 다양한 종류의 방사선이 있다. 가장 강력한 방사선은 태양계 밖의 초신성 폭발에 의해 가속된 원자핵이 만드는 은하우주선(GCRs)이다. 이 외에도 태양으로부터 오는 높은 에너지의 양자도 방사선을 내고, 밴앨런복사대 우주선이 지구 자기장 영역과 상호작용해 발생하는 방사선도 있다.
높은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은 인간의 몸을 통과하면서 세포의 기능을 파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주 방사선이 직접적으로 우주인에게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과다한 노출은 신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프레드는 4백16개나 되는 방사선 측정장치를 갖고 있다. 방사선측정기는 프레드 몸 속에 무려 35개 층으로 차곡차곡 넣어져 있다. 주요 장기에 들어있는 방사선측정기는 시간과 함께 양을 기록한다. 우주 공간에서 받는 시간과 방사선의 관계를 추정하기 위해서다.
프레드는 우주공간 속에서 인체 속의 다양한 조직과 장기로 들어가는 방사선 양을 알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결국 방사선 양과 피부 속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알아내 방사선이 몸 속을 어떻게 통과하고 영향을 주는지 정확한 해답을 제시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건물환경을 위한 버클리센터에서는 더미를 이용해 건물병증후군을 연구했다. 건물병증후군은 커다란 빌딩 내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집중도가 떨어지고 피로를 호소하며 잦은 병치레를 하게 된다. 연구팀은 건물 내의 실제 근로환경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자센서로 무장한 모니카라 이름 붙여진 여성 더미를 사용했다. 모니카는 사무실의 근로자가 실제 접하는 온도, 습도, 소리, 광도, 실내공기, 공해 등 다양한 환경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외에도 특수하게 제작된 더미는 인간 대신 수술대에 눕기도 한다. 자동으로 정밀하게 움직이는 의료장비를 개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다. 한 예로 KAIST 윤용산 교수팀은 더미를 이용해 미니 로봇을 이용한 인공고관절 수술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더미가 처음 선보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이다. 미국은 탱크나 제트기를 만들면서 사고를 대비해 충격 시험용으로 더미를 처음 사용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더미가 자동차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다. 지난 50여년 동안 더미는 자동차 충돌시험에 대부분 사용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주에서 활약하는 프레디처럼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전문화된 더미가 등장한 전망된다. 더미 역시 인간이 진화해왔듯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현재 FTSS의 과학자들은 더미가 인간의 75% 정도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는 수준이다.
미래에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로봇 안드로이드나, 기계장치와 생물체가 결합한 사이보그인 더미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래의 더미들이 컴퓨터 속 사이버스페이스로 자리를 옮겨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컴퓨터 속의 충돌시험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더욱이 시험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더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사이버 속 더미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을 위해 더욱 분주히 뛰어다닐 무표정한 인간의 친구 더미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시체까지 동원해 제작
과학자들이 애지중지하는 더미의 첫인상은 사실 호감을 갖기 어렵다. 얼굴은 눈·코·입 형상만 겨우 있는데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듯한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몸전체는 마치 끈으로 조정하는 인형 마리오네트처럼 부위별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더미의 관절을 움직이는 일이 특별히 재밌을 것 같지는 않다.
바비인형이나 패션매장의 마네킹처럼 예쁜 모습도 아니고, 밀랍인형처럼 살아있는 인간과 구분 못할 만큼 생동감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로봇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별다른 매력이 없는 더미를 과학자들은 왜 아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더미가 하는 일을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된다. 생명이 없는 인형 더미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일에 사용된다. 바로 자동차의 충돌시험이다.
인간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인 자동차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이지만, 잘못되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로 돌변한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사고는 사망 원인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최선의 방법은 안전운전을 통해 자동차 사고를 줄이는 일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자동차는 설계할 때부터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더미는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인간 대신 자동차에 탑승하는 일을 맡고 있다. TV를 통해 자동차의 충돌시험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미를 태운 자동차가 충돌하는 순간은 슬로비디오로 몇번을 봐도 아찔하다. 그러나 더미만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간이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실험모형인 셈이다.
