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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우주에서 퀘이사(블랙홀 주변의 거대 발광체)가 내뿜는 바람에 의해 우주로 퍼져나가는 먼지를 묘사한 그림. 우주먼지는 별과 행성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먼지에서 태어나 먼지로 돌아간다.”

삶의 허망함을 말할 때 즐겨 쓰는 은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먼지에서 태어났고 또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갈 운명이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별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게 우주라고 생각되지만 우주 공간은 완전히 진공은 아니다. 원자와 분자 가스가 떠다니고 있고 우주먼지(티끌)도 퍼져 있다. 이들을 합쳐 성간물질이라고 부른다. 우주먼지를 걷어낼 수 있다면 밤하늘의 별빛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밝을 것이다. 먼지가 빛을 흡수하거나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➊ 행성간 우주먼지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작은 씨앗(grain)이 여럿 뭉쳐 수 마이크로미터까지 자랐다.
➋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말머리성운. 짙은 먼지가 성운 너머에서 지구로 향하는 빛을 막은 결과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데 우연히 해마의 머리가 연상되는 형상이 됐다.]

우리은하 질량의 0.1% 차지

우주먼지(cosmic dust)는 분자가 몇 개 모여 있는 입자에서 크기가 수 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에 이르는 고체입자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우주에서 먼지의 밀도는 무척 희박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우리은하의 경우 1km3에 먼지 100개가 있다. 그래도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우리은하의 우주먼지를 다 합치면 우리은하 전체 질량의 0.1% 정도를 차치한다. 티끌모아 태산인 셈이다. 한편 성간가스는 이보다 훨씬 많아 10%를 차지한다.

별들 사이의 공간에 먼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930년대 처음 밝혀졌다. 그 전까지는 우주공간이 완벽하게 진공이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태생의 미국 천문학자 로버트 트럼플러는 1930년 구상성단의 공간분포를 관측했는데, 이에 따르면 지구에서 멀리 있는 성단일수록 지름이 크게 나왔다. 트럼플러는 이에 대해 성단에서 나오는 빛이 먼지에 가려져 어둡게 보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멀게 거리를 추정하다보니 성단이 더 크게 나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주먼지 때문에 별빛이 가려져 어두워지는 현상을 ‘소광’이라고 부른다. 우주먼지는 우리은하의 중심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그 결과 가시광선으로는 우리은하 중심에서 오는 빛을 볼 수 없다. 우주먼지로 인한 소광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는 암흑성운이 있다. 암흑성운은 말 그대로 구름 같은 영역이 주변 하늘보다 더 깜깜하게 보이는 성운이다.

암흑성운은 10~20K(절대온도 단위인 캘빈. 절대영도는 영하 273.15℃다)의 차가운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성간물질이 고밀도로 존재하는 상태다. 따라서 그 너머에서 지구로 향하는 별빛의 대부분이 통과하지 못하므로 검은 얼룩처럼 보인다. 오리온자리에 있는 말머리성운은 대표적인 암흑성운이다.

우주먼지의 밀도가 높다고 해서 다 어두운 건 아니다. 우주먼지가 아주 밝은 별 옆에 있으면 산란된 빛의 양도 꽤 되기 때문에 성운이 밝게 보인다. 이를 반사성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주먼지는 애초에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빅뱅이론에 따르면 대폭발 뒤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플라스마 상태의 물질이 원자를 만들어 수소와 헬륨이 생성됐다.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와 헬륨은 사실상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 이런 가스가 뭉쳐 별들이 탄생했다. 별은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서 탄소, 산소, 철 등 다양한 원소가 만들어졌다.

구본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우주먼지의 대부분은 별의 진화 과정 중 거성 단계에서 껍질을 이루는 물질을 우주공간으로 방출할 때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때 방출된 엄청난 가스가 식으면서 응결해 고체입자인 먼지를 만드는 것이다. 태양 역시 50억 년 뒤에는 거성으로 부풀어 오르며 엄청난 양의 우주먼지를 쏟아낼 것이다. 태양보다 질량이 8배 이상 무거운 별들의 최후인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도 많은 먼지가 만들어진다.

최근 과학자들은 초신성 폭발이 우주먼지 형성에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1987년 2월 23일 폭발이 관측된 초신성 1987A는 지구에서 ‘불과’ 16만 광년 떨어진 대마젤란은하에 속해 있다. 우리은하에서 관측된 마지막 초신성 폭발이 1604년이었기 때문에 20세기 현대천문학이 확립된 이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지난 24년 동안 초신성 1987A에 벌어지는 일들을 면밀히 관측해왔다. 그 결과 폭발의 중심부에서 엄청난 양의 먼지가 만들어져 사방으로 흩어짐을 확인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형성된 먼지의 양은 태양 질량의 40~70%로 지구 같은 행성을 20만 개 만들고도 남을 양이다.

