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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의 4가지 비결

타고난 천재도 OO 이 필요하다

10월은 노벨상의 달이다. 과연 노벨상, 특히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어떤 인물일까.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지능이 높았을까. 이들의 창의성은 어땠을까. 어떤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 내고자 하는 과제집착력은 높았을까. 최고의 노벨상을 받기까지 논문은 많이 발표했을까. 어려서부터 영재로 인정받아 최고의 교육환경에서 공부했을까. 아니면 혼자 힘으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며 난관을 극복한 것일까. 본인 스스로의 흥미와 관심으로 연구했을까, 아니면 노벨상을 받고 싶은 동기가 강해서 해당 분야의 연구에 매진했을까. 같은 분야의 동료들과 친했을까. 이처럼 노벨상 수상자의 개인 특성뿐 아니라 가정, 학교, 연구 환경, 나아가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필자는 심리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살펴보던 중 최근,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에 대해 연구한 책을 발견했다. 미국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심리학 교수인 케이트 사이먼튼(Keith Simonton)은 1980년대부터 노벨과학상 수상자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과학 창의성(Creativity in Science)’이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사이먼튼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심리학자인 하트가 1987년 발표한 ‘역사상 영향력을 끼친 100인’이라는 연구에서 2위를 차지한 뉴턴을 비롯해 과학자들이 창의적인 인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또 미국 잡지 타임지가 2000년 ‘20세기 최고의 인물’로 예술가도, 정치 지도자도 아닌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선정한 것을 보고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사이먼튼 교수는 과학사, 과학철학,과학사회학, 과학심리학에 기반을 둔 메타사이언스 관점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연구했다. 그는 “역사학자들은 사실의 나열을 좋아하고,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탐구를 좋아한다. 사회학자들이 조직을 논의하면 심리학자들은 분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가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해 메타사이언스라는 관점에서 찾아낸 공통 배경은 ‘우연, 논리성과 직관, 천재성, 그리고 시대정신’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최고의 과학자들은 어느 하나가 아닌 4가지 배경이 모두 적절하게 잘 조합되고 통합돼 있다는 것을 사이먼튼 교수는 심
리학, 과학, 수학 분야의 다양한 데이터와 해박한 이론으로 검증했다.



우연

뜻 밖의 운 좋은 발견

사과나무에서 우연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이론을 발견한 뉴턴(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어느날 실험실로 우연히 날아든 푸른곰팡이에서 병원성 세균을 치료하는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전자를 금속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다 투과력이 엄청난 X선을 발견한 뢴트겐 등 우리는 “유레카”를 외치며 갑작스런 기회나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연히 발견한 과학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자. 과연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그야말로 우연히 떠올랐을까. 많은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심리학자 그레이엄 월러스(Graham Wallas)는 창의적인 문제해결의 4단계를 제안했다. 먼저 문제해결을 위한 준비한 후, 충분히 고민하는 부화기를 거쳐,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현하고, 창의적 아이디어의 적절성에 대한 검증기를 거쳐야 비로소 창의적인 산출물로 완성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준비 - 부화기 - 발현 - 검증기).

또 창의성 전문가인 와이즈버그(Weisberg) 박사는 ‘10년 법칙(the 10-year rule)’을 강조한다. 진정한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10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도 이 시대 아웃라이어(월등히 뛰어난 사람들)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치면서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제시했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 되는데 와이즈버그 박사의 10년 법칙과도 비슷하다.

생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도 “우연은 준비된 마음에만 찾아온다”며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철저하게 연습하고 준비하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우연이라는 기회를 만나 결과적으로 운 좋은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뢴트겐이 X선으로 찍은 손가락뼈. 뢴트겐은 이 업적으로 1901년 첫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천재성

