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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롯데월드타워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아찔하다.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수많은 빌딩의 ‘정수리’가 보이고, 내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유리 사이사이에 설치된 철근 뼈대뿐이다. 겁이 없는 편이라고 자신하지만, 상공 500m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호흡이 빨라진다. 그런데 이때 빨라지는 건 호흡만이 아니다. 당신의 시간도 아주 조금 빨라졌다.

 

 

450m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 실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중력이 큰 곳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즉,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중력은 작아지고, 그만큼 시간은 빨리 간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작지만, 이론적으로 시간은 분명히 빨라진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의 한 연구팀이 높이 450m인 도쿄 스카이트리(오른쪽) 전망대와 1층의 시간 차이를 측정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시계보다 5만 배 이상 정밀한 ‘광격자 시계’가 필요하다.

 

실험을 계획한 가토리 히데토시 도쿄대 교수는 수십 년간 광격자 시계를 연구해 온 그 분야 대가로 꼽힌다. 광격자 시계는 35억 년에 1초의 오차율을 가질 만큼 정확하다. 현재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세슘 원자시계(6000만 년에 1초의 오차율)보다 더 정확하다.

 

일본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쏘냐. 2017년 4월 개장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왼쪽) 123층 전망대는 지상에서 500m 높이다. 높이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2014년, 세계 세 번째로 광격자 시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이원규 표준연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에게 연락했다.

 

“절대 안됩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와서 보면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답답한 마음에 11월 29일 대전 표준 연 시간표준센터를 찾았다. 광격자 시계는 센터 안 실험실에 있었다. 실험실은 빛을 이용하는 다른 실험실처럼 레이저와 반사경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광격자 시계는 어디 있냐”고 묻자 이 책임연구원은 “이 실험실 전체가 광격자 시계”라고 답했다.

 

 

35억 년에 1초 오차 나는 광격자 시계
그렇다. 일반적인 광격자 시계는 30평 정도 되는 실험실을 꽉 채울 만큼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수억 년에 1초 정도 오차가 나는 시계를 개발하려면 필요한 장비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광격자 시계가 뭔지 알아보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시계는 세슘 원자를 이용한다. 국제도량형총회는 1967년 바닥상태의 세슘 133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선이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1초로 정의했다.

 

광격자 시계의 원리도 동일하다. 다만 사용하는 원자가 다르다. 이터븀(Yb), 스트론튬(Sr), 알루미늄(Al) 등이 대표적이다. 표준연의 광격자 시계는 이터븀을 이용한다. 이들은 같은 시간 동안 세슘보다 더 많이 진동한다. 다시 말해 주파수가 더 높은 원자다. 세슘 원자의 복사선 주파수는 9.2GHz(기가헤르츠·1GHz는 10억Hz)로 마이크로파 영역에 속한다. 반면 이터븀은 518THz(테라헤르츠·1THz는 1조Hz)로 가시광선에 속한다. 세슘 원자보다 5만6000배 이상 주파수가 높다. 이를 기준으로 1초를 정의하면 이터븀 원자의 복사선이 518조2958억3659만864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주파수가 높을수록 정밀한 시계가 되는 것일까. 이 책임연구원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며 “시계의 특성상 항상 안정적인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주파수가 높은 원자들 중 외부 영향을 쉽게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파수가 높으면서도 흑체복사나 전기장, 자기장, 원자 간의 충돌 등 다양한 외부 영향에 둔감한 원자는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세슘 시계보다 5만 배 정확하지만
그나마 이터븀이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원자다. 이 책임연구원은 “그래도 외부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자를 냉각한 뒤 포획해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실 한 켠에 검은 막으로 가려진 것이 바로 이런 용도의 자기광포획(MOT) 장비였다.

 

포획한 이터븀 원자에 고유진동수와 동일한 주파수의 레이저를 쏘아주면 공진 신호(복사선)가 발생한다. 이 신호의 횟수가 518조 2958억3659만864번이 되는 시간을 1초로 정의한다. 이 책임연구원은 “안쪽 방에 있는 것이 고안정화 주파수 발생기”라며 “여기서 발생하는 레이저를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초공진기에서 안정화시킨 뒤 광섬유를 통해 원자로 보낸다”고 말했다.