연구를 이끈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I) 마가렛 마익스너 박사는 “천문학의 스케일에서는 눈 깜짝할 순간에 불과한 20여 년 사이에 이정도 먼지가 생겨났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대마젤란은하에서 보이는 먼지의 상당부분도 초신성 폭발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번 관측은 우주초기 별들 역시 ‘소광’효과를 보이는 관측을 설명한다. 즉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초기에는 먼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광효과도 거의 없어야 하지만 1990년대 관측된 초기 별들의 불빛은 많이 가려져 있었다. 결국 우주 초기 먼지의 근원이 초신성폭발일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별의 질량이 아주 클 경우 수명이 수백만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초기 생성된 큰 별들이 초신성 폭발을 통해 사라지며(또는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로 바뀌며) 엄청난 양의 먼지를 내뿜었다는 것. 이번 관측은 초신성 폭발이 정말로 충분한 양의 먼지를 만들어냄을 보여줬다.
 

[➊ 우주탐사선 스타더스트호에 실린 우주먼지 채취장치. 나노 다공성 물질인 에어로젤이 채워져 있다.
➋ 에어로젤에 부딪친 뒤 뚫고 들어가다 멈춘 우주먼지들. 이를 채취해 성분을 분석하자 아미노산을 포함해 다양한 유기분자가 확인됐다.]
 
[최근 성간물질에서 풀러렌과 그래핀 같은 탄소화합물의 존재도 확인됐다. 이런 분자들은 우주먼지 표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주먼지에서 발견된 아미노산

그렇다면 우주먼지는 주로 어떤 원소들로 이뤄져 있을까. 우리 주변의 먼지는 흙이나 모래에서 비롯한 미네랄이나 동물의 각질, 식물섬유 조각 등 각종 무기물과 유기물로 이뤄져 있지만 우주먼지는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인다. 작은 얼음 알갱이나 규산염, 탄소(흑연) 등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알루미늄, 철 등 여러 원소들도 존재한다.

금이나 우라늄 같은 아주 무거운 원소를 함유한 먼지도 소량 존재하는데 이들은 초신성 폭발로 만들어졌다. 별의 핵융합으로 만들 수 있는 원소는 철이 한계다. 그보다 무거운 원소는 대부분 ‘중성자포획’으로 만들어진다. 중성자가 원자핵에 포획된 뒤 베타붕괴를 일으켜 양성자로 바뀌면서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라늄과 토륨 같은 무거운 원소들은 중성자의 밀도가 아주 높은 환경인 초신성 폭발을 할 때만 만들어진다. 결국 가스와 먼지가 모여 별을 만들고 별이 죽으면서 가스와 먼지를 내놓고 여기에서 또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런 순환을 거치면서 무거운 원소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진다.

우주먼지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을 분석하면 대략적인 성분을 알 수는 있지만 정확한 성분은 물론 우주먼지 자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우주먼지를 채집하려고 시도해왔는데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가 바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진행한 ‘스타더스트(Stardust)’ 미션이다.

1999년 2월 8일 발사된 탐사선은 빌트2(Wild 2)로 불리는 혜성에 접근해 우주먼지를 채취해오는 임무를 맡았다. 스타더스트호는 5년 가까이 날아가 2004년 1월 2일 마침내 얼음 덩어리인 혜성의 주변을 통과하며 가스와 먼지를 포집했다.

혜성과 탐사선은 서로 빠른 속도로 엇갈려 지나치기 때문에 먼지를 온전한 상태로 포집하기가 매우 어렵다. 연구자들은 해결책으로 에어로젤이라는 특수 물질을 이용했다. 에어로젤은 99.8%가 빈 공간인 나노 다공성 물질로 에어로젤에 들어온 먼지입자는 다공성인 젤 내부를 통과하면서 감속돼 붙잡힌다. 2006년 1월 15일 지구에 접근한 스타더스트호는 먼지샘플을 담은 캡슐을 낙하산에 실어 지구에 떨어뜨리고 다시 우주로 향했다.

그해 12월 15일자 ‘사이언스’는 특집으로 스타더스트 미션의 결과를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이 혜성의 우주먼지에 있는 유기화합물을 분석한 논문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주먼지 속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유기화합물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아미노산인 글리신도 있었다. 아미노산은 생체분자인 단백질의 구성성분이다.

연구자들은 “혜성의 분출물(먼지)에 유기화합물이 존재한다는 건 천체생물학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라며 “이 물질이 초기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주먼지처럼 우주의 유기물질이 초기 지구로 유입돼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게 됐다는 가설을 처음 발표한 사람은 스페인의 생화학자 후안 오로 박사다. 그는 50년 전인 1961년 혜성에 있는 유기분자가 지구 생명체의 재료가 됐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매일 100t이 넘는 우주먼지가 지구로 들어오고 있다. 1년이면 4만t이나 된다. 태양계가 형성되고 수억 년 동안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혜성과 소행성, 운석, 우주먼지가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에 지구 표면은 유기화합물이 풍부했을 것이다.

우주먼지는 별이나 행성뿐만 아니라 생명체 탄생에도 씨앗으로 작용했던 게 아닐까.

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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