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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장관 보고서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기념일이 되면 개최되는 국가 연구 인력 육성 발전 방안을 위한 어쩌고 회의 같은 홍보성 행사에 출연하는 발표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방법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과학 연구에 대한 가장 좋은 의견을 자주 들을 수 있는 곳은 연구원들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다.
“이번에 잡힌 R426은 큰 거 잖아요. R426을 잡았는데 그냥 손 놓고 다른 걸로 넘어간다고요?”
“할 수 없잖아. 요즘에 워낙 국방, 안보 쪽으로 관심이 높으니까.”
“그래도 그렇죠. R426은 진짜 외계인이 보낸 전파일 수도 있는데.”
“그런 말 너무 큰 소리로 하지 말고. 그리고 이제 말은 그만하자. 아직 방역수칙 지켜야지.”
이 박사의 지적에 김 박사는 더 이상 R426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을 멈췄다. 
그렇지만, 생각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해물라면에 공깃밥을 시켜 먹으면서도 R426이 외계인이 보낸 전파라는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라면 국물 속에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는 꼴뚜기와 새우를 보자 어쩐지 정말 외계인이 우주 저편에 있고 그 외계인이 뭐라고 통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김 박사는 돌아가는 길에 이 박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우리 연구소의 설립 목적 자체가 우주 전파 연구잖아요. 그런데 외계인이 보낸 통신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더군다나 이게 역사상 최초로 외계인을 확실히 발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이거 진짜 진짜 중요한 거 아니에요? 역사적인 것이고, 정말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큰 것이고, 문명사의 대전환….”
“말 너무 많이 하지 말자니까. 방역수칙 지켜야지.”
“연구 중단된 게, 연구소장님이 장관 산하 위원회에서 발표를 잘못하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발표는 잘하셨대. 부소장님도 따라가셨고.”
연구실로 돌아와서도 김 박사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김 박사가 해야 할 일이 R426 전파 신호를 해석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일로 결과를 내도 어차피 그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후속 연구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장관 지시로 결정돼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끝도 없이 많은 숫자들이 모여 있는 이 자료 파일 덩어리를 끌어안고 세상의 그 모든 수학을 다 동원해 뜻을 알아내려고 애써야 하는 것인가? 재미로?
“그러면 그냥 지금까지 입수된 자료를 외부에 공개라도 하면 안 되나요?”
김 박사는 이 박사에게 보안 통신 프로그램을 이용해 물었다. 곧 이 박사의 답변이 돌아왔다.
“김 박사, 이상한 생각 꿈도 꾸지 마. 그런 짓 하면 큰일 나. 우리 연구소 통째로 거덜 난다고. R426 전파가 발견 직후에 1급 안보 기밀 정보로 분류된 것 알지? 그거 공개되면 안보법에 걸려서 감옥 가.”
“답답해서 그러죠. 아니, 외계인이 보낸 전파를 잡아냈는데 연구도 못하고, 공개도 못하고, 너무 하잖아요.”
“정부에서도 그게 귀중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1급 안보 기밀 정보로 분류했지.”
“그렇게 귀중하면 좀 드러내 놓고 연구를 하게 해 주던가, 공개를 해서 널리 사용하게 해 주던가 해야죠. 그거 귀중하다, 소중하다, 하면서 그냥 끌어안고 아무도 못 건드리게 신주 단지 받들듯이 엄중하게 보호만 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사회에도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세상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게 귀중하다고 해서 1급 안보 기밀로 지정했을 그때하고, 지금하고, 높은 분들이 다 바뀌었잖아. 이 마당에 갑자기 1급 안보 기밀로 지정돼 있던 걸 함부로 풀었다가 뭐 일이 잘못되면 새로 오신 높은 분들 책임이 되니까 그런 일을 할 이유는 없는 거고. 대신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으니까, 그쪽으로 예산하고 인력은 재배치해야 되는 거지.”
