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도감에 따뜻한 이야기를 불어넣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9586996995425050843dc2.jpg)
도감을 만드는 일은 ‘노가다’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털끝 하나까지 특징을 기록해야한다. 사진한 장 찍는 일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둥그런 몸체를 가까이 찍다보면 초점이 나가기 일쑤다. 생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바탕 색지를 찾으러 시장바닥을 뒤지는 일은 그나마 애교다. 품은 엄청나게 드는데, 그만큼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도감은 학교 선생님이나 마니아층에서 구입하는데, 그 수가 한줌이다.
그럼에도 지오북이 과학자들과 함께 도감을 만드는 이유는 ‘재미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전유경 편집기획팀장은 생물학과를 나왔다. 누군가
는 해야 할 일이라 길게 보고 도감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잘 안 팔리고 작업도 어려운 건 맞아요. 그래도 간혹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는 책도 있어요.” 재작년 지오북에서 펴낸 ‘버섯생태도감’은 꽤 잘 팔렸다. “사람들이 버섯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지오북의 대표작](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36192540854250524d2be2.jpg)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도감
2003년 문을 연 지오북이 처음으로 펴낸 책은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과학책이 심각하고 어려워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편안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식물을 이야기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에세이였다. 현재 국립수목원장인 이유미 박사가 ‘5월 밤 아까시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눈물을 흘리는’ 감성으로 책을 써내려갔다. 이 책의 성공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도 과학책에 감성을 불어넣는 시도를 시작했다. 전 팀장은 “과학책이 점차 따뜻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냉철한 사고와 과학적 본질만을 추구하던 틀에서 벗어나 우리 삶과 과학의 관계,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오북은 딱딱하기만 하던 생태도감에도 이런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우리매미탐구’에서는 매미를 찾아 대만의 숲속을 뒤지던 과학자가 매미소리를 귀신웃음소리로 착각해 벌벌 떨었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열대의 과일자원’에서는 생물학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시장 사진이 눈을 즐겁게 하고, ‘양치식물의 자연사’에는 17세기 유럽 사회를 ‘투기와 광기’로 몰아갔던 튤립과 양치식물의 역사가 스며 있다. 이만하
면 도감도 재미있을 법하지 않은가.
![지오북의 숨겨진 책](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130832330542505533071b.jpg)
생태여행과 생태건축도 다뤄볼 터
지오북의 또 다른 관심은 환경문제, 기후변화, 전통생태와 지리를 다루는 책이다. 지금까지 110여 종의 책을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생태여행이
나 생태건축을 다루는 책도 만들 계획이다. 이런 분야에서 전 팀장이 추천하는 책은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이다. 예리한 시선과 따뜻한 감성으로 생명과 자연,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특히 인간 중심의 ‘종이기주의’를 경계한다. 인간도 생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른 생물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오북이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지오북에서는 전공서적과 대중서적을 구분해 출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서적은 좀더 쉽게, 대중서적은 좀더 정보를 넣어서 만든다. 출간하는 책이 전문가와 일반인을 모두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란다. ‘키워드로 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었는데 의외로 대학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나쁜 책이 세상에 있을까요?
전 팀장에게 좋은 과학책을 고르는 노하우가 뭔지 물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죠.” 뜬금없이 전 팀장은 ‘나쁜 책이 세상에 있을까’ 되물었다. “찰
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도 수많은 오류가 있지만 여전히 좋은 과학책으로 추앙받고 있지 않나요?” 좋은 과학책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쉽고 흥미로운 내용만 골라 엮은 책, 매끄럽게 다듬어져 술술 읽히는 책, 저명한 과학자의 심오하고 난해한 책 등 이것저것 고를 것 없이 ‘모두 도전하라’고 그는 말한다. 읽다보면 궁금증이 커져 관련 분야의 다른 책을 찾게 되고, 책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에 손이 가게 마련이다. 책의 단점이나 오류를 찾아내는 능력도 읽어야 생긴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전 팀장이 말한다. “좋은 기사 써주세요.” 보통 취재원들은 “잘 써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기사라. 문을
나서도 아늑한 느낌이 따라왔다.
![전유경 편집기획팀장 추천도서](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717195880542505886ecc8.jpg)
![내게 가장 잘 맞는 책을 골라 보자](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55084147154250593b286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