천부적으로 타고나고 육성돼야

오랫동안 심리학자들 간에는 천재(또는 영재)는 타고나는것인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다. 유전과 환경의 격돌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최근 들어 “천재는 천부적으로 천재성을 타고난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성도 가정, 교육, 사회 등 다양한 환경에 의해 잘 길러져야 발현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합의되고 있다. 타고난 천재성이 어린 시절에 잠재돼 있어도, 천재에게 꼭 맞는 교육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타고난 천재성은 조기에 사장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재성 또는 영재성을 구성하는 특성은 무엇일까. 렌줄리 교수는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 창의성, 과제집착력’의 세 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세 가지 특성이 중첩되는 부분이 많을수록 영재성이 높다는 것이다. 렌줄리 교수의 영재성에 대한 정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의 영재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영재교육 대상자를 판별하고 선발하는 방법, 영재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구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2003년도부터 국가 차원에서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학교 점수 또는 시험 점수로 영재를 많이 뽑았기 때문에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의해 영재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렌줄리 교수의 이론에 맞춰 선발 방식을 계속 개선해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험성적 대신 관찰과 추천 등을 통해 타고난 영재들을 뽑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지난해 언어와 음악 등 다방면에 재능이 많고, 봉사하는 마음과 남을 아끼고 배려하는 능력을 지닌 K군,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경제, 철학, 역사, 인문에 대한 관심을 정리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갖춘 P군 등을 신입생으로 선발했다.



[영재를 선발하고 교육할 때는 지적 능력, 창의성, 과제집착력의 세 가지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은 미국 일리노이 수학과학고에서 물리 시간에 서너 명씩 조를 이뤄 진자를 이용한 재미난 실험을 하는 모습.]
 

논리성과 직관

창의적인 상상력 필요

사이먼튼 교수는 과학에 꼭 필요한 엄격한 논리성은 과학철학에 뿌리를 둔다고 강조한다.

논리성은 베이컨과 데카르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컨은 연역적 사유, 데카르트는 귀납적 사유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서양 근대 철학과 과학이 이들에게서 시작됐다. 인지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과학은 엄격한 논리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이론적, 경험적 배경에 기초한다. 그리고 가설이나 연구문제를 설정하고 경험적 자료를 과학적 연구방법으로 검증하는 논리적인 절차에 따라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새로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해서는 엄격한 논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가 헤이스케는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1970년 동양권에서 처음으로 받았다. 그는 수학의 난제를 해결하면서 “전공 지식도 중요하지만, 몇 배의 피나는 노력과 어린시절 피아노 연주를 통해 경험한 예술의 세계, 그리고 불교의 ‘인연’이 수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창의적인 과학자들은 명쾌하고 직관적인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귀납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도 “자연의 기본 법칙은 논리적인 경로가 아닌 직관만이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에게 엄격한 논리성은 필수 조건이긴 하지만 직관이라는 다른 요건도 충족돼야 창의적인 산출물을 낼 수 있다.
 

시대정신

과학자는 사회 안에서 연구한다

과학의 커다란 발견과 발명은 시대의 필요성이나 특정 과학의 발전, 또는 둘의 조합에 의해 많이 이뤄진다. 사회문화적인 체제나 분야별 시대정신이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쟁이 좋은 예다. 연구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이 원자폭탄 개발과 같은 국방산업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과학자들은 그 시대에 긴급하거나 중요하다고 꼽히는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예를 들어 2011년이라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체에너지 기술, 암이나 바이러스의 습격을 이겨낼 수 있는 치료제 개발, 줄기세포 연구 등에 관심이 많다. 이런 연구를 하는 과학자 중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도 나오기 쉽다.

사회학자들은 집단이나 조직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강조하고, 심리학자들은 개인에 관심을 두기에 천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높다. 그러나 심리학자인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이 어느 곳에 존재하는가를 연구해 ‘체계이론(system theory)’을 발표하면서 둘을 종합하는 견해를 제시했다. 창의성의 발현은 개인 특성뿐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가 상호작용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문화체계안에서 개인과 사회의 적절한 융합과 시대정신에 잘 맞는 창의성의 발현이 중요하다.

결국 노벨상 수상자들의 놀라운 창의성의 비결은 타고나면서 잘 발현된 천재성, 엄격한 논리적 분석과 그것을 뛰어넘는 직관, 준비된 가운데 운좋게 찾아 온 우연, 그리고 과학자를 둘러싼 시대정신과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기반으로 한 교육이 올바로 이뤄지면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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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규 한국과학창의재단 책임연구원 | 일러스트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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