김 박사는 재배치라는 말을 듣고, 새로 해야 될 연구에 대한 계획서 자료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특급 안보 기밀 – 금산사’ 이거는 또 ‘특급 안보 기밀’이네.
“소장님께서 이걸 더 와닿게 설명하셔야 했던 거 아니에요? 어떻게 외계인 전파를 잡았는데 그걸 그냥 버려요?”
“소장님도 하실 만큼 하셨어. 그나마 우주 통신 연구소가 할 일 없어졌다고 다 끝장나는 게 아니라 금산사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게 어디냐? 소장님도 그거 그렇게 되게 한다고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 얼마나 여기저기 굽실거리고 다니면서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외계인이 보낸 통신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애쓰는 대신에, 일자리를 지키려고 애쓰셨다는 거예요?”
“그런 거지. 금산사 사업에라도 참여하게 됐으니까 우리가 그래도 계속 연구소 다니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R426 신호는 아직 해독이 안 됐으니까, 그게 진짜 외계인이 보낸 통신문인지는 확실히 몰라. 그러니까 더 이상 너무 또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말자고.”
“아니, R값이 0.98인데, 이게 외계인 통신문이 아니면 뭐예요?”
“R값이 완벽한 기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김 박사는 그게 혹시 문제였나 싶었다. 
우주에서 들어온 전파를 분석해서 그중에 혹시 인위적으로 통신을 위해 보낸 신호가 있는지 확인할 때에 널리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로즈웰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로즈웰 프로그램으로 전파 신호를 계산해 보면, 화면에 R이라는 수치가 얼마인지가 표시되는데, 대체로 학자들은 이 숫자가 0이면 그냥 잡음이고, 1이면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보낸 통신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김 박사는 로즈웰 프로그램으로 R426 신호를 분석해 놓은 결과를 다시 살펴봤다. 0.96, 0.95, 0.98.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값이었다. 우주 통신 연구소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야기로는 인터넷 와이파이 신호를 로즈웰 프로그램으로 분석해도 R 수치는 0.8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0.98짜리 신호를 잡아냈는데. 그걸로 부족하다고?
김 박사는 로즈웰 프로그램의 계산 결과를 보완할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몇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김 박사도 어렴풋이 들어 본 적이 있는 방법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로즈웰 프로그램이 가장 널리 인정받는 기준이었고,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김 박사는 이제 곧 R426 연구에서는 손을 떼게 될 테니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자료를 훑어보는 데 몰두했다. 마지막이니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 다른 방법으로 검증한 결과도 모두 다 만들어 놓고 같이 보면, R426이 외계인이 보낸 통신문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드러나겠지. 그러면, 외계인 전파 해독 사업을 중단시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
정말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었다. 김 박사 스스로도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해가 져서 캄캄해지는 것도 모르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도 못하고, 그저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몇 시간이고 몰두해 있었다. 돌아보면 결국 미련 때문이었다.
다음 날, 김 박사는 부소장 주재 연구회의에서 전날 밤새 계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은하계에는 1000억 개의 별이 있고, 그렇게 많은 별 중에는 분명히 외계인이 사는 행성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계인이 사는 행성이 많다면 왜 아직까지 우리에게 발견된 외계인은 하나도 없을까, 그 문제가 오랜 수수께끼였습니다. 물론 누가 외계인을 만났다, 비행접시를 봤다, 하는 소문 같은 이야기들은 있습니다만, 정말로 우주에 외계인들이 많다면 그렇게 애매하고 어렴풋한 소문으로 전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명확하게 외계인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아직도 우리에게 명확히 알려진 외계인의 증거가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김 박사가 꺼낸 이야기는 연구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건 다 아니까 생략하고 건너 뛰라고”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의 바른 사람들만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날 김 박사의 이야기를 다 같이 다시 들었던 것은 역시 미련 때문이었다. 이제 외계인 전파 연구는 더 이상 못하게 된다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기나긴 세월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연구 주제를 떠나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장례식 추도사를 듣는 느낌으로 연구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고 뻔한 설명을 다같이 듣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우리 연구소는 나름대로 해답을 구했죠. R426 신호를 발견하기 전에, 우주에서 들어온 통신 잡음으로 파악되는 신호 몇 개를 우리 연구소가 분석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R400 신호, 기억 나시죠?”
