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영화 속 과학이야기를 다룬 연재 ‘뉴 시네마 사이언스’가 1월호부터 ‘똑똑한 팝(Pop)’으로 바뀝니다. 새로운 연재에서는 영화와 공연, 전시,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다룰 예정입니다. 과학과 문화를 융합하는 톡톡 튀는 과학 글쓰기에 도전하실 분도 모시고 있습니다. 과학동아(ds@dongascience.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줄거리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은 1982년에 나온 ‘트론’의 후속편이다. 주인공 샘 플린은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엔콤’의 최대 주주다. 엔콤의 공동 설립자였던 아버지 케빈 플린(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전작 ‘트론’의 주인공)이 20년 전 행방불명된 후 홀로 살았다. 그는 아버지의 옛 동료를 만나 열쇠를 건네 받는다. 샘은 그가 건넨 열쇠를 통해 가상현실세계 ‘그리드’로 들어가 그 안에 살고 있던 아버지와 재회한다. 이후 샘은 아버지와 함께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아슬아슬한 모험을 한다.
과학동아 평점
트론은 시작부터 화려한 3D 영상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실제 현실은 2D 영상으로, 가상현실은 3D 영상으로 구현 한다. 28년 전 영화 ‘트론’에서 같은 배역(케빈 플린)을 맡았던 배우 제프 브리지스의 과거 모습을 ‘페이셜 캡처’라는 기술로 재현했다. 트론은 이야기가 잘 짜여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과학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점들을 여럿 제시했다.
잠깐 전편의 이야기부터 보자. 전편은 게임 속 ‘프로그램’을 인간과 비슷한 일종의 인공생명으로 묘사했다. 전편의 주인공 케빈 플린은 비디오게임을 만들지만 동료가 그의 성과를 가로챘다. 그는 게임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회사의 메인 컴퓨터를 해킹한다. 하지만 도리어 케빈이 디지털 세계에 ‘스캔’돼 가상현실세계 ‘그리드’로 들어간다. 그는 탈출을 위해 비디오 게임의 프로그램과 승부를 겨뤘다.
2010년의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는 가상현실 속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정반대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케빈은 가상현실 속 분신인 ‘클루’에게 그리드 안에서 ‘완벽한 세계’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클루는 케빈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케빈은 그리드 안에서 저절로 생긴 생명체(ISO)를 보고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세계에도 흥미를 느낀다. 클루는 이런 케빈과 ISO가 완전한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된다고 여긴다. 클루는 케빈을 몰아내고, ISO를 거의 파괴한다.
네트워크상에서 스스로 태어난 ISO는 매력적인 존재다. 어찌 보면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자신의 수많은 변형데이터를 복제한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생명체를 복잡성, 종족번식, 죽음의 세 가지로 정의하는데 ISO와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특징을 일부 갖고 있다.
영국의 통신회사 브리티쉬텔레콤은 네트워크가 인간과 같이 스스로 조절하고, 복구하며 사람들의 요구사항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인공생명XI’를 발표했다. 인공생명의 특징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런데 인공생명XI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을까.
스스로 네트워크를 조절하고 복구하다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마치 트론의 세계 속에 있는 ISO와 같을 것이다.
▲트론: 새로운 시작은 탄탄한 줄거리보단 화려한 영상과 액션이 돋보인다.
▲트론에선 다양한 탈것들이 감각적으로 재구성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케빈 플린은 그리드를 창조했지만, 불완전한 ISO를 아꼈다는 이유로 쫓겨나 은둔하고 있었다.
