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은 오랜 기간 동안 진화를 거쳐 발전해왔다. 그 때문에 무척 견고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생명현상을 잘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삶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복잡계 네트워크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속 단백질이나 물질은 복잡한 생화학 반응을 통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물질과 단백질을 점으로 표현하고 생화학 반응을 선으로 연결하면 ‘노드’와 ‘링크’로 이뤄진 네트워크 구조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속까지 네트워크 구조를 이룬다니, 세상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생물에서 배우는 인터넷
생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미래의 새로운 인터넷을 설계할 때 그 모델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은 크고 작은 문제점에 노출돼 있다. 1969년 미국 국방성이 만든 ‘알파넷(ARPANet)’이라는 시험 네트워크에서 시작된 인터넷은 처음에는 일종의 연구망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안이나 관리 기술이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연결했던 컴퓨터는 단 4대로, 지금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인터넷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1990년 월드와이드웹(WWW)의 탄생과 함께 일반 대중에게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현재 인터넷은 180개 나라에서 2억 6000만 대 이상의 호스트 컴퓨터를 연결하고 있으며 사용자가 14억 5000만 명이 넘는다. 매일 새로 접속하는 사람만 100만 명에 달할 정도다. 인터넷은 ‘노드’인 컴퓨터가 서로 연결(링크)된 네트워크다. 따라서 노드에 해당하는 컴퓨터가 많아지면 인터넷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링크 수가 계속 늘어나면 정보가 거쳐가야 할 거리 역시 늘어난다. 비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비효율성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현재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계에 다다른 인터넷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뭔가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때 훌륭한 참고가 된 것이 바로 생물이다.

다시 생물 네트워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반적인 네트워크는 규모가 커지면 링크 거리가 늘어난다. 예를 들어 인구가 5000만 명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5단계를 거치면 대부분 서로 연결된다. 하지만 60억 인구의 지구 전체로 규모를 바꾸면 연결 거리는 평균 6단계로 늘어난다. 현재 지구 위의 인구가 평균 6명을 거치면 모두 친구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미생물이나 세포의 신진대사망은 다르다. 적은 수의 물질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하등생명체부터 훨씬 많은 물질로 구성된 고등생명체까지 모든 노드(물질과 단백질)들이 신기하게도 평균 3번의 연결(링크)만으로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물질을 필요한 다른 물질로 바꾸는 데 3번의 생화학 반응만 거치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진화의 결과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원하는 물질을 쉽게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연결선이 늘면 그만큼 생산 단계가 많아져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세포는 크기와 상관없이 일정한 대사 효율을 확보해야 했고, 바이오 네트워크의 링크를 보강하는 방법으로 효율을 이뤄냈다.
물리학자와 수학자, 컴퓨터공학자들은 세포의 이런 특징을 활용하면 규모가 커지더라도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는 인터넷을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아이디어 수준이다. 수학자가 그래프 이론(점과 선 사이의 연결 관계를 연구하는 수학이론)을 활용해 배경 이론을 연구하고 필자와 같은 통계물리학자들이 많은 양의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뮬레이션 모형으로 실험해야 한다. 컴퓨터공학자들의 참여는 필수다. 또 바이오 네트워크 외에 소셜 네트워크나 경제 네트워크의 장점을 적용하는 연구도 함께 해야 한다. 현재 소셜 네트워크는 개개인의 신뢰성 때문에 보안이 강한 네트워크 특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의 어떤 특성이 이런 장점을 발휘하게 하는지 밝혀내고 차세대 인터넷에 활용하는 일도 필요하다.


4가지 네트워크 구조
미래 인터넷은 컴퓨터의 위치나 연결 구조(토폴로지)를 바꾸는 방법과 데이터를 보내는 속도나 용량을 바꾸는 방법을 통해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네트워크의 구성 요소 중 노드와 링크의 결합 방식(구조), 그리고 링크의 강도(굵기)와 비교할 수 있다.
먼저 구조인 토폴로지에 대해 살펴보자. 컴퓨터공학에서는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토폴로지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가장 쉽고 단순한 ‘버스형’은 하나의 통신채널을 통해 들어온 신호를 여러 대의 컴퓨터와 서버가 차례로 나눠 쓰는 구조다. 고속도로 주위에 차례로 나들목이 있어서 차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구성이 간단하고 작은 네트워크에 유용하며 관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통신채널이 하나이므로 고장이 나면 전체가 동작을 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많은 양의 정보가 한꺼번에 지나갈 경우 병목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링(고리)형’ 토폴로지는 버스형 토폴로지를 구부려 고리 모양으로 이은 형태다. 데이터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버스형과 같지만 데이터의 분산이 잘 이뤄져 병목 현상이 드물다. 하지만 구조가 폐쇄적이라 새로운 네트워크로 확장하거나 구조를 변경하기는 어렵다.