R400 신호 해석의 주역이었던 이 박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소장이 이야기했다. 
“시간적 유사성 가설 말하는 건가?”
김 박사는 그렇다고 긍정했다. 그런데 금산사 사업이 시행되면서 새로 연구소에 들어온 연구원들은 시간적 유사성 가설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 박사가 끼어들어서 잠깐 설명을 덧붙였다.
“외계인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로 한 가지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게 뭐냐면, 바로 시간적 유사성 가설입니다.”
“그 시간적 유사성 가설이 뭔지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외계인들도 발전한 수준이 우리랑 다 비슷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은하계에서 생명체가 생기고, 진화하고, 그러다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종족이 나오고, 그런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다들 비슷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은하계에 외계인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퍼져서 살고 있지만, 그 외계인들도 다들 그냥 우리 수준이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좀 알고 있고, 기술도 꽤 발전했지만, 그래도 겨우 지구 주변의 태양계 안 행성들을 탐사하는 정도의 수준이잖아요. 태양계 바깥의 외계 행성을 찾아갈 기술은 아직 우리에게 없죠. 그러니까, 다른 외계인들도 다 우리 정도로 사정이 비슷하다면 기술이 고만고만 해서 우리에게 비행접시를 타고 짠하고 나타날 정도의 기술은 아직 아무도 발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비행접시를 타고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전파로 ‘거기 누구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는 무선 통신을 보내면서 자신을 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금산사 사업 때문에 연구소에 합류한 새 연구원이었다. 김 박사가 가만 보니, 새로 들어온 연구원들의 눈빛에도 “금산사 사업보다는 이게 훨씬 더 재미있겠는데” 싶은 마음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부소장이 직접 대답했다.
“그것도 시간적 유사성 가설로 설명해요. 지구에 사는 우리는 전파를 다루는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만날 외계인들에게 ‘우리 여기 있습니다’ ‘지구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거기 외계인이 사시면 회신 좀 해주세요’ 이런 전파 통신을 여기저기에 공들여 보내지는 않지요. 아레시보 망원경 사업이라든가, 뭐 몇 번 재미 삼아 비슷한 걸 해보기는 했지만, 그런 활동을 딱히 돈 들여서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지요.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도 우연히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전파가 새어 나가서 우주 저편의 다른 행성까지 닿아서 감지될 수는 있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인공위성으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같은 걸 중계하는데 그 전파가 새어 나가서 다른 행성에 감지되면, 그 행성 외계인들이 그걸 우연히 발견해서 ‘텔레비전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종족이 저 쪽에 있나 보다’하고 짐작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이 박사가 대답했다.
“그럴 수 있지요. 반대 생각도 가능해요. 저희가 몇 년 전에 발견한 R400이 바로 그렇게 외계인들이 다른 작업을 하던 와중에 사용한 전파가 우연히 지구에 닿아 잡힌 것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신호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외계인과의 통신에 투자도 늘리고 있고, 아니 있었고.”
여기에서 다들 순간적이지만 굉장히 침울해 했다.
“그리고 나서 그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기술 수준을 가진 외계인들 중에 조금 앞서 가는 외계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로 통신문을 보내는 데에 투자하는 시대가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나왔기 때문에, 더욱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해독하는 데 공을 들이게 됐습니다.”
김 박사가 다시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된 것이, R426입니다. R426은 로즈웰 프로그램 R값이 0.98까지 나오고요. 그리고, 지금 보시면, 다른 이론을 사용한 5대 해석법으로 모두 살펴봐도 이 신호는 외계인이 의도적으로 우주로 보낸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은 신호입니다. 아직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요. 지구인의 말이라도 모르는 외국어면 해석하기가 참 어려운데, 외계인이 뭐라고 말 했는지 해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테니까요.”
