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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은 동물이나 식물을 연구하던 분야였으나 오늘날에는 질병 연구나 치료약 개발은 물론, 환경과 생태, 진화생물학, 심지어 에너지산업과 우주생물학같은 생소한 분야에까지 넓게 적용되고 있다. 유전자에 관한 아이디어는 1865년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던 멘델이 완두콩 연구를 통해 처음 생각해낸 이후 20세기 중반, 왓슨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단체가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내면서 유전자의 무한한 가능성과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다. 이번 호에는 DNA 연구가 많은 논란 속에 진행되는 이유와 그 논리를 살펴보자.


 
[제시문] 최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생물을 만드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DNA를 절단하는 단백질인 ‘제한 효소’와 이를 접착하는 효소인 ‘리가아제’가 필요하다. 시험관 안에서 제한 효소와 리가아제로 재조합한 DNA는 ‘벡터’라는 운반체를 이용해 다른 생물체 내로 이식된다.

유전자 변형 생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유전자 변형 생물 자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제초제 저항성 옥수수나 콩이 그 예이다. 둘째, 유전자 변형 생물이 만든 부산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유전자 변형 대장균으로부터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이나 인간 생장 호르몬을 추출하는 일이 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수많은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유전자 변형 생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유전공학 기술은 작물 개량 및 식량증산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약품 개발, 난치병 치료, 환경 정화 등에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일부 환경 운동 단체에서는 유전자 변형 생물이 가진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제초제 저항성 작물과 발생학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잡초와 교잡하면 초강력 잡초를 생성시킬 수 있다. 또 유전자의 도입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항생제 저항성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있는 대장균으로 옮겨가면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는 박테리아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 윗글에서 설명한 ‘제한 효소’와 ‘리가아제’의 관계와 가장 유사한 것은?

① 화물차와 승용차 ② 사무용 책상과 의자 ③ 휴대용 전화와 배터리

④ 수술용 칼과 봉합용 실 ⑤ 컴퓨터와 컴퓨터 마우스

- 2001년 수능기출


이 방식을 통해 당신은 스물세 개 글자가 어떻게 여러 가지로 변용되는가에 대해 엿볼 수 있다….
- 로버트 버튼의 ‘음울의 해부’

DNA, 생명의 책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는 20세기 기술문명의 철학적 의미를 기이한 상상력과 신비로운 문체로 풀어낸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미로, 거울, 책은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와 같은 정보기술에서부터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교한 암시와 상징으로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보르헤스가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에는 아직 그러한 기술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956년에 발표된 그의 단편집 ‘픽션들’ 중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서가의 어딘가에 이 세상의 모든 책의 가이드 역할을 할 ‘책 중의 책’이 있다는 소문을 믿고 이 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지식의 근본을 밝혀줄 단 한권의 책을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책은 끝내 발견되지 않는다. ‘바벨의
도서관’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책장 어딘가에 나머지 모든 책들의 암호인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을 담은 책이 존재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한 사서가 그것을 대략 훑어본 뒤 그는 신과 유사하게 됐다.…(중략)…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났다. 한 세기에 걸쳐 가능한 모든 곳들을 뒤졌으나 허사였다. 어떤 사람은 역행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A라는 책을 찾기 위해 먼저 A가 있는 장소를 지시하고 있는 B라는 책을 참조한다. B라는 책을 찾기 위해 먼저 C라는 책을 참조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찾아가다 보면 결국에는 완전한 해석을 담은 책을 찾게 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도 지금은 유전공학 분야의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를 집필하면서 보르헤스를 참조한 듯하다. 그가 유전자의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비유는 보르헤스의 책에서 다룬 모티프와 매우 유사하다. ‘이기적 유전자’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DNA는 마치 거대한 빌딩의 모든 방에 그 빌딩 전체의 설계도를 넣어 둔 ‘책장’이 있는 것과 같다. 유전자란 이를테면 설계도의 페이지에는 건물의 각 부분에 관한 지시가 쓰여 있고, 각 페이지는 수많은 다른 페이지의 앞뒤를 참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중략)… 예컨대 1a권, 2a권, 3a권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고 1b권, 2b권, 3b권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다.”

과학자들은 때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비유를 든다. 특히 유전자를 책이나 알파벳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과학자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고 지금은 연구과정 자체가 알파벳 기호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 Nucleic Acid, DNA)이라 불리는 물질은 가늘고 긴 실처럼 생겼는데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 과학자들은 DNA를 책으로, DNA를 구성하는 염기를 알파벳으로 설명한다. 이제 DNA의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DNA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의 인체는 약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다. 각각의 세포들은 하나의 핵을 갖는데 그 핵 속에는 46개의 염색체가 들어 있다. 염색체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정도 굵기로, 가늘고 긴 실이 매우 촘촘하게 얽혀 있어 마치 실타래처럼 생겼다. 이 가늘고 긴 실이 DNA이다. DNA를 확대해서 보면 두 가닥의 실이 나선형으로 꼬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나선형의 두 가닥 실 사이에는 서로 다른 네 가지 물질이 들어 있다. 이들이 바로 ‘염기(base)’다. 그 각각은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 구아닌(G)이며, 이들의 머리글자를 따서 A, T, C, G라고 표기한다.

