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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지진학자

지진피해는 과학자의 책임일까





지진학자들의 책임을 판단하려면 먼저 문제가 된 사건(지진예측)의 성격을 살펴봐야 합니다. 지진과 같은 천재(天災)로 인한 손해는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고 하여 예측관련 책임과 관련해 과학자에게 손해 배상의 책임을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지진이나 태풍, 폭우 같은 자연의 변화로 일어나는 재앙은 사람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예측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예측할 수 없는 폭우로 하천이 범람하거나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천이나 산이 포함된 공원 같은 영조물을 설치하고 관리가 소홀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는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들이 다수 있습니다.

지진을 예측하는 일은 앞으로 일어날 ‘사실’이 아니라 지진학자의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에 근거한 ‘판단’에 더 가깝습니다. 의견이나 견해는 사실의 진술에 비해 신뢰의 정도가 약하므로 법률관계의 대상으로 삼기가 곤란합니다. 또한 지진을 예측하는 일은 고도로 전문적인 영역이고, 학술상의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전문가에게 상당한 범위의 재량이 인정됩니다.



가령 과학적 예측에 대한 판례는 없지만 생명과학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과학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의사의 의료행위(특히 병명이나 예후를 예측하는 것은 과학적 예측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는 제법 판례가 축적돼 있습니다. 판례들은 “의사는 진료를 행함에 있어 환자의 상황과 당시의 의료수준 그리고 자기의 지식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 그것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 한 진료의 결과를 놓고 그 중 어느 하나만이 정당하고 이와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은 과실이 있다
고 말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5라5867판결)”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법원도 전문가의 판단에 사실적인 기초가 없다거나 사회통념상 매우 부당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상 그 판단을 위법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진학자가 적절한 사실조사를 하고 건전하고 시기에 적절한 판단을 했다는 실제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에는 예측한 결과가 실제와 다르다고 해서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지진학자가 택한 가설이나 학설이 기존의 다수 견해와 다를 때는 어떨까요. 이 때도 학문은 다양성 속에서 자유경쟁을 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그 본질이므로 ‘존중되는 소수(respectable minority)’의 법리 에 따라 지진학자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그럼 이번 사건에 더 집중해 살펴봅시다. 만일 학자의 예측이 법을 어겼다는 평가를 받으면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형사상으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형사와 민사 소송은 그 관점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형사상으로 과실 인정의 기준은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필요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반면 민사상으로는 피해자 구제의 측면이 중요시됩니다.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 누구에게 피해를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한지를 따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민사상 책임의 근거가 될 만한 과실이라 하더라도 형사책임의 근거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이 깊게 드는 경우라도 과학적 증명이 곤란한 지진예측의 특수성을 이유로 형사책임을 묻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 이 사건에서 손해배상이나 형벌을 받게 되느냐는 문제는 과실의 개념이 개방적이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약관계가 있는 경우가 계약관계가 없는 경우보다 주의의무가 강합니다. 가령 정밀한 예보를 해주기로 하고 돈을 많이 받는다면 받는 돈에 비례해 주의의무가 커집니다. 신뢰를 좀 더 부여했기 때문에 그 만큼 주의의무가 커지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보다 확신을 말하는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지진 예측은 과학적으로 확실하지 않고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기는 곤란합니다. 지진학자들은 현재까지 지진의 예측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가능성을 예측하는 수준이고, 완전한 예측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구를 감싼 지각의 성질과 움직임이 각기 달라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지진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완전한 법칙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될 만 한 점은 6개월 전부터 약한 지진이 계속되고 있었고 따라서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의 기소대로 확신적이고 단정적으로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면, 또는 가능성에 불과한 사항을 확신으로 바꿔 전달을 했다면 그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7명의 지진학자는 공무원과 함께 민관공동조사단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의 신뢰가 더 컸던 것도 주의의무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만일 기초사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한쪽으로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를 해 이를 들은 사람들이 대피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안심을 하게 만들었다면 과실을 인정할 여지가 있습니다.



[2009년 4월 7일 이탈리아 지진 이후 열린 지진 언론 컨퍼런스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귀도 베르토라소 도시보안책임자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진학자들에게 과실이 인정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측에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지진학자들이 사전에 조사를 하고 상당한 고려를 한 끝에 나온 것인지 여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재판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사항에 대한 판단은 과학자들로 구성된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맡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도의 전문적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지진학회 소속 지진학자들이 이탈리아 피소 과학자들의 구명운동을 하고 있어 과학적 예측에 대해 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지진학자들의 과실을 부정하는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고 법원도 이에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법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전에 충분한 기초 사실조사를 하고,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해 현상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원래 과학적 예측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합니다.



[지진예보와 마찬가지로 기상예보도 오보를 했다고 해도 주의를 기울여 예측을 한 이상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단, 재난을 예측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통보를 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과학자가 연구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국가연구개발사업과 관련해 연구 데이터나 연구결과를 허위로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왜곡하는 경우, 타인의 아이디어나 연구내용, 결과를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표절의 경우,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를 하는 경우, 그 밖에 과학기술계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윤리위반으로 제재를 하고 있습니다(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4조, 연구윤리 확보 및 부정행위 방지에 관한 규칙 제3조).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해서 금품을 받는 경우는 채무불이행 내지는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생명과학기술에 관한 연구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 인간복제의 금지 같은 일정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지진과 마찬가지로 오보를 할 경우 피해가 큰 분야가 기상입니다. 기상청이 오보를 했다고 하더라도 통상적인 사실 조사를 하고 주의를 기울여 예측을 한 이상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폭우 같은 재난을 예측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통보를 하지 않았다면 기상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상청으로부터 통보를 받았음에도 적절한 재난 통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해당 소방방재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측된 정보를 정확히 알리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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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글 김상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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