김 박사는 R426 신호와 그 해석에 대해 몇 가지 계산 결과를 더 보여 주었다. 다들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어제 김 박사가 계산해 낸 몇 가지 결과 중엔 꽤 놀라운 것도 있었다. 연구원들 중에는 지난 세월들이 머리 속에서 지나가는 지, ‘우리가 이런 걸 다 해냈구나’라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 박사는 마지막 자료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것은 해석해 보라고 일부러 보낸 통신문일 테니까, 붙잡고 해석하면 뜻을 알아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외계인이 저기에 있고 우리와 처음으로 접촉하게 됐다고 밝힐 수 있는 일일 겁니다. 이게 이 사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김 박사의 발표가 끝나고 바로 부소장이 금산사 사업 같은 거 다 때려치우고 원래 하던 거 계속 해야겠다고 울부짖지는 않았다. 반대로, 부소장은 차분히 설명했다. 그는 금산사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은 이미 결정돼 바꿀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우리는 R426 연구는 지금처럼 해 나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분명히 모든 연구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아까 눈물을 글썽이던 연구원의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부소장 역시 원래 연구원이었던 사람이다. 그에게도, 대학원 다니는 동안 싫어하는 선배에게 시달려 보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고생고생해서 딴 학위를 들고도 취직할 곳이 없어 가슴이 녹아내려 본 경험이 있는 평범한 한 명의 연구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의 마음 속에 다시 불꽃이 타올랐다. 그는 그 불꽃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높은 분들께 여러 차례 굽실거렸다. 그 결과 그 불꽃이 큰 폭발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달고나 같은 과자 하나를 남겨 놓을 정도의 화력을 내뿜고 사라질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주 통신 연구소에는 작은 R426 연구팀 하나는 남게 되었다. 김 박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원은 새로 시작되는 금산사 사업에 투입됐지만, 이 박사를 비롯한 극소수의 연구원들이 미약하게나마 R426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김 박사는 자신도 R426 연구를 계속해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 박사는 오히려 김 박사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이미 연구소의 주력 연구가 금산사 사업으로 기울어진 마당에 금산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 같은 직원은 언제인가 연구소 사정이 어려워지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런 말씀 마세요, 이 박사님. 금산사 사업이라는 게 엄청 피곤해요.”
“왜? 연구비는 많이 들어 오잖아?”
“그렇지도 않아요. 핵무기 관련 사업이라서 뭐 까다롭게 서류 갖춰 놔야 하고, 서류 안 맞는다고 뭘 지우라고 하고, 숨기라고 하고, 그런 게 엄청 많아요. 일을 하는 방식이 좀 이상해요.”
김 박사는 이후 종종 이 박사를 찾아 와서, 금산사 사업에서 연구를 하는 동안 막히는 문제를 의논했다.
금산사 사업은 워낙 기밀로 취급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연구소 바깥 사람들과 의논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연구소 바깥에는 휴가 일정도 밝히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올 정도였다. 그러면 여행 가서 머무를 호텔에도 휴가 일정을 말하지 못하냐고 어떤 연구원이 따졌더니, 보안부에서는 쭈뼛거리는 느낌으로 “원칙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했다.
“저희가 지금 연구하는 게, 죽은 자의 스위치라는 거거든요?”
“죽은 자의 스위치? 무슨 공포 영화 제목 같은데. 무슨 스위치인데? 핵무기 발사 스위치야?”
“그렇죠. 그것도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핵미사일의 발사 스위치예요. 뭐 태평양 바다 밑에 숨겨 놨다는 이야기도 있고, 엉뚱하게 인도양의 무슨 무인도를 하나 빌려서 거기에 핵미사일을 숨겨 놨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그걸 발사하는 스위치가 왜 죽은 자의 스위치인데? 죽은 사람이 스위치를 누를 수가 있나?”