영화 속 과학이야기를 다룬 연재 ‘뉴 시네마 사이언스’가 1월호부터 ‘똑똑한 팝(Pop)’으로 바뀝니다. 새로운 연재에서는 영화와 공연, 전시,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다룰 예정입니다. 과학과 문화를 융합하는 톡톡 튀는 과학 글쓰기에 도전하실 분도 모시고 있습니다. 과학동아(ds@dongascience.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줄거리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은 1982년에 나온 ‘트론’의 후속편이다. 주인공 샘 플린은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엔콤’의 최대 주주다. 엔콤의 공동 설립자였던 아버지 케빈 플린(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전작 ‘트론’의 주인공)이 20년 전 행방불명된 후 홀로 살았다. 그는 아버지의 옛 동료를 만나 열쇠를 건네 받는다. 샘은 그가 건넨 열쇠를 통해 가상현실세계 ‘그리드’로 들어가 그 안에 살고 있던 아버지와 재회한다. 이후 샘은 아버지와 함께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아슬아슬한 모험을 한다.
과학동아 평점
트론은 시작부터 화려한 3D 영상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실제 현실은 2D 영상으로, 가상현실은 3D 영상으로 구현 한다. 28년 전 영화 ‘트론’에서 같은 배역(케빈 플린)을 맡았던 배우 제프 브리지스의 과거 모습을 ‘페이셜 캡처’라는 기술로 재현했다. 트론은 이야기가 잘 짜여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과학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점들을 여럿 제시했다.
잠깐 전편의 이야기부터 보자. 전편은 게임 속 ‘프로그램’을 인간과 비슷한 일종의 인공생명으로 묘사했다. 전편의 주인공 케빈 플린은 비디오게임을 만들지만 동료가 그의 성과를 가로챘다. 그는 게임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회사의 메인 컴퓨터를 해킹한다. 하지만 도리어 케빈이 디지털 세계에 ‘스캔’돼 가상현실세계 ‘그리드’로 들어간다. 그는 탈출을 위해 비디오 게임의 프로그램과 승부를 겨뤘다.
2010년의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는 가상현실 속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정반대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케빈은 가상현실 속 분신인 ‘클루’에게 그리드 안에서 ‘완벽한 세계’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클루는 케빈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케빈은 그리드 안에서 저절로 생긴 생명체(ISO)를 보고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세계에도 흥미를 느낀다. 클루는 이런 케빈과 ISO가 완전한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된다고 여긴다. 클루는 케빈을 몰아내고, ISO를 거의 파괴한다.
네트워크상에서 스스로 태어난 ISO는 매력적인 존재다. 어찌 보면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자신의 수많은 변형데이터를 복제한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생명체를 복잡성, 종족번식, 죽음의 세 가지로 정의하는데 ISO와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특징을 일부 갖고 있다.
영국의 통신회사 브리티쉬텔레콤은 네트워크가 인간과 같이 스스로 조절하고, 복구하며 사람들의 요구사항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인공생명XI’를 발표했다. 인공생명의 특징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런데 인공생명XI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을까.
스스로 네트워크를 조절하고 복구하다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마치 트론의 세계 속에 있는 ISO와 같을 것이다.
▲주인공 샘 플린은 우연히 그리드에 들어와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클루’는 그리드를 완벽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케빈 플린을 몰아내고 ISO를 모두 죽였다.
▲‘클루’는 그리드를 완벽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케빈 플린을 몰아내고 ISO를 모두 죽였다.
