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생물은 자연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물이 새 환경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 없이 환경이 갑자기 변화해 간다면 어떻게 될까? 생물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절멸할 것이다.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지구 위에 살수 있을까? 지금의 모습이 앞으로도 사람이 살아있는 한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까? 만일 변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할 때 흔히 가지는 질문들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자손들이 얼마만큼 행복하게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을 할 때마다 인간이 그 동안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던가를 아는 것이 앞으로의 진화 방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백만년 전에 출현한 인류
오늘날의 인간의 모습을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영장류, 특히 침팬지 등의 유인원과 비교해 본다면 그 변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지도 이미 5백만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인류는 신체의 조건이나 행위가 엄청나게 변화해 다른 종류의 짐승들과는 도저히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이 직립으로 인한 손의 해방으로 자연환경에 단순히 신체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해 적응력을 높여온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능력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됐다. 도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대상을 반복해 관찰함으로써 두뇌의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게 됐다. 또 도구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필요에 맞도록 변화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도구제작은 사유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인간이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 되도록 했으며 이것이 곧 오늘날 성공의 원천이 됐다.
이제 인간은 구석기시대의 석기문화, 즉 돌을 다듬어서 도구를 만들어 필요한 음식을 구하던 문화로부터 엄청나게 발달한 원자문명 내지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난 후 수백만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나타난 석기문화는 약 2백만년 동안 지속됐다.
그동안 인류의 두뇌는 침팬지의 크기(약 4백C.C.)에서 오늘날의 크기(약 1천4백C.C.)로 발달했다. 석기시대 후반(약 10만년 전)에 이미 오늘날과 같은 현생인류가 나타났으며 이들은 우리와 거의 비슷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또 죽은 가족을 땅에 묻음으로써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이들이 남겨놓은 동굴벽화 또는 조각품에서 발견되는 흔적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인간다움이나 인간의 자아의식이 이미 형성돼 있었으며 자신들이 살았던 세계를 이해했을 뿐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능력이 있었다.
인류진화사의 위대한 발명, 농경과 목축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최고로 잘 표현된 인류진화사의 사건은 약 1만년 전에 일어난 농경과 목축의 도입이다. 이것은 차라리 인간의 역사 중에서 전무후무한 발명으로 표현돼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기대어 사는 자연계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자연의 정복자로서 지구 생물계의 새로운 존재가 됐다.
음식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자연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조절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생물계의 어떤 구성원도 할 수 없었으며 오늘날 지구의 모습을 극적으로 바꾸게 하는 원인이 됐다. 농경은 인간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켜 정착생활을 유지하게 했고 인구의 집중현상과 이로 인해 복합사회라는 새로운 인간사회질서가 나타나게 했으며 결국 인간이 인간과 환경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문명을 발생하게 했다.
문명은 인간의 문화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한 형태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발달된 수단이다.
인류가 석기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부터도 인류는 자연에 의존해 살아왔다. 자연의 체계 속에서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자연은 항상 평형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일시적인 불균형이 있다고 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이전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평형을 유지하는 것은 각각의 생물의 생존 방식이 공존을 유지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의 환경에서 동일한 음식을 대상으로 경쟁을 벌인다면 어느 시기에 양자중에 하나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지구의 생물들은 각각 고유한 생존방식을 가지고 자손을 번식시켜 나가도록 형성돼 온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이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유전자가 이 세상에서 가능한 한 많이 복제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생물들은 자연체계 내에서 먹이사슬 관계를 유지하는 한 평형상태로 조절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인간의 문명은 지구상에 오랫동안 존재해오던 생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과정에 있으며 파괴된 관계는 예전과 다르게 평형상태로 복원하기 어렵게 돼가고 있다.
문명은 인간존재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됐다. 문명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한번 알고나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가 있는 사회에서 자동차를 배제하고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듯이 어떤 불가항력적인 제재가 없다면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 요소를 문명사회에서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문명, 즉 효율성의 극대화는 인간진화의 방향일 것이다. 진화의 방향은 한번 설정된 다음에는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원래 인간이 자연 속에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했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생물은 이기적인 방향으로 행동하는 속성이 있다. 생존이든 그 이상의 욕심이든 간에 이는 모두 유전자의 이기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조물주는 이러한 이기적인 특성으로 이 지구 위의 생물을 조절하려고 했다.