“있죠. 저희가 잘만 만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보통 스위치는 스위치를 누르면 기계가 작동하잖아요? 스위치를 누르면 전깃불이 켜지는 것처럼. 그런데 저희는 반대로 스위치를 만든다고요.”
“그러면 스위치를 누르고 있으면 전깃불이 안 들어오고, 손을 떼면 전깃불이 그때 들어온다는 거야?”
“맞아요. 그런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스위치를 정기적으로 계속 눌러 주면 핵미사일이 발사되지 않고, 그렇게 스위치 누르는 것을 멈추면 그때 자동으로 핵미사일이 적을 향해 연속으로 수십 발, 좌르륵 날아가게 하는 장치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담당자가 살아 있으면 정기적으로 계속 스위치를 누를 테니까 핵미사일이 발사되지 않고 세계 평화가 유지되지만, 담당자가 사망한다 그러면 더 이상 스위치를 안 누를 거고, 그러면 핵미사일이 온통 발사돼서 세계가 핵전쟁에 휩싸이는 거죠. 그러면 온통 서로 핵미사일을 날리고 난리가 날 테니까 세계가 끝장날 거고.”
“그런 걸 왜 만들어? 담당자가 자기가 죽으면 세상도 다 같이 끝장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인가?”
“그게 아니고, 이런 걸 만들어 놓았다고 적에게 미리 밝혀 놓는 거예요. 그래서 적이 설령 엄청나게 강한 핵무기를 갖고 있어서 단 한 번 만에 우리나라를 멸망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우리나라가 멸망하는 상황에 처하면 죽은 자의 스위치가 발동돼서 몰래 숨겨 놓은 핵무기가 자동으로 날아가서 보복을 한다는 거예요. 너희가 아무리 강하게 공격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다 죽여 없애는데 성공해도, 다같이 죽자는 보복용 비밀 핵무기는 어디엔가 남아 있어서 자동으로 작동하게 될 거라고 겁을 주는 거죠.”
설명을 들어도 금산사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이 박사는 김 박사의 사고 방식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짓을 왜 하는데? 어차피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죽었으면 이미 패배했고 다 끝난 거잖아. 그런데 굳이 다 죽은 마당에 자동 장치가 작동돼서 상대방도 다 죽이는 자동 핵무기를 만든다고?”
“네. 왜냐하면, 그래야 평화가 오니까요.”
“그런 장치 때문에 평화가 온다고?”
“그런 장치가 있다고 해야, 상대방이 겁을 먹고 애초에 우리나라를 공격할 생각을 못 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세상에 평화가 유지되는 거죠.”
“그게 평화야? 뭔가 조금만 까딱 잘못하면 자동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핵미사일을 퍼붓는 장치가 작동해서 모든 게 단숨에 끝장날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건데?”
“어쩌겠어요? 어영부영 하다 보니까 갑자기 세상에 핵무기가 너무 많아진 세상이 됐잖아요? 이렇게 죽은 자의 스위치를 설계해 둬서 패배하면 자동으로 세상을 멸망시키는 대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장치를 심판의 날 기계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우리나라만 심판의 날 기계를 개발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다 개발해 놨어요. 소련, 미국, 이런 데서는 벌써 냉전 때 다 개발해 놨다는 것 같고. 요즘 새로 핵무기를 개발한 여러 나라에서도 다 비슷한 장치를 만들어 놨어요. 그러니까 이제 막 핵무기를 개발한 우리나라도 뒤처질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도 만들어야죠. 그게 금산사 사업의 핵심이고.”
“그게 금산사 사업이야?”
“금산사가 그거잖아요.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임금이었던 견훤이 자기 아들한테 배신당해서 금산사라는 곳에 감금됐거든요. 그래서 견훤이 자기 아들에게 복수하려고 어떻게 하냐면, 평생의 숙적이었던 고려의 왕건한테 찾아 가서 자기가 앞장설테니 후백제를 멸망시키자고 해요. 후백제는 자기가 세운 나라인데, 복수를 위해서 자기 손으로 망하게 한다는 거죠. 나는 다 끝장났지만 하여튼 복수를 위해서 너도, 이 세상도 다 끝장낸다, 뭐 그런 거. 그런 게,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하니까.”
