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개미가 곰팡이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된 이래 동물농부에 대해 많은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수년 동안 곤충뿐 아니라 물고기와 달팽이, 아메바 같은 다양한 생명체가 농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토대로 ‘국제동물농부협회 창립총회’를 가상으로 꾸며봤다.

사회자(개미): 오늘 2월 19일은 대동강 얼음도 녹는다는 절기인 우수(雨水)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한 해 농사를 슬슬 준비할 때가 됐죠. 아시다시피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 즉 대한민국 충남 예산의 한 농장에 초청한 건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서입니다. 참고로 이곳은 전원드라마 ‘산너머 남촌에서’의 촬영지라네요.
지난 100년 동안 사람들은 석유를 펑펑 써대더니 그 대가로 기상이변을 초래해 지구촌 곳곳이 홍수와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올겨울 구제역으로 3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매몰하는 최악의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농업의 역사가 1만 년도 채 안 된 ‘초보 농사꾼’인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군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동물들의 대표가 모인 이 자리에서 ‘국제동물농부협회’를 창립해 각자 오랜 세월 축적해 온 농사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교류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저는 개미 말고 어떤 동물이 농사를 짓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도 생물학자라는 몇몇 부지런한 사람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많은 분들을 ‘발견’했군요. 그럼 어떤 분들이 오셨나 볼까요. 어 저기 물속에 계신 분도 있네요.
산호초에서 김매는 자리돔
자리돔: 에헴, 저는 사람들이 자리돔이라고 부르는 바닷물고기입니다. 사회자께서는 ‘바다’가 뭔지도 모르시겠군요. 그냥 엄청나게 넓은 짠 호수라고 생각하세요. 아무튼 전 바닷물 속에 있어야 살 수 있어서 주최측에서 ‘어항’을 준비해줬습니다. 좁아서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사회자: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자리돔 선생께서는 어떤 농작물을 키우시나요?
자리돔: 사회자인 개미 선생네 집안도 그렇겠지만 자리돔이라고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닙니다. 전 일본의 류큐섬 연안에 사는 일족으로 사람들이 ‘스테가스테스니그리칸스(Stegastes nigricans)’라고 학명을 붙여줬지요. 지금까지는 자리돔 가운데 저희만 농사를 짓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산호초라고 부르는 밭에다 폴리시포니아(Polysiphonia)라는 조류(藻類)를 키우고 있지요. 폴리시포니아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생겼지만 질기지도 않고 영양도 풍부하죠. 저희는 폴리시포니아를 먹으러 오는 다른 동물들을 쫓아낼 뿐 아니라 산호초 밭을 수시로 순찰하면서 자라고 있는 다른 조류들은 뽑아서 멀리 내다버립니다.
사회자: 김을 매시는군요. 사실 사람들도 예전에는 논과 밭에서 손수 잡초를 뽑았는데 이제는 게을러져서 그런지 제초제를 뿌린다더군요.
자리돔: 세상에 공짜가 있나요. 그렇게 독한 걸 뿌려대니 생태계가 온전할 리 없죠. 소탐대실이에요.
사회자: 자리돔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좁은 ‘어항’에서 좀 답답하시겠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으로 저희랑 비슷하게 보입니다만 피부색이 밝은….
흰개미: 네. 저는 흰개미라고 합니다. 개미 선생과는 먼 친척뻘이죠. 주최측 얘기를 들어보니 저희와 개미 선생이 농사의 ‘달인’이라고 하는군요. 뭐, 이 자리에서 자웅을 겨루자는 건 아니고요. 안타깝게도 저희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문자를 발명하지 못해 정확히 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저희를 연구한 사람들은 2400만~3400만년 전이라고 추정하더군요.
사회자: 말씀 도중에 끼어들어 미안합니다만 저기 개미 대표로 오신 분이 손을 드셨네요. 사실 제 친구입니다.
개미2: 역사를 말씀하시기에 덧붙이자면 저희는 4500만~6500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사회자: (어이구, 눈치 없이…) 아, 네. 그렇군요. 흰개미 선생님, 말씀 계속하시죠.

