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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흑백기후요리사, 기후위기 시대, 오직 ‘재료’로 승부하라!

     

    2024년 하반기를 강타한 넷플릭스 요리 리얼리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재야의 고수 ‘흑수저’와 스타 요리사 ‘백수저’ 총 100명의 요리사가 출연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고, 두 명의 심사위원은 오직 맛을 기준으로 이들의 합격과 탈락을 평가했다. 과학동아는 맛이 아닌, ‘미래의 식재료’를 기준으로 요리를 다시 돌아봤다. 합격과 탈락이 새로 쓰인다.
     

     

    01. 골다공증 랍스터마라크림짬뽕

     

     

    흑백요리사 4라운드는 흑백 혼합 팀전으로 이뤄졌다. 각 팀은 판매할 메뉴를 구성하고 높은 매출을 내야 했다. ‘억수르 기사식당’ 팀의 전략은 비싼 식재료로 만든 비싼 요리였다. 억수르 기사식당 팀이 선보인 메뉴, 랍스터마라크림짬뽕의 가격은 무려 4만 2000원. 바닷가재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간 요리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은 먹방 크리에이터들은 환호했다.

     

    바닷가재는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 성장하며 장수하는 동물이다. 이런 바닷가재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이 기후위기와 함께 등장했다. 해양의 산성화다. 세계기상기구(WMO)가 2024년 발표한 온실가스 배출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의 4분의 1 가량이 해양으로 흡수된다. 바닷물에 녹아든 이산화탄소(CO2)는 물(H2O)과 반응해 탄산(H2CO3)을 만든다. 이때 만들어진 탄산은 불안정해 곧바로 이온화된다. 이 과정에서 수소 이온(H+)과 탄산수소 이온(HCO3-)이 만들어지는데, 수소 이온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해양 산성화다.

     

    해양 산성화가 일어나면 바닷가재는 소위 말하는 ‘골다공증’에 걸린다. 바닷가재의 뼈는 바닷가재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 즉 외골격인데 해양 산성화로 이 외골격이 약해지고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바닷가재의 외골격은 주로 탄산칼슘과 키틴질로 구성돼 있다. 탄산칼슘은 외골격을 단단하게 만들어 외부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바닷가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탄산칼슘은 탄산 이온과 칼슘 이온(Ca2+)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해양 산성화가 발생하면 바닷물의 수소 이온 농도가 증가해 탄산 이온(CO32-)의 농도가 줄어든다. 수소 이온이 탄산 이온과 결합해 탄산수소 이온으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즉 해양이 산성화되면 탄산칼슘 농도가 줄어 탄산칼슘 골격을 가진 생물들이 성장하고 껍데기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해양 산성화는 바닷속 이산화탄소 축적도 가속화한다. 탄산칼슘을 만드는 과정은 바다 속 이산화탄소를 외골격에 고정하기에, 해양 생태계로부터 이산화탄소를 격리하는 효과가 있었다. 바닷가재뿐만 아니라, 홍합과 대합, 가리비와 같은 조개류의 껍데기도 탄산칼슘 등으로 구성된다. 모두가 짬뽕에 흔히 사용되는 재료들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바다에 녹는 이산화탄소가 많아져 해양 산성화가 심각해진다. 약 5600만 년 전, 탄산칼슘을 골격으로 하는 해양 생물종의 대량 멸종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지구는 신생대 팔레오세-에오세 최대온난기(PETM)로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  

     

    현재(기사 작성일 11월 10일 기준) 바닷가재 한 마리 가격은 약 3만 원. 머지않은 미래에 바닷가재와 조개류의 생존율이 감소한다면 ‘랍스터마라크림짬뽕’의 가격은 얼마가 될까. 더 비싸지기만 한다면 다행이다. 대량 멸종을 면할 수 있다면.