‘스타(별)형’은 중앙제어장치 하나를 두고 여러 가지 노드 사이의 연결을 이 제어장치가 알아서 해 준다. 고장이 났을 경우 발견하기도 쉽고 수리하기도 편하다. 점과 점을 잇는 방식이므로 노드를 늘리기도 쉽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중앙제어장치를 통하기 때문에 중앙제어장치가 공격받거나 고장 났을 경우 전체 네트워크가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네 가지 네트워크 구조‘토폴로지’
컴퓨터공학자들이 구분한 네 가지 토폴로지. 각각 네트워크 구축 방법이나 장단점이 모두 다르다.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이와는 다른 구분법을 쓴다.]
마지막으로 ‘메쉬(망)형’ 토폴로지는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의 점(노드)으로 보고 점과 점을 모두 연결(링크)한 구조다. 가능한 모든 링크를 1대 1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선로를 설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다양한 우회로를 갖추고 있어서 한 노드가 고장이 나더라도 영향이 적다.
이상은 컴퓨터공학에서 정보통신망을 구축할 때 쓰는 토폴로지다. 하지만 네트워크과학에서는 조금 다른 토폴로지로 인터넷을 설명한다. 공깃돌을 바닥에 다섯 개 던져 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자유롭게 흩어진 공깃돌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눈에 띄는 대로 무작위로 선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생각나는 대로 선을 긋되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그린다. 선(링크)이 집중한 곳도 별로 없고 반대로 링크가 너무 없는 휑한 곳도 없다. 이것을 ‘무작위 네트워크’라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 인터넷 토폴로지 가운데에는 이런 네트워크가 없다. 다만 메쉬형이 이 형태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노드 사이를 무작위적으로 빼곡하게 채운 것이 메쉬형 토폴로지다.
이와 반대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는 링크가 유난히 집중되는 중요한 노드가 따로 있다. 이렇게 링크가 유난히 집중되는 노드를 ‘허브’라고 한다. 위의 토폴로지 형태 가운데에는 스타형이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중요도가 비슷한 허브가 여럿 존재하지만, 스타형은 단 하나의 허브가 모든 것을 조정한다. 스타형 토폴로지에서는 중앙제어장치가 공격받으면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지만, 인터넷에서는 중요한 허브가 공격받아도 다른 허브가 있어서 전체 네트워크가 마비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다.
필자는 2001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서 세포를 이루는 바이오 네트워크가 외부 충격(예를 들어 실험실에서 단백질 형성 유전자를 없애는 식)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저항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바이오 네트워크의 토폴로지가 실제 바이오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토폴로지, 즉 네트워크의 위치와 구조는 네트워크 자체의 기능에 강한 영향을 행사한다. 새로 만들어질 거대한 인터넷 네트워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네트워크의 데이터 전송 속도와 용량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링크의 굵기에 비유할 수 있다. 구조도 중요하지만 데이터를 실제로 전송하는 링크의 수 역시 전체 네트워크의 성능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다. 따라서 데이터를 많이, 빠르게 보내는 케이블과 전송 방식도 중요한 연구 과제다. 현재 미래 인터넷 연구는 이 두 가지 전략을 모두 추구하고 있다.
새로운 인터넷 우리 손으로 만든다
새로운 인터넷은 두 가지 방향에서 연구되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 구조를 유지하면서 인터넷의 효율을 높이는 연구가 있다. ‘차세대 인터넷(NGN)’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예는 IPv6다. 현재의 인터넷 구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통신 규약(프로토콜)을 개발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차세대 인터넷이 완성되면 통신망에 약 100억 대의 단말기를 연결할 수 있고, 속도도 현재의 10배 수준인 1Gbps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학재단의 FIND(Future Internet Design) 프로젝트는 이보다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현재의 인터넷이 의존하고 있는 모든 네트워크 기술을 버린 채 무(無)에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는 미국이 앞장서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의 인터넷 구조와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의 혁신적인 서비스를 위해서는 인터넷과의 호환성을 과감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연구는 앞으로 15년 이후를 목표 연도로 삼고 있으며 앞으로 4~5년 안에 미래 인터넷의 기본 구조와 기술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대학을 중심으로 미래인터넷포럼을 구성해 관련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 현재 한국전기통신연구원, KT, 한국인터넷진흥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의 연구소와 서울대, KAIST 등이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계가 주축이 되고 있다. 각각 그래프 이론(수학), 대용량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데이터 과학, 복잡계 통계물리학), 실제 미래 인터넷 구축 및 적용(컴퓨터 공학)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수억 개의 노드를 갖는 가상의 네트워크를 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했으며 사회네트워크 구조를 응용한 새로운 기법을 연구했다. 특히 유선보다 무선 인터넷이 중시되는 환경을 위해 무선을 위한 네트워크 모델링을 만들기도 했다.
미래 인터넷은 아직 어떤 나라도 개발에 성공하거나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 적이 없다. 따라서 원천기술 개발과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월등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해 IT 선진국의 명성을 쌓았다. 이제 한 발 빠른 미래 인터넷 연구를 통해 15년 뒤, 그리고 그 이후의 명성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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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데이터 과학, '소셜'을 분석하다
Part 2. 세포 구조 모방하는 미래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