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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고대 화장품은 현대 화장품과 다르다? 같다!

클렌징크림, 선크림, 마스카라, 립스틱, 파운데이션, 파우더. 현대 여성이 사용하는 화장품의 가짓수는 수십개가 넘는다. 가짓수만큼이나 갖가지 효능과 효과를 자랑하는 화장품은 현대 과학기술의 집약체라 할 만하다. 현대 화장품은 고대 화장품보다 얼마나 진화했을까. 고대 이집트와 조선시대로 돌아가 고대 화장품의 면모를 살펴보고 현대 화장품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변색이나 변태를 하지 못하는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화장이라는 도구와 기술을 사용해 왔다. 화장품을 뜻하는 ‘cosmetics’라는 영어 단어 또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나타내는 희랍어 ‘kosmos’에서 유래한다. 얼굴과 몸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화장이라는 행위는 우주의 순리와 질서를 따르는 작업인 셈이다.


염색약에 페디큐어까지 이집트 화장

인류 최초의 화장은 기원전 7500년 이집트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화장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전인 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지방의 유적지에서 발견한 물감 찌꺼기가 남아 있는 조개껍데기를 분석했는데, 네안데르탈인의 화장 용기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조개껍질의 색소들은 복잡한 방법으로 가공한 물질이었다. 이집트의 화장은 처음엔 종교적인 목적과 신체 보호라는 기능을 위해 시작됐다. 그러다 점차 치장을 위한 화장이 발달하고 이는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정점을 이뤘다. 클레오파트라의 피부 관리와 화장 기법은 지금까지도 그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 김주덕 숙명여대 향장미용전공 교수는 “클레오파트라의 화장법을 보면 당나귀 젖을 이용한 스킨케어 기법이나 메이크업을 돋보이게 하는 세련된 장신구,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표현하는 가발, 그리고 항유를 이용한 아로마 기법에 이르기까지 완벽에 가까운 토털 코디네이션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화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눈. 여자와 남자 모두 콜(korl)이라고 부르는 먹으로 눈 주위를 진하게 칠했다.
 

여기엔 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팀이 지난해 ‘분석화학’ 1월호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의 눈 화장품에는 소금납이 들어 있었다. 이 물질은 산화질소를 만들어내는데, 면역력을 높이고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납 성분은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콜에 들어 있는 납은 농도가 매우 낮아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그 외에 이집트 여인들은 강렬한 태양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오일을 바르고, 화려한 가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 염색기술과 비듬약도 사용했다. 현재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완벽한 화장법이었던 셈이다. 이집트 중기 왕조의 네페르티티 여왕은 청색 아이라인에 빨간색 매니큐어와 페디큐어까지 칠하고 있는 것이 분묘 발굴 결과 확인됐다.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준 이유는?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지는 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김새지 않도록 두껍게 봉하여 네 이레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을 뿐더러 윤지고 옥 같아진다. 얼굴과 손이 터서 피가 나거든 돼지발기름(豚趾脂)에 괴화(槐花)를 섞어 바르면 낫는다."

-빙허각 이씨 ‘규합총서’

우리나라 선조들은 예부터 흰 피부를 선호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100일 동안 햇빛을 피하고 쑥과 마늘을 먹어 웅녀가 됐다. 쑥과 마늘에는 미백 효과가 있다. 태평양종합산업(현재 아모레퍼시픽)의 고(故) 전완길 대표는 저서 ‘한국화장문화사’에서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쑥을 달인 물에 목욕을 하고, 짓찧은 마늘을 꿀에 섞어 발라 미백 효과를 봤다”며 “단군신화는 백색피부 가꾸기를 실천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흰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 신라시대에는 백분(쌀가루 분)과 연분(납가루 분)을 만드는 제조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다. 신라 때는 색조 화장이 유행해 색분을 만들어 쓰고 홍화로 만든 연지로 볼과 입술을 치장했다. 남성인 화랑들 역시 여성 못지않게 화려한 장신구와 화장으로 치장했다. 신라의 분 제조 기술은 무척 뛰어나 일본 고(古)문헌에 신라의 한 승려가 서기 692년에 일본에서 연분을 만들어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종래의 백분은 주로 쌀 가루였다. 이 외 분꽃 씨나 조개껍질을 태워 빻은 것, 백토, 활석의 분말 따위로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재료는 부착력과 퍼짐성이 약해 분바르기 전에 족집게나 실면도로 안면의 털을 일일이 뽑은 뒤 백분을 물에 개어 바르고서 20~30분간 잠을 자야 곱게 발라졌다.