이 박사는 좀 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박사도 오래간만에 이 박사를 만나니 예전 자신의 감성과 지금의 차이가 느껴지는지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냉전 때 세상이 무섭다고 해도, 그때는 미국이랑 소련이 핵무기를 많이 갖고 있는 게 문제였는데. 냉전 끝나고 몇 십 년 흐르는 사이에, 여기서도 핵무기 만들겠다, 저기서도 핵미사일 개발하겠다고 해서, 지금은 여기저기 어지간하면 나라마다 다들 핵미사일을 잔뜩 갖고 있잖아요. 어쩌다 보니까,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도 장거리 핵미사일을 많이 갖고 있게 됐고. 그중에 누구 하나 잘못 욱해서 뭐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어요?”
“김 박사는 거기서 뭘 하는데?”
“거기서도 우주 통신 잡음 해석을 하죠.”
“잡음 해석이 핵무기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우리나라 핵미사일은 어디 멀리 아무도 모르는 데 숨겨져 있거든요. 그래서 죽은 자의 스위치가 발동돼서 적을 멸망시키기 위한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전파 신호를 보내면, 그 신호가 지구 저 편에 있는 아주 먼 곳까지 가야 돼요. 그래서 전파가 우주까지 갔다가 오거든요. 전리층 반사를 이용해서 가는 것도 있고. 그렇다 보니까, 우주 통신을 이용해야 되고, 그래서 제가 그런 통신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또 계산을 해야 되고, 짜맞추고 해야 되거든요. 제가 그런 일 하고 있어요.”
“그래도 나라 지키는 일이네.”
“모르겠어요. 나라를 지키는 건지, 세상을 망하게 하는 건지.”
김 박사는 그러다 얼굴 표정을 바꿔 좀 밝은 표정으로 이 박사에게 질문했다.
“이 박사님은요? R426은 진전이 있어요?”
“R426은 진전이 없는데, 대신에 R426하고 비슷한 신호를 더 발견했어.”
“외계인의 전파 통신문이 더 있어요?”
“아직 외계인의 전파 통신문인지는 확실하게 모르는 거잖아.”
“또 그러시네. R426이 온 그 쪽 방향에서 또 하나가 더 날아온 거예요?”
“아니야. 새로운 신호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날아 왔어. 몇 년 사이에 수집된 신호가 벌써 네 다섯 개는 돼. 해독해야 할 게 엄청 더 많아졌어.”
“신기하네. 시간적 유사성 가설이 정말 엄청난 정밀도로 맞는 거 아니에요? 이제 은하계의 모든 종족들이 다들전파로 서로서로 통신하는 데 심취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우주의 종족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발전해 나가는 건가?”
“아직 전파 통신문인지는 모르는 거기는 한데. 공교롭게도 사실 우리 연구소에서도 지구에서 다른 행성들을 향해서 전파 통신문을 보내는 시험 사업을 해 보자는 의견이 R426 이후로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까, 비슷하게 시대가 맞아 떨어지기는 하지. 시간 차이가 좀 나기는 해.”
“시간 차이요?”
“이런 전파 신호가 알고 보니까, 꽤 많거든. R426 연구 때문에 지금 알아냈지만, 사실 10년 전에 외계행성에서 보낸 신호가 지금 포착된 것도 있고, 100년 전, 200년 전에 보낸 신호가 몇 년 전에 포착돼서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걸 지금 분석해서 알아낸 것도 있어. 그러니까 시간 차이가 좀 나기는 나는데, 하여튼 요즘 최근 몇 백 년 사이에 은하계의 여러 종족들이 굉장히 열심히 우주 곳곳에 전파 통신문을 보내려고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아.”
“신기하네요. 역시 이런 연구가 재미있지.”