[자리돔이 산호초에서 자라는 조류 폴리시포니아를 돌보고 있다. 녹갈색의 조류 한 종만이 산호초 표면을 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흰개미: 흠흠, 아무튼 저희 흰개미도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2600여 종 가운데 아프리카에 사는 330종 정도가 농부입니다. 터미토미세스(Termitomyces)라는 곰팡이를 키우지요. 곰팡이를 먹는다니 얼굴을 찡그리는 분들도 계신데 참고로 사람들이 즐겨 먹는 버섯도 곰팡이입니다.
저희는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농장도 딸려 있지요. 곰팡이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희가 나가서 잎이나 나무 조각을 구해다 농장에 깔아주죠. 사람들이 표고버섯 재배할 때 통나무를 잘라다 쌓아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개미2: 저희도 곰팡이를 키웁니다!
흰개미: 그런가요? 하지만 키우는 방식은 다를 겁니다. 저희는 먼저 식물체를 먹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소화시킨 배설물을 여러 겹으로 된 벽에 붙여놓죠. 저희 장 안에는 곰팡이 포자가 있기 때문에 배설물에 섞여 있는 곰팡이가 자라면서 작은 공처럼 생긴 자실체를 만들어내죠. 그럼 우리는 이 영양덩어리를 따 먹
는답니다.
사회자: 보통 정성이 아니군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습니까?
흰개미: 물론이죠. 저희가 키우는 곰팡이 터미토미세스가 워낙 까다로운 작물이라서요. 대신 자실체에는 식물에는 없거나 부족한 각종 미네랄과 필수영양소가 풍부하답니다. 저희가 이것만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죠.
사회자: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군요. 곰팡이 얘기가 나온 김에 저희 개미의 농사법을 들려 드릴까요?

[➊ 흰개미 집의 내부 구조. 군데군데 곰팡이를 키우는 방이 보인다.]

➋ 흰개미가 곰팡이가 만들어낸 자실체(흰 덩어리)를 수확하고 있다.]


[➊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는 환경이 나빠지면 수만 마리가 모여 군체인 점균류으로 변신한다.]

[➋ 점균류는 자실체를 만들어 포자를 퍼뜨린다.]

[➌ 이 과정에서 먹이인 박테리아를 남겨뒀다가 새로운 환경에서 번식시켜 잡아먹는다.]

사회자(개미): 오늘 2월 19일은 대동강 얼음도 녹는다는 절기인 우수(雨水)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한 해 농사를 슬슬 준비할 때가 됐죠. 아시다시피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 즉 대한민국 충남 예산의 한 농장에 초청한 건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서입니다. 참고로 이곳은 전원드라마 ‘산너머 남촌에서’의 촬영지라네요.
지난 100년 동안 사람들은 석유를 펑펑 써대더니 그 대가로 기상이변을 초래해 지구촌 곳곳이 홍수와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올겨울 구제역으로 3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매몰하는 최악의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농업의 역사가 1만 년도 채 안 된 ‘초보 농사꾼’인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군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동물들의 대표가 모인 이 자리에서 ‘국제동물농부협회’를 창립해 각자 오랜 세월 축적해 온 농사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교류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저는 개미 말고 어떤 동물이 농사를 짓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도 생물학자라는 몇몇 부지런한 사람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많은 분들을 ‘발견’했군요. 그럼 어떤 분들이 오셨나 볼까요. 어 저기 물속에 계신 분도 있네요.
산호초에서 김매는 자리돔
자리돔: 에헴, 저는 사람들이 자리돔이라고 부르는 바닷물고기입니다. 사회자께서는 ‘바다’가 뭔지도 모르시겠군요. 그냥 엄청나게 넓은 짠 호수라고 생각하세요. 아무튼 전 바닷물 속에 있어야 살 수 있어서 주최측에서 ‘어항’을 준비해줬습니다. 좁아서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사회자: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자리돔 선생께서는 어떤 농작물을 키우시나요?
자리돔: 사회자인 개미 선생네 집안도 그렇겠지만 자리돔이라고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닙니다. 전 일본의 류큐섬 연안에 사는 일족으로 사람들이 ‘스테가스테스니그리칸스(Stegastes nigricans)’라고 학명을 붙여줬지요. 지금까지는 자리돔 가운데 저희만 농사를 짓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산호초라고 부르는 밭에다 폴리시포니아(Polysiphonia)라는 조류(藻類)를 키우고 있지요. 폴리시포니아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생겼지만 질기지도 않고 영양도 풍부하죠. 저희는 폴리시포니아를 먹으러 오는 다른 동물들을 쫓아낼 뿐 아니라 산호초 밭을 수시로 순찰하면서 자라고 있는 다른 조류들은 뽑아서 멀리 내다버립니다.
사회자: 김을 매시는군요. 사실 사람들도 예전에는 논과 밭에서 손수 잡초를 뽑았는데 이제는 게을러져서 그런지 제초제를 뿌린다더군요.
자리돔: 세상에 공짜가 있나요. 그렇게 독한 걸 뿌려대니 생태계가 온전할 리 없죠. 소탐대실이에요.
사회자: 자리돔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좁은 ‘어항’에서 좀 답답하시겠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으로 저희랑 비슷하게 보입니다만 피부색이 밝은….
흰개미: 네. 저는 흰개미라고 합니다. 개미 선생과는 먼 친척뻘이죠. 주최측 얘기를 들어보니 저희와 개미 선생이 농사의 ‘달인’이라고 하는군요. 뭐, 이 자리에서 자웅을 겨루자는 건 아니고요. 안타깝게도 저희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문자를 발명하지 못해 정확히 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저희를 연구한 사람들은 2400만~3400만년 전이라고 추정하더군요.
사회자: 말씀 도중에 끼어들어 미안합니다만 저기 개미 대표로 오신 분이 손을 드셨네요. 사실 제 친구입니다.
개미2: 역사를 말씀하시기에 덧붙이자면 저희는 4500만~6500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사회자: (어이구, 눈치 없이…) 아, 네. 그렇군요. 흰개미 선생님, 말씀 계속하시죠.