더미를 통한 충돌시험 결과는 좀더 안전한 자동차를 제작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이미 완성된 신차의 경우에는 얼마나 안전한지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나라들은 더미를 이용한 충돌시험 결과를 공개하는 신차안전도평가제도(NCAP, New Car Assessment Program)를 시행하고 있다. 충돌시험에서 더미의 상해치를 기준으로 신차의 안전성을 별점으로 점수를 매겨 공개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별 5개는 상해 가능성이 10% 미만일 경우이고, 4개는 20%, 3개 35%, 2개 45% 이하며, 1개는 45%를 초과하는 자동차다. 일반적으로 소형차의 경우는 3개, 중형차의 경우는 4개 이상이면 안전한 자동차에 속한다. 충돌시험은 소비자에게 자동차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알려 양질의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 제도 때문에 제작사는 더욱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 사고에서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더미는 최대한 인간과 닮아야 할 것을 요구받는다. 충돌시험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더미는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더미 대부분을 생산하는 미국의 퍼스트테크놀로지 세이프티시스템사(FTSS)는 이를 위해 따로 시체 연구소를 갖추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기증받은 시체를 해부하고, 각 부위에 대한 충돌시험까지 실시해 인체의 모든 부위에 대해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한다.
더미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리, 목, 가슴, 팔, 다리 등 개별 부품이 만들어진다. 각각의 부품은 크기, 무게에서 구조와 강도까지 실제와 똑같다. 인체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뼈의 경우 실제와 같은 탄성력을 갖고 있는 금속재료를 이용한다. 각각의 부품을 결합할 때도 인간이 관절을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 사용된다. 인간의 살집에 해당하는 부분은 특수하게 제작된 비닐과 우레탄, 스펀지 등으로 만들어진다.
어린이에서 임산부까지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남녀노소 다양하다. 불행히도 사고가 난 경우 이들이 처하는 위험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성인 남성이 가슴을 부딪칠 부분에, 여성이나 어린이는 머리를 부딪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더미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성인 더미의 경우에는 크기에 따라 95% 더미, 50% 더미, 5% 더미로 나뉜다. 5%는 작은 덩치의 사람, 50%는 평균적인 사람, 95%는 큰 사람을 대표한다(미국 기준). 예를 들어 50% 남성 더미는 키 1백74cm, 몸무게 75kg으로 평균적인 덩치의 남성을 대표한다. 5% 여성 더미는 키 1백50cm, 몸무게 47kg 밖에 안되는데 이 더미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여성은 5% 정도란 의미다. 95% 남성 더미는 키 1백90cm, 몸무게 95kg나 되는데 마찬가지로 이 더미보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5% 밖에 안된다.
아이 더미의 경우에는 6개월, 12개월, 18개월인 어린 아이와, 3살, 6살, 10살된 어린이가 선보였다. 물론 겉모양만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골격과 구성성분이 나이에 따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도 태아를 갖고 있는 임신부 더미가 있다. 자동차 충돌시 산모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내기 위해서다.
자동차의 충돌시험은 단지 어디를 부딪치는지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부위에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지는지, 그리고 이 충격으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확한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더미는 첨단 센서로 무장하고 있다. 더미 하나당 보통 80개 정도의 센서를 갖고 있는데, 로드셀, 가속도계, 변위계 등의 센서가 사용된다.
자동차가 충돌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충돌할 때 가해지는 엄청난 힘은 탑승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이처럼 특정 부위에 가해지는 힘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센서가 로드셀(load cell)로 더미가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센서다. 충돌할 때는 또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튕겨지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위험은 물체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센서인 가속도계(accelerometer)를 통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몸은 충돌할 때 구부러지고, 움츠러들거나 늘어나는 목과 척추를 갖고 있다. 특히 목과 척추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변위계라는 센서를 사용해 압축되거나 휘는 정도를 측정한다. 센서들은 머리에서, 목, 가슴, 등뼈, 팔꿈치, 복부, 골반, 대퇴부, 정강이, 발 등 온몸 구석구석에 두루 설치된다.
더미를 활용하는 충돌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정면충돌시험은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 가능한 안전장비를 모두 갖춘 더미를 시속 56km 정도로 벽에 충돌시키는 시험이다. 고정된 벽이기 때문에 충격은 차에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전문가들은 시속 56km로 달리는 차량까리 정면 충돌하거나 시속 1백km 정도로 달리다가 일어나는 사고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측면충돌시험은 시속 62km 정도로 차량 옆면에 장애물을 충돌시키는 실험이다. 차가 옆에서 들이받는 사고는 실제 많지 않기 때문에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운전자의 안전성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운전석 부분만 장애물을 충돌시키는 오프셋(offset) 충돌시험도 있다.
더미는 충돌시험에 앞서 일일이 건강검진을 받는다. 부품을 모두 분해해 일일이 정상적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센서 역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이 이뤄진다. 잘못된 부품은 곧바로 새 부품으로 교체한다. 충돌시험에는 고가인 자동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꼼꼼히 준비하는 것이다.
