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무려 39억 광년이나 떨어진 먼 은하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은하 중심에 꽈리를 틀고 있던 거대한 블랙홀이 주변을 지나가는 별을 집어삼킨 것.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별은 갈가리 찢어져 빨려 들어가면서 강력한 빛을 우주로 내보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쏘아올린 스위프트 위성에 장착된망원경이 이 빛을 잡았고 지상의 망원경들도 이 장면을 포착했다. 우리나라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도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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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동 전경. 위의 육면체 돔이 열리면 안에 있는 1.8m 반사망원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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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100m가 넘는 보현산 정상에 위치한 보현산천문대 전경.]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나오는 빛(근적외선)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가운데 원 안). 시간이 지날수록(3월 30일, 3월 31일, 4월 3일) 빛이 약해진다. 오른쪽 아래 7월 26일자 이미지는 미국 하와이의 유커드 망원경이 찍었다.]
초기 데이터 제공
과학저널 ‘네이처’ 8월 25일자에는 거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태양만 한 별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포착한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2003년 쏘아 올린 ‘스위프트(Swift)’ 위성에 장착된 감마선 망원경이 처음 이 현상을 관측했다. 그런데 이 논문의 공동저자에는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7명이나 포함돼 있다. 서울대 천문물리학부 임명신 교수팀(초기우주연구단) 5명과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의 전영범, 성현일 박사가 그들이다.
블랙홀이 별을 잡아먹는 과정을 좀 더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위성의 망원경 뿐 아니라 지상의 여러 망원경들의 관측결과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팀은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과 미국 레몬산천문대의 1m 망원경, 미국 하와이의 유커트 4m 적외선 망원경, 우즈베키스탄 마이다낙천문대 1.5m 망원경을 이용했다.
원래 스위프트 위성의 주목적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것이다. 감마선폭발이란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큰 별이 수명이 다해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로 바뀔 때 주변의 물질이 유입되며 폭발을 일으켜 강력한 감마선을 내뿜는 현상이다(감마선폭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4년 2월호 ‘블랙홀 탄생의 순간, 우주가 놀란감마선폭발’ 참조).
지난 3월 28일 스위프트 위성의 감마선 망원경은 이상한 현상을 관측했다. 우주의 절반을 훑으며 감마선폭발을 찾고 있는 이 망원경은(우주에서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감마선폭발체를 찾는다) 한 지점에서 폭발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이 계속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보통 감마선폭발로 인한 섬광은 빠르면 수 초, 늦어도 수 분이면 사라진다.
스위프트의 연구진들은 이 빛이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예측돼 오던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킬 때 일어나는 제트(jet) 분출 현상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즉시 스위프트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지상 망원경을 이용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3월 29일 연구실에 출근한 임명신 교수는 이 뉴스를 보고 즉각 보현산천문대에 알려, 만일 여건이 된다면 이 천체를 관측해보라고 제안했다.
“천문대의 망원경은 1년 내내 사용이 예약이 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늘 관측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저희들은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과제가 있었고 마침 망원경에 근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돼 있어서 이 천체를 바로 관측할 수 있었죠.”
당시 보현산천문대장이었던 전영범 박사의 설명이다. 전 박사는 현 천문대장인 성현일 박사와 함께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다.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에는 3종류의 검출기를 달 수 있는데 근적외선 카메라와 가시광선 카메라, 그리고 분광기가 있다. 근적외선은 파장이 1.0~2.5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로 가시광선 파장인 0.4~0.7μm보다 긴 영역이다. 검출기는 한번 교체하는 데 3일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만일 이때 가시광선 카메라나 분광기가 달려 있었다면 바로 관측에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마선폭발이나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생기는 제트에서는 감마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에 이르는 다양한 파장의 빛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시광선은 우주먼지 등에 흡수되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어렵지만 근적외선은 상대적으로 온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요.”
근적외선 카메라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성현일 박사의 설명이다. 논문에 나와있는 지상의 근적외선 망원경 관측 데이터를 보면 3월 30일에서 6월 11일에 걸쳐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빠른 3월 30일자가 바로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에서 얻은 것이다.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이어서 3월 31일, 4월 3일, 4월 24일, 4월 28일, 4월 29일, 5월 1일의 관측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 가운데 3월 30일, 3월 31일, 4월 3일의 관측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배경의 별빛 세기는 일정한데 한 지점에서만 빛의 세기가 서서히 약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바로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킬 때 나온 제트의 세기 변화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데이터다.
[➊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건물 4층에 설치돼 있다. 망원경의 뒷모습으로 기자가 방문한 날은 가시광선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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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망원경 작동원리-우주에서 들어오는 빛은 주경(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의 경우 지름이 1.8m)에서 반사돼 부경으로 향한다. 부경에서 다시 한 번 반사된 빛은 배플(주경 가운데 달린 검은 원통) 속을 통과해 뒤쪽의 카메라(검출기)에 도달해 이미지 데이터로 바뀐다.