[자리돔이 산호초에서 자라는 조류 폴리시포니아를 돌보고 있다. 녹갈색의 조류 한 종만이 산호초 표면을 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흰개미: 흠흠, 아무튼 저희 흰개미도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2600여 종 가운데 아프리카에 사는 330종 정도가 농부입니다. 터미토미세스(Termitomyces)라는 곰팡이를 키우지요. 곰팡이를 먹는다니 얼굴을 찡그리는 분들도 계신데 참고로 사람들이 즐겨 먹는 버섯도 곰팡이입니다.
저희는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농장도 딸려 있지요. 곰팡이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희가 나가서 잎이나 나무 조각을 구해다 농장에 깔아주죠. 사람들이 표고버섯 재배할 때 통나무를 잘라다 쌓아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개미2: 저희도 곰팡이를 키웁니다!
흰개미: 그런가요? 하지만 키우는 방식은 다를 겁니다. 저희는 먼저 식물체를 먹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소화시킨 배설물을 여러 겹으로 된 벽에 붙여놓죠. 저희 장 안에는 곰팡이 포자가 있기 때문에 배설물에 섞여 있는 곰팡이가 자라면서 작은 공처럼 생긴 자실체를 만들어내죠. 그럼 우리는 이 영양덩어리를 따 먹
는답니다.
사회자: 보통 정성이 아니군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습니까?
흰개미: 물론이죠. 저희가 키우는 곰팡이 터미토미세스가 워낙 까다로운 작물이라서요. 대신 자실체에는 식물에는 없거나 부족한 각종 미네랄과 필수영양소가 풍부하답니다. 저희가 이것만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죠.
사회자: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군요. 곰팡이 얘기가 나온 김에 저희 개미의 농사법을 들려 드릴까요?

[➊ 흰개미 집의 내부 구조. 군데군데 곰팡이를 키우는 방이 보인다.]

