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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빙산을 끌어와 아프리카에 식수로 공급한다면? 높이가 200m가 넘는 얼음 덩어리를 어떻게 끌고 올까, 중간에 녹으면 어쩌지, 북극곰이 살 곳은 따로 마련해줘야 하나…. 과학기술자 20여 명이 모여 거대한 빙산으로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는 현장을 지난 5월 10일 방문했다.


[봄철 북극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 상황에서 빙산을 끄는 배가 방향을 정확히 잡을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으로 시험하고 있다.]


[700만t 규모의 북극 빙산을 아프리카까지 운반하는 시뮬레이션 장면. 빙산 오른쪽 위에 빙산을 끌어당기는 배가 보인다.]

“미끄러우니 조심해요!” 갑자기 불어온 태풍에 빙산이 몹시 흔들렸다.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파고가 10m를 넘는 파도가 빙산을 강하게 내리치자 모퉁이 얼음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앞에서 빙산을 끌고 있는 배는 파도에 전복당하기 직전이다. 급히 배를 멈추고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남쪽!” 조이스틱 버튼을 눌렀다. 배에서 돛이 펼쳐졌다. 배와 얼음이 바람의 힘을 타고 빠르게 태풍 지역을 벗어났다. 임무 완수! 심호흡을 하면서 머리에 쓴 특수디스플레이 안경을 벗었다. 눈앞의 바다 영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700만t 빙산= 55만 명 1년 식수

실제 태풍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프랑스 소프트웨어 업체인 다쏘시스템의 ‘3차원(3D) 시뮬레이션센터’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에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극지의 빙산을 적도 부근까지 끌어오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빙산을 녹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북극곰 같은 극지 생물이 서식하는 터전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런데 빙산은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버려지는 부분이다. 극지에 있는 육상 빙하에서는 해마다 수백만∼수천만t 규모의 빙산이 1만 개 이상 떨어져 나간다. 이것들은 동물들이 살기엔 너무 작다. 결국 바다 위를 떠다니다 녹는다.

연구팀은 700만t 규모의 빙산 한 덩어리를 녹이면 55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컴퓨터로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약 200m인 700만t 규모의 빙산을 만들고 아프리카까지 끌어오는 과정을 3D 시뮬레이션으로 제작했다. 쌍끌이 어선처럼 배 두 척 사이에 그물을 매달고 빙산을 그물에 넣어 천천히 끌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수온이나 파도, 조류 방향 같은 시뮬레이션 조건은 위성에서 측정한 실제 바다의 정보를 그대로 적용했다.


[조이스틱을 이용해 해류의 방향, 수온, 계절 등 빙산을 운반하는 환경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기자(오른쪽)가 직접 시연해봤다.]

높이 200m 빙산, 파도 맷집 실험

기자가 체험한 시뮬레이션은 봄철 북극에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태풍 상황이었다. 빙산은 바다로만 운반하기 때문에 바다의 기상상황이 큰 변수다. 연구팀에서 3D 시뮬레이션을 운영하는 세드리크 시마르 연구원은 “태풍 외에도 수온을 높인다거나 계절을 변화시키는 식으로 다양하게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며 조이스틱을 건넸다. 버튼을 누르자 조금 전까지 파도가 높게 일렁이던 바다가 잔잔해졌다.

빙산의 이동경로는 바람이나 해류의 방향, 수온 등 다양한 환경 조건을 시뮬레이션한 뒤 결정한다. 시마르 연구원은 “빙산을 빠르게 운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양 시설물이나 암초에 부딪히지 않도록 예방하는 안전문제가 가장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가 3D 시뮬레이션에 출발지 ‘그린란드 섬’과 목적지 ‘카나리아 제도’를 입력하자 단 2분만에 북미 동쪽 해역에서 아프리카 서쪽 해역까지 이어지는 최적경로가 나왔다.


[빙산을 옮길 때는 해류와 바람의 힘을 주로 이용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연료가 거의 들지 않아 경제적이다.]