한국 연구팀이 4월 이후 관측한 미국 하와이의 유커드 망원경의 데이터도 실렸다. 유커드 망원경에서 7월 26일에 관측한 사진을 보면 블랙홀의 제트에서 나오는 빛이 상당히 약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블랙홀의 제트는 많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빛이 나오고 있다.
한편 한국 연구팀이 우즈베키스탄 마이다낙천문대 1.5m망원경과 레몬산천문대 1m 망원경으로 관측한 가시광선 자료는 이 기간 동안 빛의 세기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관측 천체 주변에 가시광선을 흡수하는 우주먼지가 많이 있음을 시사한다.
“보현산은 우리나라에서는 관측환경이 가장 좋은 곳이지만 하와이나 칠레의 관측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망원경도 1.8m로 작은 편이고요.”
전영범 박사는 이런 환경에서도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스케줄이나 맑은 날씨 같은 운도 따랐지만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자체 제작한 근적외선 카메라(검출기) 카시닉스(KASINICS)의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근적외선은 열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따라서 카시닉스 주위를 액체헬륨이 돌며 내부 온도를 영하 240℃ 이하로 유지시켜야만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현일 박사는 망원경 어디에 눈을 대고 보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망원경이 있는 건물 1층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대형 망원경은 사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검출기에 당도한 빛 정보를 이미지화한 데이터를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것이라고. 기자가 천문대를 찾은 날은 불운하게도 구름이 너무 짙어 망원경을 작동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 이미지 데이터를 보는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성 박사는 “최근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의미있는 관측결과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일본이나 대만의 연구자들도 사용신청서를 보내고 있다”며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학술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한 망원경”이라고 덧붙였다. 천문대 대장은 국내외 연구진들의 사용신청서를 검토해 사용시간을 배정해주는 권한이 있다.
39억 년 전 어느 날 일어난 사건
이번에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관측에 기여한,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키는 장면은 천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다. 거대질량 블랙홀이란 태양보다 100만~10억 배 com더 무거운 블랙홀로 은하 대부분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은하에도 태양질량의 460만 배가 되는 거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가 존재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생겨났고 왜 은하중심에 존재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임명신 교수는 “여러 블랙홀이 합쳐졌거나 블랙홀에 우주먼지 등이 끌려들어가서 생겼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며 “거대질량 블랙홀은 말 그대로 질량이 워낙 크기 때문에 태양만 한 별도 그 주위를 지나가다가 너무 가까워지면 강력한 중력에 끌려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관측한 블랙홀은 지구에서 39억 광년 떨어진 평 범한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에 관측된 빛은 39억 년 전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의 결과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 천체를 ‘스위프트 J1644+57’로 명명했다. 이는 천체가 위치한 방위에 대한 정보로 J는 율리우스력을 의미하고 1644는 적경(16시44분)을, +57은 적위(+57°)를 나타낸다. 이 블랙홀의 질량은 관측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태양 질량의 400만~2000만 배로 추정된다.
그런데 별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서 왜 제트가 분출되고 강력한 빛이 나오는 걸까. 별이 거대질량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건 당구공이 당구대 구멍에 쏙 들어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블랙홀에 가까이 갈수록 중력이 급격히 커지는데 블랙홀을 향한 면과 반대 방향의 면이 받는 중력의 차이가 납니다. 마치 지구에서 달을 향한 면과 반대 면이 달로부터 받는 중력이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다만 지구에서는 그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에 액체인 바다에서 조석 현상이 일어나는 정도이지만 블랙홀에 접근한 별은 찢어지듯 파괴돼죠.”
임명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별의 잔해가 강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이때 생기는 자기장의 영향으로 블랙홀 회전축에 수직인 방향으로 제트가 분출되는 것이다. 제트의 각도 범위는 5° 내외로 추측된다.
“아마도 제트의 방향이 지구를 향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관측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운이 좋았던 거지요.”
그렇다면 지구에서 불과 수만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중심의 거대질량 블랙홀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마침 제트의 방향이 지구를 향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임 교수는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겠지만 만일 일어난다면 지구의 대기권을 날려 보낼 만큼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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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NASA가 쏘아올린 스위프트 위성. 원래 목적은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것이나 이번에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나오는 제트를 관측하는 개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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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동 전경. 위의 육면체 돔이 열리면 안에 있는 1.8m 반사망원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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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100m가 넘는 보현산 정상에 위치한 보현산천문대 전경.]