     

    02. 엎친데 덮친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

     

     

    2라운드에서는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가 똑같은 주재료를 사용해 일대일 승부를 겨뤘다. 요리사 ‘고기깡패’와 에드워드 리가 가장 먼저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바로 묵은지. 묵은지는 6개월 이상 저온에서 숙성한 오래된 김장 김치다. 고기깡패는 묵은지 베이컨 삼합을, 에드워드 리는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를 선보였다. 심사 결과는 2:0.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는 기후위기에 정통으로 직면한 요리이기도 하다. 김장 김치의 핵심 원재료인 배추의 적절한 생육 환경은 평균 기온 15~20℃이기 때문이다. 여름철 최고 기온이 25℃ 이하인 강원도 고랭지 지역에서 여름 배추를 재배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이 계속해 감소하고 있다. 

     

    여름 배추는 2090년 이후엔 한국에서 재배되지 못한다. 농촌진흥청은 2023년 12월 “2090년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0헥타르”라며 “70년 내로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되는 여름 배추는 사라진다”고 발표했다. 농촌진흥청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작물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결과다. 

     

    국산 배추가 사라진다면 외국산 배추를 수입하면 될까? 수입이 지금처럼 원활할 것이라 속단할 수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기온이 1.5캜 오르면 식량 안보 피해는 630억 달러(약 81조 9800억 원) 늘어난다. 식량 안보란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오늘날 기후위기나 전쟁 등은 식량 문제를 국가적 안보 문제로 확장했다. 식량 안보를 위해 타국이 식량 수출을 언제든 금지할 수 있다.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 속 위기의 식재료는 배추뿐만 아니다. 샐러드의 비밀병기는 다름 아닌 감. 안성재 심사위원은 “단맛이 좋았다. 감이 이 음식의 맛을 조화롭게 해주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감도 기후위기의 한가운데 있다. 2023년 단감 생산량은 전년 대비 무려 32% 감소했다. 그 결과 2023년 10월, 단감 중 상서 품종은 10kg 평균 가격이 5만 1916원으로 2022년(3만 2722원)보다 158.7%나 상승했다. 기후변화로 탄저병과 같은 돌발 병해충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탄저병은 과일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식물 탄저병은 인간 탄저병과는 다른 것으로, 콜레토트리쿰이란 곰팡이에 의해 일어난다. 병균이 과일 조직에 침입했다가 빗방울에 의해 다른 식물체로 전파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병균이 잘 자라는 온도가 28℃라 한국에서는 고온 다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7월 말부터 9월 초순에 탄저병이 크게 유행한다. 

     

    에드워드 리는 “저는 미국에 살고, 미국 요리사지만 제 가슴 속 (정체성은) 한국 사람이다. 유니크한 한식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김장 배추가 나지 않는 70년 뒤에도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가 ‘한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는 보기만해도 군침이 도는 다양한 요리가 등장했다. 하지만 미래에는 기후위기로 식재료가 지금같이 생장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이들 요리는 비싸지거나 없어질 것이다.

     

    03. 밤 티라미수 대신 도토리 티라미수

     

     

    8화에서는 7화 ‘흑백 팀전’에서 탈락한 요리사들에게 패자 부활의 기회가 주어졌다. 편의점 재료로 요리를 완성해야 했던 이 편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나폴리 맛피아’의 밤 티라미수였다. 비스킷 과자, 크림, 맛밤을 활용해 만든 밤 티라미수에 심사위원은 “호텔에서 몇만 원 하는 디저트 같다”며 극찬했다. 