 

초공진기를 거치지 않은 레이저는 압력, 온도, 진동, 소리 등 많은 물리적 변수에 의해 주파수가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초기에 표준연이 개발했던 레이저는 주파수가 100Hz 이상 흔들렸다. 초공진기만 해도 크기가 50인치 TV 보다 크다. 여기에 폭까지 있으니 이 장비만 해도 방 한쪽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초공진상태를 만들기 위한 부대 장비까지 합치면 규모가 엄청나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이 거대한 광격자 시계를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일까. 이 책임연구원은 “사실 1층과 450m 꼭대기에서 시간 차이를 측정하는 데 엄청나게 정밀한 시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 실험이 의미있는 이유는 이동식 광격자 시계를 활용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가토리 교수팀은 2016년 이동식 광격자 시계를 개발하고 해발고도가 15m 정도 차이 나는 두 지역의 시간차를 측정해 ‘네이처 포토닉스’에 발표했다. 여기서 사용한 시계는 말만 ‘이동식’이 붙었을 뿐 트레일러에 장비를 가득 실은 대형 장비에 가깝다. 독일 연방물리기술연구소(PTB)는 가로 2.2m, 세로 3m에 이르는 트레일러에 이동식 광격자 시계를 만들고 그 내용을 2017년 2월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동식 광격자 시계가 필요한 이유는 세슘 시계보다 5만 배 이상 정밀한데도 불구하고 아직 광격자 시계가 시간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광격자 시계가 진짜 정확한 시계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계가 정확한지 확인하려면 여러 개의 시계를 비교해야 하는데, 현재의 기술로는 쉽지 않다.

 

현재 사용되는 세슘 시계의 불확도(측정값의 불확실한 정도)는 10-13 정도로 인공위성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즉, 우리나라와 미국에 있는 세슘 시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인공위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이터븀 시계 중 가장 정확도가 높은 것은 미국항공물리연구소(JILA)가 개발한 것으로 불확도가 10-18 수준이다. 인공위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두 개의 광격자 시계의 측정값을 비교하려면 광섬유로 연결해 동시 측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너무 멀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표준기술 연구소(NIST)에서 2013년에 개발한 이터븀 광격자 시계. 오른쪽 상단 작은 사진은 독일 PTB가 만든 이동식 광격자 시계다.

 

 

 

이 책임연구원은 “현재 두 번째 광격자 시계를 개발하고 있으며, 연구실 안에서 두 광격자 시계의 정확성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0년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두 개의 알루미늄 이온 광격자 시계를 이용해, 하나는 지표면에 두고 하나는 지상 33cm에 놓은 뒤 시간차를 측정한 실험을 진행해 79년간 90억 분의 1초만큼의 시간 차이가 난다는 결과를 얻었는데, 이와 유사한 연구다.doi: 10.1126/science.1192720 이 책임연구원은 “시계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58만 년간 1초 빨라져
이제 다시 롯데월드타워로 돌아오자. 롯데월드타워의 꼭대기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를까. 이 책임연구원은 “만약 이 실험을 진행한다면 일단 광격자 시계 두 개를 개발해야 하고, 롯데월드타워의 화물 엘리베이터 크기에 맞춰 이동식 광격자 시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의 화물 엘리베이터는 53인승으로, 표준 규격에 따르면 가로 2.3m, 세로 3m 정도로 독일에서 개발한 이동식 트레일러보다 조금 크다.

 

이동식 광격자 시계가 준비됐다면, 광격자 시계 하나는 1층에 다른 하나는 123층에 올린 뒤, 광섬유로 두 시계를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1층에 있는 주파수 발생기에서 레이저를 쏘아준 뒤 동일한 공진횟수에 걸리는 시간차를 측정하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고도가 1cm 상승하면 세슘 시계를 기준으로 10-18초 빨라진다. 즉 550m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는 5.5X10-14초만큼 빨라진다. 이는 58만 년에 1초가 변하는 정도의 차이다.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일상생활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이 정도 오차를 가질 경우 전혀 엉뚱한 길로 안내할 수 있다.

 

현재 표준연은 이터븀 광격자 시계의 불확도를 10-17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롯데월드타워에서 시간차를 측정하기에는 충분한 성능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관건은 이 불확도를 유지하면서 작은 트레일러 안에 광격자 시계를 넣을 수 있는지 여부”라며 “지금 진행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6~7년 뒤에는 우리나라도 이동식 광격자 시계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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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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