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수학 시간은 없었다. 이것은 오락 시간인가, 수학 시간인가!’
오늘 소개할 스타쌤의 수업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수학 교과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주어지는 건 커다란 전지와 색지, 풀과 가위뿐이다. 도대체 미술시간에나 쓸 법한 도구들로 어떻게 수학을 배우는 걸까?
“자,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어땠죠? 지금보다 더 밝고 활기차지 않았나요?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가봅시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부모님에게 둘도 없는 보물이었죠?”
명상 시간이 아니다. 수학 시간이다. 이 별난 수학 수업은 매년 3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적인 형용사를 이용해 자신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수학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버리는 ‘수 악감정’ 버리기,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써보는 ‘꿈 세우기’로 넘어간다. “도대체 수학은 언제 하는 거야?”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이 수업의 주인공은 경북 칠곡읍에 위치한 석전중학교의 김희자 수학 교사다.
못해도 괜찮아, ‘비움 프로젝트’
김 교사는 경북의 유명 인사다. 수업에 필요한 각종 교구를 개발하고 수학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전국수학문화연구회’와 새로운 방식의 교육법을 알리고 연구하는 ‘미래교실네트워크’의 경북 대표 교사다. 거기다 재미있는 참여형 교육 방식으로 2018년에는 ‘대한민국 수학교육상’까지 수상하며 많은 언론 매체들이 김 교사를 취재했다. 이 밖에도 김 교사가 가진 직함과 맡은 일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쯤되면 쉴 법도 한데, 2월 12일 방학이라 조용한 학교에서 만난 김 교사는 벌써 다음 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처음 만나 다들 어색해 해요. 하지만 제 수업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서로 벽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중요해요. 그래서 학기 초반에는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수학을 못해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취지로 시작한 ‘비움, 채움, 나눔 프로젝트’는 수업을 교과과정대로 진행하지 않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는 ‘비움 프로젝트’,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채움 프로젝트’, 내가 배운 내용을 다른 학생들과 나누는 ‘나눔 프로젝트’로 이뤄진다. 자존감 높이기, 수 악감정 버리기와 같은 수업이 비움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수학을 못해도 절대 잘못한 게 아니고,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말하고 질문해도 된다’는 당연하지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역할극부터 만화까지 ‘채움 프로젝트’
채움 프로젝트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수학을 시작할 것 같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림을 그리고, 게임하고, 역할극을 한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방정식의 해, 2학년 때는 부등식의 해를 배워요. 그런데 계산만 한 학생들 중에는 진짜 ‘해’의 의미도 모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역할극을 통해 학생들이 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각각 0, 1, 2라는 역할을 맡긴 뒤, ‘2x+1=3’과 같은 방정식의 해를 찾게 한다. 0인 학생이 “내가 x야!”라고 말하며 x 자리에 들어간 뒤 해가 아니면 “윽, 나는 해가 아니니 이만 사라진다(털썩)”라며 쓰러지는 식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귀여운 장난 같지만 이렇게 몸으로 익힌 수학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 문제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비주얼스토리텔링’ 시간도 있다. ‘철수는 자전거를 타고, 미영은 걸어서 등교를 한다. 철수가 미영보다 30분 먼저 출발했을 때, 미영은 철수를 언제 추월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한번만 제대로 풀어보면,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고민 없이 바로 풀이법을 떠올릴 수 있다.
배움을 공유하는 ‘나눔 프로젝트’
이렇게 ‘몸에 새긴’ 수학 개념은 학생들의 손 끝에서 다시 탄생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수학을 즐길 수 있는 놀이 거리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 학생들은 원주율 파이(π)를 기념하는 3월 14일 ‘파이데이’ 행사를 기획하고, 이때 쓸 수학 자료를 만들며 다시 한 번 개념을 ‘마음 속에 저장’한다. 하지만 문제집을 안고 살며 수학을 공부한 기자와 같은 구세대는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이렇게 놀기만 하다 성적이 안 좋으면 어쩌지?”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참여형 수업을 하기 전과 하고 난 뒤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항상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하던 학생들은 참여 수업을 시작한 뒤,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평균을 웃도는 점수를 받았다.
“학생들의 성적이 오른 것도 좋지만, 저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살아있는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서로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초롱초롱한 모습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거든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순한 지식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