➋ 흰개미가 곰팡이가 만들어낸 자실체(흰 덩어리)를 수확하고 있다.]
항생제 박테리아 뿌리는 개미
개미2: 먼저 저희 개미도 모두가 다 농부는 아닙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220여 종이 농사법을 터
득했죠. 한반도에 사는 개미들은 아직 ‘수렵채집’의 원시적인 생활단계라고 들었습니다. 이참에 농법을
전수하고 돌아갈까요?
사람들 농사도 그렇지만 저희 역시 병충해가 골치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몇 가지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반해온 잎을 농장에 넣기 전에 몸에서 분비하는 소독액으로 씻어냅니다. 농장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병충해를 입은 작물(곰팡이)이 있는 구역을 서둘러 폐쇄해 병이 번지는 걸 막습니다. 또 구역마다 농작물의 성장상태를 달리해 병이 퍼지는 걸 억제하기도 하지요.
작물이 너무 빽빽해지면 일부를 새로운 농장으로 옮겨 일정 밀도를 넘지 않게 합니다. 또 항생제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데리고 와 작물 옆에 두고 병충이 왔을 때 무기로 씁니다. 작물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영양원(나뭇잎)을 고갈시키는 잡초(다른 종류의 곰팡이)는 보이는 대로 집어다 내 버립니다.
저희가 이사를 하거나 천재지변이 생겨 개미가 몰사하면 남겨진 농장이 순식간에 잡초와 병충으로 들끓죠.
개미2: 먼저 저희 개미도 모두가 다 농부는 아닙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220여 종이 농사법을 터
득했죠. 한반도에 사는 개미들은 아직 ‘수렵채집’의 원시적인 생활단계라고 들었습니다. 이참에 농법을
전수하고 돌아갈까요?
사람들 농사도 그렇지만 저희 역시 병충해가 골치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몇 가지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운반해온 잎을 농장에 넣기 전에 몸에서 분비하는 소독액으로 씻어냅니다. 농장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병충해를 입은 작물(곰팡이)이 있는 구역을 서둘러 폐쇄해 병이 번지는 걸 막습니다. 또 구역마다 농작물의 성장상태를 달리해 병이 퍼지는 걸 억제하기도 하지요.
작물이 너무 빽빽해지면 일부를 새로운 농장으로 옮겨 일정 밀도를 넘지 않게 합니다. 또 항생제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데리고 와 작물 옆에 두고 병충이 왔을 때 무기로 씁니다. 작물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영양원(나뭇잎)을 고갈시키는 잡초(다른 종류의 곰팡이)는 보이는 대로 집어다 내 버립니다.
저희가 이사를 하거나 천재지변이 생겨 개미가 몰사하면 남겨진 농장이 순식간에 잡초와 병충으로 들끓죠.

[➊ 개미집은 거주하는 개미가 800만 마리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도시다.]