색조 화장으로는 볼과 입술, 이마를 붉은색으로 치장하는 연지와 곤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인의 조건 중 ‘삼홍’이라 해서 볼, 입술, 손톱이 붉어야 했다. 조선시대에는 뺨에 혈색을 줘 여성스러움과 화사함을 보여주고 젊고 발랄한 건 강미를 표현했다. 연지를 그리는 화장은 기원전 1150년경 중국의 은 주왕 때부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기원후 5~6세기 고구려 벽화에 볼과 입술이 빨갛게 발라져 있는 여인의 그림이 남아 있다.



동서불문 최고 미인은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고대 이집트와 조선시대 화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도 사람들은 지금 못지않은 다양한 화장품을 사용했다. 재료 중 상당수는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

또 동서양 모두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그리고 가지런하고 또렷한 눈매를 추구했다. 때문에 화장품 재료는 동서양이 비슷하다.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분은 각 지역에서 나는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쓰다가 나중에는 납 가루를 공통적으로 썼다. 입술 화장에 사용하는 주사라는 광물도, 눈매를 강조하기 위해 나무를 태워 만든 먹도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지내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서양이나 모두 비슷 비슷했다는 얘기다.

형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네이처’ 11월 4일자 연구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여성들도 현대여성에 못지않은 품질의 화장품을 사용했다. 지난해 여름 런던 부근의 한 고대 로마 사원 유적지에서 발견된 서기 150년경 만든 크림은 통의 뚜껑을 열면 크림을 떠내던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리차드 에버쉐드 교수팀이 이 크림의 내용물을 분석한 결과 녹말과 동물 지방이 각각 40% 정도 들어 있었다. 녹말은 지방의 번들거리는 느낌을 줄이기 위해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화장품에서도 녹말이 같은 용도로 쓰인다. 또 이 화장품에는 석석, 즉 주석의 원석이 포함돼 있다. 이는 크림을 희게 만들기 위한 처방이다. 실제 연구자들이 이 처방으로 크림을 제조했더니 흰색이 나왔다. 고대 로마의 여성들이 흰 피부를 선호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화장품 중에는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것도 있다. 콜드크림이라 불리는 마사지 크림은 이집트의 크림을 개량시켜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것이다. 피부의 수분 증발을 막고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기능이 있다. 추운 겨울에 사용하거나 혹은 바르면 피부가 시원해지기 때문에 콜드(cold)크림이라 불렸다. 이 크림은 현재도 사용된다.

하지만 일부 재료는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됐다. 대표적인 것이 많은 유럽 여성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납 가루분과 수은으로 만든 승홍이다. 승홍은 피부 외피를 벗겨내 주근깨, 여드름, 기미, 뾰루지 같은 잡티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피부에 화상 자국을 남기고 얼굴색을 황색, 검은 녹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색시켰다. 또 이를 검게 만들었으며 노화를 촉진시켜 노년이 되기 전에 얼굴을 쭈글쭈글해지게 만들었다. 당시 여성들은 이런 분의 무서움을 알고 납 가루분과 승홍을 낮에만 사용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밀가루를 데우거나 물에 탄 것을 얼굴에 칠해 진정효과를 줬다. 하지만 납 가루분과 승홍은 1866년 산화아연으로 만든 가루분이 탄생할 때까지 오랫동안 사용됐다.
 
