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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 - 발표 · 반론 · 평론의 3박자

수개월 전 문제 미리 공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남들 앞에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에 못지 않게 다른 연구자와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이같은 과학자의 덕목을 키우는 대회가 열렸다.

8, 7, 7, 5, 6, 8, 5, 9.
심사위원들이 점수판을 들어 성적을 매긴다. 무슨 체조경기가 열리는 곳인가. 그렇지 않다. 제1회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가 진행되는 자리다.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 어떤 대회일까.

학생 5명씩 한줄로 모여있고, 이런 학생팀이 모두 4팀이 둘러앉아 있다. 그러니까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는 팀 대회인 것이다. 그리고 대회명에서 말해주듯 물리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대회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한다는 것일까.

∙정전기 장으로 작동하는 전동기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이때 모터에 영향을 주는 변인이 어떤 것이면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제시하라.
∙병에 담긴 액체를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빨리 비울 수 있는 방법을 조사하라.


이같은 문제는 학교시험이나 올림피아드와 같은 경시대회에서 나올 법하지 않다. 그리고 답이 딱 정해지지도 않는다. 보통 때는 생각해보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문제에 대해 갑자기 모여서 토론한다는 것일까.

때문에 대회가 개최되기 수개월 전에 문제를 공개한다. 공개되는 문제는 10문제(전체 문제는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 www.dongascience.com 참조). 이 문제를 중·고등학교 학생 5명이 팀을 짜서 문제와 관련된 이론적인 공부와 함께 실질적인 실험활동을 해보고 나서야 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
 

대회 진행중의 모습. 각 팀은 교대로 발표, 반론, 평론, 그리고 관찰의 역할을 한다.


과학교육에 토론문화 만든다

대회에서는 자신의 팀이 수행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자. 4팀이 한개의 집단을 구성해서 토론을 진행한다. 4팀은 각각 발표팀, 반론팀, 평론팀, 그리고 관찰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 팀이 4개의 역할을 교대로 돌아가면서 수행해야 대회가 끝난다. 즉 4회전으로 진행된다는 말이다.

한 회전은 45분. 우선 반론팀은 미리 제시된 10문제 중에서 발표팀이 설명할 문제를 고른다. 이때 발표팀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3번까지 거절할 수 있다. 4번째 거절부터는 감점된다. 발표팀은 12분 동안 자신들이 수행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때 다른 팀들도 열심히 들어야 한다. 반론팀의 경우 여기에서 발표팀의 오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발표팀의 발표가 끝나면 발표팀과 반론팀 사이에 격렬한 토론이 오고 간다.

토론이 끝나면 평론팀은 발표팀과 반론팀이 얼마나 문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토론을 잘 해냈는지를 평가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심사위원은 곧바로 점수판을 들어 발표팀, 반론팀, 평론팀에 대해 평가를 한다. 이같은 대회진행 방식은 전람회나 발명품대회와 같은 연구활동 경시대회와는 차별화된 점이다. 이들 대회는 자신이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 물리탐구토론대회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팀이 수행한 것까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인천과학고 팀은 “전람회나 발명품대회처럼 실질적인 실험활동을 하면서도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제가 미리 공개되기 때문에 다른 팀도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이다. 결국 같은 문제를 놓고 경쟁을 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는 반론을 펼 수 없기 때문에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자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결할까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좀더 주도면밀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회에서 사회를 맡은 서울대 물리교육과 박승재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년 탐구토론대회는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한다.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와의 공동연구는 물론 자신의 연구와 다른 사람의 연구를 함께 생각해보고 토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실제로 처음에는 어색하게 진행됐던 학생들의 토론이 4회전으로 갈수록 매끄럽게 이뤄졌다.

국내대회 거쳐 내년 세계대회 출전

이번에는 1회 대회여서 참여가 저조했다. 지난 7월에 대회안내가 각 학교에 전달됐고, 예선대회는 9월중에 9개팀이 참여했다. 이 중에서 4개팀이 지난 11월 16일 열린 본선대회에 진출했다. 예선대회는 중등부와 고등부로 나눠 진행됐고, 본선대회에는 모두 고등부팀이었다.

본선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은 내년 5월 우크라이나에서 개최되는 국제청소년물리학자토너먼트(Internation Young Physicists’Tournament, IYPT)에 최초의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이번 국내대회는 국제대회 참여팀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국내 본선대회는 영어로 진행됐다. 참가한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뛰어났지만, 토론에 그리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로 말을 해야하기 때문에 심도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다.

또한 이번 고등부에 참여한 학교팀이 모두 과학고였다는 사실이 아쉬운 점이었다. 학생들이 해온 결과를 살펴보면 팀이 함께 오랜 시간 동안 토론하고 실제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일선학교의 학생에게는 그만한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기 힘들다. 하지만 과학고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일선학교 학생들이 준비해서 참여하기에는 좀 벅차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청소년 탐구토론대회. 아직은 미진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200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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