모든 사항이 준비되면 더미가 자동차에 앉혀진다. 진공처럼 숨막히는 공간에서 충돌은 이뤄진다. 모든 충돌 상황은 컴퓨터로 제어되는데, 적막을 깨는 충돌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컴퓨터는 화면 가득 수많은 정보들을 토해낸다. 각각의 센서들은 충돌 순간 힘의 크기에서, 가속도와 충격흡수, 관통력을 측정한 수치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1천분의 1초 간격으로 충돌시 어떤 일들이 이뤄졌는지 세밀하게 분석된다.
더미는 충돌시험에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차는 완전히 부서져 다시 사용할 수 없지만 차 속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더미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는다. 더미의 가격은 어린아이라고 해도 수천만원이고, 어른은 보통 1억원이 되기 때문에 멀쩡한 새 차를 고철로 만들어야 하는 자동차 제조회사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더미는 끔찍한 시험을 통해 자동차가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한 구조로 설계되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또 안전벨트의 유용성을 알려주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현재에는 에어백의 적절한 위치, 팽창속도, 부피 등 효율적인 에어백시스템을 개발하는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우주개발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더미가 활약하는 곳이 자동차 안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분석하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것이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더미다. 이 더미는 프레드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는데, 우주에서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프레드는 팔다리가 없는 토르소 조각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인공 피부 밑은 진짜 뼈로 만들어져 있다. 우주비행사는 뼈가 급격히 노화하는데 바로 노화와 방사선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다. 더욱이 프레드는 인간의 조직과 거의 똑같은 특수 플라스틱으로 된 뇌, 심장, 갑상선, 결장과 같은 장기까지 갖고 있다.
프레드는 2001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의 임무는 우주인이 받는 방사선의 양을 측정하는 일이었다. 우주에는 우주인을 위협하는 다양한 종류의 방사선이 있다. 가장 강력한 방사선은 태양계 밖의 초신성 폭발에 의해 가속된 원자핵이 만드는 은하우주선(GCRs)이다. 이 외에도 태양으로부터 오는 높은 에너지의 양자도 방사선을 내고, 밴앨런복사대 우주선이 지구 자기장 영역과 상호작용해 발생하는 방사선도 있다.
높은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은 인간의 몸을 통과하면서 세포의 기능을 파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주 방사선이 직접적으로 우주인에게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과다한 노출은 신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프레드는 4백16개나 되는 방사선 측정장치를 갖고 있다. 방사선측정기는 프레드 몸 속에 무려 35개 층으로 차곡차곡 넣어져 있다. 주요 장기에 들어있는 방사선측정기는 시간과 함께 양을 기록한다. 우주 공간에서 받는 시간과 방사선의 관계를 추정하기 위해서다.
프레드는 우주공간 속에서 인체 속의 다양한 조직과 장기로 들어가는 방사선 양을 알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결국 방사선 양과 피부 속으로 들어가는 관계를 알아내 방사선이 몸 속을 어떻게 통과하고 영향을 주는지 정확한 해답을 제시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건물환경을 위한 버클리센터에서는 더미를 이용해 건물병증후군을 연구했다. 건물병증후군은 커다란 빌딩 내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집중도가 떨어지고 피로를 호소하며 잦은 병치레를 하게 된다. 연구팀은 건물 내의 실제 근로환경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자센서로 무장한 모니카라 이름 붙여진 여성 더미를 사용했다. 모니카는 사무실의 근로자가 실제 접하는 온도, 습도, 소리, 광도, 실내공기, 공해 등 다양한 환경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외에도 특수하게 제작된 더미는 인간 대신 수술대에 눕기도 한다. 자동으로 정밀하게 움직이는 의료장비를 개발하고 시험하기 위해서다. 한 예로 KAIST 윤용산 교수팀은 더미를 이용해 미니 로봇을 이용한 인공고관절 수술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더미가 처음 선보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이다. 미국은 탱크나 제트기를 만들면서 사고를 대비해 충격 시험용으로 더미를 처음 사용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더미가 자동차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다. 지난 50여년 동안 더미는 자동차 충돌시험에 대부분 사용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주에서 활약하는 프레디처럼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전문화된 더미가 등장한 전망된다. 더미 역시 인간이 진화해왔듯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현재 FTSS의 과학자들은 더미가 인간의 75% 정도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는 수준이다.
미래에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로봇 안드로이드나, 기계장치와 생물체가 결합한 사이보그인 더미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래의 더미들이 컴퓨터 속 사이버스페이스로 자리를 옮겨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컴퓨터 속의 충돌시험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더욱이 시험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더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사이버 속 더미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을 위해 더욱 분주히 뛰어다닐 무표정한 인간의 친구 더미의 활약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