최근엔 먹는 화장품(이너뷰티) 같은 새로운 형태의 화장품도 등장해 화장품의 영역이 의약품의 기능을 넘어 식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➋ 고대 로마의 여성들도 현대여성에 못지않은 품질의 화장품을 사용했다. 아래 사진은 실제로 재현한 크림.




화장품의 차이는 피부 장벽 뚫는 기술의 차이

하지만 현대의 화장품과 고대의 화장품이 단순히 재료가 같다고 해서 같은 화장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피부 속으로 들어가 효과를 내는 능력은 재료를 가공하고 배합하는 기술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화장품은 국제화장품원료사전(ICID)이 인정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그래서 브랜드가 달라도 용도가 같다면 전체의 반 이상은 같은 재료가 들어간다. 하지만 같은 스킨이라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있고, 1만 원 미만의 중저가 제품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유용성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원료라도 고가의 화장품은 순도가 높고 피부 안전성이 높은 성분을 혼합해 피부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어야 좋은 화장품이란 얘기다.

현대화장품과 고대화장품도 유용성에서 차이가 난다. 과거나 지금이나 피부 보습과 영양을 위해 피부에 콜라겐을 바르지만 과거엔 돼지기름을 직접 발랐고 지금은 화장품의 형태로 바른다. 하지만 효과는 다르다. 우리의 피부는 외부자극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웬만한 물질은 잘 통과하지 못하도록 층층이 복잡한 구조의 장벽을 마련해 놨기 때문이다. 현대 화장품은 입자의 형태를 피부와 같은 라멜라 구조 로 만들어 흡수를 돕는다. 피부는 같은 구조의 입자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대 화장품은 물과 기름을 섞어주는 계면활성제를 적절히 활용한다. 계면활성제는 화장품의 부착력과 발림성을 높이는 기능도 갖고 있다. 또 화장품 입자의 크기를 나노 수준으로 줄여 각질층을 뚫고 진피까지 도달할 수 있게 만든다. 단 입자가 지나치게 작으면 피부는 물론 혈관까지 뚫고 가 몸 안에 축적되므로 적절한 크기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먹고 마신다, 화장품의 끝없는 진화

화장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달라졌다. 요즘 소비자들은 로션 하나를 발라도 미백효과나 주름 개선, 자외선 차단 같은 부가 기능이 첨가된 제품을 원한다. 이른바 기능성 화장품이다. 여기엔 새로운 원료 개발이 우선적으로 이뤄진다.

대표적인 미백제인 알부틴은 하이드로퀴논에 글루코스라는 당이 결합된 물질로 멜라닌 색소를 만드는 티로시나제 효소의 활성을 저해해 멜라닌 생성을 억제한다. 주름 개선 효과가 있는 레틴A는 1973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클리그만 박사가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개발했다가 환자들의 얼굴에서 피부 탄력과 주름이 개선되는 뜻밖의 효능을 발견하면서 화장품에 결합했다. 레틴A는 각질층에 쌓인 늙은 세포는 떨어져 나가게 하는 반면 젊은 세포는 성장을 촉진시켜 피부를 젊은 세포로 회복하게 만든다. 레티놀은 레틴A에서 만든 유사품으로 공기 중에 쉽게 산화되는 단점이 있으나 피부 자극은 상대적으로 적다.

최근엔 줄기세포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도 출시되고 있다. 줄기세포는 살아 있기 때문에 화장품에 넣으면 곧 죽는다. 때문에 줄기세포 화장품에는 줄기세포 배양액 성분 중 피부재생 효과가 뛰어난 성분만 유전공학 기술로 만들어 넣는다. 아직 안전성과 효과가 모두 밝혀지진 않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 관련 상품은 계속해서 출시될 예정이다. 최근엔 먹는 화장품(이너뷰티) 같은 새로운 형태의 화장품도 등장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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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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