     

    밤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21년 “밤나무가 1헥타르당 연간 6.9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밤나무와 밤 역시 기후위기 속 위기의 식재료다. 고려대, 산림청, 산림조합중앙회 등 공동연구팀은 2014년 “밤나무는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기온 증가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oi:10.15531/KSCCR.2014.5.2.127 밤나무는 온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15~25℃일 때 가장 잘 자라고, 열매도 더 많이 맺는다. 하지만 기온이 너무 높거나 낮으면 성장이 어렵다. 기후위기는 더 뜨거운 여름, 더 추운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기온이 상승하면 밤나무의 개화 시기가 달라지고 꽃이 떨어지는 시기가 당겨져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는다. 밤나무가 계절을 잘못 인식해 비정상적인 시기에 열매를 맺고 밤이 다 익기도 전에 열매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폭우와 가뭄과 같은 극단적인 강수 패턴은 밤나무의 산소, 수분 공급을 방해한다. 밤이 특산물인 전남 광양은 2023년, 비가 너무 자주 온 데다가 폭염까지 이어져 밤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밤나무 해충 중 가장 대표적인 밤바구미는 밤 내부에 알을 낳고 유충이 자라며 밤을 갉아 먹는다. 밤바구미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기후위기로 더 덥고 습한 기후가 이어진다면 밤은 밤바구니에게 양보해야 한다. 

     

    한편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밤나무, 소나무 등의 수종이 참나무속의 나무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나무속은 도토리를 맺는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이다. 머지않은 미래, 밤 티라미수 대신 도토리 티라미수를 먹게 될 수도 있다. 맛있을까?

     

    04. 탄소 먹는 가자미 미역국

     

     

     

     

     

    7화 ‘흑백 팀전’에서는 해산물을 주제로 흑수저, 백수저 요리사들이 각각 팀을 꾸려 총 100명의 심사위원을 위한 요리를 200분 안에 준비했다. 요리 경력 30년 차의 최현석 요리사가 리더를 맡은 백수저 팀은 ‘가자미 미역국’을 준비했다. 그런데 가자미는 넣지 않은.

     

    가자미 미역국은 익숙한 한식을 양식 요리법을 활용해 재해석한 요리였다. 백수저 팀은 광어를 70℃에 쪄내고 그 옆으로 미역소스를 얹었다. 미역소스는 들기름에 볶은 미역을 물에 넣고 끓인 것을 믹서기에 간 뒤 생크림을 첨가해 끓여냈다. 쉽게 말해 미역국을 갈아 생크림을 넣고 끓인 것이다. 광어 위에는 가리비 관자와 무를 얹었다. 관자는 얇게 썰어 팬에 구웠고 무는 간장에 조려냈다. 

     

    백수저 팀을 승리로 이끈 가자미 미역국은 기후위기 시대, 맛과 건강, 그리고 지구의 미래까지 잡을 수 있는 ‘1타 3피’의 요리다. 주 식재료인 미역이 기후위기 시대에 주목받는 식재료 중 하나기 때문이다.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는 자라는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한다. 해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몸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만든다. 이때 빛 에너지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포도당과 산소를 생산한다.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해조류 조직에 저장된다. 이렇게 해조류는 1헥타르당 3.36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조류 양식장은 먹거리 생산을 하는 동시에 기후변화를 늦추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해조류를 원료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해 화석 연료를 대체하려는 구상도 진행 중이다. 해조류는 주로 탄수화물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분해해 단당류로 만든 뒤, 미생물로 발효하면 단당류가 에탄올로 전환된다. 해조류는 육상 작물보다 효소 분해가 쉬운 편이라, 해조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은 미래의 청정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미역 서식지가 북진하고 있다. 미역은 온대성 해조류다. 10~20℃ 수온에서 자연 서식해 그동안 한국의 전 해안에 분포했다. 하지만 한국의 바다는 계속해 뜨거워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2024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해역의 표층 수온은 1968년부터 2023년까지 56년간 1.44℃ 상승했다. 2023년 연평균 표층 수온은 19.8℃로, 해역 수온 관측 사상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끝이 아니다. 한국 연근해(육지에 가까운 바다) 수온은 2100년까지 평균 2~4℃ 내외 상승할 전망이다. 

     

    미역을 활용한 요리는 앞으로 더 각광받을 듯하다.다만 한국 해안에 미역이 사라지기 전까지 말이다. 미역을 더 많이 먹는다면, 수온 상승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오늘 점심엔 미역국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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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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