시커먼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초가을 들판을 지나 차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갔다. 해발 1100m가 넘어서 마침내 도착한 곳은 경북 영천의 보현산천문대로 보현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 구경 1.8m 반사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특이하게도 반구형이 아닌 육면체형 돔 안에 들어있는 보현산천문대 반사망원경은 1996년 완성돼 1997년부터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연구결과를 내왔다. 그런데 최근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천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십 년 전부터 예측됐지만 실제 관측되지는 않은 현상을 처음 관측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반구형이 아닌 육면체형 돔 안에 들어있는 보현산천문대 반사망원경은 1996년 완성돼 1997년부터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연구결과를 내왔다. 그런데 최근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천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십 년 전부터 예측됐지만 실제 관측되지는 않은 현상을 처음 관측하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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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데이터 제공
과학저널 ‘네이처’ 8월 25일자에는 거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태양만 한 별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포착한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2003년 쏘아 올린 ‘스위프트(Swift)’ 위성에 장착된 감마선 망원경이 처음 이 현상을 관측했다. 그런데 이 논문의 공동저자에는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7명이나 포함돼 있다. 서울대 천문물리학부 임명신 교수팀(초기우주연구단) 5명과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천문대의 전영범, 성현일 박사가 그들이다.
블랙홀이 별을 잡아먹는 과정을 좀 더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위성의 망원경 뿐 아니라 지상의 여러 망원경들의 관측결과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팀은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과 미국 레몬산천문대의 1m 망원경, 미국 하와이의 유커트 4m 적외선 망원경, 우즈베키스탄 마이다낙천문대 1.5m 망원경을 이용했다.
원래 스위프트 위성의 주목적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것이다. 감마선폭발이란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큰 별이 수명이 다해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로 바뀔 때 주변의 물질이 유입되며 폭발을 일으켜 강력한 감마선을 내뿜는 현상이다(감마선폭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4년 2월호 ‘블랙홀 탄생의 순간, 우주가 놀란감마선폭발’ 참조).
지난 3월 28일 스위프트 위성의 감마선 망원경은 이상한 현상을 관측했다. 우주의 절반을 훑으며 감마선폭발을 찾고 있는 이 망원경은(우주에서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감마선폭발체를 찾는다) 한 지점에서 폭발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빛이 계속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보통 감마선폭발로 인한 섬광은 빠르면 수 초, 늦어도 수 분이면 사라진다.
스위프트의 연구진들은 이 빛이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예측돼 오던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킬 때 일어나는 제트(jet) 분출 현상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즉시 스위프트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지상 망원경을 이용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3월 29일 연구실에 출근한 임명신 교수는 이 뉴스를 보고 즉각 보현산천문대에 알려, 만일 여건이 된다면 이 천체를 관측해보라고 제안했다.
“천문대의 망원경은 1년 내내 사용이 예약이 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도 늘 관측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 저희들은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과제가 있었고 마침 망원경에 근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돼 있어서 이 천체를 바로 관측할 수 있었죠.”
당시 보현산천문대장이었던 전영범 박사의 설명이다. 전 박사는 현 천문대장인 성현일 박사와 함께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다.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에는 3종류의 검출기를 달 수 있는데 근적외선 카메라와 가시광선 카메라, 그리고 분광기가 있다. 근적외선은 파장이 1.0~2.5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로 가시광선 파장인 0.4~0.7μm보다 긴 영역이다. 검출기는 한번 교체하는 데 3일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만일 이때 가시광선 카메라나 분광기가 달려 있었다면 바로 관측에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마선폭발이나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생기는 제트에서는 감마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에 이르는 다양한 파장의 빛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시광선은 우주먼지 등에 흡수되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어렵지만 근적외선은 상대적으로 온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요.”
근적외선 카메라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성현일 박사의 설명이다. 논문에 나와있는 지상의 근적외선 망원경 관측 데이터를 보면 3월 30일에서 6월 11일에 걸쳐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빠른 3월 30일자가 바로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에서 얻은 것이다.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이어서 3월 31일, 4월 3일, 4월 24일, 4월 28일, 4월 29일, 5월 1일의 관측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 가운데 3월 30일, 3월 31일, 4월 3일의 관측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배경의 별빛 세기는 일정한데 한 지점에서만 빛의 세기가 서서히 약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바로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킬 때 나온 제트의 세기 변화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데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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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m 망원경동 1층은 망원경의 카메라가 얻은 정보를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관측실이다. 앞이 전영범 박사고 뒤가 성현일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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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돔 위에서 내려다본 망원경의 모습. 가운데 지름 1.8m의 주경이 일부 보인다. 오른쪽 사람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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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돔 위에서 내려다본 망원경의 모습. 가운데 지름 1.8m의 주경이 일부 보인다. 오른쪽 사람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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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망원경 작동원리-우주에서 들어오는 빛은 주경(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의 경우 지름이 1.8m)에서 반사돼 부경으로 향한다. 부경에서 다시 한 번 반사된 빛은 배플(주경 가운데 달린 검은 원통) 속을 통과해 뒤쪽의 카메라(검출기)에 도달해 이미지 데이터로 바뀐다.