유기체와 인공생명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폰 노이만은 현대적 인공생명 개념을 처음으로 내놨다. 그는 1951년 자기증식 기계에 관한 ‘세포자동자’ 이론을 고안했다. 세포자동자는 자신이 만들어진 방법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생산물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유전메커니즘과 닮았다. 폰 노이만은 이 이론을 완결 짓지는 못했지만 생명의 논리적 구조를 탄소 유기체와 단순기계에서 해방시켜 후대 과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87년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랭턴은 인공생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랭턴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명’이 아닌 ‘있을 수 있는 생명’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한 몇 개의 규칙을 가진 생명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뒤 이들이 살아있는 개미나 새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보였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복잡성, 종족번식, 죽음)을 갖춘다면 컴퓨터 혹은 로봇처럼 실리콘과 금속으로 이뤄져 있어도 생명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론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간과 프로그램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영화 초반 샘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탄로 난 이유는 샘이 프로그램과 대결하다 피를 한 방울 흘렸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프로그램들은 부상을 입을 때 피를 흘리지 않고 몸을 만든 코드가 깨져 나간다. 또 케빈의 가상현실 속 분신인 클루는 늙지 않는 반면, 케빈은 현실세계에서처럼 늙는다. 한 가지 의문은 샘과 케빈 역시 가상현실에 들어오면 코드화된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인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샘과 케빈 모두 그리드 안으로 몸까지 들어갔지만 말이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폰 노이만은 현대적 인공생명 개념을 처음으로 내놨다. 그는 1951년 자기증식 기계에 관한 ‘세포자동자’ 이론을 고안했다. 세포자동자는 자신이 만들어진 방법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생산물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유전메커니즘과 닮았다. 폰 노이만은 이 이론을 완결 짓지는 못했지만 생명의 논리적 구조를 탄소 유기체와 단순기계에서 해방시켜 후대 과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87년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랭턴은 인공생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랭턴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명’이 아닌 ‘있을 수 있는 생명’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한 몇 개의 규칙을 가진 생명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뒤 이들이 살아있는 개미나 새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보였다. 인공생명 연구자들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복잡성, 종족번식, 죽음)을 갖춘다면 컴퓨터 혹은 로봇처럼 실리콘과 금속으로 이뤄져 있어도 생명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트론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간과 프로그램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영화 초반 샘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탄로 난 이유는 샘이 프로그램과 대결하다 피를 한 방울 흘렸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프로그램들은 부상을 입을 때 피를 흘리지 않고 몸을 만든 코드가 깨져 나간다. 또 케빈의 가상현실 속 분신인 클루는 늙지 않는 반면, 케빈은 현실세계에서처럼 늙는다. 한 가지 의문은 샘과 케빈 역시 가상현실에 들어오면 코드화된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인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샘과 케빈 모두 그리드 안으로 몸까지 들어갔지만 말이다.
인간을 로봇에 다운로드 하다
영화 속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인간이 그리드 안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리드안의 프로그램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프로그램이 그리드 외부로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현실세계에 큰 혼란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로봇학자 한스 모라벡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1988년에 쓴 ‘정신의 자손’이라는 책에서 현실의 사물을 분자 단위로 스캔해 정보를 읽어 들인 뒤, 그 정보를 로봇의 신체에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의식이 로봇에 옮겨지는 것이다. 그는 생물에 비해 더 견고하고 정보처리 및 이동의 제약이 적은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의 정신적 유산까지 물려받아 인간의 진정한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제안까지 내놨다.
20년이 지난 현재 그런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5월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의 연구팀은 세균의 게놈을 합성한 뒤 다른 세균의 몸통만 빌려 합성생물체를 처음 만들었다. 과거에 없던 인공생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프로그램과 인간을 오가는 일도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82년에는 전편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했지만, 2010년 트론의 이야기는 사실처럼 다가온다.
영화 속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인간이 그리드 안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리드안의 프로그램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프로그램이 그리드 외부로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현실세계에 큰 혼란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로봇학자 한스 모라벡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1988년에 쓴 ‘정신의 자손’이라는 책에서 현실의 사물을 분자 단위로 스캔해 정보를 읽어 들인 뒤, 그 정보를 로봇의 신체에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의식이 로봇에 옮겨지는 것이다. 그는 생물에 비해 더 견고하고 정보처리 및 이동의 제약이 적은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의 정신적 유산까지 물려받아 인간의 진정한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제안까지 내놨다.
20년이 지난 현재 그런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5월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의 연구팀은 세균의 게놈을 합성한 뒤 다른 세균의 몸통만 빌려 합성생물체를 처음 만들었다. 과거에 없던 인공생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프로그램과 인간을 오가는 일도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82년에는 전편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했지만, 2010년 트론의 이야기는 사실처럼 다가온다.
▲트론: 새로운 시작은 탄탄한 줄거리보단 화려한 영상과 액션이 돋보인다.
▲트론에선 다양한 탈것들이 감각적으로 재구성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케빈 플린은 그리드를 창조했지만, 불완전한 ISO를 아꼈다는 이유로 쫓겨나 은둔하고 있었다.