해류 이용… 오래 걸리지만 경제적

거대한 빙산을 배로 끌어오려면 연료가 얼마나 들까. 빙산을 직접 옮기는 것보다 생수를 만들어 가져오는 편이 더 경제적이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선박제조 전문가인 조르주 무쟁 씨는 “빙산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빙산 한 덩어리를 옮기는 것은 5t짜리 물탱크 140만 개를 한꺼번에 운반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무게가 얼마인 빙산을 몇 대의 배로 끄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수치로 계산했다. 계산은 간단하지 않았다. 빙산이 클수록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지만 이것을 끌어당기는 배가 연료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또 빙산을 끄는 배가 많을수록 빙산을 운반하는 기간은 줄지만 연료 소모가 늘어난다.

연구팀은 빙산 무게와 배 댓수를 조금씩 늘려가며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계산 결과 700만t 규모의 빙산을 배 두 척으로 운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배를 3~4척으로 늘려도 운반 기간이나 효율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무쟁 씨는 “배는 빙산이 움직이는 방향을 조정만 할 뿐”이라며 “해류의 힘을 이용해 빙산을 옮긴다”고 강조했다. 이는 바닷물을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용한다는 얘기다. 때로는 바람도 이용한다(맨 위 사진). 시속 1.8km로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북극해에서 적도 부근까지 빙산을 운반하는 데 141일이나 걸리지만 연료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배 두 척 사이에 그물을 걸고 빙산을 끈다. 시뮬레이션 결과 배를 두 척 이용하는 게 연료비 대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실측한 북극 바다의 정보를 시뮬레이션에 그대로 적용해 계산 정확도를 높였다.]


[▲ 빙산 전체 질량의 약 30%는 이동 중에 녹는다. 연구팀은 빙산의 온도분포를 분석해 가장 적게 녹는 이동시기와 경로를 결정했다.
  ◀ 3D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최적 경로. 북극에 있는 그린란드 섬에서 아프리카 서쪽 카나리아 해역까지 이동하는 데 약 141일이 걸린다.]

[➊ ➋ ➌ ➍ 연구진은 빙산이 녹지 않도록 주변에 차단막을 설치해 운반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빙산을 향해 조이스틱 버튼을 누르면 주름치마 모양의 차단막이 내려온다. 차단막은 빙산이 녹은 물과 바닷물을 분리한다. 빙산을 차가운 물로 둘러싸 보호하는 원리다. 차단막이 빙산을 완전히 감싸면 그물에 넣고 끈다.]

빙산이 녹지 않는 비결 ‘주름치마’

이동시간이 길수록 빙산이 중도에 녹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게다가 적도의 따듯한 물속에서는 얼음이 더 잘 녹는다. 이날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빙산 전체 질량의 38%가 이동 과정 중에 녹았다. 빙하학자인 노르웨이 극지연구소의 올라프 오르하임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에 대비해 특수 소재로 만든 ‘주름치마’를 빙산에 입혔다.

빙산을 향해 조이스틱 버튼을 누르자 빙산 꼭대기에 두른 ‘벨트’에서 치맛자락이 내려왔다. 마이크로 크기의 미세한 구멍이 나있는 합성섬유가 빙하의 아랫부분을 완전히 감쌌다. 잠시 뒤 차단막 안쪽은 빙산이 녹은 물로만 가득 찼다. 합성섬유가 바닷물과 빙산이 녹은 물을 분리한 셈이다.

무쟁 씨는 “바닷물은 빙산이 녹은 물보다 농도가 높기 때문에 (삼투압 원리에 따라) 막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며 “빙산을 차가운 물로 둘러싸 보호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빙산이 바닷물에 마모되면 더 빨리 녹는데 차단막으로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빙산이 녹는 양을 1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봄 첫 운반 도전

빙산에 차단막을 두르거나 그물로 빙산을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해양생물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까. 700만t이나 되는 빙산 때문에 주변 수온이 낮아질 경우 해양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무쟁 씨는 “노(no)”라고 결론부터 얘기했다. 빙산에 두르는 차단막은 빙산 표면과 1m 간격을 두고 천천히 내려오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해양 동물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빙산이 수온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빙산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봄 실제 빙산을 운반하는 데 도전한다. 운반한 빙산을 담수로 바꿔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 1차 목표지만 빙산에서 발생한 냉기로 아프리카에 냉방시스템을 제공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무쟁 씨는 “빙산이 이동 중에 부서지는 것 같은 특수 상황에 대비해 추가 시뮬레이션을 연구하고 있다”며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이면 빙산을 옮기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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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벨리지빌라쿠블레(프랑스)=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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