한국 연구팀이 4월 이후 관측한 미국 하와이의 유커드 망원경의 데이터도 실렸다. 유커드 망원경에서 7월 26일에 관측한 사진을 보면 블랙홀의 제트에서 나오는 빛이 상당히 약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블랙홀의 제트는 많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빛이 나오고 있다.
한편 한국 연구팀이 우즈베키스탄 마이다낙천문대 1.5m망원경과 레몬산천문대 1m 망원경으로 관측한 가시광선 자료는 이 기간 동안 빛의 세기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관측 천체 주변에 가시광선을 흡수하는 우주먼지가 많이 있음을 시사한다.
“보현산은 우리나라에서는 관측환경이 가장 좋은 곳이지만 하와이나 칠레의 관측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망원경도 1.8m로 작은 편이고요.”
전영범 박사는 이런 환경에서도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스케줄이나 맑은 날씨 같은 운도 따랐지만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자체 제작한 근적외선 카메라(검출기) 카시닉스(KASINICS)의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근적외선은 열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따라서 카시닉스 주위를 액체헬륨이 돌며 내부 온도를 영하 240℃ 이하로 유지시켜야만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현일 박사는 망원경 어디에 눈을 대고 보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망원경이 있는 건물 1층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대형 망원경은 사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검출기에 당도한 빛 정보를 이미지화한 데이터를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것이라고. 기자가 천문대를 찾은 날은 불운하게도 구름이 너무 짙어 망원경을 작동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 이미지 데이터를 보는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성 박사는 “최근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의미있는 관측결과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일본이나 대만의 연구자들도 사용신청서를 보내고 있다”며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은 학술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한 망원경”이라고 덧붙였다. 천문대 대장은 국내외 연구진들의 사용신청서를 검토해 사용시간을 배정해주는 권한이 있다.
39억 년 전 어느 날 일어난 사건
이번에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관측에 기여한,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키는 장면은 천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다. 거대질량 블랙홀이란 태양보다 100만~10억 배 com더 무거운 블랙홀로 은하 대부분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은하에도 태양질량의 460만 배가 되는 거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가 존재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생겨났고 왜 은하중심에 존재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임명신 교수는 “여러 블랙홀이 합쳐졌거나 블랙홀에 우주먼지 등이 끌려들어가서 생겼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며 “거대질량 블랙홀은 말 그대로 질량이 워낙 크기 때문에 태양만 한 별도 그 주위를 지나가다가 너무 가까워지면 강력한 중력에 끌려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관측한 블랙홀은 지구에서 39억 광년 떨어진 평 범한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에 관측된 빛은 39억 년 전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의 결과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 천체를 ‘스위프트 J1644+57’로 명명했다. 이는 천체가 위치한 방위에 대한 정보로 J는 율리우스력을 의미하고 1644는 적경(16시44분)을, +57은 적위(+57°)를 나타낸다. 이 블랙홀의 질량은 관측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태양 질량의 400만~2000만 배로 추정된다.
그런데 별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서 왜 제트가 분출되고 강력한 빛이 나오는 걸까. 별이 거대질량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건 당구공이 당구대 구멍에 쏙 들어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블랙홀에 가까이 갈수록 중력이 급격히 커지는데 블랙홀을 향한 면과 반대 방향의 면이 받는 중력의 차이가 납니다. 마치 지구에서 달을 향한 면과 반대 면이 달로부터 받는 중력이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다만 지구에서는 그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에 액체인 바다에서 조석 현상이 일어나는 정도이지만 블랙홀에 접근한 별은 찢어지듯 파괴돼죠.”
임명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별의 잔해가 강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이때 생기는 자기장의 영향으로 블랙홀 회전축에 수직인 방향으로 제트가 분출되는 것이다. 제트의 각도 범위는 5° 내외로 추측된다.
“아마도 제트의 방향이 지구를 향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관측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운이 좋았던 거지요.”
그렇다면 지구에서 불과 수만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중심의 거대질량 블랙홀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마침 제트의 방향이 지구를 향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임 교수는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겠지만 만일 일어난다면 지구의 대기권을 날려 보낼 만큼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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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NASA가 쏘아올린 스위프트 위성. 원래 목적은 감마선폭발을 관측하는 것이나 이번에 블랙홀이 별을 삼킬 때 나오는 제트를 관측하는 개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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