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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 애벌레같이 쏜다

제국을 지키는 독침털

애벌레가 ‘송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까닭 없이 미움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몸 전체를 덮고 있는 북슬북슬한 털일 것이다. 그러나 보드라운 몸을 감싸고 있는 애벌레의 털은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 중요한 감각 기관이면서 포식자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보기에도 불쾌한 물리적 방어 수단이다.



애벌레의 털은 포식자나 기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무기다. 털로 덮인 애벌레의 껄끄러운 껍질은 먹으면 목에 가시처럼 걸리고 따끔따끔한 자극 때문에 삼킬 수 없을 것 같은 불쾌감을 준다. 접근 자체를 꺼리게 하는 털은 천적에게 공격을 받을 때 뿜어내는 방어용 독성 물질보다 선제적인 방어 기능인 셈이다.

이런 털은 기생벌이나 기생파리 같은 기생동물이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애벌레보다 훨씬 작은 기생자에게 빽빽한 애벌레의 털은 마치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과 같아 길을 한번 잘못 들면 나올 수 없는 미로 같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15년 간 애벌레를 키우면서 정리한 기록을 보면 털 없이 매끈한 몸을 갖고 있는 호랑나비과 애벌레가 기생당하는 비율은 70~80%였다. 반면 지금까지 길렀던 25종의 독나방 중 기생당한 애벌레는 전혀 없었다.

지난 8월호에는 털이 없고 매끄럽게 보이는 애벌레를 5종류로 세분했다. 이번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털로 나비목 애벌레인 캐터필라를 분류해 보자.
스치기만 해도 쓰리다

털이 있는 애벌레는 4종류로 나눌 수 있다. 몸 전체에 길이가 거의 같은 털이 고르게 덮고 있는 종류, 잔털 위에 실 뭉치 같은 뭉툭한 털과 끝이 예리한 가시털이 중간마다 서 있는 종류, 짧고 센 돼지털 같은 강한 털이 온 몸에 빽빽하게 나 있는 종류, 그리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돌기에 두툼한 가시와 털이 달려있는 종류다.

몸 전체에 길이가 거의 같은 털이 고르고 무성하게 덮고 있는 대표적인 애벌레는 독나방이다. 애벌레 중 ‘털복숭이’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독나방이다. 독나방의 털은 보기에도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독성을 갖고 있다. 독을 내뿜는 것은 긴 털이 아닌 몸 위에 나 있는 미세한 독침 털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배마디의 등쪽 샘에서 내뿜는다.

스치기만 해도 발진을 일으키는 놀랄만한 독성은 쏘여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정도로 심한 상처를 준다. 피부 자극을 일으키기도 한다. 드문 경우지만 열대우림에 사는 독나방 애벌레에 쏘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필자도 오래 전에 콩독나방의 털에 긁혀 온몸이 심한 가려움증과 울긋불긋한 발진으로 몇 달 동안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애벌레를 조사할 때는 털 달린 애벌레를 본능적으로 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털의 강력한 독성 때문인지 독나방의 겉모습을 닮으려는 무리가 있다. 저녁나방아과와 버짐나방아과인데 언뜻 보면 영락없는 독나방 애벌레다. 파레리아과에 속하는 종들도 털로 몸을 치장한다. 독성은 없는 털이지만 천적의 눈을 속일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대나방, 대만나방이나 배버들나방과 같이 대형종이 대부분인 솔나방과도 이 부류에 속한다.

털은 짧은 편이며 등보다는 측면으로 털이 난 것이 독나방 애벌레와 다르다. 몸의 옆면을 따라 털을 늘어뜨리고 가지에 찰싹 달라붙어 그림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노출을 꺼리지만 기본적으로는 독나방의 털을 의태해 살아간다.
 



 
뭉치털로 부풀린 작은 괴물

독성을 지닌 털도 모자라 추가로 가슴과 배마디에 독성 덩어리인 실 뭉치 같은 뭉툭한 털과 머리와 배 끝 부분에 독으로 가득 찬 예리한 연필심 같은 가시털로 중무장한 종류가 있다. 이 애벌레는 더부룩한 털을 가진 나방을 뜻하는 ‘tussock moth’라는 이름을 갖는 종류다. 머리 근처에 삐삐 머리를 갖고 있다. 위협을 받으면 빨갛고 노랗거나 혹은 하얀 뭉치털을 바짝 모아 세워 괴물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닭이 상대편을 위협할 때 세우는 깃털처럼 뭉치털을 세워 싸울 자세를 취한다. 솔나방과의 섭나방은 독 없는 털로 독나방을 의태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검은 뭉치털을 갖고 더욱 강력한 독나방 흉내를 낸다.