[➋ 개미의 껍데기(외골격)에는 항생제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담아놓는 공간이 있어 이를 이용한 천연방제가 가능하다.]
사회자: 오늘 준비를 많이 해오셨네요. 다음으로 역시 곰팡이 농사를 지으시는 딱정벌레 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딱정벌레: 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저희 딱정벌레에 푹 빠져있었다는 걸 아시죠? 그만큼 종류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역시 다 농사를 짓는건 아니고 암브로시아딱정벌레로 불리는 3400여 종이 농부입니다. 저희가 키우는 곰팡이 이름이 암브로시아(ambrosia)랍니다.
저희는 땅 속이 아니라 나무 속에 삽니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벽면에 곰팡이를 발라놓으면 곰팡이가 목재를 섭취하면서 자라죠. 곰팡이에는 필수 비타민, 아미노산 같은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암컷만 농사를 짓습니다. 수컷은 교미를 마치면 얼마 못 살고 죽거든요. 암컷의 몸에는 균낭이라는 곰팡이를 담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신혼집에서(남편은 없지만) 농사를 시작할 수 있지요. 여기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죠.
사회자: 개미나 흰개미가 기업식 농사를 짓는다면 딱정벌레님은 자영농부군요. 그럼 곰팡이 농사는 이쯤에서 끝마치고 다음 순서로….
달팽이: 잠깐만요!
사회자: 무슨 일이신지?
달팽이: 저희도 곰팡이 농사를 짓는데….
사회자: (당황해서 급히 자료를 훑어보더니) 아, 죄송합니다. 제가 달팽이 선생님을 깜빡했습니다.
달팽이: 사실 저희가 농사를 짓는다는 건 알아채기 힘든데 생물학자란 사람들 정말 대단합니다. 저희 삶을 소개한 논문이 2003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라는 학술지에 실린 걸로 기억합니다만. 물론 달팽이도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현재까지는 바닷가에 사는 달팽이인 저희만 농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학명이 리토라리아 이로라타(Littoraria irrorata)라고 하더군요.
사회자: 바닷가에서 곰팡이 농사를 짓는다니 정말 궁금한데요….
달팽이: 사실 개미 선생이나 흰개미 선생에 비하면 초보적인 수준입니다만 농사짓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바닷가에 사는 풀에 상처를 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곰팡이가 들어 있는 배설물을 바릅니다. 상처 부위로 침입한 곰팡이가 영양분을 섭취해 자라면 저희가 곰팡이를 거둬들이지요.
사회자: 오늘 준비를 많이 해오셨네요. 다음으로 역시 곰팡이 농사를 지으시는 딱정벌레 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딱정벌레: 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저희 딱정벌레에 푹 빠져있었다는 걸 아시죠? 그만큼 종류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역시 다 농사를 짓는건 아니고 암브로시아딱정벌레로 불리는 3400여 종이 농부입니다. 저희가 키우는 곰팡이 이름이 암브로시아(ambrosia)랍니다.
저희는 땅 속이 아니라 나무 속에 삽니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벽면에 곰팡이를 발라놓으면 곰팡이가 목재를 섭취하면서 자라죠. 곰팡이에는 필수 비타민, 아미노산 같은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다만 저희는 암컷만 농사를 짓습니다. 수컷은 교미를 마치면 얼마 못 살고 죽거든요. 암컷의 몸에는 균낭이라는 곰팡이를 담는 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신혼집에서(남편은 없지만) 농사를 시작할 수 있지요. 여기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죠.
사회자: 개미나 흰개미가 기업식 농사를 짓는다면 딱정벌레님은 자영농부군요. 그럼 곰팡이 농사는 이쯤에서 끝마치고 다음 순서로….
달팽이: 잠깐만요!
사회자: 무슨 일이신지?
달팽이: 저희도 곰팡이 농사를 짓는데….
사회자: (당황해서 급히 자료를 훑어보더니) 아, 죄송합니다. 제가 달팽이 선생님을 깜빡했습니다.
달팽이: 사실 저희가 농사를 짓는다는 건 알아채기 힘든데 생물학자란 사람들 정말 대단합니다. 저희 삶을 소개한 논문이 2003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라는 학술지에 실린 걸로 기억합니다만. 물론 달팽이도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현재까지는 바닷가에 사는 달팽이인 저희만 농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학명이 리토라리아 이로라타(Littoraria irrorata)라고 하더군요.
사회자: 바닷가에서 곰팡이 농사를 짓는다니 정말 궁금한데요….
달팽이: 사실 개미 선생이나 흰개미 선생에 비하면 초보적인 수준입니다만 농사짓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바닷가에 사는 풀에 상처를 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곰팡이가 들어 있는 배설물을 바릅니다. 상처 부위로 침입한 곰팡이가 영양분을 섭취해 자라면 저희가 곰팡이를 거둬들이지요.

[암브로시아딱정벌레 암컷은 나무속에 통로를 만든 뒤 곰팡이(검은색)를 키운다. 통로벽 구멍에 낳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이 곰팡이를 먹고 자란다.]
깨어난 애벌레는 이 곰팡이를 먹고 자란다.]

[➊ 농사짓는 달팽이 리토라리아(가운데)가 식물(스파르티나)의 잎에 상처를 내고 있다.
➋ 그 뒤 곰팡이가 포함된 배설물을 발라놓으면 곰팡이가 상처에 침입해 자란다.]
➋ 그 뒤 곰팡이가 포함된 배설물을 발라놓으면 곰팡이가 상처에 침입해 자란다.]
박테리아 키우는 아메바
사회자: 집 짓고 거름 구하느라 힘들게 일하는 저희로서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리토라리아 선생님 옆에 계신분은 민달팽이 선생님이십니까?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를 민달팽이라고 한다던데….
아메바: 저희들은(한 마리가 아닙니다!) 민달팽이가 아니라 점균류라고 불리는 아메바 군체입니다. 지금 저희 모습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가 수만 마리 모인 결과죠.
사회자: 자연은 정말 신기합니다. 아메바 군체 선생님, 그럼 대표 한 분이 어떤 농사를 지으시는지 설명해주시죠.
사회자: 집 짓고 거름 구하느라 힘들게 일하는 저희로서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리토라리아 선생님 옆에 계신분은 민달팽이 선생님이십니까?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를 민달팽이라고 한다던데….
아메바: 저희들은(한 마리가 아닙니다!) 민달팽이가 아니라 점균류라고 불리는 아메바 군체입니다. 지금 저희 모습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가 수만 마리 모인 결과죠.
사회자: 자연은 정말 신기합니다. 아메바 군체 선생님, 그럼 대표 한 분이 어떤 농사를 지으시는지 설명해주시죠.