DNA에는 이들 네 가지 물질이 길게 배열돼 있다. 언뜻 보기에는 배열이 자유롭게 구성돼
있는 것 같지만 치밀한 유전자 암호에 따라 배열된 것이다. 46개의 염색체에 포함돼 있는 염기의 배열을 알파벳 형태로 나열하면 60억 개의 문자열이 되는데, 이는 백과사전으로 치면 7백 권짜리 분량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양이다. 세포 하나마다 그 만큼의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으니, 우리의 몸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대한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46개의 염색체를 46권의 책으로 보면 가장 이해가 빠르다고 한다. 어떤 책에는 우리의 눈동자 색깔 정보가 포함돼 있고, 또 어떤 책에는 키와 얼굴의 생김새, 손가락의 길이, 여러 가지 장기와 근육의 정보, 심지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질병이나 개인의 성격까지도 포함된다. 같은 인간끼리는 기본구조가 같지만 세부적인 정보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염기 배열에 0.1%의 차이를 보인다(일란성 쌍둥이는 제외).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세포 속에 유전자 정보를 포함한다. 세포 하나의 수명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수년간 지속되는 동안 세포는 자신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다른 세포를 만든다. 이를 세포분열이라 한다. 따라서 세포분열은 일종의 ‘복사(copy)’이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결국 세포는 죽음에 이른다.

유전자는 무슨 일을 할까?

우리는 유전자를 무척 복잡하고 난해한 물질로 여기지만 실제로 유전자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단순한 일을 할 뿐이다. 단백질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물질이며, 신체 곳곳에 신호를 전달하거나 효소로 작용해 새로운 물질을 생성한다.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들은 적절한 시기가 되면 각자의 활동을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만능열쇠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어떤 세포는 심장을 구성하는 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근육이나 피부, 안구와 골격을 이룬다. 만약 모든 유전자의 배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능을 알아낸다면 이는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2003년 4월 14일, 세계 18개국의 연구진이 참여한 인간게놈프로젝트사업단(human
genome project: HGP)과 민간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가 인간 유전자 지도의 작성을 완료했다. 당시 발표된 게놈지도는 DNA에 포함된 30억 쌍의 염기 배열과 1만개 정도의 염기가 담당하는 기능을 담고 있다.

게놈프로젝트의 완성 이후 과학자들은 질병치료에 관련된 몇몇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암세포의 발생과 관련된 ‘p53 유전자’의 작용을 구체적으로 밝혀 암 정복의 가능성을 열었다.

암은 손상된 유전자를 지닌 세포의 계속된 분열로 발생한다.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유전자의 손상은 하루에도 수천 번 씩 발생하지만, 손상된 유전자는 복구단백질에 의해 대부분 제기능을 회복한다. 복구가 불가능할 경우, p53 유전자가 세포의 자살을 명령해 세포의 복제를 막는다. 과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암이 발병되는 환자의 가계를 조사해 유전자를 확인해 본 결과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p53 유전자가 돌연변이의 형태를 보였다. 이들에게 정상적인 p53 유전자를 가공해 투여한 이 후 암세포의 증식은 현저하게 줄었다.

유전자는 인간의 수명을 조절하는 정보도 포함한다. 세포수준에서 노화는 세포의 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일컫는다. 미국의 저명한 유전공학자 레너드 해이플릭은 노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노화의 비밀(How and why we age)’에서 세포의 분열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특이한 현상을 소개했다. 그는 “세포 속에는 시계처럼 수를 세는 기능이 있다. 쥐의 경우 세포가 분열하는 횟수는 15~20번이다.

인간의 세포는 최대 50~70번 정도 분열한 후 죽는다. 그 횟수가 가장 높은 경우는 갈라파고스 거북으로 무려 125회에 달하고 최대수명도 약 175년이다. 세포의 분열 횟수는 DNA의 끝부분에 배열된 유전자의 암호와 관련된다.”라고 말했다.

유전학 이론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바뀌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의 목적과 본질은 DNA 분자의 복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너와 나’라는 개인들의 존재는 무의미하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단지 DNA 분자가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도킨스는 동식물들을 가리켜 DNA의 ‘생존기계’라고 불렀다.

생명의 비밀 밝혀지면…

DNA와 유전자를 책에 비유한 것과 유사하게 과학자들은 유전공학 기술을 목수의 작업에
비유하기도 한다. 목수는 미리 설계도를 만들고 그에 맞게 나무를 가공해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전공학자는 특수한 화학공정을 거쳐 유전자를 새로 설계하거나 배열하는 일을 한다.

생명의 책이라고 알려진 DNA를 완벽하게 해독하면 유전자의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지금은 유치한 공상과학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불필요한 유전자를 제거하면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아기를 만들 수 있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서 불치병을 극복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자신의 진화를 스스로 통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DNA 암호를 완벽하게 해독하는 순간 우리는 신이 될까? 혹은 신이 된 우리는, 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기적과 은총을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을까?

“단 한 순간,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당신의 거대한 ‘도서관’이 정당한 것이 되도록 해 주소서.”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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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송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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