검정색, 붉은색과 노란색이 어울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그래서 호랑이 무늬를 가진 불나방과 애벌레(tiger moth)는 짧고 센 돼지털 같은 강한 털이 온 몸에 빽빽하게 나 있다. 부드러워 보이는 독나방의 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검은 독침을 수북이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성은 거의 없다. 불나방과 애벌레가 ‘wooly bear’로 불리는 까닭도 북술북술한 많은 털 때문이다. 돌 틈이나 수피 밑 등 노출된 공간에서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애벌레에게는 두텁고 빽빽한 털이 털외투의 기능을 한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지에 두툼한 가시와 털이 달려있는 종류는 네발나비아과와 표범나비아과의 나비와 쐐기나방과가 대표적이다. 쐐기나방의 털은 독성은 별로 없지만 찔리면 쓰리고 살이 찢어지는 듯 심한 통증이 있다. 선인장 가시에 찔린 것처럼 욱신거려 오랫동안 고생한다. 배다리가 아주 짧고 굵어 몸에 들러붙는 바람에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여유가 있다. 쐐기털 때문이다. 쐐기라는 이름이 붙은 쐐기풀에 찔려도 바늘에 찔린 만큼의 고통이 있으니 조심할 대상이다.

네발나비아과와 표범나비아과 나비들의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와 털은 단지 애벌레를 크게 보이도록 해주는 역할만 한다. 천적에게 가시와 털을 더 확실하게 보이기 위해 밝은 경계색을 띠고 있지만 독성도 없고 찔리지도 않아 허울 좋은 방어 무기일 뿐이다. 효력이 전혀 없는 털만으로도 쉽게 잡혀 먹히지 않는 것을 보면 애벌레의 털이 갖는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북쪽으로 올라오는 애벌레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로 열대 및 아열대 기후에 주로 사는 왕나비가 2010년 치악산 국립공원 조사에서 채집했던 사례를 지난 4월호에 게재했다. 이 번호에는 올해 6월, 7월, 8월 세 차례에 걸쳐 대전, 서울, 강릉에서 기상청 주최로 열렸던 기후변화 심포지엄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후 변화에 따른 곤충 생태계의 변화’가 주제이며 주요한 사례는 국립공원 치악산 조사에서 채집했던 왕나비 애벌레와 2005년부터 인연이 있던 표범나비아과의 암끝검은표범나비 애벌레에 관한 자료이다.

암끝검은표범나비(Argyreus hyperbius)는 네발나비과의 표범나비아과에 속하는 나비로 날개를 펴면 80mm에 이르는 큰 나비다. 암컷 앞날개의 끝이 검어 암끝검은표범나비라는 이름이 붙었고 제비꽃 종류를 먹는다. 애벌레는 검은색 바탕에 등 쪽으로 몸 전체를 관통하는 선명한 붉은색 줄무늬가 눈부시다. 북위 36도 이남의 서·남해안 지방이나 제주도, 울릉도에만 사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지정한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 100종’에 포함됐다.

2005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동아사이언스 주최 ‘전국 자연 생태계 학습 탐사’가 횡성군 갑천면 어답산에서 열렸다. 필자는 중·고교 과학교사 10명의 지도교수로 참여했다. 탐사에 참가한 생물 교사 한 명이 암끝검은표범나비 수컷 1개체를 채집했다. 물론 이동성이 강한 어른 나비 1마리를 갖고 성급하게 기후변화를 말하는 것은 무리였다.

6년이 지난 2011년 5월 21일 횡성군 갑천면의 연구소 주변에서 암끝검은표범나비 애벌레 1개체를 채집했다. 애벌레를 채집한 것은 바람에 몸을 맡겨 이동하는 어른벌레를 확인한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번식을 위한 진출로 추정할수 있으며 이미 4∼5월 중에 암끝검은표범나비 암컷이 북상 후 알을 낳았다는 증거이다. 암끝검은표범나비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서식 범위를 고위도로 확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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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운 박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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