[➊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는 환경이 나빠지면 수만 마리가 모여 군체인 점균류으로 변신한다.]

[➋ 점균류는 자실체를 만들어 포자를 퍼뜨린다.]

[➌ 이 과정에서 먹이인 박테리아를 남겨뒀다가 새로운 환경에서 번식시켜 잡아먹는다.]
아메바: 저희가 하는 일이 농사인지는 저희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미국 라이스대 데브라 브록 박사라는 분이 과학학술지 ‘네이처’ 1월 20일자에 이 사실을 발표했는데, 논문 제목이 ‘사회성 아메바의 원시적인 농업’이라더군요. 사회성 아메바란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저희처럼 점균류로 변신하는 아메바 종류입니다. 참고로 저희 학명은 딕티오스넬리움 디스코이디움(Dictyostelium discoideum)입니다.
점균류라는 세포 덩어리는 세포들이 함께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꿈틀거리며 움직입니다. 최종적으로 일부(20% 정도)가 말라 죽으며 얇은 기둥을 만들면 나머지 세포가 위로 올라가 껍질이 딱딱한 포자가 돼 사방으로 퍼지죠. 그 뒤 환경이 좋아지면 포자를 깨고 아메바가 기어 나옵니다.
저희는 주변의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사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남겨둔 채 포자를 만들죠. 그 결과 포자는 박테리아를 지니고 이동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포자를 깨고 나온 아메바는 동반한 박테리아가 증식하면 이를 잡아먹고 살아가죠.
사회자: “그게 뭐 농사냐?”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농사란 결국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지 않고 남겨뒀다가 수를 늘려 먹는 행위 아닙니까. 따라서 아메바 선생님은 엄연히 농부입니다.
아메바: 감사합니다. 사실 연구자들이 논문 제목에 ‘원시적인’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저희가 농사를 효율적으로 지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단세포 생물이 이 정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사회자: 오늘 정말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배웠을 걸로 믿습니다. 사실 지구에서 농사를 짓는 생물이 저희뿐이겠습니까? 4년 뒤 열릴 제2회 총회 때에는 또 어떤 농부가 신입회원으로 들어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그럼 2015년 개최지인 중미 코스타리카 산호세 (제가 사는 곳입니다!)에서 뵙겠습니다. 안녕~.
점균류라는 세포 덩어리는 세포들이 함께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꿈틀거리며 움직입니다. 최종적으로 일부(20% 정도)가 말라 죽으며 얇은 기둥을 만들면 나머지 세포가 위로 올라가 껍질이 딱딱한 포자가 돼 사방으로 퍼지죠. 그 뒤 환경이 좋아지면 포자를 깨고 아메바가 기어 나옵니다.
저희는 주변의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사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남겨둔 채 포자를 만들죠. 그 결과 포자는 박테리아를 지니고 이동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포자를 깨고 나온 아메바는 동반한 박테리아가 증식하면 이를 잡아먹고 살아가죠.
사회자: “그게 뭐 농사냐?”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농사란 결국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지 않고 남겨뒀다가 수를 늘려 먹는 행위 아닙니까. 따라서 아메바 선생님은 엄연히 농부입니다.
아메바: 감사합니다. 사실 연구자들이 논문 제목에 ‘원시적인’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저희가 농사를 효율적으로 지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단세포 생물이 이 정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사회자: 오늘 정말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배웠을 걸로 믿습니다. 사실 지구에서 농사를 짓는 생물이 저희뿐이겠습니까? 4년 뒤 열릴 제2회 총회 때에는 또 어떤 농부가 신입회원으로 들어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그럼 2015년 개최지인 중미 코스타리카 산호세 (제가 사는 곳입니다!)에서 뵙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