한쪽의 이기심이 커진다면 이것이 한동안 존재하는 데 효율성을 부여해 그 생물이 번식하는 데 도움을 줄지 몰라도 오래지 않아 과잉번식의 폐단이 드러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영리한 생물은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잘 이해, 그 과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인 동물로서 이타적인 행위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타적인 행위는 인간보편을 위한 자아희생의 것일지언정 생물계 일반을 위한 것은 아니어서 결국 이기적인 특성이 그 폐해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자연의 평형상태 깨뜨리는 인간의 문명
이제까지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이기적인 속성에 따라 자연을 개척, 이용하기 위한 수단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 수단은 인간이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에 대한 단순한 적응방식으로서의 수단이 아니라 자연의 평형을 깨뜨려 많은 생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아 절멸하고 있으며 결국 자연을 새로운 혼돈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인간이 이 지구상 생물계의 음식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존재로서 인간문명이 깨뜨린 자연계 평형의 영향을 벌로 받게 될 것인가? 현재 인간의 문명이 자연의 평형상태를 깨뜨리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음식 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 발명한 문명은 이미 그 자신의 독특한 법칙을 지닌 채 인간의 이기심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이제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문명은 존재하며 또 이기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문제는 이 지구가 언제 문명의 독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평형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이해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생물은 자연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응한 환경이, 생물이 적응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이 갑자기 변화해 간다면 생물은 적절한 환경이 있는 곳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살 수 있는 환경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절멸할 것이다.
생물의 진화는 우연적인 것이어서 변화하는 환경에 항상 적절할 수는 없다. 특히 급격한 환경변화 속에서는 그 어느 생물도 생존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중생대 말엽 엄청나게 큰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전 지구가 연기와 수증기 그리고 먼지에 휩싸이게 돼서 공룡이 절멸하게 된 사건이나 지난 2백만년 동안 여러 차례 빙하기를 거치며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절멸한 사건들, 매머드와 같은 대형동물들이 추운 환경에 적응했다가 빙하기의 후퇴와 함께 절멸하게 된 사건들은 급격한 환경변화의 대표적인 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대략 5천만년 정도 주기로 운석들이 지구를 향해 떨어진다고 본다. 지구사로 볼 때 여러 차례 생물의 절멸에 운석군이 관여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서 멀지않은 장래에 지구상에 또 다시 생물의 대량절멸이 발생하는 운석의 내습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리고 밀란코비치의 이론에 따르면 빙하기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지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지 이미 1만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멀지 않은 장래에 소주기(小周期) 빙하가 들어오게 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류 문명의 능력은 이러한 외부의 환경변화가 상당히 광범위한 규모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견디어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간은 인간의 생리학적인 능력을 초월하는 환경에서도 문화 또는 문명의 힘으로 그것들을 극복해 왔기 때문이다. 불모의 사막이나 얼음의 땅인 극지방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명의 힘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경고「인간 이후의 인간」
인간의 문명은 이미 그 자신의 법칙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이 진화하면서 그 문명도 발달하게 돼 있다. 유전자만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문명자(文明子)도 역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문명은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수단이지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생활하게 돼 문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망각하게 된다. 문명은 자연의 변형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명의 형태가 극단화돼 갈수록 자연은 점진적으로 파괴돼 갈 것이다.
특히 문명의 필연적인 부산물인 공해가 누적돼 생물의 적응 범위를 넘어서며 지구의 먹이사슬이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이 먹고 살았던 음식물의 재료들은 지구상에서 하나 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도 새로운 영양 섭취 방식을 개발하고 공해의 독소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듀갈 딕슨(Dougal Dixon)의 저서인 '인간 이후의 인간(Man after Man)'은 인간의 미래에 대해 대단히 의미심장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제 현대문명이 그 극치를 향해 진보하고 있는 시점에서 생명의 신비가 하나 둘씩 벗겨지며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유전학적인 기술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에 대체될 기계가 바야흐로 등장할 이 시대에 영화나 소설과 같은 분야에서 많은 과학적인 상상력들이 이미 인간의 미래형태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 방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현대에 '인간 이후의 인간'에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제까지 제기된 그 어느 시나리오보다 체계적이며 시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딕슨이 제시한 가장 드라마틱한 상상은 인간이 공해로 인해 적응이 불가능한 지구환경에서 유전공학과 의학을 이용해 인간개조나 새 인간 창조로 살아가고 진화해 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