“아직까지 정확히 이게 전파 통신문인지, 그냥 잡음인지, 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박사님, 계속 그러시네.”
두 사람의 대화는 이후에도 이어져 나가며 점점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더 목적 없는 이야기로 변해 갔다. 새로 구성된 팀의 연구원들에 대한 이야기, 요즘 유행하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 듣기 좋은 노래가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 왜 블루스 음악은 다시 인기를 얻지 못할까 하는 이야기 등등. 열역학 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점차 높아진다는 것이 그런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엔트로피가 높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서, 그 잡담의 미지근한 아늑함 속에서 두 사람은 꽤 오래간만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두 사람은 그런 시간을 다시 누릴 수는 없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금산사 사업이 완성 단계로 접어들면서 그쪽 연구팀이 더욱 바빠졌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만큼 더 특급 안보 기밀로 분류되는 사항이 많아지면서 외부와의 대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누군가 별 생각 없이 금산사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이 무슨 음식을 먹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국가정보원에 끌려 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소문에 따르면, 무슨 음식을 먹고 있는지가 밝혀지면 적의 첩보원이 그 음식을 잘 하는 맛집에 침투할 것이고 그리고 그 음식에 독약을 집어넣어 금산사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원을 암살할 수도 있으니 그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더 나쁘게는 첩보원이 금산사 사업 연구원이 먹는 해물라면에 마약을 집어넣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마약에 중독된 우리 연구원이 첩보원에게 끌려 가서 금산사 사업의 비밀을 모두 털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자칫 적은 우리가 숨겨 놓은 마지막 보복용 비밀 핵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적이 우리를 공격할 때 보복용 비밀 핵무기까지 같이 파괴해 버리면, 우리가 전멸해서 죽은 자의 스위치가 작동해도 보복 공격을 할 수단이 없다. 그러면 세상은 같이 멸망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은 나쁜 일이다. 왜냐하면, 공격을 당해도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되면, 적은 우리를 공격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평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장치는 계속 가동돼야만 한다.
이 박사가 김 박사를 다시 만난 것은 한참 세월이 흘러서 마침내 이 박사가 자신의 연구원 생활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발견을 해냈을 무렵이었다. 
이 박사는 연구소 공용 통신망에 그 소식을 올려 두고, 바로 김 박사를 향해 뛰어갔다. 공교롭게도 마침 김 박사도 이 박사를 찾아 가던 길이라, 둘은 연구소 건물 한 켠의 어정쩡한 장소에서 같이 마주쳤다.
“야, 나 오늘 일냈다. R426. 잡았어. 끝냈어.”
“뭐요? R426을 어쨌는데요?”
“해독했어.”
“해독이요? 누가 뭔 약을 타서 중독됐는데, 풀려 나셨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니까. R426 전파 신호에 외계인들이 무슨 통신문을 보낸 것인지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니까.”
“그러니까 R426이 외계인들이 보낸 전파 통신문이 맞았어요?”
“맞다니까. 그리고, 그걸 내가 해독했어.”
김 박사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연구원들이 모두 이 박사 쪽을 쳐다봤다. 이 박사는 흥분해 있었다. 김 박사는 더 흥분해 있었다. 이 박사가 말했다.
“이게 엄청 어려웠는데. 그런데 그 뒤에 비슷한 신호를 은하계 다른 곳에서, 다른 종족이 보낸 걸 또 잡아냈다고 했잖아. 그거랑 같이 비교 분석하면서 살펴보니까, 실마리가 보이더라고. 그게 서로 다른 종족이, 다른 방식, 다른 언어로 통신문을 보내는 거였지만, 그래도 비교 분석해 보니까, 의미론적 공통점 때문에 분석이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그래서 하나하나 풀어서 드디어 알아냈어.”
김 박사는 “우와” “이야” “박사님!” 같은 감탄사를 한참 이어 가며, 흥분을 발산하려 했다. 그런데 흥분이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흥분이 더 차오르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계인들이 보낸 통신문이 도대체 뭔데요?”
