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50억년 전 팽창하는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수소는 DNA의 이중나선,그리고 인체 60조개의 세포들을 분리해주는 세포막이 존재하는 근거다.그런데 만약 초기 우주의 팽창 속도가 좀 느려져 수소가 대부분 헬륨으로 바뀌었다면?
자연과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간행물의 하나인 네이처에서 23년이나 편집장을 지낸 매독스. 20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이 실용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과학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요한 발견이라고 그는 말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태양계 중심으로부터 밀어내고 태양을 그 자리에 놓음으로써 시작된 우주구조에 대한 탐구는 아직도 완결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1953년에 두 무명의 과학자인 왓슨과 크릭이 발표한 ‘DNA 구조’는 유전의 메커니즘을 포함해서 생명 현상의 기본 원리를 송두리째 드러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공학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DNA는 왜 두개의 나선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DNA 구조에서 두개의 나선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일까.
로댕 조각이 보여주는 이중나선의 의미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알아내기 직전, 저명한 화학자인 폴링(1954년 노벨 화학상)은 삼중나선 모델을 발표했다. 이 모델에서 그는 가운데에 당-인산 골격을 두고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의 염기를 바깥쪽에 놓았다.
반면 왓슨과 크릭은 A-T, G-C 쌍이 수소결합으로 짝을 이루는 경우에만 두쌍이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알아냈다(과학동아 2000년 9월호 가상실험실 참조). 폴링이 몰랐던 대단히 중요한 점은 DNA 내에서 이들 염기가 제멋대로 짝을 짓지 않고 A와 T, 그리고 G와 C가 쌍을 이뤄 지름이 20옹스트롬(1옹스트롬= 10-10m) 정도로 일정하면서 기다란 이중나선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DNA는 길이가 지름의 1백만배 정도 되는 가늘고 긴 꼬인 새끼줄 같은 구조인데 염기쌍의 크기가 다르다면 그처럼 매끈하고 아름다운 구조를 가질 수 없다.
이처럼 수소결합을 통해서 하나의 나선은 상보적인 또하나의 나선과 협조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DNA 이중나선 구조의 의미는 어찌 보면 로댕의 조각 ‘대성전’(Cathedral)이 보여주는 두손의 협동이다. 이 두손은 다른 두사람의 손이다. 한사람의 두손으로는 대성전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http://plaza.snu.ac.kr/~maldi/index3.html에서 자연과학개론프로젝트 20. 로댕의 이중나선 참조). 로댕의 조각에서 다른 두사람의 두손이 무엇인가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듯, 생명의 분자 DNA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두개의 나선 안쪽에 자리잡은 염기쌍들이다.
DNA가 하나의 나선으로 돼있거나 폴링의 모델에서와 같이 염기들이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면 염기들은 너무 쉽게 변이를 겪게 될 것이다. 염기쌍이 안쪽에 위치한 왓슨-크릭의 구조에서라야 생명의 핵심 정보인 염기서열이 보전돼 자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또한 한쪽 나선의 염기에 오류가 생겨도 상대방 나선에 들어있는 짝염기로부터 원래의 정보를 되찾을 수도 있다. 이 이중나선 구조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수소결합이다.
수소결합은 눈송이에서 물분자들을 붙잡아주는 결합이다. 눈송이는 손등에 떨어지면 녹는다. 약간의 열에너지에 의해서도 수소결합은 쉽게 끊어지고 여섯개의 물분자는 해체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체온 조건에서 이중나선을 붙잡아주는 수소결합도 쉽게 끊어지고 두개의 나선은 벌어진다. 그렇지 않고 두개의 나선이 수소결합보다 잘 끊어지지 않는 공유결합으로 붙잡혀 있다면 생체 내에서 DNA의 복제나 DNA 염기서열의 정보를 mRNA로 전사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A와 T, 그리고 G와 C 사이의 수소결합 없이는 생명 자체를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은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많은 세포들이 모여서 폐, 위, 근육 등의 조직과 기관을 만들고, 이들이 모여서 한사람을 만든다. 이 세포의 성분은 대부분 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포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자신의 개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왜 60조개의 세포가 서로 녹아 뒤섞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물에 녹지 않는 세포막이 세포 안쪽의 물과 바깥쪽의 (다른 세포의) 물을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 한개의 세포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세포의 내용물은 그 많은 태평양의 물에 의해 희석될 염려가 없다. 따라서 만약 세포막이 없다면 우리가 해수욕을 하러 바닷물에 뛰어들어가는 순간 60조개의 세포가 바닷물에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몸 세포의 기원을 찾아간다면 약 40억년 전 태초의 바다에서 생겨난 최초의 세포가 모든 생명체의 아담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몸의 세포가 바닷물에 녹는 것은 바다에서 왔으니 바다로 돌아가는 격이 될지는 몰라도 40억년의 진화를 통해서 생겨난 인간의 최후치고는 너무 허망해 보인다.
전자 욕심 비슷한 탄소와 수소
그리고 보면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대사를 위한 효소, 유전을 위한 정보의 기록과 복제 장치 이외에도 세포막의 개발이 필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36억년 전 세포의 화석에서 일종의 막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은 어떤 원리에 입각해서 생명에 필수적인 세포막을 개발하고 발전시켰을까. 모든 생명 현상이 원자를 레고 조각으로 사용해 분자 단위에서 화학결합의 원리에 따라 재배열을 거치면서 에너지 대사를 하고, 유전 정보를 기록도 하고 복제도 하며 심지어는 고차적인 정신 활동까지 한다. 이러한 세포 활동이 가능하도록 세포 내부의 물질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세포막의 기능은 생명 현상의 기본인 항상성 유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포막의 구조를 살펴보면 탄소와 아울러 수소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과학동아 1999년 1월호 특집 자연의 지배자 수소 참조). 여기서 다시 한번 생명에서의 수소의 역할을 짚어볼 수 있다.
탄소와 수소가 전자에 대한 욕심이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에 탄화수소는 물에 잘 섞이지 않는 비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세포막은 세포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해준다. 이처럼 수소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또 세포막의 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수소가 생명수인 물의 핵심 성분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생명의 으뜸원소인 수소는 어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수소는 1백50억년 전 팽창하는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주 역사의 처음 3분 동안에 수소로부터 두번째 원소인 헬륨이 만들어졌다. 이때 우주의 팽창 속도가 좀 느렸다면?
높은 온도와 밀도가 더 오래 지속됐을 테고, 수소는 거의 다 헬륨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주기율표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수소 대신 DNA의 이중나선을 붙잡아 줄 원소는 없다. 또 세포막을 만들어줄 원소도 없다.
1백50억년 전에 빅뱅 우주에서 수소가 만들어졌을 때 이미 생명의 비밀은 싹트고 있던 셈이다. 그리고 1백억년 정도 후에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원소의 원조인 수소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 또 세포막의 구조에서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포 옆에서
하나의 세포를 만들기 위해 푸른 행성
지구는 그렇게 진화했나보다.
DNA 이중나선을 붙들기 위해 150억년 전
빅뱅 우주는 그렇게 수소를 만들었나보다.
긴장과 초조로 가슴 조이던 기나긴 우주 진화의
갈림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지구에 정착한
자연의 레고 원자들이여
모든 생명은 한 가족임을 가르치려고 A, T, G, C 같은
염기를 생명의 알파벳으로 사용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