“그게, 뭐냐면 이런 거야.”
김 박사는 저장해 온 자료를 꺼내서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자신이 그 어려운 숫자들을 어떻게 해석해서 외계인의 말을 해독했는지 짚어 나가며 해설했다.
“외계인들은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다 보니까, 점점 큰 힘, 점점 강한 위력을 다룰 수 있게 됐대. 그런데 그에 비해서 다같이 평화롭게 잘 사는 방법을 개발하는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못하게 됐다는 거야. 그래서 자신들을 모두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한 무기가 개발됐지만, 다툼을 멈추지는 못했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작은 충돌로 서로 싸우게 됐고, 그게 큰 싸움으로 번져서 그 강력한 무기를 이용하게 됐고, 그 위력 때문에 자기들은 멸망하게 됐다는 거야.”
“그런 이야기가 통신문에 적혀 있어요?”
“그래. 그래서 자기들이 멸망을 맞게 됐으니, 자신들의 문명이 우주에 한때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기 위해 은하계 모든 방향을 향해서 모든 주파수를 동원해서 강력한 주파수로 이런 통신문을 보내게 됐다는 거야.”
“R426 말고 다른 전파 신호는요? 다른 외계인들이, 다른 시대에 보낸 통신문 내용 중에도 해독된 게 있어요?”
“몇 개 더 있어. 내용은 비슷해. 은하계 문명의 거의 보편적인 법칙처럼 생각해도 될 정도야.”
“보편적이라면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거예요? 시간적 유사성 가설?”
“맞아. 몇 천 년 먼저 망한 곳도 있고, 몇 백 년 나중에 망한 곳도 있는데 비슷해. 어떤 종족이든 점점 기술을 발전시키다 보면, 그 기술의 위력이 발전하는 속도가 평화를 발전시키는 속도보다 더 빨라지기 마련이라는 거야. 그러다 보면 결국 큰 전쟁을 벌여서 자멸하는 날이 오고 만다는 거고. 그리고 그렇게 자멸할 때, 대부분의 종족들은 우주 곳곳으로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자멸하고 말았다는 통신문을 온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발신하게 되는 거 같아. 그런 통신문들이 지구로 요즘 계속 꾸준히 날아 들고 있었어.”
이 박사는 말하면서 마치 실로폰을 이곳저곳 두들기면 그때마다 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은하계 곳곳의 행성들이 각자의 전쟁으로 불길에 휩싸일 때마다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이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김 박사는 흥분이 이상한 감정으로 바뀌는지 떨고 있었다. 이 박사는 김 박사의 그런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김 박사는 나한테 무슨 말 하려고 오고 있었던 거야?”
김 박사는 멍한 표정이었다. 겨우 이어진 김 박사의 답변은 이러했다.
“실험해 보니까, 우리 보복용 핵미사일은 완벽하거든요. 그래서 만에 하나 이게 작동하면 분명히 세상이 핵전쟁으로 가득 차게 될 것 같아요. 이게 작동되면 진짜로 인류가 멸망한다고요. 그래서 만약에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핵미사일 작동으로 인류를 모두 멸망시키기 전에, 자동으로 통신기기를 작동시켜서 인류가 우주 한 켠에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은하계 전체에 모든 주파수로 강력하게 알려서 인류의 흔적을 남기는 기능을 만들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통신 장치를 개발하는 일을 저희 팀에서 맡아 하기로 했는데, 그런 걸 만들려면 아무래도 이 박사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아서, 온 건데.”
서로 만나기도 전에, 우리를 포함해서 은하계의 모든 종족들이 다들 멸망하는 수순으로 접어드는 거라는 이야기야? 이 박사는 물어보려고 했지만, 김 박사의 표정은 깊은 혼란에 빠진 듯 보였다. 마침, 합창곡의 반주라도 되는 것처럼, 연구소 건물 벽면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어디에선가 더욱 강력한 핵무기를 실험하는 데 성공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202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곽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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